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6일 금요일

시장경제 이해부족으로 선진화 실패?

작년 한국의 1일당 국민소득은 1만 7175달러로 5년 이래 최저수준을 기록했다고 한다. 평균치로 계산한 국민소득이 그 나라의 발전지표의 전부는 아니지만, 한국경제가 진국의 문턱에서 주춤거리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지난 25일 선진화 포럼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바른사회 시민회의의 공동대표인 홍익대 김종석 교수는 한국이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부족"때문에 선진화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어이없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시장경제에 대한 비판과 왜곡이 확산되고, "반기업정서가 커지고 경쟁은 나쁜 것이며 시장경제가 양극화의 원인이라는 부정적인 인식"들 때문에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지 못한다고 진단하였다( 중앙일보, 2010.3.26) 이는 국가경제에 문제가 생기면 모두 노조탓으로 돌린 전경련,대한상의 등의 입장을 달리 표현한 것인데, 아무런 논리적 설명과 근거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 반기업정서라고 하면 삼성 등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확산되거나, 노조의 힘 때문에 기업의 투자나 활동 자체가 제약을 받는다는 증거가 있어야 할 터인데, 한국처럼 노조나 소비자, 시민사회에 대기업의 활동에 대해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고, 법원이 기업의 시장경제 위한 행위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나라가 OECD국가 중 어디에 있는가 되묻고 싶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재벌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 많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이 발표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무슨 반기업세력이 악의적으로 퍼트린 결과가 아니라, 중소기업에 대한 부당한 후려치기, 태안 기름 유출사고처럼 국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서도 최소한의 사과나 보상도 하지 않는 대기업의 행태를 너무나 많이 접한 결과일 따름이다. 우리 소비자나 노동자들은 사실상 지나칠 정도로 기업에 대한 순종적이다.  특히 이 정부 들어서도 노조활동은 거의 위축되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아예 대기업의 부당행위에 대한 감시 자체에 손을 놓은 상태이다. 기업활동하기 이처럼 자유로운 나라에서 반기업 정서 운운하며 시장경제 교육을 강화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안중근의 거사를 기념할 자격이 있나?

안중근은 스스로 의병참모중장임을 자임하며 이토오를 저격하였다. 그는 "일이 급하지 않으면 의병을 불러올 수 있었고, 병력이 있었다면 쓰시마 근해로 출동하여 이토오가 타고오는 배라도 전복시킬 생각이었다"고 재판정에서 말했다. 천주교인임을 자임한 그는 "천주교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악"이라는 검찰의 지적을 받자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잘못된 일이기는 하나,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자 하는 자가 있는데도 수수방관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기 때문에 "죄악을 제거했다"고 답변하였다.  즉 안중근은 단순히 개인 저격수로 활동한 것이 아니며 천주교의 가르침보다 더 높은 정의의 기준과 동양평화라는 이상과 가치에 입각해서 거사를 했지만, 지난 83년 동안 한국 천주교는 안중근을 살인자로 간주하여 평신도로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안중근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 일본의 작위를 받아 호의호식하던 친일파의 후손들과 이후 독재정권에 부역한 인사들은 해방 후 안중근 숭모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안중근 기념사업을 수행해 왔고, 막대한 예산을 지출하며 남산의 안중근 기념관을 운영해 왔다. 이들은 안중근 직계 방계 가족들이 남한에서 거지와 다름없는 생활을 해오는데도 이를 방치하였으며, 안중근에 대한 이렇다할 자료 정리나 책자하나 편찬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 천주교, 그리고 한국인들은 안중근의 거사를 기념할 자격이 없다. 안중근의 뜻을 기억하고 기념하려는 천주교 단체는 함세웅 신부를 비롯해서 천주교에서 완전히 소외된 극소수 인사로 구성되어 있다. 안중근의 주요 유묵과 유품은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들에 의해 소중히 보관, 관리되어 왔다. 한국정부는 지난 반 세기 이상동안 안중근의 유해 매장지조차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한국의 역사학계는 안중근에 대한 체계적인 자료수집, 평전 집필 등 연구작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오늘의 한국인들은 안중근이 단순한 저격범인지 의병인지도 알지 못하고, 그가 주창한 동양평화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오늘의 한국인들은 왜 안중근이 이토오를 표적으로 삼았는지를 모르고 이토오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 모른다. 아직 대한민국은 안중근의 거사를 기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2010년 3월 25일 목요일

