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3일 금요일

외교부는 대한민국 정부의 부서인가?

이번 유명환 장관 딸 특채 건을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장관인줄 몰랐다는 속이 보이는 외교부의 공식 변명과 자기 딸이 특채되는 것을 애초부터 말리지 않았을 뿐더러 적극 말리는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장관에게 매달고 있는 부하들에게 사실상 무언의 '압력'의 신호를 보냈을 수도 있는 장관의 행동, 그것이 초점이다. 즉 장관 개인이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것은 외교부가 이렇게 겁없이 행동할 수 있는 이유였다.

 

외교부는 특권조직이다. 외무고시 출신이 아닌 사람은 그 조직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순혈주의가 가장 잘 적용되는 곳도 그곳이다. 대를 이어 외교관이 되는 집안도 여럿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외교부에 도전하는 세력이 없다. 지난 10년 간의 민주정부 하에서도 외교부는 건재했다. 그 정도로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있는 곳이니 특권의식, 선민의식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현정부 들어서는 아예 통일부까지 외교부가 점령했다.  그리고 한미 쇠고기 협상을 이끈 농수산부의 주역들도  외교부 출신이니 이제 정부 여러부처가 외교부 식민지가 되었다.

 

미국에서도 과거 외교부 즉 국무부 엘리트는 가장 건드릴 수 없는 그들만의 특권층( establishment)을 형성한 바 있고, 냉전시절 그들이 미국의 운명, 아니 세계의 운명을 좌지우지했다. 미국이 아무리 군사주의를 내세우는 제국이어도 군인 혹은 국방부는 절대로 외교관이나 정치가 위에 설수 없었다.  즉 미국의 국가권력의 핵심에는 외교가 있고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그 특권이 누구를 위한 특권인가가 문제다. 한국 외교부의 철학은 냉전반공, 친미주의다. 한국 외교, 한국 외교부는 미국의 이익이 한국의 이익이라는 전제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난 적이 없다. 외교부의 공식언어는 영어이며, 외교부의 세계관은 미국의 것이다. 외교부에게 미국은 다른 나라가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젊은 외교관 일부가 이러한 전통적인 틀을 벗어나 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지만, 이 정부 들어서는 완전히 원점으로 돌아갔다.

 

나는 한국전쟁기 미군 희생관련 자료 조사차 공무원의 자격으로 미국을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다. 그 중 주한 외교부 직원의 응접을 받은 적도 있다. 공사관이 한국의 차관급 공무원이 미국방문하는 것에 대해 응접을 하는 것은 자신의 공식활동이니 특별히 감사해야할 일은 아니지만, 이들과 식사 등을 하면서 답답했던 적이 있다. 즉 내가 미국의 잘못된 일을 밝히러 간 것에 대해 불편해 하는 태도가 역력했다는 점이다. 나는 그들이 미국에 주재하고 미국 눈치를 살펴야 하는 외교부 직원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 쯤은 한국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즉 한국인들이 강대국의 전쟁터가 되어 불의의 희생을 당한 일이 있고, 미국의 책임역시 크다는 점, 그리고 지금이라도 한국 정부가 미군의 책임을 밝히는 일에 대해 약간이라도 이해를 해 주는 사람이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아예 한국전쟁기의 미군 피해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것은 물론, 진실위원회 활동을 매우 불편해했고 무관심했다.

나는 그들을 한국 국민의 세금으로 활동하는 외교관이라 생각할 수 없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센 미국에게 무모하게 노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제발 한국국민의 입장에 서 달라는 것이었다. 미국 국무부와 한국 외교부의 차이점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철저하게 국익의 입장에 서 있지만, 한국 외교부는 좋게 말하면 우리 국익이 미국에게 철저히 편승해서 안보를 유지하고 경제발전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고, 나쁘게말하면 한국의 장단기 국익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국익 자체에 관심이 없다. 중국과 러시아를 저렇게 멀어지게 하는 것이 과연 국익에 부합하는지 묻고 싶다.  그래서 특권의식이 아닌 철학과 역사관이 있는 외교부 직원을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나는 그들의 특권의식, 무지, 국민에 대한 근본적 무책임성, 오만이 이번 사태의 실질적인 배경이라고 본다.

거창하게 민족, 인권의 가치까지 요구하지 않겠다.

제발 국민의 입장, 힘없는 국민의 입장에 한번이라도 서 달라.

그것을 부탁한다.

 

외교부가 바로 서는 날, 그날이 국가가 '국민의 국가'가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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