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22일 수요일

추석단상

추석 자체는 매우 오래된 전통적 명절이지만, 추석이 이렇게 최대의 명절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방에 따라 다르지만, 남쪽에서는 단오와 추석이 거의 비슷한 의미를 가진 명절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추석이 이렇게 큰 명절이 된 것은 뭐니뭐니해도 산업화 이후였다. 즉 60년대까지만 해도 추석이 이렇게 요란한 명절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도시나 서울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이들이 고향을 찾는 날이 추석으로 집중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추석이 큰 명절이 되면서 농경사회의 또다른 흔적인 단오는 거의 흔적조차 없어지고 말았다. 어쨋든 내 어릴적 기억 속의 단오는 추석이 요란해지면서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은 차가 막혀서 고통스럽지만, 옛날에는 기차에서 5시간 10시간 서서가는 것이 큰 고통이었다. 언제인지 기억이 없으나 서울역에서 귀성객들이 넘어져서 큰 참사가 난 일도 있었던 것 같다. 거의 발디딜 틈도 없는 기차에 올라타서 몸은 거의 공중에 붕뜬 상태로 고향을 가는 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올라오는 길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이 주신 각종 곡식, 과일, 짐보따리를 들고 전쟁하듯이 기차에 올라타는 것도 큰 추석의 풍경이었다.

 

그런데 이 기차시절의 고통도 자가용 시절의 고통도 향후 20년에 거의 마무리 될 것이다. 시골의 부모나 형님들이 그 기간 안에 거의 돌아가실 것이기 때문이다. 일인가구 수가 더 많이 늘어나 가족의 개념도 바뀔 것이다. 만약 더 이상 찾을 부모님이나 형님이 없다면, 그리고 혼자 연휴를 보내야하는 사람이 더 많아진다면 우리는 추석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아마 그 때도 추석은 휴일로 지정될 것이니, 사람들은 주로 해외여행을 떠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솔로들끼리 모여 놀거나 집에서 빈둥거리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쨋든 추석풍경은 우리가 아직 일가 친척 피붙이와의 만남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하고 진한 사회관계망이 없는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부모 형제와의 만남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고향의 추억을 대신할 정도의 의미있는 추억이나 만남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한국사람들은 과거회귀적이고, 혈연중심적이다.

 

그래서 21세기 추석 행사는 새로운 형태의 만남의 장을 만드는 기획이 되었으면 한다. 가족단위로 추석명절에 제사를 지내는 일은 빼놓을 수는 없겠지만, 부모,형제, 처가를 대신할 수 있는 만남, 즐거운 만남, 그런 것이 한국사회를 변화시킬 것 같다. 그러자면 제사를 대신할 수 있는 끼리끼리의 모임을 보다 활성화하는 일, 마을단위 지역공동체의 축제 뭐 그런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솔로들끼리의 축제, 외국인들의 축제, 도시에서의 주민 공동행사 그것이 제사를 대신하거나 보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