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31일 월요일

이집트는 1980년 이란, 1987년 한국?

이집트의 시위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가 온 세계의 관심거리다.
미국과 유럽은 '질서 있는 이행' 을 촉구하고 있다. 즉 무바라크의 퇴진을 거론하지는 않으면서 시위대 행동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의 영향력 하에 있는 이집트 군부는 시위대에 총을 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의 가장 결정적인 이해관계는 이스라엘 문제다.
미국 내에서도 공화당은 미국이 애매한 태도를 취하면서 시위대를 인정하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되며 무바라크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카터 전 대통령은 무바라크가 물러나야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집트가 1980년 이란혁명, 즉 이슬람 강경세력이 무바라크 이후 정국을 장악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슬람형제단이 집권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시위대에 대한 영향력도 크지 않을 뿐더러 이집트는 아랍권에서고 가장 도시화된 국가이고 도시 중산층이 이번 시위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1987년 한국에서 전두환 정권이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결국 노태우의 재집권으로 연결된 것처럼 무바라크가 9월 선거에서 불출마 선언을 하고 온건친미세력이 선거를 통해 이라크를 장악하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 즉 형식적인 민주화를 통해 불만을 잠재우면서 더 안정적인 신자유주의 세력이 집권하는 것이다.

새로 임명된 부통령 슐레이만은 헌법개정을 포함한 모든 내용을 논의하자고 야당에 제안하였다. 그는 시위대의 가장 큰 물만 사항인 부패 및 실업 문제에 대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은 전이집트 대사인 와이즈만을 이집트에 보냈다. 그는 과감한 정치 경제 개혁 조치를 촉구하여 시위대의 저항을 잠재우도록 이집트 정부와 협의할 것이다.

이집트의 향배는 오늘 예정된 100만 명 시위대의 결집력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이미 1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난 이상 시위대가 뒤로 물러설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무바라크 정권 30년을 지탱시켜준 가장 큰 힘은 미국이기 때문에 미국은 이 시위대의 힘의 여하에 따라 자신의 이해를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집트 사태를 종결시키려 할 것이다. 미국에게 이집트 문제는 곧 이스라엘 문제다. 그리고 이집트 도미노는 시리아, 수단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어서 더욱 큰 골치거리다.

미국은 질서있는 이행, 즉 선거를 통한 친미정권의 수립에 매진하게 될 것이지만, 과연 이집트 시민들이 그것에 머물러있기를 원할지 아니면 더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이집트 문제는 단순히 무바라크의 퇴진을 넘어선다. 그것은 최근 10년동안 추진된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한 실업과 빈곤, 엄청난 빈부격차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 시위는 여러모로 21세기 형 민주화, 즉 신자유주의 극복이 반독재 문제와 결합된 중요한 사례가 되고 있다.

2011년 1월 29일 토요일

반칙은 사형 선고, 범죄자는 무죄

'수폰서 검사' 는 무죄가 되었다.
이광재 전지사는 지사직을 박탈당했다.
정치인으로서 거의 사형선고에 가까운 심각한 처벌을 받았다.
기업인 돈받은 것은 잘한 일이 아니지만, 한국정치에서 정치자금 없이 정치한다는 것 불가능하다는 것 누구나 알고 있다.
제도를 고쳐서 개선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검사는 절대로 스폰서와 만나서는 안되고 향응 접대, 금품수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심각한 범죄다.
그것은 검사로서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는 일이고, 사법정의 전체, 국가에 대한 신뢰를 흔드는 일이다.

축구경기와 비유하면 이렇다.
태클 잘못해서 파올 범한 선수는 엘로우 카드로 경고하고 두 번 계속 반복하면 퇴장시킨다. 그런데 업사이드 반칙을 범한 사실이 있어도 업사이드라고 판정하지 않은 심판,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반칙을 했는데도 반칙선언을 하지 않는 심판을 그냥 두는 것과 같다. 선수의 잘못은 전체 경기에서 약간의 영향만 주지만 심판의 편파 판정과 잘못은 경기의 승패를 좌우한다.

반칙한 선수는 퇴장시키고, 편파 판정을 한 심판은 그냥 두면 어떻게 될까?
아니 더 나가 반칙한 선수는 10년동안 선수생활 못하게 하고, 뒤에서 특정 팀으로부터 돈을 받고 편파판정을 한 심판은 앞으로도 계속 심판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축구는 난장판이 되고, 아무도 이제 축구를 보지 않을 것이다.

지금 그런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중세시대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2011년 1월 28일 금요일

이집트의 대폭발

이집트 시위가 날로 격화되고 있다. 카이로를 비롯해 알렉산드리아, 수에즈 등 중요 도시에서 시위가 발생하고 있다. 시위대는 가가호호 방문하여 시위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1,200명 정도의 시위대가 체포되었고, 6명이 사망하였다.

이집트 정부는 군대 투입을 고려 중이라고 한다.

이집트 공안경찰은 이 시위의 배후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려 한다. 그들은 차량을 불태우는 등의 과격시위를 조작하여 시위대를 분열시키려는 공작을 한다는 소문도 있다. 그들은 인터넷을 차단하고 쇼설미디어가 시위를 확산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고 페북이나 트위터도 차단시켰다고 한다.

이 시위는 한국의 4.19와 5.18을 연상시킨다. 30년 독재자 무바라크는 오직 미국의 절대적 후원 하에서 권좌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퇴진은 미국의 의중에 달려있다. 미국은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는 듯이 보인다.

"We are deeply concerned about the use of violence by Egyptian police and security forces against protesters and we call on the Egyptian government to do everything within its power to restrain its security forces," Clinton said. "At the same time, protesters should also refrain from violence and express themselves peacefully."

클린턴 국무장관은 양자가 모두 자제라하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성명은 사실상 무바라크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무바라크의 실정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는 아랍권의 친미정부의 대표주자다. 따라서 이집트의 시위는 미국의 중동정책 전체를 흔드는 뇌관이다. 무바라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과정에서 일관되게 미국의 입장을 옹호해 왔다.

이 시위가 과거의 한국이나 남미의 민주화 운동과 다른 점은 단순한 독재정권의 청산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과 실업난, 무바라크 일가의 권력세습 기도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시위는 이집트 경제와 사회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집트 인민들의 "자존심 훼손", 그것이 이 시위의 진정한 배경이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독재자나 기득권층은 절대로 스스로 물러나는 법이 없다. 이집트의 시위에 대해 미국은 곧 답을 내려야 할 것이다.


