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31일 목요일

일본 원전위험의 정치사회학


이번 일번 원전 방사능 누출사태에 관한 외신보도를 보면서 '혹시나'했는데 '역시나'의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천재'라고 하는 것의 상당수는 '인재'라는 것을, 즉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내가 모든 자연적 피해를 사회적인 것으로 보는 습관을 가진 직업병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지진 쓰나미 때문에 발생한 일본 원전 사고도 단순히 자연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정치사회적 이유 때문에 오늘처럼 큰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 것이다.


1970년대부터 일본 내에서도 원전 건설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계속 있었고, 그 위험성을 경고하는 전문가나 기술자들도 많았지만 그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세계 3위의 원전 생산 국가가 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관료들과 산업체로 묶여진 원전 기득권 집단의 이해관계가 유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향후 20년 내에 14기의 원전을 더 건설해서 현재 에너지의 1/3을 원전에서 충당하는 구조를 1/2까지 높이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그간 일본 정부는 원전의 안전성을 선전하기 위해 원전을 유치하려는 지역의 중등학교 과정에 원전의 안전성과 필요성을 가르치기 위해 2,000만불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지출하기도 했다고 한다.


재생가능 에너지를 개발하고 사용하는 것은 분명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고, 당장의 성과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 인센티브도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산업측의 이해관계자들의 로비는 집요하였으며, 관료들과 정치가들은 그들의 요구에 따라 원전개발에 박차를 가해온 셈이다.


여기서 노동조합과 시민사회의 취약성도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집권 민주당은 2009년에 재생가능 에너지 개발에 대해 공약을 했지만, 기득권 세력들의 반대체 부딪쳐 거의 실행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일본의 에너지 정책이 원전 위주로 박차를 가한 것은 정책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집단의 로비의 산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


에너지 정책의 방향은 결국 정치적 문제이자 시민사회의 역량이라는 점을 새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일본의 사태로 당장 값이 싸다고 덥석 물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만날 수도 있다는 엄한 교훈을 얻게 되었다.


자,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은 재생가능 에너지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으며, 중국 연해주의 핵 발전소 건설 계획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전기를 덜 소비하는 산업구조, 도시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일본이 원전사태로 국가적 재앙을 맞고 있는 바로 그날, 이명박 대통령은 UAE 원전 기공식에 참석한 사실이 우리 국가의 현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11년 3월 29일 화요일

영국의 25만 시위


지난 26일 정부의 예산삭감에 항의하는 영국인 25만명이 런던 시내를 가득 채웠다. 전후 최대규모의 시위라고 한다.

영국 정부는 베테랑급 경찰 2,000명도 해고할 방침이라 한다.
이제 민생치안도 위험수위에 다다를 것이다.
대학 등록금은 천정부지로 솟고, 복지예산 삭감으로 사회서비스는 바닥을 친다고 한다. 예산삭감으로 실직의 위기에 몰린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가장 큰 위험에 처해있지만, 그들의 서비스를 받는 수급자들 모두가 벼랑으로 몰리고 있다.

아나키스트들이 시위를 과격하게 몰고가려하기도 했으나 대체로 평화적인 행진으로 마무리된 것 같다. 만약 예산삭감이 현실화되어 영국 사람들이 자신이 누려오던 사회서비스가 실종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면 또 한번의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표출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11년 3월 27일 일요일

'나가수'를 보고나서


세간에 워낙 말들이 많아 어제 밤 '나는 가수다'를 보았다.


정말 감동적인 무대였다. 가수들이 최선을 다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 경쟁이 무섭구나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 경쟁이 관객과 시청자를 즐겁게 해주는 측면이 있구나 하는 감탄을 했다.


김건모의 재도전의 기회를 준 점에서 원칙을 어긴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2회를 해서 합계 최저점을 얻는 사람을 탈락시키는 방향으로 룰을 정하거나, 한번씩 재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도 좋을 번 했다. 김건모라고 해서 탈락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실제로 이 방송을 본 내 느낌으로도 젊은 가수들이 더 힘이 있고, 가창력도 있어 보였다. 나이는 속일 수 없다.


위험부담을 안고 노장이 이 프로에 도전장을 던진 것에 대해 박수를 쳐주면 된다.


윤도현이 마지막에 멘트를 했지만, 이 프로가 가창력으로 승부를 거는 가수들을 부각시키는 기회가 되면 우리사회에 긍정적인 기능을 할 것 같다. 요즘의 가수들도 가창력이 아닌 기획사의 돈의 힘으로 뜨는 사람들이 많아서 윤도현이 그렇게 이야기한 것 같다.