삼성 이건희의 복귀

이건희가 예정된 수순대로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했다. 삼성비자금 사건으로 경영일선에서 퇴진한지 2년만에, 모든 사법절차를 마치 작전하듯이 손쉽게 마무리하고 자신의 범법행위에 대한 아무런 사과도 없이, 당시 문제가 되었던 삼성 혁신안에 대한 아무런 점검 확인절차 없이, 위기론을 명분삼아 복귀했다. 언론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이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그의 복귀는 불가피하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들은 그의 경륜과 지도력이 앞으로 삼성과 대한민국이 10년후 먹을 거리를 확보하는데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민을 먹여살린다면 기업이 법을 어겨도, 황제경영이 재개되어도, 구조본이 전횡을 해도, 총수가 모든 의사결정을 좌우해도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이건희는 복귀의 명분으로 도요타 위기를 들먹인다. 그러나 삼성의 실제 위기는 바로 이건희의 복귀 자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삼성의 장래가 이건희의 경륜과 지도력에 의존한다면, 그가 물러난 이후 삼성과 대한민국은 모두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현재 김정일 일가에 의존하는 북한이 처한 위기와 동일한 것이다. '황제'의 전제는 황제의 능력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체제다. 도요타는 황제가 없어서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라, 노조를 무력화시키고, 비정규직과 계열 중소기업을 희생시키고 언론을 장악하여 비판을 막는 등 일본사회에 황제처럼 군림했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지적처럼 총수의 말한마디를 신의 말씀 처럼 받들고, 무노조경영을 신앙처럼 여기고, 경영실패에 대해 책임지지도 않고, 공금을 개인 생일 치에 사용하고도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않는 기업문화가 바뀌지 않는 상태에서 어떻게 삼성이 세계 초일류 기업이 될 것인가? 당장은 이건희의 복귀가 의사결정을 신속히 하고, 투자를 활성화하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위기는 지금부터가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는 삼성에게 나라운명을 맡기는 거대한 도박판에 모두가 졸이되어 동원되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삼성이 법 위에 있으면 모든 국민은 마음속으로 법을 무시한다. 

 

