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29일 목요일

서울시장 야권 후보 경선을 앞두고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고, 시민운동에 몸담아왔던 박원순 변호사가 하루아침에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가 되어 여론의 선두를 달리는 일은 그 자체로는 참 비정상적인 일이다. 정당이 정치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자신의 열망과 이익을 대변되지 못한 대중들의 열망이 이러한 바람의 형태로 불면, 언제나 정치변화와 지속적인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실질적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독재정권이 무너진 지 20년이 지났고, 수 많은 민주화 운동 경력자나 재야인사들이 기성정치를 비판하면서 참신성을 무기로 하여 제도정치에 수혈되었지만, 결국은 기존 정당의 한 부속품이 되어 재선이 지상의 존재 목적으로 삼는 을 의식하는 보통의 정치인이 되어 정치의 강고한 벽이 허물어지지 않았다는 이 엄연한 사실 앞에 우리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미우나 고우나 기존 정당의 틀에 들어가서 선거정치에 임하자는 주장은 안철수 교수, 그리고 그가 밀어준 박원순 변호사에게 쏟아진 이 엄청난 대중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이야기다. 지금의 제1야당인 민주당의 주요 구성원이나 당직자의 상당수도 과거에는 바로 사회운동의 경력을 자랑하며 당으로 들어갔던 사람들임에 분명하지만, 일단 당인이 된 다음에는 당의 이익, 자신의 재선의 이익을 정치변화 더 나아가 대중의 어께를 짓누르는 짐을 내려주려는 생각보다 우선시하게 된 점이 많다. 지금의 민주당 의원 중 자신이 다음 총선에 떨어질 각오를 하고서라도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정권교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사람들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막강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가진 민주당이 자기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국민경선 40 퍼센트 안을 제안한 것은 제1야당으로서는 너무나 속 좁은 행동이었다. 그러나 박원순 변호사나 민노당은 조건없이 이 안을 수용함으로써 도덕성에서 한 수 위에 서게 되었다. 그런데 민주당은 또다시 선거인단으로 선정된 명단을 사전에 공개하자고 요구하여 박원순 측은 그것까지도 받아들였다. 더구나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우리가 무조건 (박원순 후보측 주장을) 수용할테니까 협상을 마무리해 달라"고 밝혔지만 실제 협상에서는 당의 입장이 그대로 반영되고 말았다. 이거야 말로 조직적 선거운동이 가능한 자신들이 이 선거인단 투표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민주당이 제1 야당으로서의 체면이 구겨질 것을 걱정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제1 야당이 서울시장 후보도 못내는 사태가 발생하면 그것도 큰일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들은 모처럼 만들어진 이 변화의 불길을 끄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집단처럼 보인다. 민주당 내 4명이 경합했던 지난번 당내의 경선에서도 이미 그런 모습이 나타난 바 있다. 물론 이번 서울시장 후보에서 박영선 후보가 박원순 변호사를 이긴 다음, 10.26 선거에서 그녀가 당선이 되면 당은 힘을 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후보 경선에 참여한 ‘국민’이 민주당원이거나 민주당의 운동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로만 채워지고, 안철수에 대해 열정적인 지지를 보냈고 요 며칠 동안 적금까지 쪼개서 박원순 펀드에 돈을 넣었던 서울시민들이 이 경선의 축제에서 배제된다면 이번의 민주당 후보의 승리는 내년 선거의 패배, 정권교체의 좌절로 귀결될 위험도 있다.
나는 박영선 의원이 BBK 건, 장관후보자 청문회 등 여러 사안에서 국민의 대표로서 역할을 충실하게 해온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은 적이 많으며 평소에도 민주당이 아무리 의석이 모자란다고 해도 저런 위원이 10명만 있으면 한나라당이 이렇게 나라를 거덜내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실제 서울시장이 되더라도 박원순 변호사보다 더 잘 할 지도 모르겠다. 박원순 변호사에게는 당선 보다 당선 후가 더 문제일 수가 있다. 그러나 이번 서울시장 선거의 의미는 민주당의 박영선이나 무소속의 박원순 중 누가 야권 후보가 되느냐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서울시민들은 전시행정에 세금을 탕진하고 중산층과 서민에게 고통만 안겨준 한나라당 주도의 서울시정을 근본적으로 바꾸기를 원하지만, 동시에 다가오는 총선, 대선에서 이 정권을 확실히 심판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을 갈구하고 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도 그렇지만 내년 총선과 대선도 선거에 적극 참여해온 50대 이상의 유권자들의 태도 변화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투표장에 가지 않았던 청년들과 서민층을 얼마나 투표장으로 끌어내는가에 달려있다. 그래서 이번의 후보 단일화를 위한 경선이 정당 밖의 젊은 층의 변화의 열망을 반영하지 않는다면, 민주당은 이번에 이겨도 결국 역사의 죄인이 될 수도 있다.
야권의 세를 현실적으로 조직화할 수 있는 민주당의 역할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시민후보인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시장이 되더라도 민주당의 힘을 얻지 않고서는 시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당으로 역량을 집중하자”는 정치 국면은 절대 아니다. 이 모든 변화의 계기는 오세훈 시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와 안철수 교수의 부상에 힘입은 것이다. 안철수 현상은 기성 정당, 특히 야당이 크게 반성하라는 메시지다. 그런데 경선을 앞두고 민주당을 중심으로 뭉치자는 말은 장차 다가올 야권, 시민사회 전체의 연합전성의 구축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그것은 모처럼 생긴 변화의 동력을 무시하고라도 당의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말이 된다. 죽는 것이 사는 것일 수 있고, 때로는 구차스럽게 연명을 하는 것이 확실히 죽는 것 보다 더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제 안철수 교수에게 박수를 보냈던 시민들이 국민경선 참가를 통해 행동해야 할 때 인 것 같다.

[쟁점 대담](상) 안철수 현상과 그 이후

2011년 9월 28일, <경향신문>에 올라온 대담 입니다. 본문을 보시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9282159375&code=9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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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대담](상) 안철수 현상과 그 이후



ㆍ“민주화 리더십 다음 단계에 대한 열망이 안철수 현상”

‘안철수 현상’은 이달 초 느닷없이 생겨나 정치권과 사회를 흔들었다. 여야 정당들은 안철수 한 명에게 밀리듯 무대의 중앙을 내줬다. 공고하던 ‘박근혜 대세론’도 틈을 보였다. 그는 등장처럼 느닷없이 무대에서 내려왔지만, 후방 효과는 여전하다.

경향신문은 28일 안철수 현상이 뭔지, 그 현재와 미래를 놓고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52·사회학부), 서울대 조국 교수(46·법학전문대학원)와 대화를 나눴다. 김 교수는 “안철수 현상은 민주화 리더십 다음 단계에 대한 시민의 욕구”라고, 조 교수는 “사람들이 닮고 싶어하는 ‘멋진 성공, 착한 성공’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민주화를 이룬 ‘1987년 체제’와 외환위기 후 양극화가 심화한 ‘1997년 체제’의 간극에서 안철수 현상이 부상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안철수 현상만 바라볼 게 아니라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결국 시민·대중이 나서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김진숙을 뺀 안철수’는 환상만 남아…
“이제 시민은 ‘관객’ 아닌 ‘배우’가 돼야”

- 도대체 안철수 현상은 무엇인가.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이하 김동춘) = 현재 정당이 사람들의 요구나 변화 욕구, 열망을 대변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정당정치의 부재다. 이게 정당의 문제가 아니라 정당인, 정치가들이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안철수 교수가 보여준 개인적 이력이나 행적에는 감동을 줄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고, 대가를 받지 않고 배포하는 등 자기를 버리면서 가는 일련의 흐름이 있다.

조국 서울대 교수(이하 조국) = 동의한다. 추가할 것은 1987년 체제에서 정치의 한계다. 정치권은 여든, 야든 정치적 민주화의 산물인 1987년 체제로 굴러간다. 대중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민생의 붕괴가 구조화된 ‘1997년 체제’에서 고통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대중은 ‘안철수’를 보게 됐다. 안철수는 ‘멋진 성공’ ‘착한 성공’이다. 지위와 부를 가지면서도 약자를 배려하고 정의를 생각하는 사람으로 비치고 있다.

