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30일 금요일

상지대는 비리재단의 품으로

교육과학기술부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비리혐의로 물러났던 옛 재단측 인사를 정이사로 선임하기로 결정했다. 사분위는 전체 이사의 과반수를 넘는 5명을 옛 재단 쪽 인사로 선임하기로 했다. 결국 1993년 물러난지 17년만에 사학비리의 종합 선물세트를 만들었던 옛 재단 이사장 김문기씨가 다시 학교운영 주체로 복귀하게 되었다.

 

지난 2월 새롭게 선임된 사학분쟁조정위원, 고영주 위원은 "사학이 좌파에게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명분 하에 비리혐의로 수감경력까지 있을 뿐더러 사립학교 운영자로서의 결격사유가 충분히 입증된 김문기씨를 '소유자'라는 이유로 복귀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지난 20여년 간의 상지대의 힘겨운 정상화, 민주시민대학으로의 변신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 90년대 중반 김문기씨가 물러난 뒤에 상지대를 운영했던 사람들의 전언을 들어보면 도서관에 책을 아무리 많이 구입해도 돈이 남아돌았다고 한다. 즉 김문기씨가 학교 등록금을 빼가지 않게 되니 학생들에게 돌아갈 몫이 그렇게 커졌다는 이야기였다.

 

오늘의 사태는 이미 2006년 구재단의 복귀를 합법화한 고등법원의 판결, 2007년 대법원의 판결에서 예고되었다. 당시 고등법원의 판결은 사학법인 설립자의 재산권, 경영권을 인정하였다.  2007년에 대법원은 이른바 상지대 판결의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에서 “비리를 저지른 학교법인의 임원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고 행정적 제재를 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를 시정하기 위한 수단이 지나쳐 함부로 학교법인의 정체성까지 뒤바뀌는 단계에 이르면 위헌적 상태를 초래하는 것이 돼 허용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결국 법원은 학교법인을 사기업과 동일하게 간주하여, 학교의 공적 성격보다는 설립자의 재산의 성격을 강조하였고, 설립자가 설립시 내세운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학교의 공공적 성격보다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번 사분위의 결정은 바로 이러한 판결을 논리적 근거로 해서 지배구조  운운하며 상지대를 소유자인 김문기씨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김문기씨는 상지대의 설립자가 아니라 원주대학의 관선이사로 파견되었다가 권력의 비호 하에서 원주대학을 인수해서 상지대학으로 개명했던 사람에 불과했다. 그는 상지대학의 소유자가 아니다. 따라서 상지대를 마치 사유재산으로 간주하여 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법원과 사문위의 결정은 억지에 불과하다. 사립대학은 개인의 재산이 아니다. 공공의 목적에 맞게 사용되지 않을 경우 국가는 학생, 직원, 지역사회의 요구와 이익에 맞게 운영되도록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지만, 이번의 결정은 그와 반대로 결국 아무리 비리나 편법으로 획득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남의 사유재산은 건드리면 안된다는 도적 세계의 논리를 대학운영에 적용한 것이다. 교육부는 교육적 역할을 포기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어떤 논리로 포장하더라도, 이번 결정은 한국 교육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다. 범죄자도 우파라는 이름으로 용서되고, 아무리 민주적이고 청렴해도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면 탄압을 피할수 없는 사회, 그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슬픈 모습니다.  

 

 

 

 

 

2010년 4월 28일 수요일

지금은 이승만 시대?

청산되지 않는 과거는 언제나 되살아 난다. 이승만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발생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이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4월 21일자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서울지방경찰청이 일선 경찰서 정보과에 ‘우파후보의 승리전략’과 ‘우파후보의 정부여당에 대한 요구사항’을 조사하는 것은 물론 ‘전교조와 민주노총의 좌파후보 지지의 불법성’과 ‘학교교육청 관계자가 좌파후보를 지원하는지’를 파악하여 보고하라고 경찰 인트라넷을 통해 지시한 문건이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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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이 각 경찰서에 하달한 문건 사진출처 : 연합뉴스>

 

교육감선거에 교육과학기술부, 한나라당, 경찰 등 공권력이 총동원되어 후보선정에 개입하고 정책을 마련하는가 하면 친정부 우파 교육감의 선거승리 전략을 기획하고 정부여당의 지원 방안을 마련하는가 하면 소위 ‘좌파’ 교육감 후보를 지원하는 세력을 공권력을 동원해 압박하기 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 정보과가 다시 등장했고, 각 부처가 동원되어 여당 성향의 후보가 당선되도록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이는 관권선거, 부정선거임이 명백하다.