우리사회는 실력아닌 빽이나 연줄로 지위를 누리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실력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쟁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 탈락자를 배려해 주고 재도전 기회를 주어야 한다.





2011년 3월 24일 목요일

미국과 나토의 리비아 개입, 참 곤란한 시험문제

미국이 리비아 공격의 작전권을 나토에게 넘기는 모양이다.
오바마가 곤란한 처지에서 빠져나오려는 것 같다. 미국의 국내 여론도 그리 좋지는 않다고 한다.
그러면 나토은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계속 공중공격을 해야할까? 그렇게 하면 가다피가 동부의 반군들을 학살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당장은 중지시킬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어질수도 있다.

당장 카다피가 반군진영 가담자를 대량학살할 상황이라고 한다면, 개입이 불가피한 점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1999년의 코소보에 대한 나토의 공격, 1970년대 후반 캄보디아에 대한 미국의 폭격의 전례로 보면 나토와 미국의 개입은 사태를 악화시키코, 오히려 대량학살을 만연시키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반군이 승리를 해서 가다피가 사라지면 문제가 다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학살을 더 증폭시키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

더구나 미국과 나토의 개입은 이중잣대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바레인이나 예멘에서 민주화세력이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기에 대해서는 매우 미온적이다. 이들 나라의 현 정권의유지가 미국의 결정적 이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어쨋든 서방의 리비아 개입은 그들이 아무리 부인해도 제국주의 침략의 양상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가다피의 학정이 정당화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공격에 대해 러시아, 인도, 중국, 독일 등이 반대의사를 보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공격이 침략적 성격을 갖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들이 말하듯이 이것이 분명히 인도적 개입이라면 리비아의 반군을 끝까지 보호할 수 있는 책임성을 수반해야 하며, 일관된 잣대를 갖고 있어야 하며, 리비아 붕괴 이후의 석유이권에 대한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최선의 대안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반대하는 국가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이 개입의 정당성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고, 리비아의 내전은 지속되고 한국처럼 분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쨋든 리비아 사태는 1945년 해방 직후,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개입을 떠올리게 만든다. 미국은 한반도를 분할점령을 하지 말았어야 했고, 일단 남한에 들어왔다면 책임을 졌어야 했다(철수를 해서 북한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미국의 무리한 공중폭력은 북한의 남하를 저지키시는데 별로 기여하지 못했으며 수만명의 아까운 목숨만 앗아갔다. 그리고 미국이 유엔의 결의를 무시하고 38선을 넘어서 북한땅에 올라갔으면 통일을 했어야 했다.( 미국의 한반도 잘못된 개입은 수십만의 목숨과 수백만의 이산가족을 만들어냈다)

한국정부나 한국사람들은 오늘의 이 리비아 문제에 어떤 입장을 취해야할까? 우리의 집단적인 지혜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매우 어려운 시험문제인 것 같다.

2011년 3월 20일 일요일

안기부 X 파일, 대법원

이른바 안기부 X 파일 사건을 보도한 MBC 이상호 PD예게 대법원은 유죄를 선고했다.
1997년 대전 직전 삼성의 이학수, 중앙일보의 홍석현이 돈을 건낼 특정 후보와 검찰 고위간부 이름 등이 논의하는 내용이 담겨있던 파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호 기자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적이 있지만 2심은 "언론이 위법 수집 증거에 접근해 본연의 사명을 달성했지만 통신비밀보호법은 정보의 불법수집과 공개누설 행위를 동일하게 처벌하고 있다"며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고, 급기야 대법원은 이 기자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징역 6월 및 자격정지 1년의 형을 선고유예한 원심을 확정한 것이다.

회사 돈을 빼돌려 불법 정치자금 100억 원을 이회창 후보 측에 제공한 의혹을 받고 있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삼성 측 관련자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과 공소시효 만료 등을 이유로 전원 무혐의 처리했다. 뿐만 아니라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전·현직 검사들에 대해서도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조봉암 사건 등 우리사회에서 중요한 판결이 그러했듯이 1심에서 양심적인 판사들이 무죄를 선고하여도 상급심에서 오히려 형이 가중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대체로 이러한 경우 상급심은 거의 정치적 판결, 즉 권력자와 힘있는 자의 의중이 반영되는 판결을 하게 된다.