김동춘 = 좀 더 미시적으로 들어가면 기업가로서 이명박을 지지했던 현상의 연장인 측면이 있다. 과거 민주화 운동의 리더십이 가졌던, 도덕성과 투쟁성이 가진 효과가 일정 정도 시효를 다한 점이 있다. 지난 10년간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기업이 보여주는 효율성과 생산성, 그리고 기업을 직접 운영해온 사람들에 대한 기대도 깔려 있다. 민주화 다음 단계의 리더십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 이 대통령이 경제대통령을 자임했지만 경제는 더 어려워졌고, 경제의 이름으로 사회정의와 도덕성을 너무 무시했다. 그런 게 전문가, 양심적 기업가, 창의적 기업가 출신 안 교수 지지에 반영됐다.

조국 = 20, 30대층은 기성 정치인의 모습을 닮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안철수는 닮고 싶어하고, 그렇게 되고 싶어한다.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청년은 ‘투사’가 되고자 했다면, 지금은 ‘안철수’가 되고 싶어한다.

- 안 교수가 앞으로 정치를 할까.

김동춘 = 궁극적으로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동안 우리 정치사를 봤을 때 개인의 결단을 넘어서는 측면이 있다. 제도정치가 사회의 열망을 대변하지 못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극우반공 체제와 관계있다. 우리 정치는 일정한 이념적 스펙트럼만 참여할 수 있고, 진입 관문이 대단히 높은 폐쇄적 구조다. 그래서 대변되지 못하는 노동자나 대중들의 열망은 언제나 바람 형태로 표현된다. 기성 정당 틀 내에서는 변화를 기대할 수 없어, 밖에서 수혈을 해서 위기를 돌파한다. 안 교수의 경우 정치를 할지 안할지는 본인도 모른다. 저는 안 교수가 정치를 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기성 정치가들이 잘해주면 가장 좋다.

조국 = 안철수는 이미 개인이 아니다. 대선후보로 이름이 오른 상태이기에 자신 의지와 무관하게 주변이 그를 정치권으로 밀어버릴 수 있다. 그리고 이달 초 서울시장 출마가 거론되는 과정에서 그는 우회적으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 안 교수는 구체적 정책이나 비전을 보여준 게 없지 않나.

김동춘 = 그건 적절한 비판은 아니다. 우리 정치는 구체적 정책 사안을 중심으로 대립각이 만들어지지 않고 인물 중심으로 움직인다. 언론 역시 언제나 후보 위주의 구도를 만들어낸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가변적이다. 현실정치나 제도권 정치에서 돌파구를 열지 못하고, 시민사회에서 돌파구를 열지 못하면 안 교수는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정치의 장으로 흡인될 수 있다. 정책은 바로 그를 옹립한 뒤에 조직된 세력의 몫이다.

조국 = 지금 대중의 환호는 그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의 산물이다. 안철수의 멋진 성공, 착한 성공이 정치영역에서도 실현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려하는 점이 있다. 정당정치가 후진성을 가졌고, 민의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더라도 이를 무시하고 집권해 국정운영이 가능할 것인지 회의적이다. 안철수에 대한 대중의 과잉기대가 있는 상태에서 그 자신이 (기대를)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어느 정당에 속하지 않은 모습으로,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닌 식으로는 지속성이 보장되지 않을 것이다.

- 안 교수가 여야를 넘어서는 제3이념, 제3지대, 제3세력을 만드는 게 가능할까.

김동춘 = 정당의 사회적 기반 문제다. 한나라당은 이해관계로 뭉친 사람들이다. 민주당은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더라도 호남 기반을 무시할 수 없다. 제3정당 혹은 시민사회정당, 시민정당, 운동정당이 가능하려면 이러한 것들을 대체하거나 그것과 비슷한 정도의 세력을 가지는 기반이 필요하다. 민주당이 더 위기에 처할 경우는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현재 민주당은 독자적으로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민주당은 수권정당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고, 따라서 큰 비판을 받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이 정권의 인기가 너무 없다보니 혼자로도 승산이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으로서는 제3정당은 좀 어려운 것 같다.

조국 = 결론부터 말하면 잘 안될 것이다. 현실정치에서 수구·보수·반공세력이 항상 30%가 있다. 반대쪽에 지역적으로 호남, 역사적으로 반독재 민주화 운동세력, 이념적으로 진보정치세력이 있다. 이들이 아닌 제3지대에서 세력을 형성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안철수 현상에서 드러난 새로운 과제는 몇몇 명망가나 전문가가 아니라 ‘적극적 시민’의 힘을 기반으로 해서만 가능하다. 안 교수가 정치를 한다면 분명한 입장을 정해야 한다. 진보개혁진영에 문제가 있고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이 진영과 거리를 두는 입장으로는 집권도, 집권 이후 국정성공도 쉽지 않다. 1997년 체제의 문제는 1987년 체제를 만든 사람들과의 거리두기를 통해서 해결될 수 없다.

-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은 기성 정당에 대한 도전을 표방했다. 안철수 현상에 열광하는 이들은 진보정당도 ‘대안정당’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김동춘 =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과거(2004년) 10석을 얻으면서 자기 역량을 과대평가했다. 그 10석은 노동운동 혹은 진보세력의 힘이라기보다는 비례대표제, 즉 선거제도 변화에서 기인한다. 이것은 노동·진보정치세력의 힘보다는 범시민사회 투쟁의 결과였는데, 자신의 힘의 결과라고 과대평가했다. 두 진보정당은 지역 기반이 없어 풀뿌리 실천운동으로 가야 했는데 그보다 원내에 진출한 몇몇 인물들에게 의존했다. 또 미래지향적 대안을 갖고 논쟁하기보다는 과거 이념, 대립, 노선에 여전히 발목 잡혀 있었다. 그게 안철수 현상을 강화시킨 원인 중의 하나다.

조국 = 진보정당은 ‘민주당도 보수정당이고, 우리야말로 대안정당’이라고 했는데, 이론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대중은 그러한 진보정당을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보정당은 의식, 문화, 노선, 사고방식이 1980년대에 갇혀 있다. 대중은 ‘진보정당에 표를 주면 정권을 잡아 고통을 해결해줄 수 있느냐’고 자문해보았지만 회의를 품었고, 대신 안철수를 대안으로 생각한 것이다.

- 안철수 현상은 촛불집회·용산참사·희망버스로 이어진 민생의 위기, 소통의 위기를 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철수 개인은 사회의 숙제를 풀어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조국 = 헌법 10조에 행복추구권이 있다. 이명박 정권은 대중에게 불행을 주는 ‘반행복 정권’이다. 대표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불행을 주는 정권이다. 많은 사람이 희망버스를 타고 김진숙에게 달려간다. 안철수와 김진숙은 정당 밖에 있는 사람으로 대중 지지를 받고 있지만 차이가 있다. 모두 안철수가 되고 싶어하지만, 김진숙처럼 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모두 안철수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다수는 김진숙화될 가능성이 많다. 이 점에서 ‘김진숙을 뺀 안철수’는 매우 위험하다. 환상만 남는다. 김진숙은 촛불시민, 비정규직 노동자, 용산참사의 철거상인, 반값 등록금 투쟁에 나선 대학생 등 사회적 약자의 상징이다. 김진숙 현상을 타개해야 한다. 약자에 대한 노골적인 착취를 끝내야 한다. 안철수가 1987년 체제를 만든 사람과 손잡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게 안 교수가 강조하는 합리, 공정, 상식과도 맞는다.

김동춘 = 안 교수가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느꼈던 재벌체제, 중소기업의 어려움 등 경제 문제에서 해결책을 출발하는 게 맞다. 우리 사회 비정규직 문제는 중소기업 문제이고, 곧 대기업의 시장독식 문제다. 중소기업이 버틸 수 없는 한계 상황이다. 안 교수 주장을 좀 확장하면 김진숙 문제와 만난다. 이 과정에서 담론이나 의제를 접합시켜야 한다. 양극화, 청년실업, 등록금, 복지 등의 사안이 이것을 중심으로 결합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원래 조직된 노동 의제가 되어야 하지만 노동운동의 취약성 때문에 이 담론을 담당할 주체가 없다.