2011년 1월 26일 수요일

학업성취도는 계층문제

모두가 아는 사실을 자료가 다시 입증해 주었다.

서울시내 251개 초·중·고생 7887명을 대상으로 조사 연구한 결과를 담은 < 서울시 학교교육격차에 대한 다층모형 분석 > 논문에서 "학교 격차의 대부분은 부모의 소득·교육수준 등 학교 외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특히 부모의 수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분석 결과 초등학교에서는 학업성취도 상위권 학교(상위 30%·수학성적 기준)의 학부모 평균소득이 월 634만4000원인 데 비해, 하위권 학교(하위 30%)의 학부모 평균소득은 월 413만7000원이었다. 중학교의 경우 상위권 학교의 부모 평균소득이 644만4000원인 반면, 하위권 학교는 384만6000원으로 나타났다. 가정환경에 따른 학업성취도 차이는 상급학교로 갈수록 더욱 뚜렷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상위권 학교와 하위권 학교의 평균 가구소득 차이는 초등학교 때 220만7000원에서 중학교 259만8000원, 고등학교 316만6000원으로 더욱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12&newsid=20110126220811571&p=khan

요컨데 A라는 학생이 ㄱ 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ㄴ 학교를 간다고 하더라도, 그의 성적이 향상될 확률은 그의 부모의 경제력을 넘어설 수 없다는 이야기다. 부모의 소득이 높다고 해서 물론 아이들이 무조건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특정 지역의 특정학교 학생들의 진학률과 성적이 높은 것은 학생 개인이 ( 그의 부모가) 그럴 조건이 되기 때문이지, 학교가 잘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간단한 상식은 학교교사들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 관료나 이 정부는 그것을 모른채 하고 있다. 그러면서 학교만 족치고 있다.

자사고가 대세가 되면 학부모들은 어떻게 하든 상위권 학생들이 몰리는 자사고에 아이들을 보내려 한다. 그러면 일반고가 이제 슬럼이 된다. 즉 공교육은 붕괴되고 자사고가 평균이 되어, 학부모들은 등록금미 몇 배 비싼 자사고에 아이들을 보내려 한다. 지금 그게 이 나라의 교육현실이다. 일반고의 교육은 붕괴되고 있다. 학교 부적응자, 학업성취도가 높지 않은 학생들은 설자리가 없다. 도대체 모든 아이들이 영수국을 잘해야 한다는 이 어거니 논리가 교육학 이론의 어디에 존재하는가? 교육을 경제의 논리로 보고 교육을 경쟁으로만 보는 이 비뚤어진 교육철학이 청산되지 않고서는 한국 교육의 미래는 암담할 따름이다.

오바마가 한국 교육을 극구 칭찬했다고 한다. 아이들 공부시킬 의지가 없는 미국의 중하층 학부모들을 생각하면 한국의 학부모들의 교육열은 찬탄할만한 점이 있다. 그것이 한국의 큰 자산인 것은 맞다.
그러나 오로지 이기주의에 가득찬 출세지행의 교육열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그는 모른다. 그러니 그에게는 한국의 좋은 점만 보이는 셈이다.

학업성취, 즉 영수국 실력향상이 곧 교육의 성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라.
계층이 학업의 가장 결정적인 변수가 되었고, 이제 가난한 아이들이 공부할 잘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안정하라.학교간 무한경쟁은 아이들과 교사들을 죽이는 일이라는 점을 인정하라.
문제의 해법은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2011년 1월 24일 월요일

튀니지의 자스민 혁명

튀니지의 '자스민 혁명'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23년 동안의 독재자를 풀뿌리 시민들이 추방한 것도 놀라운 일이거니와 과도정부의 인물들이 구 독재 시대의 인물로 채워진데 대한 분노가 시위를 계속하게 만들고 있다. 군부가 중립을 지킨 것이 큰 성공요인이었고, 쇼설미디어의 역할도 컸다. 이것이 과거의 민주화 운동과 다른 점은 단순히 독재, 부패 청산의 구호만 내건 것이 아니라, 21세기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저항 즉 광범위한 실업과 경제위기에서 촉발된 점이 크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 상당한 전염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면에서 가장 크게 폭발하여 독재자의 권력이양 약속을 이끌어냈고, 이웃 알제리, 이집트, 요르단 등지에서도 민주화 운동을 촉발시키고 있으며, 유럽의 알바니아까지 뒤흔들고 있다.

튀니지의 민주화를 비롯한 아랍권의 민주화 운동은 미국과 유럽 구제국주의 국가를 겨냥하고 있다. 우선 침략에 의한 체제전환을 기도했던 미국모델에 맞서 민중들 자신이 체제전환을 시도하는 점에서 이것은 미국에 대한 직접도전이며, 그 동안 이 독재정권을 배후에서 지지하면서 아랍권 헤게모니를 유지해온 미국과 프랑스 등의 서구 중동 정책에 대한 전면도전이다.

우리의 87년 민주화운동이 결국 노태우의 재집권과 구보수세력의 기득권 유지로 귀결된 것처럼 이 민주화의 길도 매우 험난한 도정을 거칠 것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유혈진압의 방법을 사용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80년대 남미와 아시아의 민주화 운동에 뒤이은 제3의 민주화 운동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이 민주화 운동이 미치는 세계사적 파장은 적지 않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뒤늦은 민주화 운동 ! 그 파장은 미국의 지구적 패권을 흔들고 새로운 세계질서를 정초하는 시작이 될지 모른다.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2011년 1월 23일 일요일

조봉암 선생이 사형당하지 않았다면

진실위원회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사건 중의 하나가 조봉암 사건이다.
조봉암이 간첩이 어니라는 것을 입증할 증인인 양명산 밖에 없으나 그도 사형을 당했고, 당시 재판부에 있었던 판사들 이들을 불법적으로 조사한 CIC 대원들 모두가 사망했으니 새로운 증거는 나올 것이 더 이상 없었다.
법원도 진실위의 보고서 이상으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 판결은 사실 진실위의 조사결과를 추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봉암을 죽인 사람은 이승만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고정훈이지만, 그도 오래 전에 사망했다. 사법살인이라는 것까지는 법원이 인정을 했으나 법원이 누구의 명을 받아 조봉암을 대신 살해했는지까지는 밝히지 못했다.
1956년 선거에서 혼줄이 나고, 다음 선거에서 조봉암을 살려둔다면 자신이 정권을 잃을 것이라고 판단한 이승만 말고 누가 그를 죽일 수 있었겠는가?

