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세르의 이집트는 박정희 시절 우리 청년들에게도 본받을만한 하나의 사례였다.
신상초가 쓴 [나세르와 아랍혁명]은 당시 학생들의 필독서 중의 하나였다.
"어떻게 이집트는 외세의 간섭을 배제하고 민족민주 혁명에 성공했는가"가 우리의 관심거리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나세르가 죽고 사다트가 등장하면서 이집트는 우리의 관심권에서 멀어졌다.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은 이후 이집트는 중동의 미국 교두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의 최우방국인 이집트가 30년동원 무바라크의 철권통치 하에 있었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하면서 그것을 후세인 독재로부터 이라크를 해방시킨다는 그럴듯한 담론으로 포장하여도 우리는 더 심각한 독재국 이집트를 미국이 그렇게 절대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별로 주목을 하지 않았다.
한국에는 제대로 된 중동전문가가 없다. 언어,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있어도 정치경제사회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 언론 중에서 중동을 제대로 보도하는 언론도 찾기 어렵다. 미국의 입만 처다보거나, 미국의 세계관으로 중동을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의 중동인식은 한심한 수준이다. 그런데 튀지지에 이어 이집트가 우리를 깨어나게 했다.
드디어 무바라크가 사임했다.
18일의 투쟁이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300여명의 희생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이집트는 역사의 새 지평을 열었다.
이것은 아랍권에서 시민의 힘으로 권력을 붕괴시킨 드문 사례가 되었다. 아랍은 민주주의의 사각지대다. 아직도 국왕이 통치하는 나라들이 여럿있을 뿐더러, 인권침해도 매우 심각하다. 그런데 전통적인 이슬람 지배가 가장 약한 이집트에서 독재의 고리가 끊어졌다. 그 파장은 튀니지의 민주화보다 훨씬 클 것이다. 요르단,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독재국가의 국왕들이 떨고 있을 것이다.
아니 가장 크게 떨고 있는 존재는 미국일 것이다.
이집트는 아직 긴급조치 하에 있다. 군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다.
상징적 독재자는 물러갔으나 그가 만든 악명높은 2007년 헌법과 계엄령은 살아있다. 군은 물리력을 가진 실질적인 최고의 권력체다. 그리고 수 많은 기득권 세력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다. 미국은 이집트에 반미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근본주의 세력이나 이슬람 형제단의 힘은 미약하다. 30년 철권통치가 유지되어오는 동안 저항세력은 거의 궤멸되었고, 노벨상 수상자인 엘바라데리 정도가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우리의 60년 4.19 데모처럼 이승만이 물러가는 1막은 종료되었으나 진정한 민주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둘러싼 각축이 시작되는 2막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따름이다. 한국의 2막은 민주당의 혼란과 군부 쿠데타로 마무리되었다. 이집트의 2막은 어떻게 될까? 대안세력이 없는 가운데,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군부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7,80년대가 아니므로 군부가 전면에 등장하여 군부독재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가 직면한 심각한 불평등과 빈곤, 부패,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집단이 없는 상태이므로, 한국의 1960년 처럼 대중의 불만은 폭발할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선거로 특정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정치적 안정을 확보하지 못할 것이다. 그 경우 군부가 온건한 민간지도자 배후에서 섭정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이집트는 향후 적어도 10년 동안 심각한 정치적 갈등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군부를 배후에서 조종하거나 친미 지도자 육성을 위해 전력을 기울일 것이다. 우선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이 파기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어쨋든 이라크의 시민혁명은 미국의 중동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고, 이제 이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록 이집트가 산유국은 아니지만, 사우디가 흔들린다면 이제 미국은 더욱 치명적인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당장 알제리, 예멘, 요르단 등의 향배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결국 미국에 기대어 중동 석유 자원 선을 대고 있는 한국은 어디로 가야한 것인가우리는 이 질문을 본격적으로 해야할 시점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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