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8일 화요일

장자연 사건은 우리사회의 현미경

장자연 사건의 관련자들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무혐의처분될 때 이미 알아밨다.
경찰은 조선일보 고위 임원을 비롯한 4명은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고, 조선일보 고위 임원의 아들 등 7명은 혐의없음으로 내사 종결했다.

그렇게 사람이름까지 거명하며 기록까지 남겨도 그들을 모두 무혐의처분할 때, 두껑이 열리기를 두려워하는 거대한 세력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짐작했다. 가장 중요한 증인이 사망했으므로 접대를 받았다고 거명된 사람들이 모두 모른다고 하면 그만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없는 사건도 멀쩡한 사람 잡아다가 두들겨 패서 사건을 만들어낸 검찰과 경찰이, 이 사건에는 분명히 이름이 거론되었는데도 본인이 부인한다고 모두 무혐의처리를 했다. 수사기관이 이보다 더 더티할 수 있는가?

기획사 대표, 대기업대표, 금융업체 간부, 일간신문 기자 출신, 일간신문 대표, 영화감독....

한 힘없는 여성을 농락하고, 전혀 죄의식없이 지금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그들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장자연이 죽이고 싶을 정도의 감정을 느낀 잔인하고 더러운 인간들이 바로 우리사회의 지도층으로 행세하는 그러한 존재들이고, 검찰과 경찰은 그들의 죄악을 덮어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아니 스폰서 검사라는 것이 그들과 공범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장자연은 우리사회의 변경인이다. 힘없고 빽없는 연에인이고 여성이다. 그런 사람을 마음껏 농락해도 전혀 죄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들, 어차피 그녀도 출세를 지향하고 있으므로 접대가 합당한 거래라는 생각이 암암리에 깔려 있다. 이 사건이 그렇게 묻혀버렸는데도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그녀가 이런 변경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여성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예 다방이나 사창가에서 일하는 접대부보듯이 그녀를 보았기 때문에 그녀가 당한 문제가 여성들의 문제라는 것을 느끼지 않았다. 따라서 이 사건은 사회의 주변적 존재에게 가해지는 우리사회의 일상적인 폭력과 같은 궤도에 있다. 그래서 시민사회, 특히 여성들도 어느정도는 침묵과 무관심을 통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간데 일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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