조봉암이 살아있었더라도 4.19 혁명은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면 아마도 조봉암은 혁신계 활동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조봉암이 4.19 이후 정국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더라도 5.16을 막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마 이 때 살았더라도 그는 박정희에 의해 죽었을 것이다.
아무리 전향한 인사라고 하나, 독립운동과 좌익의 경력을 가진 조봉암을 살려둔 상태에서 친일경력을 가진 한국의 군부 보수세력이 편안히 잠을 잘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살아있었다면 한국의 진보정치 운동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고, 1987년 이후에도 그 여파는 남아 새 세대의 진보정치운동이 더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법살인, 그로 인해 한국정치의 발걸음은 훨씬 뒤쳐졌다. 보수세력은 엄청난 정치적 과실을 거두었다.

정권의 하수인이 된 한국의 법원은 이렇게 한 사람의 걸출한 정치가를 없애버렸지만 누구도 그것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다.

2011년 1월 22일 토요일

아덴만의 쾌거, 그러나,,,

청해부대가 납치선원을 구출한 것은 찬사를 받을 만한 일이다.
오랫만이 이 정부가 좋은 일을 했다.
대통령의 결단도 높이 살 만하다.
언제까지 우리가 해적들에게 끌려다닐수는 없기 때문이다.
2009년 4월 프랑스는 자국 선원을 구출하는 작전 과정에서 인질로 잡힌 1명의 선원을 잃기도 했다. 미국도 유사한 작전을 펼쳐서 성공하기도 했다.
여러나라는 이 경우 위험을 무릎쓴 작전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망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어쨋든 한국이 이런 작전을 펼쳐서 우리 선원이나 군인들이 한명도 다치지 않고도 성공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막 박수를 치다가 보니 또 흠이 드러난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명령했다"는 말이 제일먼저 흘러나온 것이다.
아무리 이 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싶어도 이 때는 말을 아껴야 한다.
국방부 발표를 보고 있어도 그 공은 대통령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는 법이다.
그 성급함과 속좁음에 짜증이 난다.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저녁 뉴스를 보다가 더 경악했다.
30분까지 오직 이 뉴스로만 도배를 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TV를 껐다.
국가적으로 경축할만한 큰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거나, 전쟁과 같은 대란이 아니라면 온 뉴스를 이 사건으로 온통 채울 수는 없는 일이다.
이건 매체가 아니다. 그리고 언론의 이러한 행태가 물론 자발적으로 한 것이겠지만 그것은 모두 이 정부의 작품이라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청해부대 쾌거에 박수치려다가 이런 일을 접하기 영 기분이 개운찮다.
실패를 한 정책에도 내가 했다고 말할 건가?

2011년 1월 19일 수요일

한국인의 철학

한국갤럽에서 책을 낸 모양이다.
흥미있는 책인데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철학과 관련된 책을 몇 권 읽었나”라는 질문에는 74%가 ‘철학 관련 책을 한 권도 읽은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가장 관심 있는 철학 분야로는 동양철학(21%), 우리나라·동양·서양의 대표적인 철학자로는 각각 율곡 이이, 공자, 소크라테스가 꼽혔다.
다만 우리나라 철학자에 대한 질문에서는 ‘모름·무응답’이 76%나 차지했다. 가장 훌륭한 철학자로는 공자(20%), 소크라테스(18%)가 꼽혔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459552.html

철학에 대한 한국인들의 무지는 '철학함' 즉 생각할 기회를 박탈한 식민지 폭압정치와 분단 반공정치의 탓이 클 것이다. 지난 세기 한반도는 생각하는 사람, 철학하는 사람을 필요료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것은 고통과 위험만을 가져다 주었다. 동물적 본능과 욕구, 위험회피 전략이 생존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계 최대의 교육열과 대학진학율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철학책을 단 한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74 퍼센트나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한국사람 중에 어떤 철학가 혹은 철학자가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그 정도 비율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우리는 한국사람들 중에 한국이 당면한 현실을 철학적으로 고민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 필요도 없었고 기회도 없었다.

본토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었던 "정의란 무엇인가"가 초베스트셀러를 기록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좋은 책인 것은 사실이나 우리의 처지와 맥락에 서서 보편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약간은 거리가 있는 이야기들이다.

여기에는 철학으로 밥을 먹고사는 한국의 철학자들의 잘못도 매우 클 것이다. 그들은 대체로 우리가 당명한 정치경제사회 현실에서 철학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세상사람들이 위와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한국 철학자들은 박정권의 유신정권을 옹호한 관변철학자 박종홍이 왜 그런 입장과 실천적 행동을 취하게 되었는지, 신남철은 왜 북으로 올라갔는지, 좀더 대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소개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전통철학과 기독교를 결합시킨 함석헌과 유영모에 대해서도 더 관심을 갖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할 사람이 있을까?
수년전부터 열심히 활동하는 '우리 말로 철학하기' 모임에 기대를 걸어본다.

2011년 1월 18일 화요일

학습권이라?

홍대 학생회장이 농성하는 청소아줌마들을 찾아가서 학습권 침해를 했다고 항의를 하고 학교 측은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고발을 했다고 한다.

집단해고는 적법한 게약해지인데, 농성을 하니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었고, 학교 업무가 방해를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시대는 100원 가진 사람이 10원가진 사람에게 자신의 돈 100원 중에서 10원이라도 더 얹어서 10원 가진 사람을 20원 갖게 만들어주는 세상이 아니라 100원 가진사람이 자신은 왜 110원을 가지면 안되냐고 10원가진 사람의 돈을 빼앗아 110원 만드는 세상이다.

권리는 가진 사람들에게만 적용되고 없는 사람들은 권리의 개념을 거론할 수도 없다는 이야기다. 대통령이나 장관이 명예훼손당했다고 시민을 고소 고발하는 시대다.

우리 힘없는 사람들은 가진사람들의 영업권, 재산권, 업무진행권, 명예를 침해하지 않기 위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해야한다는 이야기다.