- 결국 현실 속에서 갈등을 치유하고 해결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김동춘 = 희망버스도 노동세력이 주도했다기보다는 시민사회가 주도했다고 볼 수 있다. 재벌 문제나 중소기업 문제도 노동세력이 주도하면서 다른 세력을 끌었어야 모양새도 좋고 조직적인 세 확산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어떤 세력이 이 담론을 끌어안을지 모르지만 현재 민주당, 범시민사회운동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야권연합이 이 의제를 치고 나가야 한다. 안철수 현상은 소비사회의 한 측면이다. ‘물건을 사는 것’,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몸을 싣지 않고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희망버스를 타려면 돈과 시간을 내야 한다. 국민경선에 참가하기 위해서도 시간을 내야 한다. 선거에서만 주권자가 되는 것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시민이 소비사회의 일원에서 참여하는 행동 주체로 변화되어야 정치 변화의 추동력을 만들 수 있다.

조국 = 안 교수는 중소기업가로서의 경험에 기초하여 재벌 문제를 정확히 비판했다. 재벌을 ‘중소기업이라는 동물을 가두어 죽이는 동물원’이라고 비유한 것은 정확하다. 바로 여기에 전통적 진보운동과의 접합점이 있다. 한편 안철수의 ‘청춘콘서트’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관객’으로 박수치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 세상이 바뀌려면 시민은 ‘관객’이 아니라 ‘배우’가 되어야 한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시민사회 후보인 박원순 변호사의 선거비용을 마련하는 ‘박원순 펀드’가 대박이 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나 정치인을 상품에 비유하면, 구매권은 소비자가 갖고 있다. 소비자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상품이 바뀔 수 있다.

2011년 9월 16일 금요일

양승태 대법원장 (1)

양승태 대법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무능한 민주당에 의해 유야뮤야 되고 말았다.
청문회 이전에 민변은 양승태씨가 대법원장이 절대로 되어서는 안되는 여러가지 이유를 열거하였으며 그 중 하나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발간한 긴급조치 위반사건 재판에 관한 보고서에 기재돼 있는 것처럼 양승태 전 대법관은 박정희의 유신헌법을 철저하게 관철하고 긴급조치 위반사건으로 기소된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모조리 유죄를 선고해 합법이라는 정당성을 부여한 대표적 판사”라고 주장했다.

나는 지난 진실화해위 상임위원 시절 긴급조치 판결문 정리보고( 조중동은 판사 명단 공개라고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판결문에 포함된 판사명단을 첨부한 것)건을 몸으로 겪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이 사안에 대해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그의 이력은 향후 대법원의 판결 방향, 그리고 그것에 심대한 영향을 받을 한국사회의 미래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양승태씨는 유신시절 긴급조치 건에 대해 서울 형사지법 판사로서 여러 번 참가했다. 물론 당시 아직 연배가 어렸기 때문에 거의 배석판사로 참여했으며, 따라서 해당 판결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질 위치에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그는 75.8 한 노동자가 열차 플랫폼에서 "박대통령이 군인을 했으면 얼마나 했느야 얼마남지 않았다" 등의 발언을 했다고 긴조 9호의 유연비어 유포죄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은 사건, 심지연 조성우 등 학생운동 관련자들이 명동성당 사제관 방에서 유신헌법 철폐, 정권 퇴진을 주장하는 유인물을 제작했다고 이들을 징역 1년 내외의 선고를 한 사건, 어떤 무직자가 000가 대통령 명을 받고 000 고대 총장을 거국내각 총리로 교섭타가 거절당했다... 서울대 전총장 000는 미움을 받아 모기관에서 주는 드링크를 마시고 병신이 되었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유포했다고 징역 1년을 선고받는 사건, 배경순, 이혜경, 고광순 등 수도여사대, 이대 학생들이 유인물을 배포했다고 징역 1년 내외를 선고받는 사건 등에 분명히 판사로 참여하였다.

물론 조선일보 등이 주장하듯이 그가 서울형사지법 판사로 재직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판결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의 이러한 과거는 오직 그의 직책 때문에 불가피하게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상 중앙정보부가 판결까지도 조정하고 재판부가 검사의 기소장을 그대로 배껴서 판결문을 만들어야했던 당시의 실정상 저항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이영구 판사 ( 변호사·당시 서울지법 영등포지원 부장판사)는 76년 수업 중 정권을 비방한 혐의(긴급조치 9호 및 반공법 위반)로 기소된 한 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또 양영태 판사( 변호사·당시 광주고법 판사)는 75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비방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한 농민의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즉 최근 위헌판결을 받기도 했지만 사실상 법이라고도 볼 수 없는 긴급조치 조항에 따른 무리한 선고를 소극적으로나마 거부한 사례도 분명히 있었다. 판사의 무죄 선고는 기득권 포기하고 정권에 저항했던 학생들의 입장에 비교하면 아주 조그마만 용기만을 필요로 한 일이었다.

긴급조치가 실정법이었기 때문에 판사는 법에 따라 판결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는 그들의 논리는 독재정권에 부역한 사람들이 단골로 써먹는 자기 변명이며, 오늘의 시점에서 당시의 정황상 그렇게 행동한 것에 대해 이해는 할 수 있느나 정당화될 수는 없는 일이고 상당히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판결을 받는 사람들의 그 이후다. 아마 양승태씨의 판결을 받는 노동자, 무직자는 그 이후 전과자로 낙인찍혀 수 많은 고통의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주변의 따돌림, 취업 차단 등 보지 않아도 그 결과가 너무 분명하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했다는 변명은 적어도 그러한 판결의 희생자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양심이 있다면 이들에게 적절하게 사죄를 해야 한다.

또한 권력자의 의중에 충실히따라 법도 아닌 법을 실정법이라고 그냥 존중하여 단순 훈방 정도 처리할 사안에 대해 징역 1년 이상의 중형을 때린 판사가 이 시대의 대법관의 자리에 절대로 올라가서는 안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 대법원장에 의해 우리의 사법질서와 정의가 바로 잡힐리 만무한 것이다. 소신있게 무죄를 선고한 판사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권력자의 눈치를 보면서 사회적 약자들에게 무자비한 처벌을 내린 사람이 이 시대의 대법원장이다.

과연 청문회 자리에서 그가 이런 과거를 부끄러워했던가? 대법원의 미래가 보인다.

2011년 9월 15일 목요일

세계경제위기 확산?

그리스 발 위기가 프랑스로 번지고 있다.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그리스,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칼 등의 채무위기가 유로존 전체의 위기로 확산되지 않을까 전전 긍긍하고 있다. 유럽 중앙은행을 비롯한 유로 존 지역의 각 나라 은행들은 모두 이들 나라에서 발행한 채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 나라의 채무 불이행 즉 부도사태는 유럽 전 지역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 은행이 위기에 빠진 것도 프랑스가 그리스의 국가 및 민간 차원의 엄청난 채권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프랑스나 독일 등 주요 유럽 국가는 그리스가 부도사태까지 가지 않도록 막을 것이라고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들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달러를 공급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분석가들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포르투칼이나 아일랜드는 영국이나 독일 은행에 큰 빚을 지고 있어서 이들이 그리스와 유사한 부도 위기에 몰릴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들보다 경제규모가 훨씬 큰 이탈리아도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점치고 있다. 그 경우 충격은 이들 나라를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만약 유로존 지역으로 부도 위기가 확산되면 금융이나 무역거래에서 유럽과 사실상 단일 경제권인 미국에 직접 충격을 줄 것이고, 미국이 충격을 받으면 그것은 곧바로 중국에게 충격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유럽 은행과 엄청난 규모의 단기 채무관계에 있다.

어쨋든 유럽과 미국이 금융위기에 빠지면 세계 경제는 심각한 침체상태에 빠질 것이다. 이것은 전세계가 새로운 공황상태에 돌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전문가가 아니라서 이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2008년 월 스트리트발 금융위기는 해결된 것이 아니라 국가의 재정지출을 통해 봉합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다면 위기는 또 다시 재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구나 천문학적으로 쌓여가는 한국의 가계부채는 엄청난 뇌관일 수 밖에 없다. 하반기에 이자율이 높아지면 지금도 빚에 허덕이는 한국의 가계는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질 것이다. 그것은 은행부실로 연결되고, 실물경제로 확산될 위험성이 크다.

