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폭력예방단에 의하면 3560명의 조사대상 학생중 학교폭력을 목격한 학생 1059명(30.2%) 가운데 62%가 '모른척 했다'고 답했다. 이는 지난 2008년 53.1%에 비해 10% 가량이 늘어난 수치다. 신고하지 않은 이유는 같이 피해를 당할까봐(27.5%)가 가장 많았고, 관심이 없어서, 어떻게할지 몰라서가 그 다음으로 많았다고 한다. 요컨데, 동료 학생들이 폭력을 당하는 것을 알고서도 그냥 지나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피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아예 관심을 꺼버린다는 답도 많은 것을 보면, 두가지 이유는 사실상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자신이 살기 위해 상대방의 고통에 눈을 감는다고 볼 수 있다.
과연 청소년들만 그럴까? 조사 자체도 없고 통계가 없어서 알수 없지만, 자기 회사 동료 사원이 부당해고 당해도 못본채 한다는 노동자들이 대다수일 것이고, 자신이 일하는 곳의 옆 사업장에서 파업 노동자들이 농성하는데 공권력이 투입되면 아마 거의 99%의 노동자들이 그냥 구경만 한다고 답할 것이다. 그들의 고통은 '지금'의 자신의 고통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관심과 동정은 물론, 지원과 지지도 사람을 힘들게 한다. 어떤 일에 한번 관심을 보여주면 계속 연루되어 끊임없이 지지와 지원을 요구한다는 것을 한국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래서 침묵과 방관이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상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두가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해진다. 사실 가족을 제외한 그 모든 이에게 무관심하라고 이 신자유주의 정치경제질서와 한국사회는 부추기고 있다. 그리고 무관심의 댓가는 곧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 가족의 끈이 단절될 경우 완전히 개인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우줄증, 조울증, 자살은 우리 시대의 큰 질병이다. 우울증 환자의 증가 속도가 무섭다. 노인 우울증은 5년 새 1.7 배가 늘었다고 한다. 젊은 층에게는 조울증이 더 무섭다고 한다. 그리고 이 병의 원인은 물론 다양하지만, 대체로 사회적 관계의 단절, 즉 타인의 관심과 배려를 받지 못하는데서 초래된다. 자신만 살아남아야 하고,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의 고통을 외면해야 하는 세상에서 경제적 고통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 된다. 무자비판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도, 부당한 해고의 장본인이 되어도, 말도 안되는 판결의 희생자가 되어도, 길거리 폭력배에게 맞아도, 아무도 그것에 대해 동정과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세상에서 내가 인간으로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는가?
우울증과 자살은 개인적 질병이지만, 사회적 질병이다. 이 질병을 치유하지 못하는 한 이 세상은 지옥과 같은 곳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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