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22일 일요일

저조원칙 ( 한겨레 칼럼)




세상 읽기] 저조원칙 / 김동춘







»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중국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문학가인 왕멍(王蒙)은 ‘저조(低調)원칙’이라는 명제를 제시하였다.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기, 즉 사람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본선을 지키자는 것이 그가 말하는 저조원칙이다. 그가 말하는 저조는 진보를 포기하고 현상을 유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일은 하되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단호히 하지 않는 것 그리고 자신의 표준을 세운 다음 남을 거기에다 맞추려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적과 나를 구분하여 적을 제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치는 저조원칙과 제일 거리가 멀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적 열정이 필요하지만, 세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려면 저조원칙이 필요하다. 법의 집행이 그러해야 한다.
법이 대상에 따라 달리 적용되면, 그것은 정치행위이고 폭력이다. 판검사가 이해당사자의 돈을 받거나 영향력에 휘둘리면 최고로 흉악한 범죄자가 된다. 만약 그들이 정치의 기본 원리인 ‘적과 나’의 구분을 기준으로 수사를 하고 판결을 내린다면, 그 결과는 소송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온 국가와 사회를 타락시키게 될 것이다. 중세시대와 군사독재 시절이 그랬다. 오늘 한국의 사법부와 검찰은 어떠한가?

‘안기부 엑스파일’, 즉 삼성그룹이 로비 대상으로 삼은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한 노회찬 전 의원은 항소심에서 무죄가 되었으나 대법원은 오히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을 인정하고 파기환송하였다. 애초 검찰은 불법도청 자료라는 이유로 삼성이나 해당 검사들에 대해서는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이번에 대법원은 “대화의 시점이 2005년 이 사건을 공개했던 때로부터 8년 전의 일로서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검사가 재벌기업에서 떡값을 받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 즉 범죄행위이지만 그 사건은 유야무야 넘어가고 “도둑이야” 소리를 지른 사람만 처벌한 꼴이 되었다. 검찰은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건으로 자신이 소유하던 회사에서 쫓겨나고 주식까지 포기한 김종익씨 사건에서도 숱한 관련 증거가 드러난 청와대의 개입 사실 등 불법사찰에 대해서는 제대로 수사조차 하지 않다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가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고발 건에 대해서는 경조사 부조금까지 샅샅이 뒤져 그가 공금을 횡령했다고 기소를 하였다. 최근 법원은 건설업자로부터 접대를 받아 ‘스폰서 검사’로 거론되었던 한승철 전 검사장에게는 무죄를 선고하였다.

검사가 기업과 유착한 사건은 증거가 나와도 공익적 사안이 아니라거나 대가성이 없다는 등 온갖 논리를 동원하여 면죄부를 주고, 정부·대기업·검찰·사법부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고발한 사람에 대해서는 거의 보복하듯이 처벌하는 모습을 우리는 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수없이 많이 목격하였다. 바로 ‘적과 나’의 원리, 즉 한쪽은 우리 편이기 때문에 무죄이고 다른 쪽은 적이기 때문에 유죄라는 원리에 따라 수사·판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사법부와 검찰이 사회의 기본을 지키는 일, 즉 저조원칙을 저버리면 힘이 곧 정의가 되고, 국가의 신뢰와 정당성은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우리는 민주화 이전 수십년 동안 검찰·사법부가 저조원칙을 포기하고 독재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정부 들어선 이후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수가 “기업하기 좋은 법적 환경을 만들자”고 할 때부터 이미 저조원칙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정 세력에 대한 과도한 처벌과 다른 쪽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봐주기가 지난 3년 동안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

일찍이 간디는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자기희생 없는 종교, 인격 없는 교육 등을 척결해야 할 악이라고 지목하였다. 간디가 말한 이 모든 악들은 오늘 이명박 정부하의 한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지만, 오늘 나는 그의 ‘원칙 없는 정치’ 다음에 하나를 더 끼워넣겠다. “권력과 돈에 휘둘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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