로버트 라이시 교수의 지적처럼 이 위기는 근본적으로는 심각한 불평등에서 기인한다. 천문학적인 돈은 투자할 곳이 없다. 가계가 파산지경인 상태에서 구매력이 생길 수 없고, 상품과 금융은 회전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위기는 바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자초한 것이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대기업에는 천문학적인 돈이 축적되고 있으나 가계는 빈털털이다. 하우스 푸어는 지출할 여력이 없다. 중산층이 몰락하는데 어디서 구매력이 창출될 것인가? 대기업의 자녀들은 강남 지역에 앞다투어 외국의 고가 영품 매장을 만든다고 한다. 어차피 '없는 것들'은 구매력이 없으니 돈 있는 사람들의 지갑을 열자는 이야기다. 이들이 건물을 마구 사들이는 바람에 임대료가 올라서 상가는 거의 개점 휴업 상태라고 한다.

과연 자본의 탐욕은 어디까지갈까? 그러고도 위기가 오면 대마불사의 논리가 또 작동할 것이다. IMF 위기 때처럼 또다시 공적 자금 투입을 요구할 것이다.

로봇이 다스리는 로봇의 나라 [2011.09.12 제877호]

2011년 9월 12일, <한겨레21> 제877호에 올라온 연재 글 입니다. 본문을 보시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04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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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다스리는 로봇의 나라 [2011.09.12 제877호]

[김동춘의 폭력의 세기 vs 정의의 미래] 절대복종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인권침해·학살 등 국가범죄
의인을 처벌하고 범죄자 포상하며 ‘복종범죄’ 부추기는 국가


“피고(아이히만)가 존재하던 때 나치 법률하에서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고 범죄가 아니라 국가의 공식 행위이므로… 복종하는 것이 그의 의무였습니다.”(유대인 학살 전범으로 기소돼 재판받던 카를 아돌프 아이히만의 변호인)

“스스로 가슴에 못 박는 소리지만 난 철저히 ‘상명하복’ 원칙을 지켰고 조직을 위해 ‘십자가’를 졌다.”(고문기술자 이근안)

“대대장은 총살 집행할 권한이 없고, 연대장도 군법 권한으로서는 총살 집행을 지휘할 권한이 없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상부 지휘관의 명령을 복종한 것뿐이고 본인은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습니다.”(한국전쟁 때 경남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 가해 부대 대대장 한동석)

“본인도 합법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상관의 명령이므로 명령에 복종하였을 뿐입니다.”(한국전쟁 때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 가해 부대 소대장 이종대)



고문이나 학살을 자행한 자들이 전혀 죄의식을 갖지 않는 이유는 자신은 명령에 복종함으로써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하거나 그 명령 자체가 국가와 조직을 위한 것이라고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고문경찰관 이근안의 1988년 수배 전단 사진. 한겨레 자료



절대복종, 잔혹행위의 중요한 원천


‘복종은 선이다’ ‘집단에서 벗어나면 절대로 안 된다’. 이것은 군국주의 일본, 파시즘하의 독일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들에게 강요했던 논리다. 나치의 대량학살, 일본군의 잔혹행위는 모두 권위에 대한 맹목적 복종을 찬양하던 군대문화의 산물이다. 고문이나 학살을 자행한 자들이 전혀 죄의식을 갖지 않는 이유는 자신은 명령에 복종함으로써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하거나, 그 명령 자체가 국가와 조직을 위한 것이라고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켈먼(Kelman)과 해밀턴(Hamilton)은 인권침해나 학살 등 대범죄가 복종의 이름으로 자행됐다는 점에서 그것을 ‘복종범죄’라 불렀다. 권위에 대한 절대복종이야말로 잔혹행위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며, 경남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 지휘관들처럼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명령에 복종한 것”이라고 정당화했을 때 그것은 범죄가 된다. ‘상관의 명령은 천황의 명령이다’라는 공식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중국인과 연합군에게 잔혹행위를 저지르도록 명령한 일본군 지휘관은 명백히 전쟁범죄자로서 기소될 수밖에 없었다. 군사조직에서 공격적인 업적주의와 극단적인 위계질서의 강조는 언제나 동시에 존재하는데, 일본 교수 노다 마사아키는 그것이 바로 군국주의 일본을 움직이는 기본 논리였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국가 혹은 국가의 권력자들이 잔혹행위를 저지르고도 상부의 명령이었다고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사실 틸리(Tilly)가 말했듯이, 조직폭력배 세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조폭들은 범죄를 저지를 때 명령을 거부하는 부하들에게는 가혹한 처벌을 가하고, 자신에게 충성을 바쳐 범죄를 자행하는 동료들에게 후한 포상을 한다. 숨겨야 할 것이 많은 조직에서 범죄는 용납되지만, 명령 거부는 절대 용서받지 못한다. 민주주의 국가라 하더라도 한 국가가 다른 국가와 전쟁 상태에 있을 때, 상관은 예하 병사들이 적으로 의심되는 민간인에게 범죄적인 잔혹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알면서도 전쟁 승리의 명분 아래 그것을 묵인하는 경우가 많다. 세상의 모든 구성원은 하나가 되어 움직여야 한다는 전체주의나, 군인이나 경찰은 로봇처럼 움직여야 하고 관료에게는 복종과 집단추종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보는 군사독재 정권하에서도 체제 유지를 위한 복종 강요나 행정명령 이행 압박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라는 민주주의의 원래 가치를 비웃는다.


명령 불복종 심하게 처벌한 MB 정부


이명박 정부하에서 절차적 위법이나 인권침해 요소가 있는 행정집행이라도 그것을 거부하거나 비판하는 공직자에게 ‘파면’이라는 최고의 처벌 방법을 거침없이 사용했다. 조현오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자신이 추진한 과도한 실적주의를 비판하고 사퇴를 요구했다고 해서 채수창 전 강북경찰서장을 파면했다. 바로 공격적 업적주의나 상관을 비판한 죄였다. 한편 촛불시위 때 ‘보이는 족족 검거하라’는 진압 방침을 거부한 전경은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고등법원에서는 형량이 오히려 2년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서울시 교육청은 일제고사 거부, 야외 체험학습을 허용한 교사 7명 중 4명을 해임하고 3명을 파면 조처했다. 국세청은 비리 혐의로 도피한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비판한 직원을 파면 조처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국방부는 전대미문의 금서 조처에 대해 헌법소원을 낸 군법무관 2명을 파면하며 군 명예 실추 등을 그 이유로 내세웠다. 과거처럼 범죄를 저지르라는 명령까지는 아니었지만, 국민의 인권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도 있는, 논란이 되는 정책이나 명령에 일방적으로 복종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특히 파면된 군법무관은 5년 동안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없는 등 치명적 처벌을 당했다. 이 공무원들에 대한 파면 사유는 명령 불복종, 곧 ‘직무 수행시 공무원은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의무를 저버렸다는 것이다. 군법무관을 파면한 국방부는 “군인은 상관이 직무상 지시나 명령을 내렸을 경우 내부 건의 절차를 밟아서, 반드시 지휘 계통을 따라 단독으로 건의할 것”을 강조했고, “군법무관들에 대한 징계는 그런 과정을 무시한 것에 대한 징계이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조직과 달리 군에서 명령이 그만큼 중요한 것은 맞지만, 그들 역시 국민의 일원이기 때문에 기본권인 재판청구권마저 제한당할 수 있다는 것은 헌법 정신과 배치될뿐더러 과도한 것이었다는 비판이 일었다. 우리나라 법원도 이전에 중앙정보부 직원의 경우 선거를 앞두고 특정 후보에게 반대하는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담은 책자를 배포하거나 참고인으로 출석한 사람에게 가혹행위를 하라는 등 불법 명령에 대해서는 복종 의무가 없다고 판시했으며, 그 경우 복종해 명령을 집행했다면 그 사람도 처벌을 면할 수 없다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명박 정부하에서 군인, 국세청 직원, 교사 등 명령에 불복하거나 그것을 비판한 사람들에 대한 파면 조처를 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특히 교육계를 보면 비리·부정·독직·성희롱의 혐의를 가진 교장 등 관리자보다 명령 불복종, 민주노동당 후원금 납부 등을 한 평교사들을 엄하게 처벌했다. 국세청장을 비롯해 비리 고위 공직자들을 엄하게 처벌한 예가 없었다. 그것은 부정부패 등 반사회적 행동보다 자신들에 대한 명령 복종 여부를 최상의 원칙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하기야 쿠데타를 일으킨 5공 신군부 세력이야말로 조직 기강을 가장 심하게 흔든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파면당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명령 거부한 이종찬·유병진·이영구


반인권적인 행위, 심지어 고문·학살·불법처형까지 정당화한 공권력의 복종 지상주의는 바로 한국의 역대 대통령이 실천한 것들이었다. 이승만이 전시 부산에서 각의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이종찬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군 파병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종찬은 군의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파병을 거부했다. 그러자 이승만은 “귀관은 어찌하여 나라에 반역하고 나한테 반역하는가”라고 꾸짖으며 “대통령은 국군의 최소사령관이고 대원수다. 참모총장이라고 하더라도 대원수에 항명하면 극형에 해당한다. 극히 포살하여 전군의 시험으로 하라”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군 내부의 반발이 워낙 거세서 그 명을 거두었다. 유병진 판사는 조봉암 등 진보당 사건에 대해 1심에서 조봉암 피고인을 징역 5년에 처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에서 1심의 판결은 파기되고 결국 조봉암은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됐다. 2심 판사가 부당한 명령을 거절했다면 조봉암은 사형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유병진 판사는 자유당 정권에 의해 연임이 거부당하고 법관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조봉암 2심 판결과 사형은 잘못된 것이라고 결정했다. 결국 유병진 판사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었다.