대법원이 이상호기자를 유죄로 한 논리는 이상호 기자의 보도 의도가 안기부의 불법감청 녹음 자체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학수 홍석현의 대선 후보에 대한 정치자금 제공 검찰 고위간부들에게 떡깞 전달 모의에 대한 고발이었다는 점, 이 사건이 공중의 생명, 신체, 재산 등 공익에 중요한 침해를 발생시킬 사건이 아니라 8년이 지나 공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 보도로 얻은 이익 가치가 통신비밀보호의 이익가치보다 크지 않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이 판결은 법률언어로 포장되어 있으나 요약하면 불법감청, 녹음된 자료를 공개한 죄가 불법 모의한 죄보다 크다는 것, 즉 도둑질 모의를 고발한 죄가 도둑 모의모다 죄가 크다는 것이다. 도둑 모의는 공적인 관심이 아니고 그들은 비밀을 보장받아야할 개인이며, 고발자는 공익적 관심에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한 건하려는 사적인 관심에서 행동했다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가면 기업의 정치자금 전달 모의는 도둑질이 아니며, 시간이 지나면 더더욱 문제삼을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감히 언론이 이것을 터트렸으니 혼 좀 나 봐야 겠다는 것이다. 누가? 삼성과 중앙일보가? 아니 풋내기 PD가...

이 판결은 스폰서 검사를 폭로 사건이 발생해도 스폰서 검사는 처벌하지 않고 고발한 사람만 괴롭히거나 구속시키고, 삼성 비자금을 폭로해도 삼성은 제대로 수사조차 않고 김용철 변호사만 괴롭힌 검찰과 법원의 판단과 다르지 않다. 기업과 검찰의 불법이 고발되면 그 불법 사실은 조사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고발한 사람을 이리저리 괴롭히다가 처벌근거를 찾아서 꽤심죄로 처벌하는 한국 법원과 법찰의 권력눈치보기 판결의 연장판이다.

나는 대선후보와 검찰에게 떡값주는 모의를 들추어내는 것이 공익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는 그들의 판단에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뛰어난 대법원 판사들이 실제로 이렇게 생각했다고 믿고 싶지 않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들이 배운 법률 기술은 힘있고 많이 가진자 이익 지켜주기 노릇을 위한 논리 훈련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힘있는 자들의 범죄는 모두가 은밀하게 문서한장 남기지 않고 진행될 수 밖에 없으니 '증거가 불충분'할 것이고, 수사의지도 없으니 더욱 무죄가 될 수 밖에.... 그런데 그 범죄가 미치는 영향은 헌정질서를 뒤흔들고 온 국가와 국민을 타락시킬 정도로 그 여파가 치명적이다. 그리고 그들을 고발하는 것도 죽을 각오를 해야할 정도로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너무 큰 사건이니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판결은 그것을 다시 확인해 주고 있다. "어디 감히 삼성과 중앙일보를 고발해 !, 겁없이"
자 이판결로 기업의 떡값모의와 전달은 계속될 것이고, 언론의 고발은 이제 더욱 위축될 것이다.
검사들은 기업의 돈받아 기업편향적 판결을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고, 기자들은 이제 삼성 사건은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야당 후보 돈 주는 것은 죽을 각오를 해야 하지만, 여당 후보 돈 주는 것은 부담이 없다. 아니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대법원까지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비뚤어지고 비뚤어진 서글픈 모습니다.
2011년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2011년 3월 12일 토요일

이건희의 이익공유제 비판의 도착성

이건희, 이익공유제에 대해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자본주의 용어인지 도무지 들어본 적이 없는 말”, “어릴 때부터 기업가 집안에서 자라 경제학 공부를 해왔으나 이익공유제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고, 이해도 안가고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비난했다.

그는 상대방을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로 몰아감으로써 대화를 차단하는 전형적인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세계적 기업의 총수치고는 발언이 너무 저열하고 점잖치 못하다. 그리고 자신의 경제학이 곧 국민의 경제학인양 아주 오만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나라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삼성은 이익을 국가와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이 획득한 회계상의 이윤을 주주들에게 묻지 않고 또 아무런 법적인 근거나 조건없이 무조건 중소기업에 나누어주라는 것은 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발언하지 않거나 못하는 그의 근본적인 태도와 정신자세다. 3 퍼센트의 주식을 갖고 있으면서 100펴센트의 지분을 갖고 있다고 착작하고 있으며, 오너인 자신이 기업과 종업원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 한국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집약하고 있다. 즉 삼성은 국민과 종업원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성채인데도 불구하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일구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은
보험계약자의 푼돈에 기초한 삼성생명을 상장시킴으로써 엄청한 수익을 얻었다.
에버랜드 주식 편법 증여로 자신의 자식에게 수조원을 안겨다 주었다.
고환율로 수천, 수조원의 이익을 거저 얻었다.
비자금 무죄판결로 수천원억의 돈을 실명으로 거저 얻게 되었다.
삼성전자 어린 여성들의 목숨을 담보로 수백원의 돈을 벌게 되었다.
중소기업 납품단가 인하 등 후려치기로 수천억원의 돈을 벌었다.
태안만 기름유출 사건 보상하지 않음으로써 수백억원의 돈을 벌었다.

