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번역된 다카하시 도루의 [식민지 조선인을 논하다]를 읽었다. 그의 [조선 유학사]를 수년전에 읽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 그의 조선인관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전형적인 일본 어용학자로서 조선지배의 논리를 뒷바침하기 위해서 이러한 저술활동을 했고, 그의 주장 중 일부는 일제 침략의 정당성, 조선의 패망의 필연성을 주장하는 논리로 최근까지도 한국 학자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의 조선민족개조론은 이후 친일파로 전락한 춘원 이광수의 조선민족개조론에 직접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철저히 일본 우월주의, 조선열등론에 서 있는 그의 주장은 독자인 한국인들을 대단히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의 주장 중 상당부분은 근거가 취약하거나 무리한 주장인 경우도 있다. 3.1 운동을 외국 사상에 감염된 청년들이 동료 청년들과 종교단체 구성원들에게 경솔한 신념을 마치 실현가능한 것처럼 퍼트려 일어난 것이라는 주장에서 그 한계의 정점에 도달한다.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그가 조선인들의 특징으로 지목한 순종주의는 한국보다는 1945년 이후 일본에 더 잘 들어맞는 점도 있다. 창의성의 결여 역시 조선인들만의 특징이라기 보다는 국가주의나 관료주의에 길들여진 일본인의 특징인 점도 있다. 조선인들의 무기력과 정체성 역시 그가 주장하듯이 불변하는 민족성이라기 보다는 조선 조 하의 관인들의 과도한 억압과 착취의 결과, 식민지 하에서 희망을 상실한 조선인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의 상당부분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사상의 고착과 사상 문화에서의 사대주의, 그리고 정치만능주의다. 조선 조 500년 동안 주자학을 벗어난 창의적인 사상이 나오지 않은 것, 그리고 주자학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나머지 모든 사상을 이단으로 취급하여 과거시험 준비를 위한 외우기 교육이 조선 청년들의 영혼을 지배하게 된 것, 정치만능주의가 자유로운 사고의 전개를 가로막고 사회의 숨통을 조였다는 점은 대체로는 매우 타당한 점이 있다. 물론 조선 유학사를 지나치게 폄하한 것은 이후 한국 학자들에 의해 비판받은 바 있고 좀더 심층적으로 검토될 여지가 있다.
이러한 진단은 사실 그가 조선보다 훨씬 우월한 문명국가라고 보는 일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천황제과 군국주의는 일본좌파들을 교조적, 도식적 좌파로 만들었으며, 우파 자유주의자들은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였고, 지금까지도 미국에게 대해서는 감히 비판조차 못한다.
조선 시대의 사상의 고착과 창의적 부족은 근대 1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다지 수정되지 않았다. 나는 1996년에 발표한 '사상의 측면에서 본 한국 근대모습'이라는 논문에서 이 점을 강조한 바 있다. 80년대 좌파 운동권이 교조주의로 빠지고, 과도한 북한 찬양론으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왜 우리는 이렇게 교과서적 좌파 밖에 없나라고 한탄한 바 있다. 한국의 이른바 우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아예 사상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 다카하시 도루가 비판하였듯이 조선조 말 백성의 고혈을 빠는 이기주의 집단의 모습, 욕망으로 가득한 관리들의 모습에서 별로 더 나아간 바가 없다. 정신적으로 일본에게 무장해제당한 친일파나, 자신의 친일경력을 은폐하기 위해 내세운 반공주의하에서 창의적인 사상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이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오늘 다카하시 도루의 조선인론, 조선 유학론은 깊이 되새겨보아야할 내용이 많다. 나는 그의 글이 나온지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시점에서 한국의 역사학계나 철학계, 사회과학계가 그의 주장을 보다 철저하게 반박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오늘의 영어만능, 미국만능주의, 한국의 대학현실을 보면 그의 주장은 너무나 설득력이 있다. 아니 그의 다소 억지에 가까운 주장을 민족주의 반일주의 정서에 기초해서 반박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인정할 것을 인정하고, 지금도 지속되는 문제점을 고발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찾자는 지적인 운동을 시작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 촌스럽기 그지없는 이명박 정부와 그 아래 가신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그들은 아마 자신들이 다카하시 도루가 비판하는 그러한 조선인들의 후예라는 것조차 알지 못할 것이다.
21세기의 한국사회도 결국 3.1 운동과 이후의 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사람들, 그리고 4.19 이후의 민주화 운동의 주역들에 의해 개척될 수 밖에 없다. 단 그들의 투쟁은 훌융했으나 사상은 너무나 빈약했다는 내부 반성에서 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자라나는 청년들이 이러한 역사를 자기화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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