유신 치하 긴급조치 9호 판결에서 무죄판결을 내린 이영구 판사는 소신대로 판결한 대가로 법복을 벗었다. 그러나 당시 대법원장, 대법원 판사, 서울형사지법 수석부장판사 등 요직을 차지한 이들은 모두 박정희의 의중을 잘 따르며 학생들에게 가혹한 판결을 내린, 동료들 사이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으로 불린 사람들이었다. 복종의 대가는 승진으로, 거부의 대가는 승진 탈락, 심지어 변호사 개업 방해로까지 이어졌다.

지난 독재정권과 군사정권 시절 동안 거의 모든 군경과 판검사들이 이런 복종범죄를 저지르며 출세 가도를 달렸고, 인권과 국민의 편에 선 사람들은 복종을 거부한 대가로 가혹한 처벌을 당했다. 그 최대의 피해자는 바로 국민이었다. 내부의 부당명령 거부자를 처벌함으로써 국가나 권력자들이 저지른 범죄나 잘못된 공권력 행사는 잠시 은폐될 수 있었겠지만, 고문·간첩조작 등 심각한 인권침해와 부정부패는 계속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 강조된 경찰의 실적주의는 무차별적 검거 사태나 서울 양천경찰서 고문 사건 등과 무관하지 않고, 교육과학기술부의 일제고사 강요는 학생들을 더욱 경쟁으로 몰아넣거나 심지어 ‘시험기계’로 만든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으며, 국방부의 금서 조처는 민주국가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공직자가 국가범죄 혹은 부당명령의 도구가 되면 국가나 사회의 위기 상황에서 바른 말을 하거나 몸을 던지는 공직자가 사라지고, 앞에서 인용한 아이히만·이근안·군학살자들처럼 어떤 일에도 책임지지 않고 모든 탓을 상부로 돌리는 사람들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국민도 오직 시키는 일만 하는 로봇이 될 것이다. 로봇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로봇이 된 인간의 존엄이 설 자리는 없어지게 된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비판했다가 파면당하고 고발까지 당한 국세청 직원은 “어떻게 이렇게 야비할 수 있는지,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는지”라고 공무원에게 목숨과도 같은 직장을 빼앗았으면 됐지 무엇을 더 바라는가라고 항변했다. 도피성 출국을 한 전 국세청장은 조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고 그를 비판한 직원에게는 엄한 처벌을 내리는 국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들은 ‘기강’을 들먹거리지만 그렇게 단속하지 않으면 내부 비리를 잘 아는 직원들이 너도나도 비리를 고발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닐까?


부당명령을 거부하는 ‘희망’


물론 밀그램(Milgram)의 유명한 실험처럼, 사람들은 폭력으로 강제되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심각한 고통을 주도록 하는 명령에 복종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본다면 군인·경찰·검사 등 상명하복 원칙이 강조되는 조직에서 상부의 명에 대해 이견을 보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명백한 국가범죄나 내부 비리, 권력자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공직자가 한 명도 없다면 그 조직과 그 사회는 희망이 없을 것이다. 비록 소수라도 부당명령을 거부하는 공무원이 존재하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가 고발해 비판하는 공무원이 있다면, 그 사회에는 희망이 있고 대다수 국민의 인권은 보호될 수 있다. 역대 한국 정부는 진정한 의인들을 처벌했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자기 편이라는 이유로 포상했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폭동 없는 한국은 좋은 나라? [2011.08.29 제875호]

2011년 8월 29일, <한겨레21> 제875호에 올라온 기획 기사입니다. 본문을 보시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02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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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동 없는 한국은 좋은 나라? [2011.08.29 제875호]

[기획2] 강한 국가, 순치된 국민, 게토의 부재, 문민 전통 등이 폭동을 막는 구실… ‘묻지마’ 범죄와 자살로 고통을 드러내지만, 집단행동 없으면 문제 공론화 기회도 없어


“삼륜차 한 대가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가지고는 그만 소용돌이 속에 파묻힌 거예요. 데모를 피해서 빠져나갈 방도를 찾느라고 요리조리 함부로 대가리를 디밀다가 그만 뒤집혀서 벌렁 나자빠져버렸어요. 누렇게 익은 참외가 와그르르 쏟아지더니 길바닥으로 구릅디다. 경찰을 상대하던 군중들이 돌멩이질을 딱 멈추더니 참외 쪽으로 벌떼처럼 달라붙습디다. 한 차분이나 되는 참외가 눈 깜짝할 새 동이 나버립디다. 진흙탕에 떨어진 것까지 주워서는 어적어적 깨물어 먹는 거예요.”
1977년 발표된 윤흥길의 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에는 주인공 권씨의 진술을 통해 1970년대 빈민가의 소요 장면이 실감나게 묘사돼 있다. 배경은 1971년 8월10일 지금의 경기도 성남에서 일어난 ‘광주대단지’ 사건이다. 서울 청계천 일대에 거주하다 강제 이주된 철거민들이 당국의 방치와 가혹한 행정 조처에 반발해 일으킨 소요 사태로 주민과 공무원, 경찰 등 수십 명이 다치고 관용차와 버스, 관공서가 불타고 파괴됐다.


광주대단지 사건, 사북 사태


소설에서 권씨는 집 한 채 마련할 요량으로 철거민 딱지를 사들였다가 당국의 전매금지 조처로 궁지에 몰린다. 이웃들의 강권으로 주민대책위에 발을 들여놓지만, 대학을 나와 서울의 출판사에 근무하는 그로선 못 배우고 가난한 이웃들의 집단행동에 쉽게 동화되지 못하고 겉돌기만 한다. 시위가 벌어진 날도 그는 서울로 몸을 피하려다, 전복된 삼륜차에서 쏟아진 참외를 ‘어적어적 깨물어 먹는’ 군중들의 모습을 목격한다. 그 ‘나체화 같은’ 장면에서 주인공은 그들의 행동을 밑에서 떠받치는 ‘무시무시하게 절실한 무엇’을 깨닫는다. 결국 그는 시위대의 선두에 섰다가 징역까지 살게 된다.



주인공이 언급한, 군중의 행동을 떠받치는 ‘무시무시하게 절실한 무엇’의 실체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것은 독재정권에 대한 도덕적 분노나 민주 회복을 향한 정치적 열망과는 거리가 먼, 빈곤과 굶주림, 출구가 없다는 절망,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자각에서 분출되는 집단적 분노다. 소설의 배경이 된 광주대단지 사건이 전형적인 ‘빈민 폭동’으로 분류되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폭동은 사회적 저항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집합행동이다. 구조적 요인이 작용하지만, 발생 과정이 우발적이고 폭행·파괴·방화 등 물리적 폭력이 동반된다. ‘자연발생적인 집합행동’이란 점에서 봉기·항쟁과 유사하지만, 폭동은 지도부가 없거나 그 역할이 미미할 뿐 아니라 이슈나 목표에 대한 참여자들의 공유도가 낮고 행동의 지속 기간이 짧다는 점에서 이 둘과는 명확히 구분된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한국 현대사의 고비마다 등장한 대규모 집합행동에서 ‘폭동’으로 분류할 만한 사건이 드물었다는 점이다. 그 기간을 한국전쟁 이후로 제한하면, 광주대단지 사건과 함께 1980년 초 강원도 태백에서 일어난 사북 사태 정도가 꼽힌다. 일부 극우세력이 ‘1980년 광주’에 대해 ‘무장폭동’이란 꼬리표를 붙이려 했지만, 광주는 이슈와 목표에 대한 공유 정도가 높았고, 집단 내부에서 사적인 폭력 행사가 철저히 통제됐다는 점, 목적의식적인 지도부의 지휘 아래 저항이 장기간 지속됐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민중항쟁’에 속한다는 합의가 이뤄진 상태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등장한 뒤 집회·시위 현장에서 투석이나 화염병 투척 같은 물리적 폭력이 사라지는 양상이 두드러지는데, 2002년 겨울 처음 등장한 뒤 ‘2000년대식 항의’의 문화적 우세종으로 자리잡은 촛불집회가 대표적이다.