 

상명하복관계가 매우 엄격하게 지켜지는 경찰 조직에서, 직속상관인 경정이나 총경의 어떤 재가나 아무 보고도 없이 이 6. 2 지방선거를 며칠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일개 정보과 경찰이 산하 지방청에 지시를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승만 정권 말기 이승만의 당선을 위해 당시 경찰이 무엇을 했는지 보자.

1959년 3월 21일 내무부장관 최인규( 당시 경찰은 내무부 소속이었음)는 전체 공무원에 대해 "모든 공무원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하여야 한다. 차기 정부통령 선거에서는 자유당 입후보자가 기필코 당선토록 선거운동을 하라"라고 지시하였다. 이 지시 이후 모든 공무원, 특히 경찰은 여하한 비합법적인 비상수단도 불사한다는 결의 하에 부정, 불법 선거를 기획하였다. 그들은 3인조, 9인조 동원한 공개투표, 자유당 완장착용을 통한 위협, 민주당 참관인 매수, 선거자금 직접 배부, 공포분위기 조성, 야당에 대한 협박과 위협 등의 방법으로 이승만 당선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은 경찰국가였고, 경찰중에서도 정보, 사찰을 담당하던 경찰이 야당탄압과 매수, 야당 운동원에 대한 협박과 유권자에 대한 공포분위기 조성의 선봉대 역할을 했다.

 

위의 문건 작성 주체가 바로 그 정보과다. 이들이 60년 전에 그랬듯이 또다시 여당 (한나라당)의 별동대 역할을 하고 있으며, 반대세력을 모두 좌익이라고 분류하고 있다. 국가가 일개 정치세력의 수족이 되어, 반대세력은 모두 좌익으로 분류하던 저 어두웠던 냉전시절의 역사가 무덤에서 다시 살아났다. 역사의 시계가 10년 뒤로 후퇴한 것 아니라 60년 전으로 후퇴했다. 국가의 품격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2010년 4월 27일 화요일

산업재해 최후진국 한국

한 나라의 발전 지표를 인명에 대한 경시 정도로 보면 한국은 결코 선진국이 아니다. 특히 노동자나 여성 장애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대우의 수준으로 보면 한국은 아직도 후진국이다. GDP. GNP의 지표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서 실제 야 사회의 맨 얼굴을 볼 수가 있고, 질적인 발전의 전망을 세울 수 있다.

 

산업재해에서 이 점은 가장 잘 드러난다. 한국은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사람의 비율 (10만명당 사망자수)이 21명으로 OECD국가 중 최상위에 속해 있다. 노동인구를 천만명이라 본다면 거의 2,000여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셈인데,  지난해 산업 현장에서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1천401명이고, 부상자를 포함한 전체 산재자 수는 10만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즉 우리나라의 노동자는 전쟁과 같은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내놓고 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경제적 손실도 막대하다. 2008년에 산재로 입은 경제적 손실액은 17조1천억원으로 추정됐는데 이는 그해 파업으로 인한 생산과 수출 차질로 입은 손실액 1조4천억원의 10배가 훨씬 넘는다.

 

산업재해는 노동조건이 열악한 중소기업, 건설현장에서 주로 발생한다. 노동보호 장치를 마련할 능력이 없는 기업에 대한 당국의 감독이 거의 없고, 또 사고가 발생해도 사용자가 거의 처벌되지 않고, 산업안전조치를 마련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노조의 힘이 없는데서 발생한다. 즉 산업재해는 주류 언론이 늘상 떠들듯이 안전불감증 문화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정치경제적 조건, 특히 사용자/노동자 간의 극히 불평등한 권력관계 때문에 발생한다고 봐야 한다. 필자가 [기업사회론]에서 주장했듯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노동자에게는 지옥이다. 노동자의 저항을 억누르고 그들의 생명이 경시되는 나라가 최고의 산재율을 기록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앞의 통계에서도 나왔듯이 노동자의 생명을 경시하면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산재로 인한 손실을 줄일 수 있다면 수만명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갖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다시 강조하지만, 산업재해, 환경파괴, 정신건강 침해, 갈등으로 인한 비용 등의 경제적 손실을 r계산하지 않는 주류 경제학의 지표는 경제사회의 선진화를 가늠할 수 있는 가늠자로 활용될 수 없다. 인명에 대한 존중 정도를 기준으로 한 새로운 사회발전 지표를 세워야하고, 오로지 성장주의에 논리에 기초해서 한국이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는데, 노조 때문에 안된다는 식의 논리가 갖는 허구에서 벗어나야 한다. 약자를 보호하고 노조에게 힘을 주어야 한국이 진정으로 선진국이 될 수 있다.

