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인천상륙 60년을 맞아 또다른 인천상륙도 기억되어야 한다. 바로 월미도 주민 대량 희생 사건이다.
전쟁 후 달리 피난할 수 없었던 월미도 수백명의 주민들은 섬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 섬은 곧바로 인민군이 점령했고, 주민들은 인민군 점령지의 거주자가 되었다. 인천상륙을 앞두고 맥아더는 이 섬의 초토화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섬에 민간인이 거주한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도 상륙작전을 감행하기 이전에 이 섬을 초토화하였다.
그래서 피난하지 못한 월미도 주민 상당수는 무차별적인 폭격에 희생되고 일부만 살아남아 인천으로 피신하였다. 이후 60년 동안 우리는 인천상륙의 영웅담만 기억을 했고, 월미도 주민의 희생에 대해서는 거론조차 할 수 없었다. 전쟁기 민간인의 희생은 어느정도 불가피한 점이 있다. 특히 이 경우 맥아더가 과연 월미도 주민의 생명을 보호하면서도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감행할 수 있었는가라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작전을 위해 한국인들의 생명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 당시 맥아서의 전쟁논리였다.
6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상륙의 영웅담만 기억하고 월미도 주민 수백명의 폭사는 기억하지 않는 것은 뭔가 잘못된 일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아직도 월미도에서 천막치고 농성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우리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라면 이들의 목소리도 함께 들어주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미군에 의한 한국인들의 희생을 거론조차 하지 못하는 그 잘난 외교부와 국방부는 묵묵부답이다.
기억의 굴절과 편향, 의도된 망각과 한 쪽 측면에 대한 과도한 기억이야말로
오늘 우리사회에 만연한 부정의의 매우 중요한 기반이기 때문이다.
천안함 희생 군인과 월미도 희생 민간인이 과연 다른 종류의 희생자라고 아직도 생각하는 사람들은 진실화해위의 월미도 보고서를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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