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15일 토요일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



지난 2011년 1월 14일 이른바 실미도 사건 유족들이 정부를 상대로 유해인도청구소송을 냈다. 알려진대로 이들은 혹독한 훈련을 견디지 못해 실미도에서 탈출했다가 사살되거나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이들의 신원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가족들은 지난 2005년 국방부 군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나온 이후에야 행방불명됐던 혈육이 '실미도 부대원'으로 숨졌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국방부군진상규명위에서 가매장된 유해 20구를 발굴했지만, 훼손정도가 심해 12구는 누구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었고, 사형당한 4명을 포함한 10명의 유해는 아예 행방조차 찾지 못한 상태이다. 사건의 진상은 규명되었지만, 유족들은 시체도 수습하지 못했다. 살아서도 거의 살인적 훈련을 받으며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았다가 극한적 저항을 하는 과정에서 무참히 사살, 처형되었고, 죽어서도 시신이 가족의 품으로 가지 못하고 한맺힌 영혼은 구천을 떠 돌고 있다.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이 국가는 유족들이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마땅히 시체를 찾아서 인도해야 하건만, 이들이 정식 군번을 부여받은 군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시체수습조차 나몰라라 하고 있다.

지난 1995년 경기도 고양 탄현고개 근처 금정굴에서 153구의 유골이 발굴되었다. 이른바 금정굴 사건으로 알려진 일제시대 폐광 금정굴에서 한국전쟁기인 1950년 10월 초에서 중순까지 이 지역을 수복한 경찰, 치안대 등에 의해 인민군 부역의 혐의를 받던 주민들이 학살당했는데, 그 사실이 이 유골발굴로 확인이 되었다. 그러나 이 유골은 보관할 곳이 없어서 서울대법의학교실로 옮겨져 2011년 현재까지 보관되어 있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고양 금정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였으며, 이 유골들을 영구안치할 시설을 갖출 것을 권고하였지만, 지금까지 정부는 아무 것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미 밖으로 나온지 15년이 지난 유골들은 무식상태가 심해서 빨리 제대로 수습하여 영구안치를 하지 않으면 안될 상태에 와 있다. 이제 이윤성 교수가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으며, 서울대 측에서도 이 유골을 계속 보관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국가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나 유골은 정중하게 취급되어 마땅하다.그것은 살아있는 유족에 대해 국가가 사죄를 표하는 최소한의 예의이며, 죽은 영혼에 대해 국가가 마지막으로 속죄할 수 있는 길이다. 그런데 죽일 때도, 죽고난 후 수십년 동안도, 그리고 진상이 모두 공개된 이후에도 국가의 태도는 한결같다. 이것이 힘없는 국민을 보는 국가의 시선이나 태도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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