   


 

2010년 4월 26일 월요일

금양98호는 이 시대의 축소판

천안함에 승선했다 사망한 젊디젊은 수병들이 불쌍하다. 그들 상당수는 가난했기 때문에, 빽이 없었기 때문에 해군에 들어가서 배를 탔고, 적은 돈이나 벌어서 부모님께 효도하려 했고, 빨리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활동 하려고 군 복무를 자원했다. 그들을 묶어주는 하나의 코드는 애국이 아니라 가난이이었다. 이 정부는 그들의 주검 위에 '국가', '영웅'라는 휘장을 씌우려 하지만,  가난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았고 가난이 남은 가족들의 과거와 미래를 옥죄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도 '애국자 따라 배우기'를 실천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빽이 없어서 군대가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또한번 뼈저리게 느낀 나머지 국가안보는 마치 자신의 전유물인양 거론하는 이 정부의 힘있는 사람들처럼 군대 빠지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한국전쟁 때 참전했던 사병들 대다수가 배고파서 군대갔고, 죽어서 동작동에 가거나 살아서 참전용사 칭호를 받았듯이, 이들도 같은 길을 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국가의 영웅이니 칭찬하는 정부와 언론의 합창을 듣고 싶지 않다. 

그런데 더 불쌍한 사람들은 금양 98호 사망 선원들이다. 이들은 국가의 부름에 응했다가 참변을 당한 착한 민초들이다. 이들은 생업마저 접고 실종자 찾기에 나섰다가 참변을 당한 우리의 보통 국민들이고, 한국에 돈벌로 왔던 외국인들이다.

그런데 천안함의 사망해군들은 죽어서 정부와 언론의 주목이라도 받지만 이들은 사망 사실 조차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지난 23일부터 사실상 중단된 이후 정부가 후속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한다. 참다 못한 실종자 가족들은 선체 인양을 요구하며 정부대책에 항의하는 집단행동에 나서기로 했다고 한다. 이들 선원들의 가족 중에 공무원, 법조인, 국회의원이라도 한명 있었다면  이들이 이렇게 철저히 무시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힘없는 민초들은 국가를 위해 죽어도 국가로부터 외면당한다. 국민들은 금양 98호 선원들의 잊혀진 죽음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가난하지 말 것, 배를 타지 말 것, 정부의 요구가 있어도 위험하면 무조건 외면할 것... 이런 교훈이 아닐까?

그래서 천안함과 금양 98호는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다. 정부가 무슨 덧칠을 해도 불쌍한 사람들이기는 마찬가지다. 전쟁이 나면 제일 먼저 죽을 사람들이고 전쟁이 나지 않아도 죽거나 다칠 확률이 제일 높은 사람들이다.

가난이 죄가 되지 않는 사회,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힘있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애국하는 나라, 그런 사회와 나라가 만들어질 때 국민은 국가의 주인이 될 것이다.

 

2010년 4월 14일 수요일

하루살이 나라( 한겨레 2004.7.24)

옛날에 쓴 글 하나 올립니다. 6년이 지난 후 변한 것이 없어서 현실을 한탄합니다.

 

하루살이 나라

몇년 전 “일본에는 왜 싱크탱크가 없는가”라는 보고서를 주마간산 격으로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일본이 싱크탱크가 없다면 그것은 바로 미국과의 특수 관계 즉 미국의 우산 아래에서 독자적인 정책을 펴기 어려운 ‘정상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의 핵심, 즉 안보와 경제를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 정치적 종속 국가에서 독자적인 싱크탱크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한국 역시 그런지 모르겠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에서는 정부, 정당, 기업, 언론, 시민단체, 노조 어디를 둘러보아도 자체 싱크탱크가 없다. 정책이 논란이 되면 언제나 기초연구에 몰두해야 할 대학의 교수들을 정치적으로 활용하여 일회용으로 사용한다. 그러니 10년 앞을 내다보는 일관된 정책대안은 물론, 2~3년 앞의 문제를 둘러싼 논쟁도 거의 찾을 수 없는 것이 한국의 풍토다.

