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21일 화요일

유럽의 한국학 (러시아 4신)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유럽 한국학 대회에 참석해서 논문 발표를 했다. 이미 작년도에 캐나다 요크대학의 Janice Kim 이 남북한 50년대를 주제로 하는 특별 세션을 만들자고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미주의 한국학 대회에는 내가 진실위원회 재직 시 2009년 진실위 활동을 홍보하기 위해 특별히 참가한 적이 있었으나 유럽 한국학 행사는 처음이었다. 듣기로는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수십명 정도 참가했으나 이제 수백명 단위로 커졌다고 한다. 유럽에도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한국학 관련 학자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특히 외국인들이 영어로 16세기 한국 성리학과 조선시대 전통문학에 대해 논하는 장면은 기이한 느낌까지 가졌다. 국제적으로 한국학의 저변이 많이 넓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참석자의 80 퍼센트 정도는 인문학자였고, 사회과학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그것은 해외 한국학이 기본적으로는 어학, 문학, 역사 중심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번 행사 참가 신청자 중 과반수는 탈락했다고 한다. 특히 외국이나 한국에서 이 행사에 참가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그 만큼 많았다고 하는데 어쨋든 제한된 수만 참가한 모양이다. 학교나 기관에서 경비 지원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물가가 바싸기로 유명한 러시아에서 열리는 행사에 자비로 상당 부분을 충당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신청자가 많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한국 측에서는국제 학술회의 참가가 연구업적으로 중시되니까 그런 것 같고, 유럽이나 미주의 경우는 박사 학위 마친 사람들이 노동시장에서 선을 ( ?) 보여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쨋든 참가 신청자가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 만큼 한국학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행사에 참석하면서 국내의 한국학과 외국의 한국학과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그리고 과연 한국학의 내용은 무엇인지, 보편 학문의 차원에서 한국학이 어떤 입지를 갖고 있는지 하는 의문을 계속 갖게 되었다. 국내의 한국학이 해외의 한국학에 비해 훨씬 심도있고 풍부한 내용을 갖고 있다는 것은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과연 국내에 한국학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점이 있었다.이 행사의 주요 후원자인 한국학 중앙연구원이 한국학의 센타 역할을 하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즉 외국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인 문학과 역사에서 독점의 지위를 갖는 한국학이 과연 국제 무대에서 일본학, 중국학과 맞설 수 있는 내공이 있는지, 그리고 도전적인 신진학자를 육성해 내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날의 저녁 식사를 국제교류재단의 이사장 ( 김병국) 이 내면서 장황한 인사를 했는데, 거의 알맹이가 없었다. 과연 한국의 국제교류재단은 교류의 내용인 한국학의 수준과 현재적 문제의식에 대해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즉 국내 역사학이나 문학이 외국인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언어상의 장벽이 있다는 이유로 여전히 특혜를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예를들어 미국의 아시아 학회에서 중요저작으로 인정받는 도이힐러 교수의 [조선 초기 유교의 변환]에 대해서도 국내 사학계는 극히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여기서는 외국인이 한국을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라는 알량한 자존심이 ( 폐쇄성) 숨쉬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가족연구의 대가인 최재석 교수가 비판한 바 있는데, 내용은 주로 자기 연구 업적 인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국학의 기둥인 문학과 역사 철학이 여전히 독점의 특혜 혹에서 안주하면서 진정으로 보편주의적인 시야를 열어가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한국에서 활동하는 역사학자나 문학자들도 이번 생사에 많이 참석했다. 그런데 그들이 과연 국제 한국학 관련 학계에서 지적인 지도력을 갖고 있었는지느 의심스럽다.

이번 행사에서 특히 충적적인 것은 사회주의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의 한국학의 신세였다. 월 300달러의 뤌급받에 못받으면서 한국 고전 문헌 해제를 하는 노학자에게 월 1000불을 받는 명품으로 치장한 여자 졸업생이 찾아와서 이 고지식하고 답답한 선생님들의 처지를 비웃는 것이 오늘의 러시아의 대학 현실이라 할 수 있다. 구 소련의 인문 교육의 전통이 나름대로 단단해서 그런지, 이들 중에는 한국어와 한문 해독은 물론, 영어, 불어 등 외국어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경우가 많았고, 말 그대로 뚜벅뚜벅 공부만 해 온 고지식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한국 자본주의는 이제 졸업을 앞둔 모든 러시아 한국학 관련 학생들을 유혹하고 있다. 외모가 출중한 여학생들은 곧바로 결혼하고, 남자들도 한국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안달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이 돈 안되고 빛이 안나는 그것도 아주 주변학문인 한국학 공부하는 젊은이는 이제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구한말이후 식민지 시대에 걸친 한국관련 자료의 상당수가 러시아 도서관에 무더기로 쌓여있다. 그런데 공부할 사람이 없다.

하여튼 한국의 경제발전의 놀라운 성과에 비해 유럽의 한국학 수준은 아직 걸음마 단계여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했다. 돈이 많은 일본, 나라가 큰 중국과 비교하면 모든 점에서 초라하기만 하다. 국내 각 연구재단의 기여도 점점 높아지고 있으나, 국내 한국학이 그것을 뒷바침할 보편적 내용과 실력을 쌓아가고 있는지는 큰 의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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