이 일이 기업이 아니라 학교에서 벌어진 점을 주목해야 한다. 홍대는 서울시내 대학 중에서 학교 자산이나 재정이 튼튼하기로 유명하다. 많은 돈을 쌓아두고 있지만, 청소노동자들에게 75만원 주는 것도 아까워한다. 다른 대학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왜 우리만 돈을 더 주어야 하냐는 것이다. 바로 가장 철저한 기업의 논리다.

학습을 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업무를 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가치가 없는 죽은 대학과 자신은 젊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이미 죽은 청년의 모습을 홍대에서 보고 있다. 홍대 뿐 아니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 서울대학교도 마찬가지다.

나는 아무리 봐도 대학이 아닌데, 그들은 자신이 대학이라고 주장을 한다.
나는 아무리 봐도 그들은 학생이 아닌데, 그들은 자신이 학생이라고 주장을 한다.
내가 미친 것일까 그들이 미친 것일까?

2011년 1월 15일 토요일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



지난 2011년 1월 14일 이른바 실미도 사건 유족들이 정부를 상대로 유해인도청구소송을 냈다. 알려진대로 이들은 혹독한 훈련을 견디지 못해 실미도에서 탈출했다가 사살되거나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이들의 신원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가족들은 지난 2005년 국방부 군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나온 이후에야 행방불명됐던 혈육이 '실미도 부대원'으로 숨졌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국방부군진상규명위에서 가매장된 유해 20구를 발굴했지만, 훼손정도가 심해 12구는 누구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었고, 사형당한 4명을 포함한 10명의 유해는 아예 행방조차 찾지 못한 상태이다. 사건의 진상은 규명되었지만, 유족들은 시체도 수습하지 못했다. 살아서도 거의 살인적 훈련을 받으며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았다가 극한적 저항을 하는 과정에서 무참히 사살, 처형되었고, 죽어서도 시신이 가족의 품으로 가지 못하고 한맺힌 영혼은 구천을 떠 돌고 있다.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이 국가는 유족들이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마땅히 시체를 찾아서 인도해야 하건만, 이들이 정식 군번을 부여받은 군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시체수습조차 나몰라라 하고 있다.

지난 1995년 경기도 고양 탄현고개 근처 금정굴에서 153구의 유골이 발굴되었다. 이른바 금정굴 사건으로 알려진 일제시대 폐광 금정굴에서 한국전쟁기인 1950년 10월 초에서 중순까지 이 지역을 수복한 경찰, 치안대 등에 의해 인민군 부역의 혐의를 받던 주민들이 학살당했는데, 그 사실이 이 유골발굴로 확인이 되었다. 그러나 이 유골은 보관할 곳이 없어서 서울대법의학교실로 옮겨져 2011년 현재까지 보관되어 있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고양 금정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였으며, 이 유골들을 영구안치할 시설을 갖출 것을 권고하였지만, 지금까지 정부는 아무 것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미 밖으로 나온지 15년이 지난 유골들은 무식상태가 심해서 빨리 제대로 수습하여 영구안치를 하지 않으면 안될 상태에 와 있다. 이제 이윤성 교수가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으며, 서울대 측에서도 이 유골을 계속 보관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국가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나 유골은 정중하게 취급되어 마땅하다.그것은 살아있는 유족에 대해 국가가 사죄를 표하는 최소한의 예의이며, 죽은 영혼에 대해 국가가 마지막으로 속죄할 수 있는 길이다. 그런데 죽일 때도, 죽고난 후 수십년 동안도, 그리고 진상이 모두 공개된 이후에도 국가의 태도는 한결같다. 이것이 힘없는 국민을 보는 국가의 시선이나 태도가 아닌가?

2011년 1월 11일 화요일

산, 산, 산 소백산

2003년 미국 체류중 고향의 산을 그리면서 쓴 에세이 한편.
다른 지면에 발표한 적은 없는데, 작가 박태순 선생에게 2008년 보냈더니 최근 그의 카페( 국토학교) 에 올려놓았군요.

[해제] 경북 영주가 고향인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와 2008년 10월초

영주 무섬마을을 거쳐 영주시내에서 그의 고향 친구들의 극진한 대접을 받고

안동 퇴계종택을 거쳐 가송리의 농암 이현보 종택에서 유숙하는 1박2일의

<양백지간 나들이>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직후에 김교수가 썼던 에세이

한편을 나의 이메일 주소로 보내왔는데 여기에 소개합니다.



(퇴계종택의 대문 <성림문>과 그 안쪽의 <노송정>..... [한옥문화]를 어떻게 탐구해야 할 것인지....)


산, 산, 산,한국의 산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사회학)



어제 밤에는 박경리의 토지의 무대인 경남 하동의 최참판 댁에 간 꿈을 꾸었습니다. 내가 머리 속에 그리고 있는 한국의 최고의 명당 자리입니다. 언덕의 중턱인 최참판 댁에서 보면 동네 앞으로는 언덕이 완만하게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고, 언덕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한 20리 정도 이상 되는 넓은 평야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고, 평야의 왼쪽에는 소백산맥의 끝자락인 지리산의 산봉우리가 평풍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 쪽 저 멀리에는 섬진강이 뱀처럼 굽이치면서 한가롭게 흘러가고 강 건너에는 옛날 빨치산이 활동했던 회문산이 희끄무레 하게 보입니다. 그 곳은 한폭의 그림입니다. 봄이 되면 동네마다 핀 복사꽃, 벚꽃으로 더욱 장관을 이룰 것입니다. 산과 평야, 그리고 강이 어우러져서 생활의 터전을 이루어 있는 한국의 남도 지방의 전형적인 풍경입니다. 한국의 산은 우리가 별다른 등산장비 없이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험하거나 높지 않고, 한국의 강은 대체로 흰 백사장을 끼고서 흐르고 있으며, 하류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깊지 않아서 가뭄 때는 다리를 걷고 건널 수 있고, 들판의 이쪽 끝과 저쪽 끝은 단숨에 내지르기는 어렵지만, 쉬엄쉬엄 가면 걸어서 끝자락까지 갈 수 있을 정도로 그다지 넓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와 언제나 가까이 있고, 언제나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자연입니다.