국민들보고 "정직해져야 한다"는 오만한 발언도 모두 그의 기업과 세계에 대한 도착적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대통령인 이명박이 그에게 설설기니 다른 국민들은 모두 설설기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건희의 러더쉽이 삼성의 성장에 미친 영향, 물론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삼성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 세금, 국민에게 피해를 주고도 갚지 않은 돈, 로비의 댓가로 얻는 유리한 법제와 정책으로 얻는 면세혜택과 환율차액, 상장효과로 엄청난 수익을 얻었다.
이 수익은 이건희 개인의 것이 아니다. 국민의 고통과 눈물이 국민들의 저금통장에서 법의 이름으로 또 정책에 의해 강제로 삼성으로 이전된 것이다.


이건희의 발언도 문제이거니와, 그에 대해 멘트하지 않는 청와대, 그에게 면죄부를 준 법원, 그에게 납작 엎드려있는 국회의원과 관료들, 삼성에 규제의 칼을 들이되면 마치 불경죄를 저지른것처럼 소리치는 한국의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더 문제다. 이들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벼르장머리없는 발언이 나오는 것이다. 국민에게 빚을 지고 있으면서 국민들보고 감사하라고 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2011년 3월 10일 목요일

단상 ( 중동, 북아프리카 청년들을 보고)

중동, 북아프리카의 혁명은 무엇보다도 청년혁명이다.
청년과 기술의 결합이 변화의 물결을 주도한다는 논평이 많다.
청년과 국민을 죽이는 체제를 그냥 두고보지 않겠다는 절규다.
그들은 정치나 사회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던 정말 초짜들이다.

행동하는 것은 가장 진보적인 것이다.
행동하지 않는 것 보다 보수적인 것은 없다.
모든 변화는 행동에서 나온다.
행동하지 않는 것은 현실을 그냥 수용한다는 의미가 된다.
젊은이가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 즉 보수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이다.
진보해야할 사람이 보수한다면 그것은 성장을 멈춘다는 것, 즉 죽음을 준비한다는 말이 된다.
젊어서 이미 죽은 사람, 그런 사람들이 길거리에 유령처럼 다니고 있다.

한국의 청년들도 지금 죽어가고 있다.
30분 피자 시간맞추려 피자집 오토바이 몰고 가다 차에 치여 죽는다.
빈곤 청년들은 게임중독으로 죽어가고 있고, 비정규직 알바 청년들은 차별과 저임금으로 미래에 대한 불투명으로 죽어가고 있다. 일자리 못구한 청년들은 우울증으로 죽어가고 있다.
폭력교수가 시키는 대로 해야하는 현실의 횡포 앞에서 매일 죽어가고 있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벽보고라도 소리치라 했다.
소리칠 용기가 없으면 허공을 보고 주먹이라고 흔들어야 한다.
말도안되는 언론보도를 보고서 댓글이라고 남겨야 한다.
지금 세상이 너무나 편하고 좋은 사람들에게 쓴소리할 용기도 없는 사람은
현실에 불만을 터트릴 자격이 없다.

2011년 3월 8일 화요일

장자연 사건은 우리사회의 현미경

장자연 사건의 관련자들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무혐의처분될 때 이미 알아밨다.
경찰은 조선일보 고위 임원을 비롯한 4명은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고, 조선일보 고위 임원의 아들 등 7명은 혐의없음으로 내사 종결했다.

그렇게 사람이름까지 거명하며 기록까지 남겨도 그들을 모두 무혐의처분할 때, 두껑이 열리기를 두려워하는 거대한 세력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짐작했다. 가장 중요한 증인이 사망했으므로 접대를 받았다고 거명된 사람들이 모두 모른다고 하면 그만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없는 사건도 멀쩡한 사람 잡아다가 두들겨 패서 사건을 만들어낸 검찰과 경찰이, 이 사건에는 분명히 이름이 거론되었는데도 본인이 부인한다고 모두 무혐의처리를 했다. 수사기관이 이보다 더 더티할 수 있는가?

