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5일 금요일

국방부의 증거인멸

   범죄자들은 자신의 범죄가 드러나지 않도록하기 위해 증거를 서둘러 인멸한다. 뭔가 떳떳하지 않은 일이 있을 때, 한국의 군사정권 시절 공기관은 법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증거를 인멸해 왔다. 과거 군 의문사 사건, 노동현장에서의 사망사건이 발생하면 유족들의 동의도 얻지 않은 채 곧바로 시체를 화장하는 일도 그에 속한다. 국방부가 또 한번 그런 일을 저질렀다. 사건은 영원한 미궁에 빠지고 진실은 가려질 수 없게 된다.
 
어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국방부에서 저질러지는가?
 
 
 
국방부가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어뢰추진체에 관한 의혹이 나오자 해당 증거를 일방적으로 훼손하는 일이 벌어졌다.

국방부는 어뢰추진체 맨 뒤에 있는 프로펠러 내부의 조개 끝부분에 생성된 백색 물질과 관련된 의문이 네티즌과 언론단체에 의해 제기되자 조개를 떼어내고 백색 물질을 부숴버린 것으로 4일 확인됐다.

의문을 풀어보기 위해 떼어낼 수밖에 없었다고 해도, 국방부의 조사 결과에 대한 의혹이었던 만큼 제3자의 입회도 없이 일방적으로 조치를 취한 것은 중요한 증거를 훼손한 행위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 국방부 홈페이지에 4일 공개된 사진으로 국방부의 증거 훼손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프레시안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전국언론노조가 구성한 '천안함 조사결과 언론보도 검증위원회'는 3일 프로펠러 안에 붙은 조개 끝부분에 백색 물질이 "꽃이 피듯" 생성된 모습으로 볼 때 어뢰추진체는 천안함 공격과 무관함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폭발 과정에서 만들어진 물질이 흡착된 것이라면 일단 액체 상태로 조개에 닿아 조개를 감싸듯 들러붙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흰색 물질이 '꽃이 피듯' 붙어 있는 것은 고체 상태의 부유 물질이 장시간 쌓인 침전물임을 보여준다고 언론 검증위는 주장했다.

그러자 국방부는 프로펠러에서 문제의 물체를 빼낸 뒤 "생물 조가비가 아니라 부서진 조개껍데기(2.5×2.5cm)로 확인됐다"며 "조개껍데기의 들어가 있는 상태가 느슨한 것으로 보아 어뢰가 폭발한 후 해저면에 있던 조개껍데기 조각이 조류 등의 영향으로 스크루 구멍 속에 들어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조개껍데기에 묻은 물질은 흡착물이라고 주장하며 "폭발 후 조개껍데기와 흡착물이 동시에 구멍 속으로 들어가면서 붙을 수도 있고, 조개껍데기가 구멍에 들어간 후 스크루 주변에 묻어있는 다량의 흡착물이 조류 등의 영향으로 옮겨 붙을 수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 어뢰추진체 맨 끝 프로펠러. 구멍 가운데 흰색 점이 조개에 붙은 물질의 모습이다. ⓒ블로거 '가을밤'

▲ 갈색은 조개껍데기이고 흰색은 문제의 물질 ⓒ블로거 '가을밤'

▲ 확대 사진 ⓒ블로거 '가을밤'

그러나 언론 검증위는 4일 다시 보도자료를 내고 국방부의 해명은 흰색 물질을 전혀 설명하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언론 검증위는 그같은 판단의 이유로 △조개껍데기와 흡착물이 동시에 들어갔을 경우 조개를 감싸는 모양으로 흡착됐어야 하나 흰색 물질은 침전물의 모양을 하고 있고 △프로펠러에 흡착물이 붙은 것은 조류의 영향이 미미했기 때문이라던 국방부가 이제 와서 조류 때문에 흡착물이 옮겨 붙었다고 하는 건 일관성이 없고 과학적이지도 않다는 점을 들었다.

이어 언론 검증위는 "국방부가 증거 보전 요구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조개를 떼어 내고 백색 침전물을 부숴버린 행위는 비상식적이고 오만하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국방부가 진정으로 의문을 해소하고자 했다면 제3자의 입회하에 조개가 존재하는 상태를 충분히 검증한 후 떼어냈어야 하며 백색 침전물의 부착 상태도 정밀하게 확인했어야 했다"며 "백색 침전물의 성분 분석 또한 제3의 기관에 맡겼어야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들은 프로펠러 구멍의 크기가 2cm로 추정됨에도 불구하고 2.5×2.5cm의 조개껍데기가 들어갔다는 의문을 제기하며 프로펠러 구멍의 지름에 대한 실측 자료를 공개하라고 국방부에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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