내가 자란 영주에는 서북쪽으로 소백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안동의 학가산이 있습니다. 소백산은 제일 왼쪽의 도솔봉에서 시작하여 움푹 들어간 죽령이 있고, 그 다음으로 연화봉, 비로봉, 국망봉이 있습니다. 영주 분지를 병풍처럼 둘러싼 소백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삶의 터전들을 지켜보고 있었으며, 겨울이 되면 우산처럼 솟은 비로봉 정상에 흰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나는 눈을 감아도 이 소백산과 학가산의 능선을 그릴 수 있습니다.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이 소백산에 수도 없이 오르내렸습니다. 하루에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는 정도의 높이라 친근하고, 또 어느 편에서 보더라도 삐죽 튀어나온 바위나 절벽을 볼 수 없어서 등산할 때 사고를 당할 위험성이 없습니다. 산기슭에는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중턱에 올라가면 소나무의 향기가 정신을 맑게 해 줍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보니 이러한 자연이 그립습니다. 미국은 서쪽의 로키산맥과 동쪽의 노년기의 애팔래치아 산맥을 제외하고는 대륙 자체가 거대하고 광활한 평원입니다. 이 평원은 아무리 높은 곳이라도 해발 100M 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 자체가 전부 약간의 굴곡만이 있는 구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디에 가더라도 시야에 산이 들어오는 일은 없고 끝없는 평야와 질릴 정도로 잘 보존된 숲들이 있습니다. 중부 지역에는 끝없은 옥수수 밭과 밀밭이 캘리포니아에는 오렌지 밭과 포도밭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펼쳐져 있습니다. 길 사이 숲 속 여기저기에는 큰 농가주택이나 잘 다듬어진 잔디밭과 저택들이 즐비합니다. 이 넓은 평원은 도저히 걸어서 갈 수는 없습니다. 옛날 개척시대에는 서부영화에서 볼 수 있는 웨건이나 말을 타고 다녔겠지만 오늘날은 자동차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북부 오대호 근처의 평원에는 크고 작은 호수가 곳곳에 있어서 호수 근처에 가면 보트를 뒤에 매달고 달리는 여행차량들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산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아주 제한되어 있는데, 따라서 산을 찾아서 가는 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서부의 로키산맥이나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경우는 완전한 등산장비를 갖추고 며칠 캠핑 계획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등산을 해야 할 산들이고, 그냥 도시락 싸서 운동화 신고 갈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산 중턱 정도에서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거나 그냥 경치 번 보고 지나가는 것 이상으로 산에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아마 미국사람들에게 산은 전문적으로 등산을 해야 할 곳이거나 그냥 구경의 대상일 것입니다.




강 역시 미미시피 강과 그 지류들이 흘러가는 지역을 제외하고는 쉽게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감히 근처에 갈 수 없는 깊은 물줄기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냥 지나가면서 여기 강이 있구나 생각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강 섶으로 숲이 우거져 있고, 강 근처로 인도도 나 있지 않기 때문에 근처로 갈 일도 없습니다. 큰 여객선이나 화물선이 한가롭게 오가는 대도시 주변의 강은 멋진 풍경을 이루고는 있으나 큰 배를 타지 않고 강을 건너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랜드 캐년의 장대함은 자연의 신비에 경외감을 느끼게 해 주지만, 그냥 입구에서 경탄을 하는 것 이상으로 거기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헬리콥터를 타야만 계곡 구경을 할 수 있습니다. 나이애가라 폭포 역시 가까이 가서 보면 탄성을 지를 정도로 장대합니다. 그러나 배를 타고 폭포수를 맞으면서 한 10분간 혼을 빼고 나면 저 그 웅장한 폭포는 저 멀리 사라져 갑니다.




미국의 자연은 나름대로의 아름다음을 갖고 있고, 사람을 압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자연은 한국의 자연과 달리 가까이 접근해서 오랜 시간 동안 즐길 수 있는 대상은 아닙니다. 특히 산과 강이 그렇습니다. 이 엄청난 넓이의 사막과 평원, 그리고 눈이 쌓인 높은 산들은 사람들에게 도전심을 심어주었을 것이고, 미국인들은 높은 탐구심과 기술력으로 그것을 결국 정복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자동차와 비행기는 바로 자연의 도전에 맞서는 인간의 노력이 보여준 20세기 미국 문명의 가장 중요한 성과일 것입니다. 그러나 차를 몰고서 저 까마득한 평원과 사막을 단숨에 달려갈 때, 약간의 짜릿한 승리감과 쾌감을 맞볼 수는 있겠지만 그 자연이 나에게 주는 감동은 크지 않을 듯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가 있는 뒷산, 그리고 학교 다닐 때 건너던 개울, 친구들과 콩 서리 해 먹으러 다니던 들판의 동네 산의 추억을 갖는 것은 아마도 한국인들만이 갖는 독특한 자연의 개념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아마 본격적으로 도시화되기 이전의 한국의 자연을 알고 있는 우리 우리세대는 그러한 자연을 즐긴 마지막 세대가 되겠지요. 가까운 사람들과 하루 계획으로 집에서 1시간 안에 있는 북한산이나 관악산에 오르는 즐거움은 한국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입니다. 동양의 많은 시인, 학자들이 지적하였듯이 자연은 우리에게 정복이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아기자기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마음의 고향입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에서도 이러한 자연은 점점 보기 어려워져 가고 있습니다. 넓은 논바닥 중간에 우뚝 솟은 10 층 이상 되는 아파트, 산자락 중턱에 큰 흉물스런 구멍을 지나 뱀처럼 산을 휘감고 내려오는 고속도로, 검푸른 이끼들이 물결 따라 춤추는 오염된 강물과 개울물을 보고 자라는 이후의 한국인들에게는 자연보다는 콘크리트 건물의 깨끗함과 편리함이 더 익숙하겠지요. 그리고 차창 옆을 지나는 산과 들판과 강은 그저 동해와 설악산에 가는 도중에 스쳐가는 풍경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 이 자연 정복자들이 가르쳐준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면서 마치 자신이 정복자의 한 일원이 됨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동해를 찾아 설악산을 찾아 떠다니는 자동차 여행은 자연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영동고속도로의 휴게소, 동해의 콘도와 호텔이라는 문명을 찾아 떠나는 것입니다. 자연은 배경으로만 있고, 단지 소비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여주 신륵사 옆의 끝없는 모래사장과 수양버들을 기억하지 못한 그들은 이제 서울에서 고속도로 타고 1시간 30분 걸리는 특정 ‘기호’ 로서 여주, 러브호텔이 즐비한 여주 근처 남한강가, 그리고 맛있는 한정식 집이 있는 여주 어디어디만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버스타고 굽이굽이 도는 길을 따라 한 시간 넘어가던 소백산 죽령의 비포장길 옛 도로, 우리 아버지가 일제말 중앙선 철도 공사 중에 걸어서 지나갔던 10리 죽령 터널, 우리 할아버지가 1930년대 조랑말타고 한양 구경하러 넘었던 소백산의 옛길, 우리 고조 할아버지가 과거시험 보러 괴나리 봇짐지고 넘었을 죽령의 기억은 이제 산 허리를 보기 좋게 관통하는 중앙도속도로의 위세 앞에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아름드리 소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심어놓은 골프장의 잔디, 콘크리트 콘도 건물, 아스팔트 주변으로 자동차들이 왔다갔다합니다. 제국의 문명은 이제 우리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는 제국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제국의 문명은 우리 마음 속에 남은 한 가닥의 자연의 교감의 기억도 모두가 쓸데없는 낭만의 흔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오늘 꿈 속에서 한국의 자연을 만났습니다.