기획사 대표, 대기업대표, 금융업체 간부, 일간신문 기자 출신, 일간신문 대표, 영화감독....

한 힘없는 여성을 농락하고, 전혀 죄의식없이 지금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그들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장자연이 죽이고 싶을 정도의 감정을 느낀 잔인하고 더러운 인간들이 바로 우리사회의 지도층으로 행세하는 그러한 존재들이고, 검찰과 경찰은 그들의 죄악을 덮어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아니 스폰서 검사라는 것이 그들과 공범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장자연은 우리사회의 변경인이다. 힘없고 빽없는 연에인이고 여성이다. 그런 사람을 마음껏 농락해도 전혀 죄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들, 어차피 그녀도 출세를 지향하고 있으므로 접대가 합당한 거래라는 생각이 암암리에 깔려 있다. 이 사건이 그렇게 묻혀버렸는데도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그녀가 이런 변경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여성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예 다방이나 사창가에서 일하는 접대부보듯이 그녀를 보았기 때문에 그녀가 당한 문제가 여성들의 문제라는 것을 느끼지 않았다. 따라서 이 사건은 사회의 주변적 존재에게 가해지는 우리사회의 일상적인 폭력과 같은 궤도에 있다. 그래서 시민사회, 특히 여성들도 어느정도는 침묵과 무관심을 통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간데 일조를 했다.

2011년 3월 6일 일요일

서울대가 영어 어린이집 운영까지?

서울대가 어린이 다문화 교육센터라는 이름을 걸고 영어교육에 중점을 두는 어린이 집을 개원했다고 한다. 이제 국립대학이 아니라 법인이 되었으니 어떤 사업도 다 해도 된다는 생각인 모양이다. 영어교육을 중심으로 하면서 '다문화'라는 말을 쓴 것도 참 우습다. 수업료 58만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정말 한국에서 이야기하는 다문화 가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서울대 교직원을 우선 대상으로 한다고 하지만, 곧바로 서울대 들어가고 싶어 안달을 하는 외부인들을 받을 것이고, 그러면 서울대의 브랜드를 이용하여 돈벌이에 치중할 것이다.

서울대가 이런 것까지 해야하는지 그 한심스러움과 천박함에 말이 막힌다. 이 기회에 서울대 중등 영어교실, 고교 영어교실도 여는게 어떨까? 서울대 논술교실은 또 어떠한가? 이제 국립대학도 아니니 서울대 브랜드를 활용해서 돈 벌 수 있는 것 아무것이나 해도 되지 않겠나? 교육사업에 돈 버는 것이라는 뻔하지 않는가? 서울대 브랜드 활용해서 돈 벌 것은 천지다. 돈으로 브랜드 사고 싶어하는 학부모들은 줄을 섰으니 사교육 시장에 곧바로 뛰어들어가는 것은 어떨까? 이 참에 대치동에 서울대 캠퍼스를 하나 세우는 것도 생각해 봄직한 일이다.

3조원의 국민세금이 고스란히 서울대 법인으로 넘어갔다. 우리는 3조원의 돈을 서울대에 특혜를 주라고 동의한 적이 없다. 3조원의 돈을 다른 대학에 다른 교육기관에, 새로운 연구와 도전적 학문을 시도하는 있는 100개 기관이나 대학에 300 억씩 나누어주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우리나라 '대학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지 서울대에 3조원을 몰아주는 것이 더 나은 대안인지 한번도 논의한 적이 없다.

국민의 피땀으로 모든 3조원의 돈이 아무런 조건없이 서울대로 넘어가고, 서울대가 어린이집 장사까지 하는 것을 우리 국민들이 그냥 눈을 뜨고 지켜봐야 한다. 공정사회란 그런 것인가?