2010년 3월 24일 수요일

오바바의 의료보험개혁

미국 하원에서 의료보험 개혁안이 통과되었다. 지난 연말에 실패한 이후 두 번째 시도에서 성공하였다. 미국 언론은 이것은 21세기판 미국 시민권리장전이라 부르고 있다. 그 동안 공화당과 보수세력, 이해집단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법안이 많이 변질된 것이 사실이다. 3,200만의 무보험자에게 보험이 지급되는 것에 실제 해택을 보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처음 필요성을 언급하고, 트루만도 시도했고, 린든 존슨이 시도했다가 좌절하고, 클린턴이 야심차게 추진했다가 실패한 미국 민주당 세력의 최대의 국가적 의제인 의료보험안이 통과된 것은 엄청난 큰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민주당 하원의원 모임에서 오바마의 즉석 연설은 더욱 감동적이다. 그는 "우리는 이기려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려 한다", "우리는 성공하려 하는것이 아니라 우리가 간직한 빛이 비춰지도록 하려한다"고 말했다. 정치가인 그가 이 법안 통과를 정치적 고려없이 추진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사안은 그가 대통령 유세과정에서도 여러번 언급했던 바, 대통령이 되려했던 그의 이유이기도 했고, 그의 꿈의 일부이기도 했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그가 첫번째 실패이후 좌절하지 않고 적진인 공화당 의원총회에 들어가 무려 7시간 토론을 했으며, 민주당 내의 회의론자들과 공화당 반대파들을 설득하는데 엄청난 열정을 쏟았다는 점이다. 그는 이 사안에 관한 한 모든 세세한 내용까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최고의 전문가였고, 한국의 우파들처럼 시도때도 없이 좌파 운운하는 험담과 공격에도 아랑돗하지 않고 끈질기게 자신의 주장을 개진하였다. 즉 4대강 비판이 일자 비판에 대해 논박(debate)할 생각은 않고, 홍보가 부족하다고 호통치는 이명박 대통령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과거 클린턴 정부 초기의 의료보험 개혁이 힐러리 주도의 테스크 포스팀에 너무 의존해서 국회의 반발을 불러왔다는 점을 반성한 오바마는 이번에는 처음부터 국회가 주도하도록 하였으며, 그것이 이번의 법안이 성공적으로 통과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했다. 즉 쟁점에 대한 적절한 논박과 반대파에 대한  설득, 국회주도성 인정이 성공의 배경이었다.  그러나 공화당은 가다오는 중간선거에 심판하겠다고 벼르고 있고, 당장 수정법안을 제출하겠다고 협박하고 있으며, 헌법위반 조항이 있으니 위헌심판을 청구하겠다고 한다. 이 법안에 대한 지지도도 과거에 비해서는 다소 떨어졌다. 그러나 실제 이 법이 집행되어 그것의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이 법의 실제 내용을 깨닫게 된다면 오바마는 더 큰 정치적 지렛대를 얻게 될 것이다. 결과는 이번 중간선거에서 드러날 것이다.

 

 

2010년 3월 22일 월요일

리영희 선생

전쟁이라는 주제로 리영희 선생님에 대한 강연을 했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그가 누구인지 거의 모르겠지만, 7,80년대 한국 지성사, 사회운동사에서 리영희가 차지하는 자리는 매우 큽니다. 나는 그와 1995년 [역사비평]에서 대담을 나눈 적이 있고, 그 후에도 지속적인 만남( 배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번의 강연은 사계절에서 출간한 [리영희 프리즘]의 책에 실은 나의 에세이를 중심으로 한 것입니다만, 전쟁 일반 그리고 나의 책 [전쟁과 사회]에도 같이 언급했습니다.

 

[‘리영희 프리즘’ 발간기념 연속강연](上) 김동춘 교수 ‘리영희와 전쟁’

 글·사진 김재중 기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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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국전쟁과 지금 한국사회, 메커니즘 같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0년이 지났다. 전쟁이 일어나던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만 60세가 됐지만 전장에서 전투에 가담하고 전쟁의 혼란 속에서 삶을 영위해야 했던 당시의 청장년 세대는 무리지어 역사의 뒤안길로 걸어가고 있다. 한국전쟁을 간접체험한 것이 전부이거나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음을 뜻한다. 이처럼 한국전쟁을 화석화된 역사의 한 장면으로 덮어도 되는 것인가?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우리가 이 전쟁을 불러내는 방식은 올바른 것인가?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문제에 천착해온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두 가지 질문에 모두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발간된 <리영희 프리즘>에 필자로 참여한 김 교수는 지난 20일 경향신문과 사계절출판사, 인권연대 공동주최로 서울 마포구 동교동 ‘아트앤스터디’에서 열리는 연속강연의 첫번째 강연자로 나와 ‘전쟁의 세기-리영희와 전쟁’을 주제로 강연했다.

김 교수는 “흔히들 전쟁을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는데 국가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전쟁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의 위에 전쟁이 있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이해는 그 사회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데 정점에 서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미국 학교의 세계사 교과서에 한국에 대한 설명은 딱 두 페이지인데 한국전쟁과 경제발전 밖에 안나온다”면서 “전 세계 모든 아이들은 한국전쟁과 경제발전으로 한국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한국전쟁이 20세기 한국 역사의 절반을 차지하는 셈이다.

