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4일 화요일

[세상 읽기] 워크던트

2011년 6월 14일, <한겨레>에 올라온 연재 글 입니다. 본문을 보시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825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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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워크던트(노동생)는
50년대 고학생, 60~70년대 유학생,
80년대 공장에 간 대학생과 다르다


본업은 학생이지만, 학비 마련을 위해 공부보다는 ‘알바’에 시간을 더 많이 보내야 하는 오늘의 대학생들을 영어로 노동자와 학생이라는 단어를 조합하여 ‘워크던트’ 혹은 ‘노동생’이라 부르면 어떨까? 등록금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기 때문에 이들의 처지에 대한 논란이 이제 식상한 감도 있지만 초점이 등록금 문제로 집약되는 것 같아 아쉬움이 있다.
오늘의 워크던트는 고학을 하면서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1950년대 중·고등학생들이나, 접시 닦으면서 고국의 엘리트가 될 꿈을 꾸던 60~70년대 미국 유학생들이나, 노동자로 자신의 존재를 이전시키고서 노동운동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려 했던 80년대 대학생들과도 다르다. 워크던트의 처지는 사회적으로 강요된 것이며, 사실상은 노동자·기술자·예술가로 살아야 할 청년들이 졸업장을 얻기 위해 학생이 된 것이다. 그들에게 닥쳐올 미래는 버젓한 직장인이나 이 사회의 엘리트가 아닌 채무자, 청년실업자 혹은 비정규직 노동자다. 부모 잘 만나서 지금 워크던트로 살지 않아도 되는 일부 학생들은 졸업 후에도 노동자를 관리하는 직업을 얻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워크던트인 청년들은 이미 사회의 서열을 내면화하고 있다. 그들은 노동이 무엇인지, 최저임금이나 노동인권이 무엇인지 한번도 배워본 적이 없는 ‘자기개발 시대’의 청년들이다. 그들은 한번 벼랑으로 떨어지면 다시 기어 올라올 수 없는 냉엄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매일 체험하면서 스펙에 목숨을 건다. 이들이 마련해야 하는 등록금과 용돈은 이 사회에서 ‘잉여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할 수 없이 지불해야 하는 자격증 취득 비용이지 결코 엘리트 지위를 얻을 수 있는 투자가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학 등록금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등록금이 반값이 되면 이제 이들이 알바 대신 학업에 더 충실하게 되고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 될까? 청년들을 대학에 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사회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반값 등록금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한번 취득한 학력·학벌이 평생을 지배하고, 노동자를 극도로 천대하고,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격차가 이렇게 벌어져 있는 이 사회에서 대학 등록금을 무상으로 한들 이들이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을까?

나는 한국 사회에서의 학력·학벌 경쟁은 “노동자가 되지 않으려는 전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워크던트 문제는 노동자를 죄인으로 만들고, 학벌 좋은 힘있는 사람들은 도둑질을 해도 살아남는 이 지배구조에 원인이 있다. 바로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청춘을 ‘잉여인간’으로 만들고, 사회적으로는 ‘잉여’의 존재이면서도 1년에 수억원의 연봉과 뒷돈을 챙기는 엘리트들의 모습이 이렇게 극심한 학력·학벌 경쟁을 일으키는 주범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경찰에 끌려가는 파업 노동자의 모습을 볼 때 모든 학부모들은 빚을 내서라도 자기 자식은 노동자 만들지 않기 위해 학원비와 등록금을 마련하려 할 것이다. 최고 학부를 나온 반사회적 비리의 주범들이 친구·동문들의 힘으로 줄줄이 면죄부를 받는다면, 우리 학부모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을 스카이(SKY) 대학에 보내려 할 것이고, 최소한 현대판 신분증인 대학 졸업장이라도 안겨주려 할 것이다.

등록금 문제로 드러난 오늘의 워크던트 처지는 우리 사회 저 깊은 곳의 숙제 거리를 집약하고 있다. 자, 우선 워크던트를 전업 학생이 되도록 해주고, 그들에게 잃어버린 청춘을 돌려주자. 그다음으로 노동자를 인간답게 해주고 학력·학벌주의를 삼제(芟除)할 길을 찾아보자. 등록금 문제는 드러난 현상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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