우리 안의 합법, 뿌리 깊은 보수


대체 왜 한국에서는 유럽이나 다른 제3세계 국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폭동 형태의 저항이 드물게 나타나는 것일까. 적잖은 학자들이 한국의 저항문화가 지닌 독특함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정진상 경상대 교수(사회학)는 문민 우위의 전통에서 비롯된 폭력에 대한 거부감을 꼽는데, 저항 과정에서 폭력이 빚어질 경우 배경이나 동기, 목적과 무관하게 폭력 행사의 주체에게 도덕적 비난이 집중돼온 역사적 경험이 저항세력의 자기통제와 규율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미문화)는 그것을 ‘뿌리 깊은 보수주의’로 규정한다. 대표적인 예가 2008년 촛불집회 때 광화문 네거리의 컨테이너 차단선을 넘어갈 것인지를 두고 시위대 내부에서 벌어진 ‘명박산성 논쟁’이다. 이 교수는 말한다. “진보세력조차 공동체의 룰을 깨뜨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강하다. 법을 내면화하고 있는 거다. 개인과 공동체, 개인과 국가를 대등하게 사고하지 못한다는 방증이다. 한국에선 여전히 (공동체에 순응하는) ‘국민’이 다수고, ‘시민’은 소수다.”

이항우 충북대 교수(사회학)는 이를 ‘합법·비폭력 강박증’이라 꼬집는다. 이 교수는 이런 강박증이 비교적 최근에 생겨났다고 본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 ‘정당성을 지닌 명실상부한 민주정부가 들어섰으니 정치적 항의나 불만의 표출 방식도 독재정권 시절과는 달라야 한다’는 사고가 시민사회에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1990년대 중·후반 기든스·하버마스류의 ‘대화 민주주의’가 진보세력의 민주주의관에 거스를 수 없는 흐름처럼 자리잡은 것도 이런 강박을 강화한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폭동을 예외적 항의 방식으로 만든 또 다른 요인은 국가의 강한 억압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 국가는 ‘강한 국가’였다. 국가 기능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조선 말에도 관은 민란이 발생할 때 일단 요구 조건을 들어준 뒤 주동자를 가려내 가혹하게 처벌했다. 해방 공간과 정부 수립 직후까지 빈발했던 농민봉기와 도시폭동에 대해선 공권력의 철저한 사후 응징이 이뤄졌다. 군사정권의 등장은 이런 흐름을 한층 강화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이승만 정권 말기까지 ‘준폭동’ 형태의 저항이 끊이지 않았는데, 5·16 쿠데타 이후에는 사실상 맥이 끊기고 청원이나 합법적인 집회·시위 형태가 지배적인 방식이 된다”며 “사회 하부 단위까지 통제와 동원이 이뤄진 결과”라고 진단했다.

장기간에 걸친 ‘신자유주의 개혁’의 결과 사회적 결속의 원천이던 공동체가 산산조각 나버린 유럽과 달리, 공동체의 규율과 연대의식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로 거론된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의 해석이다. “이번에 폭동이 일어난 영국의 경우 1970년대 말부터 신자유주의가 사회를 움직이는 주요 원리로 자리잡으면서 가족이 해체되고, (교회·노조·학교·지역사회 등이 지탱해온) 공동체적 유대가 완전히 깨져버린 상태다. 그와 달리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심각한 위기의 징후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적 연대의식과 윤리가 어느 정도 작동하고 있어, 유럽의 폭동에서와 같은 심각한 폭력과 일탈은 나타나지 않는 듯하다.” 이택광 교수도 혈연·지연·학연 등 미세하고 촘촘한 연줄망으로 이어진 네트워크 구조가 ‘질서의 안전판’ 구실을 한다고 진단했다.


폭도 대신에 잉여가 되는


계층·인종집단 사이의 공간적 분절이 영국이나 프랑스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점도 우리 사회에 폭동이 드문 이유다. 폭동과 공간적 분절의 상관성은 광주대단지 사건이나 사북 사태가 빈민과 광부의 집단거주지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의 악명 높은 도시 재개발 정책은 하층민 거주 지역의 지속적인 파괴를 통해 집단적 소요 발생의 공간적 토대를 약화했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실제 1960년대 청계천이나 1970~80년대의 구로·가리봉·봉천 등지에 빈민과 노동자들의 집단주거지가 만들어졌지만, 주민들의 이동 주기가 짧고 재개발이 빈번히 이뤄진 까닭에 영국 런던 폭동의 근거지인 토트넘이나 2005년 프랑스 파리 폭동의 진원지인 방리유처럼 지리·정치·문화적으로 게토(Ghetto)화되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에선 유럽에서와 같은 도시 폭동이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해도 좋을까. 학자들의 일반적 견해는 ‘대규모 사회적 저항이 발생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폭동과 같은 무정부적 형태로 분출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대규모 저항이 일어날 수 있다는 판단의 근거는 양극화와 사회적 배제의 심화를 보여주는 각종 사회지표들이다. 지난해 국제노동기구(ILO)가 발표한 ‘세계 임금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26%로, ILO가 임금 통계를 입수한 14개국 가운데 가장 높다. 지난 6월 통계청 조사를 보면, 최저임금 미만 노동자의 비율은 2001년 4.3%에서 지난해 11.5%로 껑충 뛰었다. 청년실업 또한 심각하다. 지난 7월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7.6%로 영국의 20%보다 낮지만, 주당 36시간 미만 취업자와 취업준비자, 취업 포기자 등을 더하면 최대 30%에 달한다.

문제는 상태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용 없는 성장’이 지배하는 시대에 ‘실업’은 일시적 상태가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영구 상태가 됐다. 이제 사회의 정상 부문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단순한 빈곤층이 아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셈해지지 않는 ‘잉여’ ‘쓰레기’가 되어 사람들의 인식과 시야에서 말소되고 추방되기 때문이다. ‘존재 자체가 민폐’로 간주되는 이들은 소요나 폭동을 일으킬 만큼 적극적이지도 않다. 기껏해야 불특정 다수를 향해 위해나 테러를 가하거나(‘묻지마’ 범죄), 자신의 생명을 파괴(자살)한다. 국가는 이들을 보호하고 복귀시려는 사회정책보다, 격리하고 추방하는 행형정책에서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범죄에 대한 관용 없는 처벌이 강조되고, 치안과 안전에 대한 고려가 인권보다 우선시된다.


파편화되면 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대다수 ‘잉여’들이 그러하듯, 사회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조용히 눌러 삭이거나 비뚤어지고 개인화된 방식으로 분출하는 것(범죄·자살)이, 폭력적이고 무질서하지만 집단적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소요·폭동)보다 낫다고 볼 수 있을까. 적어도 폭동이 일어나면 그 원인이 된 사회적 현실이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공론화되는 계기라도 마련된다. 하지만 그 고통을 삭이거나 개별화된 방식으로 해소하려 할 때 변하는 것은 없다. <새로운 빈곤>을 쓴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말한다.

