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5일 수요일

노르웨이에서 긴 하루

노르웨이에서 긴 하루


노르웨이라는 나라 처음이지만 이틀 밤을 자고 오늘 모스크바로 떠난다.
온지는 3일 째이지만 하루 온전히 구경한 것은 어제 밖에 없었으므로 어제 보고 들은 것 몇 가지 전한다. 주로 여기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박노자, 기업 주재원으로 있는 내 친구에게 들은 것, 그리고 같이 저녁식사 한 호주출신 일본 여자 교수와 나눈 이야기를 종합한 것이다.

노르웨이 오슬로의 여름 하루는 참 길었다. 밤 11시가 넘어야 어두워지고 4시가 되니 동이 터온다. 시차 적응이 안 되어 잠을 설친 나는 아침 5시 무렵에 밖에 나가서 산보를 했다 인구 70만의 잘 정돈된 오슬로 시내는 한산했고 가끔 전철, 버스가 왔다 갔다 했다.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나라, 그리고 지구상에서 사회주의에 가장 가까운 나라, 그렇게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다. 박노자와 대학 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했는데, 식사의 질은 우리 나라 대학 교수식당의 5,000원 짜리 정도에 불과한데 가격이 무려 우리 돈으로 3만원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박노자도 집에서 주로 도시락을 싸온다고 한다. 자기도 이 식당에 처음이라 하고 정부 돈이 아니면(나를 초청한 비용은 노르웨이 외교부의 아시아기금에서 지원받는 것이다) 이렇게 비싼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한다. 저녁식사는 일식집에서 4사람이 먹었다. 스시, 라면 등 평범한 것을 먹었는데 일인당 6, 7만원 정도였다.

노르웨이 물가가 왜 이리 비싼가? 물론 소득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에 속하게 되었지만 30년 전만해도 매우 가난한 나라였다고 한다. 노르웨이의 부의 원천은 뭐니뭐니해도 석유다. 세계에서 석유수출에서 제2위라고 한다. 원래는 삼림이나 조선 외에는 별로 내세울 것이 없었지만 석유가 쏟아지면서 이렇게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핵심 조선 기술은 여전히 노르웨이가 최고라고 하는데, 한국도 조선 강국이지만, 한국 배를 많이 팔면 팔수록 노르웨이가 돈을 번다나(자동차가 생각났다. 한국 차 많이 팔면 일본이 더 돈을 많이 버는 역설) 하여튼 한국은 노르웨이의 두 번째 교역국이고 무시하지 못할 나라가 되었다.

노르웨이는 버는 돈의 50 퍼센트를 세금으로 가져가고 거의 완벽한 복지 시스템을 자랑한다. 전액 무상인 대학은 고교 졸업자의 50 퍼센트가 진학을 하는데 유럽 국가 중에서는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젊은이들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으므로 진학률이 떨어져서 고민이라고 한다. ( 우리와 완전 반대...) 박사를 받으면 국가에서 아예 돈을 지급해 준다고 한다 (!! ). 전체 노동력 중에서 비정규직이 9퍼센트에 불과하고 그것도 최근에 들어온 이민자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민정책을 매우 엄격하게 하는 편인데도 이민자들이 늘어나서 나른 나라처럼 극우세력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고 한다. 그러나 집권은 여전히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하고 있으며 일부 극좌세력이 있다고 하는데 이들의 영항력은 주로 교수나 교사 등 지식인에게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정치에 관심이 거의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도좌파를 지지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한다. 도시와 농촌의 소득 차이도 거의 없다고 하니 지상 천국이라고 할만하다.