김 교수는 “한국전쟁을 통해 일제 식민세력과 국가보안법이 부활했고, 친일경찰·친일군대가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한국전쟁은 식민지체제를 냉전체제로 모습을 바꿔 생명을 연장하도록 했으며, 한국전쟁을 통해 일본이 물러가고 미국이 그 자리를 메웠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가 보기에 리영희는 이런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어 본 선각자적 지식인이었다. 리영희는 국제부 기자로서 베트남전쟁을 취재하면서 베트남전에 대한 일련의 책들을 펴냈는데 베트남전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한국과 한국전쟁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 김 교수는 “베트남전은 ‘현대 모순의 집약적 표현’이었고 한국 사회와 정부, 한·미관계를 볼 수 있는 프리즘이었다”면서 “베트남전이 더러운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는데 이걸 딱 정리해준 사람이 리영희였다”고 말했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가 20일 서울 동교동 ‘아트앤스터디’ 강의실에서 ‘전쟁의 세기 - 리영희와 전쟁’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그렇다면 6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은 어떠한가? 김 교수는 한국의 주류·보수언론들이 한국전쟁을 회상하는 방식에 대해 “60년간 들어온 압록강에 태극기를 꽂는 유의 철지난 레코드판을 다시 틀어대고 있다”면서 이의를 제기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상임위원을 4년간 역임한 김 교수는 “학살당한 사람과 가족, 그들을 죽인 경찰과 군인 모두 희생자인데 60년간 말못할 사연들을 숨긴 채 살아왔고 여전히 사회의 말단에서 숨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진정 양심있는 보수라면 잘나가는 사람들 얘기만 다룰 게 아니라 진정 희생당한 사람들 얘기를 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전쟁처럼 힘 없는 사람에게 심각한 상황이 없다”면서 전쟁을 통해 돈을 벌고,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아니라 전쟁 때문에 육체와 정신이 망가지고 가정이 파탄난 사람들, 다시 말해 밑바닥에서 위를 올려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일 밑바닥에서 보면 그 사회의 모든 것이 보입니다. 누가 어떻게 해먹고, 조그만 것을 가지고 권세를 부리며, 그 정점에 누가 서 있는지 밑바닥에서 보면 다 보인다는 거죠. 군대에서도 말단 이등병의 눈으로 보면 군대가 다 보이듯이 지금으로 치자면 가장 약한 계층인 이주 노동자의 눈으로 보면 한국사회의 노동문제가 다 보입니다. 리영희는 말단 병사는 아니었지만 군대에서 한국사회의 속살과 한국 권력자의 모순을 봤고, 전쟁의 문제와 사회 체제의 문제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봤던 것입니다.”

김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갔다. 전쟁의 논리와 시장의 논리는 기본 메커니즘은 같다는 것이다.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사회에서 사람을 함부로 해고하는 사회가 됐죠. 영어 표현은 둘이 같습니다. ‘나 총맞았어’와 ‘나 해고됐어’는 모두 ‘파이어드(fired)’라고 합니다. 우리말도 그렇습니다. ‘잘렸다’는 표현이 그렇지요. 목이 잘리면 금방 죽지만 회사에서 잘리면 천천히 죽는 차이만 있습니다.”

김 교수의 논리를 따라가면 한국은 여전히 ‘준전시상태’다. “사회적으로 소수자, 낙인찍힌 사람을 매장시키고 재기불능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은 전쟁 때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그래서 준전시상태의 남북한에선 인간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준전시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속살을 바로 보는 것. 리영희가 봤던 것이 바로 이것이며 한국전쟁 60년을 맞이해 우리가 봐야 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라는 게 김 교수가 내린 결론이었다.