“오늘날의 빈곤층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며, 자신들의 고통을 공적인 관심의 문제로 만들지 못하거나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사회에서 사라지면 대중의 의식에서도 사라진다. 민폐로 전락한 하나의 현상 전체를 제거하려는 유혹은 강렬하다. 윤리적인 마음이 침묵하고, 공감이 사라지고, 도덕적 장벽이 걷힐 때,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안철수 현상'을 보는 눈


http://weekly.changbi.com/567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10914135019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주소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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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2011년 9월 14일


김동춘 / 성공회대 교수




'안철수 현상'이 던져준 숙제
[창비주간논평] '바람'은 지속 가능한 변화 보장 안해



역시 한국정치는 바람에 크게 좌우된다. 계속 식지 않는 '안철수 현상'을 보고 난 느낌이다. 왜 선거만 다가오면 바람이 정당정치, 제도정치를 압도하는 것일까? 제도보다 지도자의 인격과 영도력을 중시하는 중국이나 한국의 전통적인 정치문화에 일차적으로 기인할 것이다.

소외된 대중의 한과 열망에 기초한 바람의 정치는 조직, 제도, 법 등 그동안 축적된 모든 것을 순간적으로 압도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예측하지 못했던 강력한 변화를 이끌어낸다. 한국정치의 역동성이 여기에 있다. 후꾸시마 원전사태라는 대참사를 겪고 나서도 아무런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일본정치의 답답함과 대비된다. 그런데 이번의 안철수 현상에는 과거의 바람과 비슷한 점도 있지만 시대변화를 반영하는 새로운 점도 보인다.


새로운 리더십을 갈구하는 대중

기성정치와 정당에 대한 불신이 비정치의 정치, 탈이념의 정치, 제3의 후보에 대한 환호로 연결되었다는 것이 안철수 현상을 보는 언론과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쏘프트웨어를 개발하고도 사익을 포기하고 공익을 앞세운 인물, 권력을 잡았을 수도 있는 압도적 지지율을 뒤로하고 후보 자리를 양보한 쿨한 태도, 솔직함과 물러남의 미학에 대중이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있다. '부자 만들어준다'는 구호의 허상을 체험한 대중은 이제 새로운 리더십을 갈구하고 있다.

안철수 현상에 집약된 코드는 IT 전문가라는 상징, 기업 경영자로서의 경력이다. 창의성, 도전, 소통과 공유 등을 내용으로 하는 IT기술은 이 시대의 경제와 사회문화를 선도하고 있고, 안철수는 그러한 기술의 세례를 받고 자라난 청년들의 역할 모델이다. 그리고 CEO로서의 그의 경력은 필자가 '기업사회'라고 부른 바 있는 이 시대의 추세에 들어맞는 리더십의 전형이다. IMF 위기 이후 한국사회에서 경쟁력과 효율성의 논리는 도덕성을 뒤로 밀쳐냈으며 모든 사회구성원을 경영자, 투자자, 소비자로 호명했다. 그래서 자리와 이익에 안주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나섰으며 기업경영으로 사회에 공헌한 그의 경력은 21세기 초반 한국의 시대적 분위기에 잘 부합한다.

이 점에서 안철수 현상은, 이명박식 토건주의 기업가에게 신물을 느끼면서도 변화를 위해 비판과 투쟁을 앞세우는 쪽보다는 사회공헌의 이미지에 훨씬 편안함을 느끼는 이 시대 청년들의 기대와 열망을 반영한다. 2002년 정치인 노무현에 열광했던 20,30대와 화이트칼라가 이제는 전문가, 경영자 안철수를 주목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노무현 바람과 다른 대중의 반란

둘째, 안철수 현상은 과거 노사모에서 시작된 '팬덤(fandom) 정치'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1990년대 서태지에서 시작해 최근의 소녀시대까지 온 한국의 팬덤 문화는 정치영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팬덤 정치는 특정 후보를 그가 속한 정당의 이념과 노선, 정강·정책을 보고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좋아하듯이 지지하는 태도를 말한다. 팬덤에서는 후보가 주는 이미지가 이성적 고려를 압도한다. 팬덤 정치는 '강남 좌파' 현상과도 상통하는데, 모두가 소비사회의 한 문화현상이다. 대중은 자신과 처지와 이해를 같이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닮고 싶거나 도달하고 싶은 대상, 특히 이 자본주의사회에서 일정한 재력과 스펙을 갖춘 사람을 선망한다. 이 시대의 우상이 되기 위해서는 생각도 바르고 스펙도 따라야 하지만, 돈도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안철수 바람은 진보정치, 노동정치의 주변화와 동시에 진행되는 현상이다. 이념과 이익에 호소하는 진보정치의 지도자들은 평생을 바쳐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고 정치판에서 새 흐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대중은 이들을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주류 미디어가 이들의 헌신과 노력을 폄하하거나 묵살해버리고 안철수 같은 새로운 스타에게 초점을 맞춘 것도 큰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진보정치가 미래지향적 대안을 내놓으며 이목을 끌기보다는 과거의 노선에 얽매여 분열하고 대립하는 모습만 보여주자, 여야를 막론하고 기성정치 전체에 불만을 느낀 대중은 그 출구를 진보정치에서 찾지 않고 안철수라는 새 아이콘에서 찾은 셈이다.

분명 안철수 현상은 '촌스러운' 이명박식 토건정치, 거짓말 열전, 노골적 부자 편들기에 신물이 난 대중의 반란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노무현 바람과는 달리 진보노선에 식상하고 기업사회, 소비사회, 스펙문화, 영상미디어에 익숙해진 젊은층의 정서를 반영한다. 따라서 야권은 젊은이들을 투표장에 나오게 하거나 그들의 열정에 불을 댕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안철수 현상에서 엿보는 한국정치의 미래

한편 안철수 바람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래를 보여주는 측면도 있다. 전자의 경우 대중이 바람에 덜 흔들리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정당, 시민사회, 노조 등 중간집단이 극히 취약한 점과 관련돼 있다. 이것은 멀게는 정치권에서 이념과 정책 대결을 차단하고 선거 외에는 대중이 일상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해온 분단체제, 극우반공주의에 비롯한다. 그러나 이 바람은 기존의 정당과 노조가 대중의 요구를 담아내기에 낡은 조직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동시에 던지고 있다. 한국은 제대로 된 정당정치, 계급정치를 겪기도 전에 그 단계를 이미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안철수 바람은 선거 밖에서 대중을 일상정치로 유도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과 방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어쨌든 바람은 요란하고 쓰레기를 날려버리기도 하지만 풀 한포기조차 쉽게 뽑아내지 못한다. 바람은 일시적 변화를 가져올 수는 있지만 결코 기성 제도와 법과 돈의 힘을 이기기 어렵다. 대중이 한때의 바람으로 변화가 오리라 기대했다가도 나중에는 실망과 배신감을 맛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에서도 오바마 바람이 그 시작은 요란했지만 지금 서민대중은 큰 실망감을 내비치고 있다. 워싱턴의 강고한 기득권세력이 오바마를 순치시키는 데 거의 성공했기 때문이다. 결국 변화를 위해 바람에 기대지 않을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 지속 가능한 변화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점 또한 분명해 보인다. 안철수 현상은 정치변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여러가지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2011.9.14 ⓒ 창비주간논평

[세상 읽기] 장외 선수들의 출전 채비를 보며 / 김동춘


2011년 9월 5일, <한겨레>에 올라온 연재 글 입니다. 본문을 보시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949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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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규칙은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개인기 능한 새 선수’만 수혈하여
궁지를 돌파하려 해서는 안 된다

안철수 교수가 서울시장 출마를 고려하는 모양이다. 그동안 정치활동 참가를 거부해온 박원순 변호사도 이번에는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기성 정치인들을 보고 참다못한 관객들은 개인의 출세보다는 사회를 위해 살아왔으며 인간성까지 좋아 보이는 이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아마 그간의 이력으로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발휘하면서 국민들에게 충분한 감동과 신뢰를 준 이 두 선수가 나오면 다른 어떤 제도 정치권의 후보보다 당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대중들이 부패한 보수와 무능한 진보를 넘어서는 대안을 열망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편 이들이 전문가로서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출마에 부정적이다. 그러나 “일류는 재야에 있고 이삼류가 정치에 들어간다”는 우리 사회의 속설도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다. 굼벵이 시절을 거쳐야 매미가 되듯이, 시궁창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쓰레기를 치울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신뢰라는 자산을 쌓아온 이들이 시장 후보로서 자격이 충분하고 승산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서울시장은 안 교수의 주장과는 달리 매우 정치적인 자리이기 때문에 다가오는 권력투쟁에서 ‘태풍의 눈’이 될 수밖에 없다는 엄연한 현실이 있다. ‘제3세력’ 논의도 나오는 것 같은데 결국 안 교수는 무엇을 위한 출마인지에 대한 답을 주어야 한다.