나는 1990년대 중반 ‘지구화’ 담론이 유행할 무렵에 대한 기억이 뚜렷하다. 지구화는 당시 온 한국정치를 휘감는 유행이자 바람이었지만, 정치권이나 학계에서, 한국처럼 재벌이 경제의 견인차 구실을 하고 있는 자본주의 국가에, 특히 미국과 ‘특수 관계’에 있으며 동북아 분단국가라는 독특한 입지에 있는 국가에 지구화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었다. 오직 미국발 지구화 담론의 번역물과 지구화와 시장경제가 가져올 장밋빛 미래에 대한 찬양만이 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노벨상 경제학자인 스티글리츠가 지적했듯이 97년 아이엠에프 경제위기 당시 한국의 경제 관료나 주류 언론은 그후 국제통화기금 스스로도 잘못되었다고 실토했던 당시의 무리한 구조조정 요구에 대해 입도 벙긋 못했다. 미국발 지구화 담론을 진리인 양 받아들인 우리 지도층의 지적인 무능력이 그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난 적이 없었다.

사실 미국의 세계 지배는 다니엘 벨이 말했듯이 대학과 지식의 힘에 기초한다. 대학은 기초연구를 하고 여러 싱크탱크는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지식을 생산하여 온 세계에 팔아먹고, 온 세계 엘리트와 대중들의 머리를 지배한다. 미국의 보수적 지식인 커티스는 영국과 달리 미국은 인종·민족적으로는 미국인이 아니지만 ‘정신적으로는 미국인’인 각 나라의 정치가, 학자, 관료들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 생산된 지식이 모든 문제의 정답이라면 미국에 유학 가서 미국학자들에게 배워 그들이 세운 이론과 정책을 수입하고, 잘 안 풀리면 미국 학자 불러서 강의 듣고, 그들의 책을 빨리 번역하면 된다. 한국처럼 그의 분석이 잘 맞는 나라는 없는 것 같다. 그 결과로 아이엠에프 이후 오늘 한국의 대기업은 대부분 외국 투자자의 손에 넘어갔다.

보수세력이 대통령과 의회를 장악했던 과거에는 ‘개혁세력’은 힘이 없어서 생각을 펴지 못한다고 변명했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일관된 방침과 노선만 있으면 많은 일을 벌이거나 중요한 의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 정권이 이렇게 죽을 쓰는가 우리당은 창당 무렵에 정책연구소 설립을 가장 중요한 활동방향으로 설정하였으나 아직까지 종무소식이다. 국가발전을 위한 아무런 대책 없이 그냥 요행수로 집권해서, 과거 정권처럼 정치적 힘만으로 밀어붙이겠다는 말인가 사실 이 정부는 정책 일반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대학 정책, 학문정책, 지식인 정책이 없다. 각 분야 전문가들 위원회에 불러놓고 아이디어 듣는 것이 정책 생산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요컨대 한국에는 미래를 체계적으로 고민하는 싱크탱크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할 필요를 느끼는 집단도 없다. 21세기에도 강대국 눈치만 보며 하루살이처럼 살자는 이야기인가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일본에는 한국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각 분야에 풍부한 전문가의 풀이 있다. 배짱, 오기, 정치력으로 이 냉혹한 세계에서 버틸 수는 없다. 책임 있는 정책집단이 없이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김동춘/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2004.7.24. 한겨레신문

2010년 4월 13일 화요일

한명숙과 검찰

한명숙과 검찰

 

“너 공산당이지. 네 남편과 어떻게 접선했지? ... 답변해라. 따귀를 맞고 구둣발로 짓밟히며 커다란 야전각목으로 온몸을 두들겨 맞았는데 어디서 어떻게 맞았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 나는 자살하고 싶었다. 나는 선생님께서 하라는 대로 다하겠다며 무릎꿇고 두 손으로 빌었다”

이것은 1979년 유신말기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으로 연행되었던 20대의 한명숙이 변호사 앞에서 실토한 내용이다. 박정희 정권의 충실한 하수인 중앙정보부는 ‘용공써클’을 적발한다는 명분으로 이 사건 관련자들에게 갖는 고문을 다했으며, 한명숙은 박정권 말기의 권력의 칼에 베어 이처럼 큰 상처를 입은 바 있다. 1980년 1월 항소심에서 ‘용공써클’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이 내려졌으나, 한명숙은 2년 6월의 징역을 살았다.