2011년 3월 4일 금요일

돈은 모든 것을 오염시킨다- LSE의 망신살

어제 영국의 명문 LSE ( London School oe Economics)의 총장이 사퇴했다. 리비아 카다피의 아들이 운영하는 재단에서 돈을 받고 리비아 미래의 엘리트 교육시킨 프로그램을 운영한 일, 그리고 서방의 유명 지식인들을 리비아에 방문케 한 프로젝트 운영하면서 수백만 달러의 기금을 받은 일 등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블레어 정부의 최고 이데로로그이자 유명사회학자인 기든스(A. Giddens)가 역시 리비아를 두번이나 방문한 사실이 가이언지에 의해 공개되었다. 그가 총장을 했던 시기였으니 기금 모금을 위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로비단체(Monitor Group)와 리비아 정보기관 총수 간의 협약에 의해 카다피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프로젝트에 참가한 셈이었다. 리비아의 이미지 쇄신 프로젝트 댓가로 이 로비회사는 2백만 파운드 이상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전 LSE 총장인 기든스도 상당한 돈을 챙겼을 것이다.

리비아는 국제사회에 자신의 과격한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상당한 돈을 들인 것 같고, 특히 영국의 LSE는 리비아 정부로부터 상당한 기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리비아는 풍부한 석유자금을 바탕으로 아프리카의 여러나라에도 막대한 지원을 해 왔고, 베네주엘라의 차베츠에게 인권상을 주는 등 국제적 연대를 강화해왔다. 이번에도 차베츠가 리비아 편에 서서 리비아 사태를 중재하겠다고 나선 것도 모두 카다피의 이러한 외교전의 성과인 것으로 보인다.

누두도 LSE가 리비아의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가다피에게 이렇게 큰 돈을 받고 그의 화장에 도움을 준 행동을 보면 영국의 명문이자 세계의 명문인 LSE는 자신의 가치와 철학과는 맞지 않더라도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한다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것은 대학의 가치와 이미지에 큰 손상을 준 행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가다피가 금력으로 이미지를 사려 한 것도 문제이지만, 그의 외교에 놀아난 대학들이나 세계적 석학의 처신도 한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가다피가 저항하는 자국민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을 쏴대고 폭격을 하는 것을 보고 이들이 무어라 말할지 참 궁금하다. 가다피처럼 저항세력은 알 카에다라고 말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주의를 배신한 외세의 압잡이들이라고 공격할 것인가?

2011년 3월 3일 목요일

대형 로펌의 입법참여,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경향신문(2011. 3.4) 보도에 의하면 김앤장 법률사무소 같은 민간 대형 로펌이 법 조문화 등 정부 입법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법제처는 3일 법·제도 선진화 차원에서 국정과제 및 주요 정부정책 관련 정부 법률안에 대해 ‘사전 법적 지원제도’를 처음 도입한다고 밝혔다. 이는 복잡한 입법 절차로 인한 정부 부처의 부담을 덜고 입안 단계부터 입법을 지원토록 한 것이다.법제처는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 각 부처를 대상으로 사전입법 지원을 희망하는 법률안의 수요조사를 실시, 9개 부처 25개의 법률안을 지원 대상으로 선정·통보했다. 이 가운데 환경부·국토해양부 등 5개 부처 10개 법률안은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보건복지부 소관 ‘영·유아보육법 개정안’ 등 2개 부처 8개 법률안은 태평양 법률사무소가 담당하게 됐다. 정부법무공단은 입법 전문가가 부족 등을 이유로 입법지원 기관에서 배제됐다.


이들 민간 로펌은 향후 △법률안의 입안 지원 △부처협의·입법예고·규제심사 등 입법과정에서 법적 검토와 자문, 조문화 △국회 심의과정에서 지적된 법적 문제의 검토·자문 △외국 입법례 조사·연구 등에 대한 지원을 하게 된다. 정선태 법제처장은 “정부 입법에 대한 전문적·실질적 법적 지원을 통해 법률안의 품질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법률안의 품질 개선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법률안에 누구에 의해 제출되는가 문제다. 정부 부처가 말하는 법안은 거의가 대기업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것들이 많다. 그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들 대형 로펌은 대기업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입법안을 만들 것이다. 로비가 합법화되지 않은 우리 나라 실정에서 입법 과정의 이익집단의 개입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는 큰 과제 중의 하나이기는 하다. 그러나 상당한 법률지식으로 무장하고 외국의 입법례의 정보까지 가진 이들 대형 로펌이 국회의 사무처가 해야할 입법안까지 만들어낸다면 이제 서민입법, 노동입법, 시민입법의 설자리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도 이미 이들 로펌은 입법과정에 상당히 개입해 왔다. 이번의 조치는 단지 그것을 제도화, 명분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시민단체가 변호사, 교수 등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개혁입법을 만들어도, 이들 로펌들의 로비에 의해 진입도 못하고 좌절될 가능성이 커졌다. 어찌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