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23일 수요일

리비아의 비극

지금 50전후의 사람들은 30여년 전에 한국에 상영되었던 '사막의 라이온'이라는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리비아의 전설적인 독립영웅 오마 목타르의 일대기를 그린 매우 감동적인 영화였다. 카다피는 자신이 오마 목타르의 후예임을 자랑했고, 우리세대가 갖고 있던 리비아에 대한 이미지도 바로 외세를 추방하고 독립을 쟁취한 오마 목타르와 겹쳐 있었다.

나는 그의 혁명 교본 '그린 북'을 1982년에 번역한 적이 있는데, 그 책은 인류 최초의 직접민주주의가 리비아에서 실천되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실제 리비아에 가보지 않아서 과연 리비아에서 미국식 민주주의와 현실 사회주의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가 실천되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그가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더구나 27살의 청년 대위가 거의 무혈 쿠데타에 성공해서 군인복장을 하고 사막의 천막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움과 감동을 주기도 했다.

그 이후 리비아는 나의 기억,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팬암기 폭파 사건 등을 통해 강경한 반미노선을 계속 걷고 있다는 정도의 이미지만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슬람권의 연대나 반이스라엘 노선을 명확히 않는 것으로 보아 서방과 모종의 밀월관계에 있다는 의혹도 있었다( 그것은 사실로 확인되었다)

하여튼 카다피 아들의 기자회견에 이어, 가다피 자신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거의 천여명의 시위대를 학살한 지도자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들이 자신감에 가득차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내전의 발발'을 경고하는 그의 아들의 기자회견은 인민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들이 마치 나라의 수호신인것처럼 말하는 것 같아 매우 오만방자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리비아는 이집트와 여러가지 점에서 많이 다른 것 같았다. 카다피는 스스로 혁명가임을 자처하는 확신범이다. 여러 부족이 결집된 부족국가여서 그렇겠지만, 반정부 시위를 부족간 갈등으로 이해하고, 자신이 물러나면 부족 간의 내전이 발생해서 결국 국가가 공중분해된다고 협박하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 반미, 반외세 혁명의 순교자가 되겠다고 선포하고 있기 때문에, 공권력이 국민들을 학살하고도 저항세력을 외세의 압잡이라고 역공을 하고 있다.

즉 가다피와 그의 자식들은 그들의 권력욕을 혁명의 대의로 교묘하게 은폐하고 있으며, 실제로 자신이 국가의 수호신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것이 바로 인근 튀니지나 이집트와 달리 리비아에서 공중폭격까지 동반한 진압작전( 실제로는 대량학살)이 발생한 이유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혁명의 대의로 포장된 국가권력은 더욱 무섭다. 모든 저항세력을 반혁명 분자로 몰아부치고 스스로의 입지를 계속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대의를 갖고서 출발했더라도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할 수 밖에 없다. 서구 자유민주주의도 많은 한계를 안고 있지만, 제3세계 민족사회주의 역시 실패한 모델임이 수 차례 입증되었다. 폭력을 독점한 국가는 그 폭력을 언제나 인민들을 향해 행사할 수 있는 흉기로 돌변할 수 있다.
인민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권력만이 인민의 생명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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