“전쟁이 추상적이지 않듯 평화는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전쟁과 대결의 이름으로 희생당한 분들의 목소리, 그것이 바로 평화의 출발점입니다. 평화체제 수립 없이 인권은 없습니다.”

2010년 3월 19일 금요일

사형제 부활?

법무장관이 경북 청송교도소를 방문해 "교도소 내 사형집행 시설 설치를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사형제를 찬성한다는 의사를 적극 표시한 셈이다. 흉악범에 대한 민심의 분노가 비등한 것을 틈탄 인기 영합적인 발언인지 아니면 사형제 부활의 신호탄인지 알수는 없으나, 한국의 인권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움직임이 아닐 수 없다. 사형제는 "원수를 갚는다"는 인간의 원초적 감정에 부응하고 피해자의 분노와 한을 푼다는 의미가 있지만, 사건의 재발방지, 즉 정치사회 공동체의 복원에는 별로 효과가 없다는 점이 이미 충분히 검증되었다. 사형제가 존속하는 미국이 세계 최고의 범죄국가임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사형을 시킬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범죄 동기를 일시적으로 자제시키는 효과를 줄 수 있을지 모르나, 공포감은 결코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 원리로 자리잡을 수 없다. 사형제는 국가의 폭력이고, 이본적으로 보복적 정신에 기초한 전근대 시절의 유물이다. 때로는 적절한 응징과 보복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회가 보복으로 얼룩지면 더 심각한 폭력이 나오게 된다.  흉악한 범죄자를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조치는 필요하지만, 보복의 정신이 국가의 운영원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흉악한 범죄자을 만들어낸 국가나 사회가 자기반성없이 오로지 나타난 결과에만 치중해서 모든 잘못을 범죄자에게만 돌린다면  문제 해결은 점점 어려워지고 새로운 피해자는 계속 나오게 된다. 맹자는 형벌을 줄이고 세금을 감면하는 것이 좋은 정치의 기본이라 했다. 형벌이 없는 세상, 법원이 없거나 법관이 할일이 없는 세상, 소송이 없는 세상이 최고로 좋은 사회다. 이승만 정권이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나서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10만명을 넘어섰고, 이들을 수용할 감옥이 없어서 감옥은 지옥이 된 적이 있었다. 해방 4년이 된 나라에서 10만명의 범죄가자 생산된다? 과연 국민들이 갑자가 범죄자가 되었나, 국가가 범죄자를 만들었나?  가혹한 형벌을 가한다는 것은 국가가 범죄자를 교화시킬 능력이 없다는 것을 실토하는 것이다. 흉악범에 분노하는 에너지의 십분의 일이라고 우리사회가 어떻게 이런 범죄자를 만들어내고 있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10년 3월 14일 일요일

김동춘 인사드립니다

김동춘입니다.

 

제가 지난 4년 동안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일한이후 학교로 복귀하여 연구자로서 활동을 재개하였습니다. 그래서 홈피( http://dckim.skhu.ac.kr ) 개편하고 블로그도 새로 만들었습니다. 집필활동도 다시 시작했습니다. [황해문화] 이번 봄 호에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와 기업국가 현상에 대해 글도 하나 썼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406506.html

그 동안의 진실위원회의 경험 뿐만 아니라 변화되는 한국사회와 세계정세에 대해서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지난 4년 동안 사실상 연구활동과 집필활동을 중단했었기 때문에 다소 감이 둔해진 점도 있습니다만, 열심히 노력해서 옛날의 감각을 되찾겠습니다. 저도 이제 50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어 지난 20여년 간의 연구자로서의 활동도 정리하고 새롭게 모든 일을 착수할 계획입니다. 사회활동을 정리할 수는 없지만, 과거보다는  연구와 교육에 더욱 치중할 계획입니다. 외국의 학자나 연구자들과의 교류도 더 적극적으로 임할 생각입니다. 모쪼록 많은 관심과 격려, 질책이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201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