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9일 일요일

향수로서 러시아 (러시아 2신)

아직 학회 참석자들은 도착하지 않았고, 박노자는 러시아 사람들 만나느라 점점 바빠져서 계속 돌봐달라고(? ) 부탁할 수도 없어서 할 수없이 미아가 된 나는 연대 허경진 교수와 함께 숙소 근처의 러시아 현대사 박물관 구경을 갔다. 250 루블이라 좀 비싸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볼 거리들이 많았다. 돈이 아깝지 않았다. 모두 로어로 되어 있고 영어 해설이 거의 없어서 매우 아쉬웠지만 알고 있는 러시아사 지식을 총동원해서 사진이나 전시물들이 무슨 내용인지 짐작을 했다.

러시아 역사는 한국의 70년대 말 80년대 초 운동권 근처 얼쩡거린 사람들에게는 정말 특별한 의미가 있다. 사실 그 때 우리는 모두 러시아 찬미자였고, 어설픈 러시아 전문가였다. 러시아 혁명은 우리를 모두 흥분시키는 흥미진진한 주제였다. 나로드니키들이 불렀던 ‘스탠카라친’은 운동권이 즐겨 부르던 운동 가요였으며, 에드워드 윌슨의 [핀란드 역까지]는 아직 레닌과 러시아 혁명 관련 서적이 금서였던 시절, 러시아 혁명에 대해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입문서 역할을 했고, 그 이후 80년대 들어서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고요한 돈강], 고리끼의 [어머니] 등과 더불어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 등이 본격적으로 유포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 플레하노프의 책, 레닌의 저서, 스탈린의 저서, 그리고 러시아 최고의 전문가 카아의 원서로 된 [볼세비키 혁명] 등까지 정말 지나칠 정도로 러시아 혁명 관련 핵들을 많이 읽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일이었지만 그 때는 그랬다. 그런데 이 때 얻은 지식이 오늘 박물관 구경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박물관 초입은 과거 짜르제국에서 오늘의 메드배제프 시절까지를 일별할 수 있게 배치를 했다. 그 다음은 19세기 시기부터 시간 순서로 배열을 했다. 각 시기 내에서는 정치, 군사역사를 먼저 배치하고 그 다음은 문화사 생활사를 배치하였다.

로마노프 짜르 시절은 귀족과 농민을 대비시켜 양자가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를 복장과 용구를 통해 보여주었다.

망해가는 제국이었지만 러시아는 한 때 제국이었다. 그리고 제국 시절 러시아는 조선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갖고서 정치에 개입을 했으며 우리가 잘 아는 고종황제의 아관파천의 주역이기도 하다. 제국의 영화와 농민의 참상을 대비시켰고,

그 다음은 공업화에 의해 변화된 러시아도 보여주었다. 레닌의 [러시아에서 자본주의 발달]의 서술 내용이 연상되는 공업노동자들의 등장과 파업 등이 장면도 전시하고 있으며 혁명가들이 감옥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도 보여주고 있다. 동행한 허교수의 이야기에 의하면 성 빼제르 부르크의 박물관은 주로 황실의 영화를 보여주는데 초점이 있었지만 여기는 그 점이 약하다고 한다.

?1905년 러일 전쟁의 패배는 제국이 무너지게 되는 전주곡이었다. 서양 동양 모든 나라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러일전쟁은 일본의 야스쿠니에서의 러일전쟁 전시와는 완전히 대조적으로 아주 살짝만 다루고 있다. 러시아로서는 잊고 싶은 기억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러시아의 피의 일요일 사건, 직업적 혁명가의 등장, 급속한 산업화와 노동계급의 등장 등의 내용이 매우 흥미진진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결국 러시아 혁명이라는 것도 산업화의 모순이 봉건적 모순과 중첩되면서 발생한 것, 이른바 약한고리론의 결과가 아닌가라는 그전 읽었던 책 내용이 실감났다.



1917년 2월혁명에서 10월 혁명기의 기간, 그리고 10월 혁명으로 드디어 레닌이 기차로 핀란드 역에 내리는 극적인 장면을 그림으로 전시하였다.

이후 반혁명 진압, 스탈린 시기의 산업화, 세계 최초의 우주선 발사로 소련의 위세가 전세계를 뒤흔드던 시기가 결국 러시아의 최고의 영광의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결국 지금 시점에서 보면 러시아 혁명은 서구 따라잡기 산업화의 또 다른 경로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주의와 서구주의의 오랜 갈등, 결국 서구주의의 외피에 러시아주의의 내용을 숨기고 있었다고나 할까?

제국은 혁명으로 무너졌으나 소련은 또 다른 제국이 되었다. 나는 소련의 역사 속에서 언뜻언뜻 나타나는 조선, 한국을 보았다. 레닌은 조선 독립운동가들에게 금괴를 주었고, 박헌영은 소련 공산대학에 유학을 했다. 박헌영과 주세죽 사이에서 난 딸은 유명한 발레리나로 활동하였으며 아직 소련에 살아있다. 물론 그녀는 한국말 한 마디도 하지 못한다. 세계 사회주의가들이 다 그랬듯이 당시 조선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에게도 소련은 정신적 조국이었고, 코민테른의 지침은 교과서였다. 소련은 연해주의 조선인들을 일본인 스파이로 의심해서 강제 이주를 시켰으니 조선인들은 그에 대해 입도 벙긋 못했다. 당시의 국제, 세계는 소련이었다. 여운형 등 조선 혁명가들은 소련에서 호지명 등 식민지 독립투사들을 만났다.



김일성은 한국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기차를 타고 소련을 방문했다. 전시관 한 구석에서 본 김일성의 사진들은 이상한 비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스탈린의 재가를 얻기 위해 소련을 비밀리 방문했다. 한국전쟁 직전 백남운은 소련을 방문애서 위대한 (?) 사회주의의의 찬란한 성취 (? )에 감격했었다 그런데, 박물관의 스탈린 시대의 각종 선전물, 동영상 전시물을 통해 오늘 북한을 보았다. 러시아에게는 과거이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이제 구 소련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전시관은 한산하다. 전시관 구석에 앉아있는 아줌마들은 하품만 하거나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다. 사회주의 러시아는 역사가 되었다.
러시아는 이제 새로운 제국, 돈의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힘이 약한 나라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없다는 큰 결점을 갖고 있다. 일제시대 이래 조선의 자유주의 사회주의는 이념 내용 이전에 미국과 소련을 어떻게 볼 것인가로 갈라졌다. 80년대 소련 정치경제학 교과서를 금과옥조로 받아들였던 동료들이 생각난다. 오늘 진보신당과 민노당의 분열도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에서 시작되었는데 우리는 언제나 미래지향적 가치를 중심으로 논쟁을 해 나갈 수 있을까?

사라진 소련 사회주의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조선 ( 한국 )을 본다. 제국이 될 수 없는 나라의 슬픔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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