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28일 월요일

3.1 절에 생각하는 친일파

이용구 송병준 등 한일합병을 추진했던 일진회의 원래 명칭은 '진보회'였다. 이들이 추구했던 것은 청국과의 낡은 관계의 단절, 수구 보수세력과의 단절을 통해 신 문명으로 나아가자는 것이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글로벌 스탠다드, 규제완화나 시장경제의 우위를 외치는 목소리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들에게 일본은 신문명이었고 시대의 조류였다. 그들이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은 신문명, 약육강식의 논리는 결국 제국주의 침략의 다른 표현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 제국주의가 그들의 권력과 부를 뒷바침해주는 한 그들은 그 제국주의의 품에 안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박정희가 만주 신경의 군관학교로 간 이유는 "칼을 차고 싶어서"였다. 즉 '압박의 설움'을 칼을 차는 지위를 얻음으로써 만회하려 한 것이다. 박정희라고해서 왜 일본인의 차별과 압제가 좋았겠는가? 단지 그는 정치 상황을 전면적으로 극복하려하기 보다는 그 상황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자신이 덜 차별을 받는 존재가 되거나 그들의 권력권에 들어감으로써 상황을 개인적으로 돌파하려 했을 따름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용하는 친일파라는 말은 사실은 적절치 않다. 권력과 부를 누리고 싶어했던 사람들, 일본에 협력해서라도 자신의 권력과 부를 유지하려 했던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모든 사람이 그랬을까? 그렇지는 않다. 일본인에게 협력해서 권력과 부를 누리는 것은 개나 돼지와 다름없는 일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았고 실행에 옮긴 사람은 더욱 드물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그들에게 협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 경찰이나 군 장교가 된 것은 다르다. 그것은 압제의 첨병이 선 것이기에 양심을 가진 사람은 차마 하지 못하는 일 중의 하나였다.

일제 시대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독립투쟁을 한 사람들의 표준을 갖고서 왜 그렇게 하지 못했는가라고 질타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 일이다. 그들에게 민족을 배반했다는 비난을 퍼붓기 보다는 '권력과 부'를 추구하는 일에 최소한의 양심과 염치가 있었는가라고 묻는 것이 오히려 적절하다.

사지어도 치악의악식자 미족여의 (士志於道 恥惡衣惡食者 未足輿議 )

공자님 말씀이 "선비가 도에 뜻을 두고도 거친 음식과 나쁜 옷을 입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더불어 일을 도모할 수 없다" 고 말했다.

즉, 겉으로는 거창한 이념을 내세우거나 세상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는 공인이었으면서도 실제로는 거친음식과 나쁜 옷을 견딜 수 없어했던 사람이기에 자신이 하는 일이 나라를 팔아먹도 동포를 고통에 빠트리는 일이라 할지라도, 자신에게 좋은 옷과 맛난 음식을 제공해 주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 중 가장 악질적인 인간은 파시스트, 반인도적 범죄에 가담한 존재로서 처벌되었어야 하지만, 대다수는 그냥 공직에 등장하지 않도록 막고 생업이나 도모하도록 하는 것이 맞다. 박정희의 경우도 그냥 군인으로 남았으면 훨씬 좋았을 인물이다. 그가 일국의 대통령이 되기에는 매우 적절치 않은 인물이었다. 보통의 관리나 군인은 그렇지 않아도 되지만 일국의 대통령이나 정치 지도자는 적어도 '도'를 추구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거친 음식을 참을 수 있어야 하는 존재다.

한국에서 친일파 문제 거론은 이런 현재적 의미를 상실한채 도덕적 비판의 대상으로만 언급되고 있다. 과거의 친일파를 매도하기 보다는 오늘 이명박 정부 하에서 '맛난 음식과 좋은 옷'을 누리기 위해 다수 국민을 고통과 죽음에 빠트리는 일을 앞장서서 하고 있는 정치가와 관리들, 바로 그들을 문제삼아야 한다. 군사독재 하에서 그런 일을 하다가 지금도 잘 나가고 있는 사람들, 바로 그들이 누구인지 밝히고 그들이 공직에 남아있지 못하로독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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