이들을 장으로 끌어들이는 정치불신, 참신한 사람 찾기 움직임은 어제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다. 1987년 이후 각 분야의 참신한 전문가들이 정치불신에 편승하여 장내로 들어갔지만, 상황은 별로 좋아지지 않았다. 즉 경기의 규칙, 팀 운영 방식, 선수 충원 방식은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개인기가 능한 새 선수’만 수혈하여 궁지를 돌파하려 해온 한국 정치의 구조 때문이다. 김동길, 박찬종, 문국현 등 장외나 당 주변부의 인물들이 관심을 일으킨 적이 있었으나 변화는 가져오지 못했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가 수십년 계속되어도 신참자의 자격 조건은 제한되어 있고 보수 독점의 정치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엘리트도 부자도 아닌 보통 시민을 배제하는 것은 우리 정치의 고질병이다. 정치불신은 이 서민 대표성 부재의 한 표현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코 안철수의 개인 인기로 극복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장외의 인기있는 전문가들은 자신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어려운 결단을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막강한 관료집단과 맞서기 위해서는 당과 조직대중의 받침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의원들은 사사건건 시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고, 중앙 행정부처의 협력을 얻지 못하면 조그만 예산도 마음대로 집행하기 어렵다. 언론과 시민들은 또 조급하고 변덕스럽다. 재임 중 인기를 의식하지 않는 장기 정책은 몇 사람의 참신한 전문가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안 교수는 “국민정서상 한나라당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의 비전과 입장은 밝히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재벌의 횡포를 비판하고 중소기업의 어려운 처지를 강조해 왔다면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을 어디서 구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답을 내려야 할 것이다. 서울의 시정운영은 행정보다는 정치에 가깝기 때문에, 개인의 인기만으로는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나는 장외의 스타들이 원칙과 소신을 밝힌 다음 시궁창에서 뒹굴 준비를 하기를 권한다. 국민적 신뢰는 가장 큰 자산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제도와 조직을 결코 변화시킬 수 없다. 이들에게 환호하는 ‘팬’들을 시정 참여 의지를 갖는 ‘주체’로 변화시켜야 이들의 진입이 서민친화적인 시정은 물론 장차 우리 정치 판갈이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2011년 9월 6일 화요일

2011 아시아 민주주의 지표조사 포럼 개최


아시아 민주주의 지표조사 포럼

-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민주화 현단계-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오는 9월 8일(목) 오후 2시 (성공회대 새천년관 4층)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는 국립 필리핀 대학교 제3세계연구소, 인도네시아 대학교 정치학센터, 인도네시아 데모스 인권과 민주주의 연구소와 함께 '아시아 민주주의 지표조사 포럼'을 개최하여 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3개국 민주주의와 민주화 현황에 대한 지난 1년 간의 연구조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연구재단 중점과제의 일환이자 3개국 4개 기관 공동 컨소시엄 구성 후 조사 첫 해인 이번 포럼에서는 각 국의 정치 민주화의 수준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과 양극화 수준을 포함하는 경제적 차원과 언론 및 시민운동의 현단계를 드러내는 시민사회 차원을 포함 입체적 분석을 통해 각 국의 구체적인 민주화 수준과 향후 과제가 발표, 논의됩니다.

프리덤 하우스 등 기존의 민주주의 지표조사는 서구적 틀과 정치/절차적 수준에 머무는 한계를 보이고 있어, 아시아 민주주의 지표 컨소시엄은 이러한 점을 극복하여 민주주의의 다층적인 면을 살펴보면서 정치, 경제, 시민사회 3영역에서 자유와 평등의 수준이 '자율', '경쟁', '다원화', '연대'의 차원에서 얼마나 확장되고 있는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보수, 중도, 진보 등 사회 내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시각으로부터 균형을 맞춘 전문가 설문조사에 따른 이번 조사결과의 경우, 대체로 3개국 모두 정치 민주화는 제도적으로 큰 진전을 이뤄왔으나, 경제와 시민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며 나아가 정치민주화의 확장에 장애가 되거나 민주적 제도장치가 일상의 공간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오는 9월 8일 목요일 오후 2시 성공회대 새천년기념관 4층에서 열리는 '아시아 민주주의 지표조사 포럼'에 참석하셔서 들어보시고 함께 토론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 연구소 소장
김동춘 드림




* 구체적인 행사 일정은 아래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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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1 Seoul Asian Democracy Index Forum
*부제: 아시아의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일시: 2011년 9월 8일 오후 2~6시
*장소: 새천년관 7417호

*참가자:
사회
– Ryu Seokjin (Seokang Unoversity)
발표 & 토론
– Clarinda (University of Philippines)
– Miguel Paolo P. Reyes (University of Philippines)
– Roiachtul Aswidahl, (DEMOS, Indonesia)
– Irwansyah (University of Indonesia)
– Lee Sungwon (Sunggonghoe University)
– Seo Youngpyo (Sunggonghoe University)

* 8일 행사 프로그램
2:00pm개회
2:30pm발
3:45pm휴식 Break
4:00pm토론
4:40pm자유토론
5:30pm폐회
7:00pm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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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3일 토요일

이소선 여사

세상에는 죽어도 산 사람이 있고, 살아도 죽은 사람이 있다.
전태일은 죽어서도 살아있는 사람이었는데 무엇보다도 그의 어머니를 통해서 무려 40년을 더 살았다.
아마도 그의 정신을 받드는 사람들에 의해 앞으로도 백년은 더 살지 모른다.

평범한 주부였던 이소선 여사는 아들의 죽음을 겪은 이후 아들의 분신이 되어, 아들 자신이 되어, 그리고 아들과 같은 길을 가는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가 되어, 그리고 아들처럼 억울하게 죽은 민주인사 노동자들의 분신이 되어 82평생을 사셨다. 인혁당 사건을 비롯한 70년대의 굴직한 시국사건, 청계피복 사건, 80년대의 민가협 활동, 그 이후 모든 재야활동, 노동투쟁의 현장에는 그녀가 있었다.
바로 내가 위원으로 있던 진실화해위원회 복도에서도 진실위가 활동을 똑바로 하라고 농성하는 현장에 이한열 어머니 박종철 아버지 등과 함께 나타나서 바닥에 자리를 깔고 농성하셨는 기억이 난다.

그녀와 관련된 일화 두 개만 소개한다.

1976년 전태일 분신 5주기 추모의 밤 행사장. 행사를 중지시키려던 중부경찰서 형사 박원식이 나타났다.추모생사도 불법이라는 것이었다. " 아 글쎄 이렇게 불순한 목적으로 사람이 모이면 불법인거야" 그가 말했다.
이소선 여사 왈

"야, 이 놈의 썩을 놈의 새끼야? 너네 집은 애미애비 제사도 안지내냐? 죽은 사람 제사지낸다고 사람들 모인 것이 뭐가 잘못되었다고 시비냐 시비가. 그리고 이 유인물이나 그 저 구호가 어떻다고 지랄이야? 이 유인물이 박정희를 잡아먹는다고 하던? 저 사람들이 니네 들어엎겠다고 하드냐? 빨리 꺼지지 못해 ! "

"나게게도 대학생 친구가 한명 있었으면 "하고 죽어간 전태일 분신현장에 제일먼저 달려가서 그의 정신을 살리려는 활동을 했던 장기표가 청계피복 노조를 열심히 돕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잡혀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이 재판석상에서 이소선 여사는 검사와 판사를 마음껏 야유하였다.

검사가 장기표에게 "청계조합원 임금인상 투쟁을 배후조정해 사회혼란을 일으켰지요? " " 이 틈을 이용해 북괴가 내려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방청석의 이소선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배고파서 임금인상 해달라는데 이북하고 무슨 상관이냐?"
"한 달 죽도록 일해 3천원 받는 근로자가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고 (장기표씨를) 찾아간거야. 근로기분법을 가르쳐준 것이 붜 죄냐? 배운 사람이 모르는 사람 가르쳐 준 것이 지식인의 도리지. 그게 죄냐"

재판이 중단되었다.
이 말을 들은 재판장은 법정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이소선 여사를 법정 모독죄로 구속하였다. 귀가하자 기관인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성동구치소에 가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