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8일 일요일

모범 시민 콤플렉스

이번 서울시 무상급식 투표에서 언론이나 사람들 사이에서 논란이 된 쟁점 중 하나가 민주당의 '투표거부' 운동, 그리고 싫더라도 일단 시민으로서 투표는 참가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에 투표에 참가해서 반대의사를 표현한 사람들이다. 언론에서는 참가자 중 약 3 퍼센트 정도가 여기에 속한다고 추정하였다.
물론 오세훈 지지자들 중에서도 이해관계 때문에서가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의무라는 철석같은 신념을 갖고서 투표방에 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의 태도를 모범시민 콤플렉스라 부르고 싶다. 그리고 투표거부 운동을 한 민주당에 대해 비판적 의견이 약간 조성된 것들도 바로 이들 모범 시민들의 거부감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의 '투표거부'는 공당으로서는 좀 적절하지 못한 감이 있다. 그냥 불참도 하나의 의사표시입니다라고 구호를 바꾸었거나 투표 문항이 사실상 찬반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좀더 교육적으로 선거운동을 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착한 시민, 모범 시민으로서 평생을 살아오면서 시민으로서 투표에 참가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태도다. 아마도 40대 이상의 사람들 중에서 자신은 법을 어기지 않고 언제나 바르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중 이런 사람들이 많을 텐데, 이들에게 주입된 '시민교육' 에 대해 우리는 전면적으로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일제와 군사정권의 노예교육을 주목해야 한다. 안중근을 법정에 새운 일본 검찰은 안중근이 불효라는 점을 적극 지적하면서 야단쳤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일제의 보통교육과 조선인 교육은 모두가 순종적이고 모범적인 인간 양성에 두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독일 강제수용소의 최고 책임자 히믈러의 좌우명은 "무엇을 하든지 예절바르게"였다. 파시즘은 언제나 법과 질서를 내세우면서 국민들에게 순종을 강요하였고, 일탈을 죄악이라고 가르쳤다. 해방후 이러한 모범인간 육성 교육은 계속되었다. 그것은 국가를 물신화하는 것이었다. 유신 찬반투표를 묻는 선거의 투표율은 99 펴센트를 넘었다.

민주국가에서 선거참여가 중요한 권리행사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가물신주의, 선거물신주의는 중요한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선거의 메뉴판에는 최상의 후보가 등장하지 않는다. 분단 하 한국에서는 좌익은 물론 진보적 자유주의자도 메뉴판에 등장할 수 없게 되었고, 돈이 없는 사람은 메뉴판의 선택지가 될 수 없었다. 즉 무조건 선거 참여론은 메뉴판에 오직 불고기와 돼지갈비만 올려놓고 고기 못먹어서 김치찌게와 된장찌게를 찾는 고객에게 왜 주문하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것과 같다.

유권자들은 선거에 임해서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선택지가 있다.

메뉴판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아예 투표장에 가지 않을 권리
선거가 세상을 바꾸지 않을 것 같아 투표장에 가지 않을 태도

투표장에 가되 무효표를 만들어 거부 의사를 표시할 권리
투표장에 가되 그 중 최선은 아니지만 차악을 택할 권리
투표장에 가되 그 중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후보를 택할 권리

즉 유권자들의 행동에는 적어도 이 다섯가지의 별개의 태도가 담겨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번 투표는 정확히 말해 후보를 선출하는 투표가 아니라 의사를 표현하는 투표다.
따라서 선거와 투표는 성격이 다르다. 투표장에 가지 않을 분명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더구나 메뉴판이 찬반도 아니고 애매한 문구로 되어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반드시 투표장에 가야 한다는 이 모범생들을 어찌할 것인가? 이들 국가나 법과 제도에 순종적인 인간들을 이 메뉴판의 성격과 기원, 법의 성격과 기원에 대해 깨닫도록 해주는 진정한
민주시민 교육이 필요하다.
일제 노예교육의 유산은 21세기에도 한국사회에 드리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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