http://cafe.naver.com/dadsaschool.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780

[출처] 김동춘 교수의 소백산, 산, 산, 산 (국토학교) 작성자 소산방






















[출처] 김동춘 교수의 소백산, 산, 산, 산 (국토학교) 작성자 소산방

2011년 1월 10일 월요일

왜 전경구타가 계속되는가?

전경 구타로 백혈병 걸려 사망한 어머니의 호소가 전국을 울리고 있다.
시퍼런 젊음을 누려야할 사랑하는 아들을 보낸 어머니의 슬픔을 과연 무엇으로 달랠 수 있을 것인가?
중대장 17명을 입건한들, 그들을 감옥에 보내서 중형을 구형한 들 슬픔과 원한이 풀릴까?
그리고 미래에는 이런 슬픔이 더이상 없어질까?

민주화이후에도 연례행사처럼 나온 이 구타사고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군대 제대한지 거의 30년이 가까와오는 내가 봐도 이런 나라에 자식을 맡겨야하는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나도 물론 군대에서 많은 구타를 당했다. 그 굴욕감과 비참함, 무력감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대다수 한국 남성들은 그러한 굴욕체험을 한 사람들이다. 그 트라우마가 가정과 사회를 병들게 한다. 그러니 힘이있는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군대가지 않으려 하고 자식을 군대 보내지 않으려 한다.

민주화 이후에도 군대에서 구타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 특히 전경부태에서 구타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간단하게 말해서 한국 군대는 철학과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데모를 진압하는 국방의 의무는 더욱 그렇다. 국방의 의무는 강요된 것이고 누구도 그것을 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철학과 정신이 없는 군대는 요령과 면피밖에 없다. 상관이 그런 사람들이니 사병이 그것을 모를리 없다. 그러니 요령을 피는 사병에는 폭력 외의 통제 수단이 없다. 나는 군 시절 애국심과 도덕적 정신으로 무장한 장교를 만나보고 싶었지만, 불행히도 한 사람도 못만났다. 물론 나의 경험의 한계가 이을 것이다.

상관의 묵인이다. 겉으로는 구타근절을 외치고 구타를 막기 위해 온갖 제도를 마련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는 이유는 군기를 잡기 이해서는 적당히 부하들을 두들겨 패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장교들은 알면서 묵인을 한다. 즉 자신이 편하고 자신이 문책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부하들이 잘 움직여줘야 하고 철학이 없는 군대에서 사병들을 잘 움직이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구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출세와 면피를 위한 상관의 묵인이 가장 직접적인 이유다.

전경제도 자체의 문제다. 좀더 근본적으로 말하면 우리사회의 불만세력, 비판세력을 설득할 수 없는 정부의 한계는 집단 시위와 항의를 만연시키고, 따라서 막대한 규모의 전경부대를 유지하도록 만든다. 정치권력이 국민의 신망을 받는다면 시위나 데모 자체가 거의 사라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전경이라는 것 자체가 필요가 없어진다. 즉 정치권력의 불안정, 정권의 취약한 도덕적 기반이 전경부대를 유지하게 만들고 그것이 결국 이러한 비극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다. 갈등유지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극히 개인주의하되고 개성이 강한 젊은이들의 문화가 이미 확산된 나라에서 전근대적인 규율체계를 유지하는 것 자체의 모순이다. 이른바 군대 부적응 사병은 갈수록 많아진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추세다. 그런데 군대나 전경부대의 규율은 여전히 군사독재 시절이다. 데모진압을 위해 전경부대의 적절한 규율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요즘 젊은이들의 문화에 맞게 완전히 재구축되어야 한다. 폭력을 사용해야 말을 맏는 조직, 그런 조직이 유지될 수 있을까?

마지막 한가지. 자식을 군대 보낸 부모들이 자기 자식만 편하고 안전하게 군대생활하도록 기도하고 비는 시간의 1/10이라고 할애해서 이 모순된 제도, 군인의 인권에 대해 시민으로서 참여를 해야 한다.
이 정도면 자식을 전경에 보낸 전국의 모든 부모들이 들고 일어나야할 사안이다.
그런데도 집단적 분노가 없다.
부모의 자기자식 사랑 이기주의와 낮은 인권의식이 전경 구타과 사망을 계속 지속시킨다.

2011년 1월 9일 일요일

이 검찰을 어찌할 것인가?

제1라운드

지난 2009년 한명숙 전총리에게 5만 달러의 뇌물을 준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은 대한통운의 곽영욱 사장은 “검찰이 징그럽게, 무섭게 …. 죽고 싶었다”, “(몸이 아파서) 살기 위해 진술했다”, “(검사가) 호랑이보다 무서웠다”고 말하며 재판정에서 울먹이기까지 했다.
고문에 준하는 협박을 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검찰이 그를 겁박해서 한명숙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것을 시인하라고 했거나, 아니면 과거 조작간첩 사건 당시 처럼 돈을 줬다고 진술하면 다른 범죄는 다 용서해주겠다고 협상 카드를 내밀면서 구슬렸다고 판단할 수 있다.

