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일 월요일

브라질 노동자당(PT)출신 여성대통령

브라질에서 첫 여성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지우마 호세프 (Dilma Rousseff)라는룰라 정부 하의 에너지 장관 출신이자 군사정권하에서 게릴라 전사의 경력을 가진 여성이다. 물론 브러잘 국민들의 80%가 지지하는 현 대통령 룰라의 전폭적인 지지가 그녀가 대통령이 된 가장 큰 힘이었다. "당신이 만약 룰라를 지지한다면 호세프를 지지해 주세요"라는 선거전략이 주효하였다.

 

삼선을 할 수 없는 브라질 선거법 하에서 노동자출신 대통령 룰라는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였다고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과감한 재정지출과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브라질의 만성적인 빈곤문제를 상당히 완화시켰고, 전 세계를 뒤흔든 금융위기 속에서도 브라질을 7% 대의 성장을 유지하게 한 공로를 평가받고 있다.

 

결국 룰라의 8년 동안의 경제적 성공이 "어린 소녀의 엄마이자 아버지가 되고 싶다"며 여권신장과 성평등, 빈곤퇴치를 부르짖는 그녀를 대통령의 자리에 올려놓았다고 볼 수 있다.  브라질은 여전히 심각한 빈곤과 불평등, 높은 범죄률, 취약한 교육제도, 아마존 환경파괴 등의 문제를 안고 있지만, 지난 8년 동안 국제적으로 위상을 높이는데 성공했으며, 국민들은 높은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흔히 베네주엘라의 차베스와 비교하여 브라질의 온건한 사회주의, 중도좌파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하는 지식인들도 많지만, 나는 그것은 지식인들의 관념일 따름이라고 본다.  그 정도까지 하기도 힘들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선거를 보고 마음이 이렇게 답답한 것은 왜일까? 브라질은 한국과 여러모로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민주화, 노동자 대투쟁에서 비록 한국보다 몇 년 앞서기는 했지만, 브라질은 강력한 노동자당 결성에 성공했고, 구두닦이 금속 노동자 출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며, 게릴라 여전사 출신까지 대통령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룰라나 호세프를 능가하는 노동 투사나 여자 전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상당수 아니 거의 대부분은 운동과 정치를 포기했을 뿐더러 대중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갔고 더러는 목숨까지 잃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가져오게 하였는가?

 

조돈문 교수가 이에 대해 훌융한 저서를 남긴 바 있지만, 우리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이미 90년대 초부터 브라질 문제를 여러각도로 검토한 바 있다. 문제는 역시 노동운동에 있고, 거시적으로는 냉전 분단의 정치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나 역시 사람들의 욕을 먹을 각오하면서 1993년에 "한국 노동자의 사회적 고립"이라는 논문을 심혈을 기울여 썼고, 그 후 수년동안 기업별 노동조합주의 극복,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결합, 노동운동의 지역정치 결합,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제창하였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계급투쟁을 내세우는 주류적 노동담론 앞에서 오직 노동운동의 변방에 있는 연구자의 주장 정도로 취급되면서 잊혀졌다. 그리고 이제는 이러한 담론 조차 거론되지 않을 지경까지 왔다. 그리고 아직도 전태일처럼 분신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노동현실이 존재하고 있다.

 

한국인들의 큰 병폐는 성찰함이 적고 작은 차이를 과도하게 의식하면서 동지를 적으로 보고, 또 당면의 과제를 넘어 멀리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운동은 언제나 벼랑끝 투쟁에 몰입하면서 내일을 보지 못했고, 정치권에 들어간 운동세력들은  매번 대선 때가 되면 마치 이번 선거에 지면 끝장이 날 것처럼 야단법석을 하지만, 그런 행태가 벌써 20년이나 지속이 되고 있다. 물론 노동자를 천시하고 가방끈 긴 사람을 우대하는 문화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큰 책임은 자신을 대표할 사람을 지지하지 못하는 노동자들 자신에게 있다.

 

늦었지만 다시 브라질과 한국을 차분하게 비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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