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직원 중 외교부 고위직 자녀가 41%에 달한다는 보도가 있다. 이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고 이미 시사저널 등 잡지에서도 한번 취재, 보도한 바 있다. 그런데 유명환 장관 건이 계기가 되어 온 사회가 이 건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이유는 '현대판 음서제'가 청년실업자로 넘쳐나는 한국사회에 불을 지른 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시험제도가 그나마 최소한의 정당성을 갖고 있는 나라에서 시험 외의 방법으로 특권층 자녀가 고위 공직자로 특채되었다는 사실이 젊은이들의 분노를 일으킨 것 같다.
외무고시의 경우 고시제도를 점점 폐지하고 사관학교를 신설하자는 방침이 수립되었고, 행정고시 역시 면접과 서류로만 전문가를 특채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는 마당에 그래도 고시제도가 없는 집 자식들이 공직에 진출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제도가 아닌가 하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즉 현재와 같이 한국사회의 투명성과 힘센자들의 도덕성의 수준이 형편없는 상태에서는 공개 시험을 없앨 경우 필연적으로 그들만의 리그가 될 것이라는 우울한 진단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사실 과거제도가 타락한 조선 조 말에도 고급관리들 자녀들이 합격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고, 합격 후에도 관리로 추천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 예가 있고, 과거제도의 타락을 개탄한 많은 선비들이 아예 과거시험을 거부하는 일도 많았다. 그리고 중국 고전만 달달외워 책임의식과 윤리의식은 물론 아무런 창의력도 없는 선비들이 관리가 되어 나라를 이끌어갔기 갔기 때문에 식민지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많이 제기된 바 있다. 이러한 폐해는 이후 100여년 동안의 고시제도와 그것에 의해 선발된 관리, 법조인의 행태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었다. 따라서 고시제도의 폐지는 그 자체로는 피할 수 없는 대안이다.
문제는 우리사회가 합리적으로 공직자 특채제도를 운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이미 한국 지배구조나 자본주의가 계층 이동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데 있다. 고위직이나 외교관 자녀들은 부모따라 외국에 나가서 영어나 외국어를 습득할 기회가 많고, 여러가지 스팩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실 아주 합리적인 절차로 선발한다고 해도 다른 지원자들보다 우수한 성적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즉 합리성의 이름으로 사실상 전문성과 어학실력을 기를 기회를 훨씬 더 많이 가진 특권층의 자녀들이 대를 이어 특권층이 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결국 기회의 평등, 실력을 쌓을 수 있는 조건의 개방을 전제로 하지 않는 절차적 합리성은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고시제도로의 회귀는 대안이 될 수 없다. 문제는 지금부터 어떻게 전문성을 쌓을 기회조차 갖지 못한 젊은이들이 이러한 전문직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선발제도를 만들어 내는가에 달려있다. 즉 선발과정에서 단순히 외국어 능력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한국의 외교정책 등에 대한 구술 시험, 사회봉사, NGO 활동의 경력 등을 포함하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여러자질을 골고루 집어넣을 뿐더러, 심사 위원 구성에서도 외부인사를 적당히 끼워넣은 방식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합리적인 심사가 될 수 있도록 내부자의 발언권을 제한하는 등 여러가지 방법이 고안되어야 한다.
외교사관학교는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의 외교부가 운영하는 사관학교는 확실히 정치 외교 기업등 기득권 층 자녀들의 잔치가 될 것이고, 그렇게 길러진 외교관은 현재의 외교관들보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 교수진 구성, 학생 선발 등에서 국민적인 논의를 거쳐야 할 것이다.
오늘은 좋은 글을 2개 읽었다. 하나는 이 글이고, 또 하나는 한겨레에 게재된 정연주 전KBS사장의 "지방대 할당제" 이다. 어느쪽도 한국의 경쟁 만능주의를 생각하는 좋은 소재이었다. 일본에서도 한국보다는 심각하지 않지만, 같은 문제는 당연히 존재한다.
답글삭제일본의 대은행들이 가지고 있는 재미있는 제도가 있다. 한국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대은행들의 급여수준은 타업종에 비해 상당히 높다. 따라서, 은행임직원의 자식들은 아버지가 있는 은행에 커넥션을 이용해서 들어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은행에도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 대은행들은 생각했다. 아버지가 그 은행의 임직원인 기간에는, 그 자식들의 입사 지원을 접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 배경으로는, 은행에 입사한 직원들은 지극히 우수한 사원을 제외하면, 융자처 기업의 낙하산 임원으로서 갈 경우가 많으므로, 은행주류로부터 벗어나고 불만을 품으면서 퇴직해서 융자처 기업에 가는 사원에게 대한 위로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도, 이 제도는 은행의 타락·부패를 방지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외교부도 그 정도는 자기의 조직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준이 아무리 투명하다해도, 기준만 투명할뿐 출발선이 다른데 어떻게 해야 합리적인 제도가 마련될지 모르겠네요.
답글삭제사회봉사나 구술 등 다양한 기준을 제시해야한다는 것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런 기준들도 요즘은 멀리 내다보는 부모들에 의해 코디 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런 부모가 수시전형으로 좋은 대학에 아이들을 보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