제2라운드

한신건영 한 전사장, 한명숙에게 9억을 줬다는 자신의 공뢰진술은 전부 허위였다고 양심선언을 하고 한명숙은 무죄가 되었다. 이 역시 검찰이 겁박해서 거짓 진술했다는 이야기다. 이 경우 역시 검찰이 뒤로 한 전사장에세 9억 줬다고 시인하면 회사를 찾을 수 있을 뿐더러 다른 범죄는 다 없는 것으로 해주겠다고 뒤로 폴리바게닝을 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한신건영의 한사장에게 서울시장 선거를 들먹이면서 한명숙님에 대한 뇌물수수 허위 진술을 강요하고대검특수부에서 고래고래 고함까지 질렀다는 남모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이 사건의 조작 혐의를 짙게 만들고 있다.


곽사장건, 한사장건 수사의 정점에 있는 사람은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이다.
김주현 검사는 정치권 수사를 담당하는 특수 1,2,3부를 총괄하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의 자리에 있던 사람으로 이 사건의 실무책임자로 보인다.


그런데 검찰은 한명숙유죄입증 자신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런데 1월5일새벽2시,서울지법408호실, "07년3월, 한총리가 민주당경선에 나선다는 소식을 듣고, 한총리에게 정치자금제공의사를 밝혔다"는 검찰조서자체가 조작임이 발각되었다. 당시 여당은 열린우리당이었으며 한총리가 민주당경선에 나선바 없다는 사실이 밣혀졌다. 그리고 검찰이 들이대는 유일한 증거, 한사장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들을 분석한 결과 07년8월21일이전에 한총리번호가 입력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관련자 가족까지 협박을 했다고 한다.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110110110908593&p=ohmynews

세상사람들은 이것을 표적수사라고 한다. 과연 그런가?
검찰은 군사정권 시절 중앙정보부의 간첩조작을 알고도 수 먾이 많은 무고한 사람들 기소한 전력이 있다. 간접조작 과정의 공범이었다는 이야기다.

과연 검찰이 한명숙 죽이기를 위해 근거없는 제보를 명분으로 사건을 '조작'하려 했다면?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이런 검찰을 우리는 뭐라 불러러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아 이럴 수가 있는가? 이게 나라인가?

2011년 1월 7일 금요일

미국이 선임한 국선변호인들

내가 나온 이후 진실화해위원회의 동향에 대해서는 여러 보도가 있었으나, 이번에 민주당 몫으로 들어갔던 이상환 상임위원이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초점은 미군관련 사건이다.

"이곳저곳의 조직 생활을 해보았지만, 이런 조직은 처음이다. 위원장은 진실위 출범 때부터 함께한 사람 아닌가. 어찌됐든 그는 80%의 사건 처리에 동의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나머지 20%의 사건에 대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지난 결정을 존중하고 잘 계승했다면 그것이 다 자신의 업적이 되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 무엇보다 인권과 평화에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겠는가."

"지난봄부터 해당 사건 처리를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여기까지 왔다. 이는 미군 폭격 사건을 부담스러워하는 위원장과 일부 위원들의 태도 때문이다. 사실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미국이 선임한 국선변호인 같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8823.html


한국 국민의 세금으로 일한 사람들이 미국의 국선 변호인 같다니 ! 오로지 미국을 감싸기 위해 그 자리에 온 사람들 같다는 이야기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노근리 사건 조사당시 한국 측 핵심 조사원이었던 육군의 모 중령은 미군 측이 고의적으로 중요 자료를 누락시키고 미국 책임을 희석시키려는 보고서에 반대해서 끝까지 미국 책임을 부각시키려 애쓰기도 했다.
그 결과 노근리 사건 보고서는 한국 버전과 영어(미국) 버전이 따로 집필 발간되기도 했다.


진실화해위는 군, 경, 미군 변론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다. 그들의 행동에 대한 정당화는 이미 60년동안 공식 비공식으로 수없이 이루어져왔다. 매일 아침의 중앙일보 지면 한 만을 계속 장식하고 있다. 그 압도적 변론 앞에 유족들의 극히 작은 목소리 하나 담아 그 억울함을 풀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그렇다고 어거지로 그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듣자는 것이 아니다. 일단 자료를 근거로 해서, 전후 맥락으로 봐서, 정황을 검토해서 그들의 주장이 타당성이 있고 일관될 경우 그것을 적극적으로 인정해서 가해의 책임을 묻자는 것이다. 이것은 법정이 아니므로 법정 정도의 엄밀성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미군의 책임이 거론되는 것 조차 부담스러워했다고 한다.
왜 그럴까?

왜 한국에는 국민의 세금을 받아 미국의 국선변호인 역할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가?
청와대부터 시작해서 언론에서 대학 강단까지? 왜 우리는 그들을 위해 세금을 내야 하는가?

2011년 1월 6일 목요일

경쟁은 반드시 죽음을 가져온다.

평소 페스트 푸드를 거의 사먹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요즘 30분 배달제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피자나 치킨가게 등 자영업자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30분 배달을 약속하고 지키지 못하면 할인을 해 주는 제도인 모양이다.

한국은 OECD 국가중 자영업자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이러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남이 하지 않은 서비스를 해야 할 터인데 이러한 제도가 소비자에게는 좋은지 모르겠으나 가게 주인에게는 피말리는 경쟁이, 그리고 배달하는 청소년들을 결국 죽음으로 내몰게 된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한국에서 발생한 10만여건의 산재사고 중 3만 3천 건이 오토바이 등 배달사고라고 한다.

그리고 사고의 피해자는 대부분 장래가 창창한 18세에서 24세 사이의 청년들이라고 한다. 최근 취업을 앞둔 어떤 청년이 배달사고로 목숨을 잃는 충격적인 일이 또 발생했다. 아마 늦게 배달하면 할인가격만큼 배달하는 청년들의 시급을 깍거나 하는 것 같다. 그러니 배달하는 입장에서는 사고를 무릎쓰고 달릴수 밖에 없고, 그것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다는 이야기다.

죽기살기의 경쟁에서 실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사업자가 아니라 바로 이 나라를 짊어지고 갈 청년들이다. 오늘의 고단한 청춘은 이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이렇게 병들어가고 있고 죽어가고 있다. 사업자 탓만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자영업자를 붕괴시킨 대기업의 탐욕, 이들에 대한 적절한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고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긴 이 시장근본주의와 그것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이는 경제관료들이나 이 사회의 지배층에게 탓을 돌려야 할 터이다.

