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8일 일요일

[세상 읽기] 요동치는 세계: 청년의 좌절과 항거 / 김동춘


2011년 8월 15일, <한겨레>에 올라온 연재 글 입니다. 본문을 보시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918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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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청년시위, 중동 사태, 재정위기…
배경과 성격은 상당히 다르지만
모든 현상에 관통하는 흐름이 있다

세계는 지금 혼돈의 와중에 있다. 영국에서는 런던을 비롯한 주요 도시의 빈민가에서 이주 청년들이 폭동을 일으켜 온 나라가 난장판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에서도 대규모 청년시위가 발생했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수십만명의 청년들이 거리에 텐트를 치고서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웃 시리아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연일 계속되어 2000여명이 살해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리비아는 여전히 내전중이고 튀니지·이집트는 민주화의 진통을 겪고 있다. 미국은 심각한 재정적자를 땜질식 처방으로 막아내고 있지만 높은 실업에 신음하고 있다.

비록 배경과 성격은 상당히 다르지만 이 모든 현상에 관통하는 흐름이 있다. 첫째는 정부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추진하면서 과도한 예산 삭감과 친자본 위주의 정책을 펴면서 대다수 국민들에게 안전과 복지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정부가 최악의 경우에는 학살자였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기능 부재 상태이다. 이 점에서는 이른바 선진국·후진국 간의 차이도 거의 없다. 둘째는 정의의 실종이다. 가진 자의 탐욕이 도를 넘었고, 불평등과 차별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특히 대중 시위나 폭동이 나타난 유럽과 중동 여러 나라는 복지예산의 대폭 삭감, 실업, 부패, 그것과 관련된 심각한 빈부격차가 존재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 거의 차단되어 청년들의 좌절이 심각한 상태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셋째,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온 세계에 만연해 있다. 기성 정당이나 정치권이 대중의 요구를 대변하지 못함으로써 청년 대중들의 불만이 시위, 폭동, 그리고 무장저항으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정당 간의 차이를 불문하고 정치엘리트의 권력 독점은 대중들을 정치에서 완전히 소외시키고 있으며, 영국의 언론재벌 머독의 정치권·경찰 유착과 도청 사건에서 볼 수 있었듯이 정부·대자본·거대언론 간의 카르텔은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의 티파티 운동도 바로 공화·민주 양당 정치엘리트의 권력 독점에 대한 우익적인 하층 백인들의 좌절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미국의 경우 설사 개혁적 입법안이 마련되어도 대법원은 그 위에서 헌법 해석을 독점하면서 그것을 좌절시킨다. 정부의 보호 기능과 정치권의 대변 기능을 상실한 세상에서 선출되지 않은 이들 자본·언론·사법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농단하고, 이들에게 포획된 선출된 권력은 자신의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하다.

나라마다 조건이 다르지만, 대체로는 지난 20여년 동안 지속되어온 지구적 신자유주의, 즉 시장과 대자본이 사회·정부·정치를 압도한 결과가 이렇게 나타났다. “사회, 그런 것은 없다”는 신자유주의 선구자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예언이 음울한 방식으로 실현된 것이 오늘의 세계 전역에서 터져 나오는 시위와 폭력 사태다.

폭동으로 나타나지 않았을 따름이지 우리 사회는 속으로 더 심하게 골병들어 있다. 그런데 여전히 ‘국가’ 안보, 경제 ‘성장’, ‘선진화’, ‘경쟁력’ 등 20세기식 담론을 구사하는 세력이 우리 사회의 주류로 행세하고 있다. 한편 부자들의 이익이 침해되면 ‘관습헌법’과 같은 해괴한 논리까지 들고나올 사법 권력이 떡 버티고 있고, 거대 언론이 공론장을 오염시킬 일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야권은 정권 교체가 장밋빛 미래를 보장한다고 믿는 것 같다. 선거나 정당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라, 선출된 권력이 직면할 한계를 직시하면서 더 심층적인 대안을 찾자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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