2010년 8월 5일 목요일

대구 도심의 번잡로가 고속도로로 변한 사연

이 시대 권력의 모습,

번잡하기로 유명한 대구의 도심도로가 강희락 경찰청장 고향방문 차 앞에서 도속도로로 변했다.

강희락 경찰청장이 고향인 경북 성주를 방문하는 길에 경찰이 총동원돼 정체 도로의 교통 신호를 조작하고 길을 터주었다고 한다. 경찰 한 명이 교통신호 제어기를 수동으로 조작하고, 다른 네거리에선 교통경찰이 제어기 뒤에 숨어 있기도 하고.. 또 다른 네거리에선 무전을 주고받은 경찰이 제어기를 만지자, 버스가 그대로 통과했다 경찰청장을 태운 버스는 대구 도심 10킬로미터, 11개의 크고 작은 네거리를 지나며 단 한 번의 신호도 받지 않았다.

방송사에서 그에게 이 시실을 묻자, 그는 "나는 그거 모릅니다."
(지시하신 거 아닌가요?) 라고하자

"지시는 미쳤다고 지시합니까, 그런 걸..."

 

그렇다.

구태여 지시할 필요가 없다.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그의 결정에 자신의 운명을 의탁하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그들은 시민의 불편함은 안중에 없고 자신이 생존해야 할 방도만이 관심이다.

아니, 시민이 고문을 당하거나 억울하게 죽더라도 상관하지 않을 수 있다.

명령, 아니 보이지 않는 명령, 자신이 스스로에게 내리는 내적인 명령이 더 무섭다.

그래서 윗사람은 모른채 하고 아래 사람은 알아서 기고....

 

이승만 시대의 모습이다.

경찰권력은 국민들에게 군주처럼 군림하고, 백성들은 찍소리 못하고 굴종하고,

경찰은 오직 조직 속의 구성원이므로, 국민을 고문해도 좋지만 상명하복은 철저히 준수해야 하는 원칙이 되고, 강북서장처럼 집단 내 문제가 있어도 속한 집단을 비판하면 파면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다.

판단하는 사람은 필요없다. 복종하는 사람만이 필요하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민간인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 혹은 학살도 용인된다. 

 

그런데 그 시절과 다른 점도 있다.  

민주화이후를 살고 있는 신세대 경찰들이 이런 행동을 자발적으로 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50년대 가부장 시대, 독재시대의 인간이 아니다. 자본주의 상품화 시대의 인간들이다.

바로 이 점이다. 이명박 정부를 이 노골적인 거짓들을 지탱하는 기반은 바로 소비의 주체로 호명된 국민들, 젊은 경찰들이다. 여기서 획일주의, 생각없음, 자발적 순종은 다른 방식으로 재생산된다.

국민은 개체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치안의 대상이자 동시에 욕망의 주체로 나타난다. 

욕망하는 자들에게는 물질만 던져주면 된다.

그래서 갈길이 바빠 동동걸음치면서 신호등 앞에 서 있는 개인에 대한 배려는 필요없다.

비상사태다. 급하다. 올해안에 4대강 공정의 60%를 달성해야 한다.

그래서 너희들의 욕망을 내가 알기 때문에 목표만 제시하고 따라오라고 요구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 대구는 반대가 없는 도시다. 걸림돌이 원래 없는 도시다.

그러니 도심 번잡로가 고속도로로 변한들, 무슨 항의가 있겠는가?

이 일이 대구에서 일어난 것이 우연한 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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