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6일 수요일

[세상 읽기] 엘리트 범죄


2011년 7월 5일, <한겨레>에 올라온 연재 글 입니다. 본문을 보시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85745.html

----

반성 없는 엘리트 범죄자들은
자신이 똑똑해서 그 지위와 돈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착각한다

오늘도 부산저축은행 예금자들은 초량동 본점 안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몇 달이 지났건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요란스럽게 칼을 빼들었던 검찰은 특혜인출된 금액이 고작 85억원밖에 안 된다고 중간발표를 하고, 이 모든 금융비리, 감독 직무유기 사건에 대한 수사를 적당히 마무리하려 한다. 더구나 변호사로 전직한 전 중수부장과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들 범죄자들을 변호하는 쪽에 서서 3억원의 착수금까지 받았다고 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소처럼 일했습니다. 파출부, 세차장, 폐지 수집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장애인 남편과 살면서 지난 30여년 동안 이렇게 번 돈을 매일 저축은행에 넣었다는 박성자(65) 할머니, 후순위 채권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직원의 권유로 돈을 맡겼다가 2400만원이란 돈을 날렸다. 별로 큰돈이 아니라고? “내 평생의 세월이 담긴 그 돈은 나와 남편의 생명 같은 돈입니다. 내 돈 돌려주세요. 나는 그 돈이 없으면 살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그녀의 2400만원은 그녀의 생명과도 같고 10년간 뿌려진 저축은행 로비자금 1조원 이상의 무게를 갖고 있다.

부산저축은행의 경우 피해자의 90%가 서민 노령층이고 1억원 미만의 예금주가 97%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런데 브이아이피(VIP) 고객들인 재력가와 법조인, 감독당국 관련자들은 미리 돈을 빼내었다. 금융비리의 주역인 대주주·임원, 금감원·감사원 등 감독기관 고위 공직자들은 우리 사회 최고 학력의 ‘엘리트’들이다. 특히 수억원의 금품로비를 받아 저축은행 감사를 무마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은진수 전 감사위원은 이른바 3시를 패스한 우리 사회 최고의 엘리트다.

우리는 가난이 범죄를 낳는다고 알고 있다. 도둑, 강도, 절도 등은 대부분 가난과 연관된 범죄들이다. 그런데 이런 범죄는 거의 들추어지고 관련자는 기소되고 감옥을 가지만, 권력층과 엘리트들의 범죄, 기업범죄, 국가범죄는 공개되기도 어렵고, 혹 알려지더라도 뿌리는 그냥 둔 채 흐지부지 마무리된다. 그런데 전자는 피해자 몇 사람에게만 영향을 주지만 엘리트 범죄는 온 사회를 오염시키기 때문에 그것은 국가와 사회에 치명적인 해독을 끼친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보면 우리 사회의 엘리트 범죄는 거의 중증 수준이다.

중국의 사회학자 페이샤오퉁은 “지주는 소작인 없이는 토지에서 수익을 얻을 수 없으나, 소작인은 지주 없이도 땅을 경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논리로 우리는 금융비리에 관련된 모든 힘센 사람들은 예금자나 국민 없이는 수익을 얻을 수 없지만, 후자는 이들 없이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땀 흘리는 사람 없이는 세상은 하루도 굴러갈 수 없지만, 이들의 땀 덕분에 먹고사는 사람들이 없어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반성 없는 이들 엘리트 범죄자들과 그들의 범죄를 변호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은 자신이 똑똑해서 그 지위와 돈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착각한다.

피해자 박성자씨는 “그래도 그들은 배운 사람들 아닌가”라고 물었다. 그렇다.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서민의 상식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 반대다. 배우면 배울수록 더 큰 도둑놈이 되는 한국 사회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우선 이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엄한 단죄와 처벌만이 무너진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길이다. 그다음은 근본과 끝을 착각하고 있는 고위 공직자, 특히 경제 엘리트나 법조인들의 이런 비뚤어진 사고방식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총체적으로 되짚어보아야 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