30여년이 지났다. 그 동안 민주화가 되었고, 한명숙은 총리의 지위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전직 총리 한명숙은 뇌물수수 의혹을 받아 검찰의 수사를 받았으며, 검찰은 오직 곽영욱 대한통운 사장의 오락가락 하는 진술 외에는 다른 어떤 증거도 제출하지 못하여 결국 한명숙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40년에 중앙정부가가 한 역할을 오늘 검찰이 담당하였다. 옛날처럼 고문이라는 방법을 동원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고문 이상의 불법, 편법 수사로 그녀의 범죄사실을 입증하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명숙 대신 곽 사장이 고문에 가까운 수사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곽사장의 진술에 의하면 그는 “심장이 좋지 않은데 조사가 끝난 뒤에도 새벽 1~2시까지 남아 검사와 면담을 했다”, “(몸이 아파서) 살기 위해 진술했다”고 말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내용은 “(검사가) 호랑이보다 무서웠다”고 말하며 법정에서 울먹이기까지 했다. 즉 검찰은 극히 심신이 피로한 상태의 환자를 한명숙에게 돈 주었다는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위압적 방식으로 조사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우리는 지난 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의 모욕적이고 위압적 수사, 그리고 진행 중인 수사 내용을 언론에 미리 흘려서 여론재판을 통해 피의자를 망신을 주는 일들과 관련되어 자살한 사실을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검찰의 이러한 수사 관행은 70,80년대 중앙정보부가 수없이 자행했던 고문수사보다는 ‘양반’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일국의 대통령이나 총리, 기업의 총수를 지낸 사람에게 이러한 수사는 죽음과 같은 고통을 주는 일이다.

과거 국정원, 보안사 등 공안기관은 안보의 이름하에 멀쩡한 남북 어부 출신들이나 재일동포 학생들을 간첩으로 만드는 불법적이고 반인도적인 자행했다. 그런데 오늘의 검찰은 잠재적 시장 후보를 만신창이로 만들어 그녀를 정치적으로 매장시킨다고밖에 이해할 수 없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확인되지 않는 사실을 특정 신문에 흘리는 행위, 1심 판결을 하루 앞두고 별건 수사에 착수하는 행위, 곽 사장의 횡령 등 다른 범죄의혹에 대해서는 일체 수사를 하지 않고 오직 한명숙 뇌물 건에만 매달리는 행위, 5만불의 사용처가 불명확하자 한명숙의 유학간 아들의 이 메일까지 뒤져서 유학비 조달과 꿰맞추려는 행위, 공판과정에서의 여러 편법, 불법 행위 등, 한 나라의 정의를 세우는 일을 담당하는 공기관이라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무리한 행위를 수없이 반복하였다.

물론 법 앞에 성역은 없고, 대통령을 지낸 사람도 잘못이 있다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대통령과 집권당 인사들에게 제기되는 수많은 불법 의혹에 대해서는 전혀 수사할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 다시 살아날 우려가 있는 ‘과거 권력’에 대해 이렇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행태를 누가 납득할 수 있을까? 30년이나 지금이나 언론은 공안기관이 흘린 내용을 기정사실인양 대서특필하여 재판도 하기 전에 유죄 선고를 내리고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자살을 하고, 총리를 지낸 사람도 이렇게 망신을 당하는 데, 일반 국민들에게 과연 검찰과 언론은 어떤 존재일까?

