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6일 월요일

지식인

리영희 선생을 회고하는 한겨레 좌담에서 고은 선생이 시인다운 통찰력있는 발언을 했다.

 

지식인이라는 것은 ‘아는 자’다. 아는 자는 본질적인 계급이 아니라, 모르는 자와 함께 동행한다는 전제 아래에서 아는 자가 되는 것이다. 모르는 것을 알게 하고 잘못 안 것은 고쳐주는 것은 아는 자의 사명이다.

 

"모르는 자와 동행하는 전제에서 아는 자가 된다"는 표현이 좋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것이지만, 시인이 말하니 의미가 새롭다. 즉 아는 자의 앎은 모르는자와의 동행에서 나오는 것이다. 내 식으로 표현하면 "어렵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 속에 앎이 있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다른 글에서 쓴 적이 있다. 지식은 세상에 골고루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구석에 있다. 어두운 구석은 세상의 일부가 아니라 세상의 전부다. 어두운 곳에서 보면 세상이 모두 잘 보이지만, 밝은 곳에서는 세상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모르는자, 즉 고통받는자와 동행하는 것은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한 필요 충분조건이다. 세상이 무엇을 감추려할 때, 바로 그 감추려하는 데 진실이 있다는 이야기다.

 

리영희 선생은 바로 이 감추려하는 것을 캐는데 본능적 감각과 능력을 가진 분이고, 그 일에 희열을 느낀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학자라기 보다는 기자의 본능을 갖고 있고 지식인으로서의 사명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모르는 자와 동행하고 어두둔 구석을 밝히려는 점에서 기자와 학자의 일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다만 방법이 다를 뿐이다. 오늘의 기자와 학자들의 타락이 어디서 오는지는 명백하지 않는가?

 

노자식 화법으로 말하자면

말해진 것은 진실이 아니며, 진실은 말해지지 않는다.

 

말해지지 않은 진실은 모르는 자의 고통 속에 체현되어 있지 언어화되어 있지 않다.

언어는 단지 그 근처에 가서 그것을 어루만지는 시늉만 할 따름이다.

여기서 지식인들 역시 결정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그 한계를 자각하고 그것을 돌파하려 최대한 노력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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