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6일 금요일

대한민국은 안중근의 거사를 기념할 자격이 있나?

안중근은 스스로 의병참모중장임을 자임하며 이토오를 저격하였다. 그는 "일이 급하지 않으면 의병을 불러올 수 있었고, 병력이 있었다면 쓰시마 근해로 출동하여 이토오가 타고오는 배라도 전복시킬 생각이었다"고 재판정에서 말했다. 천주교인임을 자임한 그는 "천주교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악"이라는 검찰의 지적을 받자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잘못된 일이기는 하나,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자 하는 자가 있는데도 수수방관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기 때문에 "죄악을 제거했다"고 답변하였다.  즉 안중근은 단순히 개인 저격수로 활동한 것이 아니며 천주교의 가르침보다 더 높은 정의의 기준과 동양평화라는 이상과 가치에 입각해서 거사를 했지만, 지난 83년 동안 한국 천주교는 안중근을 살인자로 간주하여 평신도로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안중근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 일본의 작위를 받아 호의호식하던 친일파의 후손들과 이후 독재정권에 부역한 인사들은 해방 후 안중근 숭모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안중근 기념사업을 수행해 왔고, 막대한 예산을 지출하며 남산의 안중근 기념관을 운영해 왔다. 이들은 안중근 직계 방계 가족들이 남한에서 거지와 다름없는 생활을 해오는데도 이를 방치하였으며, 안중근에 대한 이렇다할 자료 정리나 책자하나 편찬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 천주교, 그리고 한국인들은 안중근의 거사를 기념할 자격이 없다. 안중근의 뜻을 기억하고 기념하려는 천주교 단체는 함세웅 신부를 비롯해서 천주교에서 완전히 소외된 극소수 인사로 구성되어 있다. 안중근의 주요 유묵과 유품은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들에 의해 소중히 보관, 관리되어 왔다. 한국정부는 지난 반 세기 이상동안 안중근의 유해 매장지조차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한국의 역사학계는 안중근에 대한 체계적인 자료수집, 평전 집필 등 연구작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오늘의 한국인들은 안중근이 단순한 저격범인지 의병인지도 알지 못하고, 그가 주창한 동양평화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오늘의 한국인들은 왜 안중근이 이토오를 표적으로 삼았는지를 모르고 이토오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 모른다. 아직 대한민국은 안중근의 거사를 기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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