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29일 금요일

쓰레기통에서 불태워진 헌법

헌재는 지난 28일 군인의 불온서적 소지 운반·전파를 금지하고 있는 현행 ‘군인복무규율’은 위헌이라며 군법무관 지영준씨 등이 낸 헌법소원을 재판관 6(합헌) 대 3(위헌) 의견으로 기각했다. 또 국방부 장관이 내린 ‘군내 불온서적 차단대책 강구 지시’ 공문에 대해서도 장병 기본권이 직접 침해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로 재판관 5 대 4 의견으로 각하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군인복무규율은 군인의 정신전력 저해를 막기 위한 것으로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정신전력을 심각하게 해치는 범위의 도서에 한해 소지를 금하도록 해 침해의 최소성 요건도 지켜 과잉금지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불온서적을 금지한 국방부의 손을 들어줬다. 또한 헌재는 “국방부 장관이 내린 공문은 예하 부대장들에게 불온서적의 차단을 지시한 것으로 장병들은 이 공문을 통해 직접 기본권을 침해당한 것이 아니다”라고 각하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헌재는 "국가안보라는 공적 이익은 개인의 사적 이익, 즉 알권리보다 덜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즉 군인들에게 불온서적을 읽지 못하도록 한 국방부 장관의 결정은 군인의 기본권 침해가 아니라는 결론이다. 국방부 장관은 국가안보, 군인들의 정신전력을 이유로 어떤 책을 '불온'으로  분류하더라도, 국인들은 그 명령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다. 안보는 공익이고 책읽을 권리는 사적이익이니 사익은 공익에 양보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불온서적을 읽지 못하는 것이 국가안보와 관련된 공익인지도 알 수 없거니와, 국민들이 책을 자유롭게 읽고 판단할 권리가 과연 사익이라는 것은 더 욱 이해할 수 없는 논리다.  

장관이 병사들에게 직접 지시한 것이 아니고, 부대장들이 부하들에게 직접 지시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병사 개인의 기본권 침해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정도면 거의 코메디 수준이다.  

이 결정은 실제로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1. 군인복무규율은 필요시 헌법 보다 우선한다. 헌법은 그냥 추상적 가치이고, 살제 군인들은 복무규율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2. 군인은 국민의 범위에서 제외할 수 있다. 군인들은 국민일반이 누리는 기본권에서 배제된다. 병사라는 특수한 존재는 물론 인정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인간으로서 기본권을 포기하거나 양보할 수도 있다. 

3. 장관의 결정은 하급자인 병사들은 무조건 추종해야 한다. 장관의 결정이 무리하고 부당해도 일단 상급자이므로 복종해야 한다.

4. '불온'의 범위와 내용는 국방부가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장하준 교수의 책처럼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도 불온의 범위에 포함된다. 재벌을 비판해도 불온이고, 정권을 비판해도 불온이고, 미국을 비판해도 불온이고, 심지어는 자유시장 경제의 문제점을 지적해도 불온이다.  

우리는 이런 나라에 헌법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지난세월 군 내의 각종 의문사 사건에 대한 군과 국가의 무책임, 군인을 사실상 국민이 아닌 존재로 취급해서 군에서 당한 비인간화와 반인권의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온 수 많은 국민들의 고통들에 대한 묵살, 헌법이 하위법인 형법이나 국가보안법에 의해 수없이 능멸되어온 역사. 아직도 식민지적 '불온'의 개념이 여전히 위세를 떨치면서 충성이 아니면 불온이라는 논리가 펄펄 살아서 움직인다. 그리고 이러한 파시즘적 논리를  헌재조차 문제삼지 않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국민은 국가가 표방하는 획일적 사상의 노예로 살수 밖에 없는 한국의 정치 현실이 이 판결에서 드러난다.

 헌법이란 국민의 외침이고 주장이라는 도올 김용옥의 말이 생각난다,

도대체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알량한 지식으로 먹고사는 법 기술자들이 무슨 자격으로 헌법을 운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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