2010년 4월 7일 수요일

군복무중 사고와 군의 책임

천안함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2000년 러시아 핵 잠수함 사고와 한국의 여러 군 내 사망사건 특히 군의문사 사건이었다. 두 사건다 국가가 군 내 사고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복무중인 군인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 침몰 사건은 당시 영국 등 외국이 구조를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이를 거절하여 118명의 수병이 전원사망한 사건이다. 한국의 군 내 사망 사건, 의문사 사건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일이지만 적어도 과거 한 해 300여명 이상의 복무 중인 병사등이 자살, 사고 등으로 사망한 일을 말한다. 당시 러시아는 군사기밀 등의 이유로 외국의 구조를 거절하였는데, 물론 외국이 도움을 주었다고 해도 이들을 살릴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국가가 기밀호보를 이유로 국민의 생명을 얼마나 하찮게 취급하는지를 보여준 좋은 사례였다.  한편 여러 건의 군 의문사 사건역시 대부분의 경우 군은 군의 특성을 강조하면서 전문가, 민간이나 유가족들의 접근 자체를 차단하고 자체 조사를 실시하다가 의혹과 불신만 자초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 때문에  군의문사 위원회까지 만들어진 것도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실제 이번 사건을 보는 민간 전문가나 군 의문사 유가족들은 하나같이 "천안함 침몰 사고에 대한 군 당국의 태도가 과거와 똑같다"고 지적했다. 이번 UDT대원 한주호씨 사망 사건의 경우도 사람들은 군이 잘 대응했다면 살릴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복무 중 사망한 군인을 국민적 영웅으로 미화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복무 중 불의의 사망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피치못할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그것이 억울한 희생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또 궁극적으로는 희생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나 한국이나 국방과 군의 업무가 민간이 접근할 수 없는 성역으로 간주된다는 점이 공통되고, 군사작전이나 안보의 이름 하에 국민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온 경력이 있는 나라들이다. 80년대 병사로 복무한 경력이 있는 필자는 군에서 사망하면 "개 한마리 값도 못받는다"는 공식에 매우 익숙하고, 실제로 말단 포병으로 복무하면서 나 자신이 일개 도구로 취급되는 일을 수없이 경험하였다. 그후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나 군이 병사의 생명과 인권을 대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그 이유는 바로 군의 문민화 작업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즉 미국은 이미 60년대에  민간인이 국방부 장관을 맡기 시작했고, 따라서 군의 모둔 활동은 민간의 감시와 통제를 받았고, 업무 자체도 민간을 능가하는 효율성을 과시하였다. 이번 천안함 구조 과정에서 지금까지의 구조 성과도 모두 민간이 거두었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다. 국가 안보의 이유 때문에 군이 공개할 수 없는 기밀스러운 정보를 보유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더라도, 이번사건 처럼 초기부터 이렇게 허둥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나, 군인과 민간인의 생명 보호에 이렇게 둔감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틀림없이 한국 군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음을 짐작케 해 준다. 특히 이 정부 들어선 이후 그 동안 착착 진행되던 군의 문민화 작업은 완전히 뒷걸음치고 있다. 군이 성역이 되면 부패를 낳기 마련이고, 군은 국민에게 책임을 질 수 없다. 그런데 자식을 책임지지 못하는 군에 안심하고 자식을 맡길 수 있겠는가? 나 자신이 병사로 복무했고, 지금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의 심정에서 이 글을 쓴다. 청와대 벙커에 모인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의 힘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다면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들 자신이 군을 불신하고 있는데 누가 군을 신뢰 할 수 있겠는가? 이번 사건의 진실이 밝혀져야 모든 판단을 내릴 수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사건 대처과정을 보면 이러한 생각들을 지울 수 없다. 북한이 어뢰를 발사해서 천안함이 침몰했는지는 아직 알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사건의 처리에서 보여준 이명박 정부의 무책임, 무성의, 미숙함이 모두 다 면죄부를 받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한번 억울하게 사망한 군인들을 깊이 애도하면서, 앞으로 이런 사고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지혜를 모으자.  

       