같은 또래 청년들이 이렇게 죽어가는데, 이런 문제를 외면하고 자신은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청년들도 안타깝다.
그러나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에게도 책임이 있을 것이다. 나의 편리함은 누구의 죽음을 가져온다는 사실도 생각해 봐야 한다.

좀더 불편하게, 그러나 인간적으로 살 수는 없을까?
우리 모두의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한 일인 것 같다.

2011년 1월 5일 수요일

7개월에 7억을?

어떻게 하면 7개월에 7억을 벌수 있을까?
기업인도 아닌 개인이 급료의 형태로 말이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대검찰청 차장에서 퇴직한 후 법부법인 바른에 들어가서
이 기간 동안 그렇게 많은 돈을 받았다는 것이다.
언론은 이것을 전관예우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법부법인은 전관을 아주 특별히 예우해주는 예의바른 기관인가?

미국을 가본 사람은 알지만, 자본주의 천국 미국에서 1달러 벌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즉 남의 돈 거저 먹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돈벌기는 정말 어렵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무슨 재주로 이렇게 한 달에 1억씩 예우를 받을 수 있을까?

그 답은 임종인, 장화식이 쓴 [법무법인 김앤장]에 나와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얻는 정보와 능력과 인맥을 대기업의 경영정보 획보, 탈세, 로비에 사용하면 정부에서 얻은 지위가 높을수록, 그의 지위를 통해 얻는 고급 정보나 능력은 값비쌀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비밀은 간단히 풀렸다. 그가 받는 7억은 전관예우가 아니라 공직자로서 얻은 모든 것을 사기업에게 갖다 준 것에 대한 댓가이다.
그리고 그의 수입을 만들어 준 사람은 바로 우리들, 세금 열심히 낸 국민이다.

정말 우리는 예의가 바른 동방예의지국 백성들이다.
이렇게 공직자가 퇴직한 후에도 자신이 공직자로서 얻은 국가의 정보, 인맥, 문제해결 능력을 개인사업자에게 돈으로 팔아넘기는데 처벌하는 것은 꿈도 꾸지 않고, 그의 수입에 대해 세금 한푼 거둘 생각하지 않고, 이제 또 감사원장이 되셨으니 인재났다고 칭찬하고 존경하니 말이다.

이제 감사원장까지 되셨으니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되어, 다시 바른이나 김앤장으로 돌아갈 때는 아마 1달에 10억씩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2011년 1월 4일 화요일

울지마 톤즈

'울지마 톤즈' 소문을 여러곳에서 듣고서 영화관에 가서 보았다.
작년 초 신문보도에서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참 안타깝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 정말 감동적이었다.

"예수님 같은 존재", 내가 할 수 있는 감상은 그것이었다.
가난하고 전쟁에 찌들어 눈물이 말라버린 톤즈 사람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해준
그의 엄청난 헌신과 사랑은 과연 어떤 말로도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면서도 천진하고 밝은 표정, 낙관적인 태도, 같이 있어주는 것을 가장
중요시하는 그의 자세는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될 만하다.
위대한 한국인은 이런 사람이다.

우리의 이기적 삶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해 주고,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단체는 무슨 일을 해야하는가를 일깨워준다.
수단의 분쟁은 지금도 마무리되지 않았고, 상처는 앞으로도 계속 남을 것이다.
이러한 개인적 헌신이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가장 낮은 곳에서 예수를 발견한 그런 사람이 있는 한
아직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http://www.dontcryformesudan.com/

2011년 1월 3일 월요일

종편선정의 정치학

12월 31일 이명박 정부는 숙원사업을 하나 해결했다. 조중동매 4개사 방송채널을 허용한 것이다. 그 것도 야당의원의 사퇴 속에서 일사천리로 결정했다.
예정된 수순이었다. 날치기 대리표결 등 온갖 편법을 동원해서 법을 통과시키고 법원의 재의권고도 무시하고 막무가내 식으로 몰아부쳤다.
조중동 중 1.2 개만 선정하면 나머지 하나가 반정부 신문으로 돌변할까봐 그렇게 급작스럽게 날치기한 이후 거의 1년이나 시간을 질질 끌다가 3개 모두 선정하는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
그러니 조중동은 이 정부 끝날때 까지 정권에 충성을 바칠 것이다.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한국 방송시장을 포화상태이기 때문에 이들 4개 방송사가 모두 살아남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광고시장을 억지로 창출해서 특혜를 주거나 KBS수신료를 올려주거나, 이들을 황금채널 배정하거나 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 중 한 두 개 죽을 수 있으나 그것은 정권으로서는 알 바가 아닐 것이다. 단지 MBC가 죽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모든 방송이 동일한 내용의 선정적 뉴스만을 내보낼 수 있다면 보수 영구집권은 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셈법이다. 현재 미국에서 1위를 달리는 극보수 FOX의 경험이 그들에게 좋은 교사인 셈이다.

글로벌 미디어 육성과 방송선진화, 미디어융합시대 대비, 경제살리기 ... 그들이 말한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것이 들통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미디어라는 것은 언어와 콘텐츠를 기초로 하는 것인데, 한국의 언어 문화 인프라, 그리고 한국어와 한국문화의 역량 만큼 국제적으로 확산될 수 밖에 없는데 어떻게 글로벌 미디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일까? 비정규직 외주용역 방송사업 종사자의 착취로 움직이는 것이 현재의 방송사 현실이라는 것을 다 아는데, 무슨 일자리 창출히며 경제살리기를 한다는 것일까?
그러나 정권이 끝난다음 누가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는가?
오직 선정주의 경쟁, 보수경쟁, 물타기 경쟁을 통해 대중들의 판단력만 마비시킬 수 있다면 성공, 대 성공이 아닌가?

한국의 보수여, 안심하라. 이제 영구집권의 길이 열렸다.

2011년 1월 1일 토요일

신묘년 새해 아침


2011 신묘년이 밝았습니다.

워 특별히 새로운 것은 없으나 그래도 새해에는 새로운 일이,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하면서 눈을 뜹니다.


토끼처럼 민첩하고 지혜롭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갑시다.

허물이 있으면 과감히 고치고, 낡은 것은 과감히 버리고


일에는 열정으로 사는 하루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몸은 언제나 그랬듯이 책과 만년필과 가까이 하면서 보내는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나의 글이 사람들의 마음을 감히 움직일 수 있을 것을 기대하며...


신년 간절한 기도 올립니다.


가정에 행복이 깃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