노동자의 권리가 매우 강하고, 파업이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은 지지를 하기 때문에 대학 엘리베이터 노동자들이 작년에 3개월 동안 파업 했을 때 학내 모든 구성원들은 걸어서 몇 층을 올라가면서도 불평이 없었다고 한다. 한국처럼 경찰이 노동자들을 체포하는 풍경은 30년대 대공황 때나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주 5일 근무에 9시 출근에서 5시면 거의 퇴근하는데, 일 년에 휴가가 5주이고, 여성은 출산 휴가가 1년이며 아빠도 2주 정도 무조건 출산휴가를 준다고 한다. 정식결혼한 부부와 동거인에 대한 차별이 없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18세 이후 독립을 하며 대체로 몇 번의 동거를 거쳐 결혼을 하거나 아예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특히 남자 입장에서는 이혼을 하면 경제적으로 거의 파탄상태에 빠지기 때문에 결혼할 이유가 없다는 내 친구의 전언..... 그렇다고 이혼을 좋게 생각하는 것은 물론 아니며 또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그리고 동거를 경험한 커플도 이혼이 많다고 하니 이 현상을 어이 설명해야할지 나도 난감.

사회적 차원에서의 사회주의는 강한 개인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점은 스웨덴과도 유사한 점인 것 같다. 평등주의가 매우 강한 이면에는 남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하고, 조직에서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개인주의가 있다. 자식을 독립적으로 키우려는 정신에는 자식과의 거리감이 전제되어 있다.

우리나라처럼 사회나 조직 내부가 경쟁적이지 않고, 피고용자의 권리가 강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는 천국이지만, 이들은 엄격한 노동윤리를 견지한다고 한다. 즉 아이를 데려오는 등 집에 일이 있으면, 근무시간에도 퇴근을 요청하는 일이 있는데, 자기가 빠진 시간만큼 철처하게 보충하고, 조직에서 합의를 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완수하는 엄격함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경쟁이 효율성을 높인다는 미국식 가설은 틀린 것이다. 대충대충이 없고, 근무시간은 완벽하게 충성을 하기 때문에 또 그 만큼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되었다. (모든 면에서 독일과 참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박노자가 지적하듯이 노르웨이는 제조업이 약해서 포스트모던 경향이 있지만, 다른 편으로는 19, 20세기 국민국가의 전형 같기도 했다. 사람들은 국가에 대해 강한 소속의식과 충성심을 갖고 있으며 민족주의는 아니지만, 국민적 정체성이 매우 강해서 노르웨이 말에 서투르면 조직이나 사회에서 거의 배제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물론 어학에 비상한 재능이 있는 박노자는 러시아어 영어와 더불어 노르웨이말도 유창하게 하였는데, 대학에서는 외국 전문가 초빙이 용납된다고 한다) 즉 시골로 갈수록 자국민주의 더 엄격해서 외국인이 동화되지 않은 채 살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잘사는 나라이므로 외국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고, 세계화니 신자유주의니 하는 말은 딴 세상 이야기같이 들리는 듯....

그런데 과연 노르웨이가 천국이기만 할까? 명이 있으면 암이 있는 법니다. 강한 개인주의는 바로 거리감, 고독감을 수반하는 법이다. 노동자, 약자에게는 분명 좋은 나라이기는 하나 늙은이의 외로움, 개인의 고독은 치유할 수 없는가 보다. 알콜 중독자가 그렇게 많다고 한다. 술과 담배가 비싼 이유도 알콜 중독자 퇴치 목적이라고 하니 퇴근하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고 가정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그들은 긴긴 겨울을 술로 보내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가족, 친구, 동창이 없고, 우리처럼 엉켜서 즐기는 문화는 거의 없어 보였다.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
몇 가지 이야기 거리 더 남겨두고 러시아로 가야겠다. 박노자가 러시아 친구 후배들 소개시켜 주겠다고 하니 기대해야겠다.

댓글 1개:

  1. 안녕하세요:D 블로그 글 잘 읽었습니다! 근데 얼마 전에 강의에서 노르웨이에는 worker-carer system 이 잘되어있어 3년 정도 일하면 1년 정도는 월급이 일정부분을 지급받으면서 가정 내 돌봄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노인들도 자녀들이 돌봐주고하니까 정서적으로 되게 안정돼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알콜 중독자가 많고 노인들이 외로움을 느낀다니 아이러니하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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