2010년 4월 5일 월요일

98금양호 선원들의 비극

천안함 구조에 나섰다가 침물한 98 금양호 선원들 중 시신을 찾은 사람은 김종평씨 한 사람 뿐이다. 그의 빈소에는 상주는 물론 문상객도 거의 없을 정도로 쓸쓸한 모습이라고 한다. 연락할 수 없는 혈육조차 거의 없어 기자들과 선박회사 직원들만이 빈소를 지키는 격이 되었다고 한다. 선박회사 관계자는 "같은 대한민국 시민인데 같은 일을 당하고도 선원이라는 이유로 홀대하는 것 같다", "비록 배를 타지만 다른 사람을 도우려고 나섰다가 사고를 당한 착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UDT  대원 한주호씨의 희생에 대한 군과 국민의 엄청난 관심에 비해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한주호씨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희생을 당한 것이지만, 이들 어부들은 자신의 임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생업을 포기하고 구조에 나섰다가 희생되었다. 이들의 목숨이 과연 UDT대원의 그것만큼 가치 없는 것이고, 국가나 사회로부터 이렇게 철저히 무시되어도 좋은 것일까? 여기서 의문점이 몇 가지 제기된다.  
98금양호 선장 김재후 씨의 사촌형 김재권(63)씨는 4일 인천해양경찰서에서 있은 유가족 설명회에서 "쌍끌이 어선들이 군과 경찰이 불러서 가게 됐다"며 "형님이 전화 통화로 그렇게 말했다"고 주장했다. 즉 하루벌어 하루를 먹고 살아야 하는 이들은 자신의 생업을 접고 군과 경찰에 의해 동원된 것이다.  군은 지난달 31일 "쌍끌이 어선을 실종자 수색 작업에 투입했으면 좋겠다"고 해경에 섭외를 요청했고, 이에 해당 어선 선장들은 논의 끝에 수색작업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고 직후 군 당국은 "98금양호 침몰은 천안함 침몰 해역 수색 작업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내 놓으며 선을 그었다. 즉 이들이 군의 요청에 의해 동원된 것은 맞지만, 사고당시는 수색 작업을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사고직후 해경의 대응도 문제거리가 되었다. 실종된 선장 김재후 씨의 사촌형 김재권 씨는 "신문을 보니까 배가 침몰했는데, (해경이) 늦게 출발했는데 원인이 뭐냐"라고 따졌다. 이에 해경은 "오후 8시30분에 조난신호를 받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늘 옆에 있던 배(금양 97호)가 안전하다고 해서 그렇게밖에 생각을 못했다"라고 늑장 출동을 인정했다.또한 한 가족이 "(금양98호가) 정부가 불러서 (수색작업에 참여하러) 간 것 아니냐"라고 묻자 해경은 "강제로 한 게 아니라 도움을 요청하자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라고 했다. 즉 금양호의 수색작업 참여는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한 것이므로 군은 이들의 실종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보인 셈이다.
   사실 한번 나가면 기름 값등 출항비도 엄청날 것이기 때문에 98금양호가 수색작업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항로를 이탈해서 어로작업을 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만약 군. 경의 요청이 없었더라도 수색작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였을까? 그리고  자신들이 다니지 않는 항로까지 갔다가 사고를 당했을까? 설사 이들의 출항이 국방부의 말 그대로 순수하게 자발적인 행위였다고 하더라도, 민간 어선이 수천만원의 하루 벌이를 포기하고 위험한 해역에 나서는데 정부는 뒷짐만 지고 않아 있을 입장일까?

  군은 뒤늦게 수색작업에 참여한다고 허둥대고, 정 총리는 "시신으로 발견된 금양호 선원 김종평 씨도 국가에 공헌하다가 귀중한 생명을 잃은 만큼 고귀한 희생에 합당한 대우를 하는 게 마땅하며, 충분한 예우를 해줘야 한다"고 말하기는 했다. 그러나 군과 정부 관계자가 찾지 않는 이들의 쓸쓸한 빈소는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과연, 군과 경찰이 이들에게 단순한 권유정도를 했는지, 군의 말대로 실종선원들이 단순한 자발성에서 참여를 했는지, 수색 작업은 극히 짧은 시간 동안 형식적으로만 하고 어로작업을 주로 했는지도 밝혀야 할 문제이지만, 이 모든 문제가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을 보는 국민들의 허탈감과 좌절감은 쉽게 치유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외국인 선원을 포함하여 이 배의 선원들은 정말 가진 것 없고, 따뜻하게 보살펴 줄 가족도 없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사회의 제일 밑바락 사람들이다. 이들의 죽음 앞에 국가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을 다시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국가의 자세는 우리 국민 모두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겨 줄 것이다. 그리고 국가에 대한 심각한 불신, 그리고 아무리 국가가 요구하더라도 이제 내 살길을 찾자고 이기적으로 행동하게될 국민들의 모습을 예고하고 있다. 누가 그 책임을 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