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7일 금요일

[세상 읽기] 불처벌 / 김동춘


2011년 10월 3일, <한겨레>에 올라온 연재 글 입니다. 본문을 보시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990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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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관·사법부·정치권·언론이
가해 쪽과 공생관계일 때
불처벌은 관행이 된다

영화 <도가니>로 온 나라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관객들은 족벌 학교법인, 경찰과 검찰, 지역사회 등 힘있는 세력의 유착에 의해 아무런 방어능력 없는 장애 어린이들의 인권이 처참하게 유린되어도 가해자는 면죄부를 받게 된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치를 떨고 있다. 물론 소설이나 영화는 사실보다 과장된 점이 있고, 실제 당시에 그런 유착이 있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가해자는 공소기각 처리되거나 ‘공소권 없음’으로 면죄부를 받았고 1심에서 실형을 받은 사람도 2심에서는 모두 집행유예 받은 반면, 오히려 사건을 고발한 교사는 파면이라는 보복적 처벌을 당한 것은 엄연한 진실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단지 아동 성폭력 사건도 아니며, 장애인 인권 문제만도 아니다. 관객들은 아무런 힘도 발언권도 없는 사람들은 이렇게 당해도 결국 찍소리 못하고 살거나 항의하다가 결국 경찰의 물대포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이 비통한 현실에 분노하였으며, 족벌 비리사학과 같은 ‘동토의 왕국’은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세계로 버젓이 남아 같은 비리를 계속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공감하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경찰·검찰·법원 등 공공기관이 강자의 범죄에 대해서는 대체로 ‘불처벌’ 혹은 솜방망이 처벌의 결론을 내리는 영화의 장면이 실제 현실과 같다고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가 세간의 여론을 뒤흔들자 정부도 전국 복지시설 실태조사를 한다고 난리법석이고, 국회도 특수학교에도 개방형 이사를 도입하자는 이른바 ‘도가니법’을 다시 끄집어내려 한다. 그러나 일시적 분노와 임기응변식 대응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 정부에서 우리는 비리 혐의가 있는 힘있는 사람들이 무죄, 사면 복권되는 일을 여러 번 지켜보았고, 숱한 비리를 저질러서 쫓겨났던 사학 관계자들이 법원과 교육부의 합법적 결정에 의해 속속 복귀하는 것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

사회는 ‘주고받음’으로 유지된다. 사회학자 마르셀 모스는 <증여론>에서 선물을 받은 사람이 그에 따른 보답을 하지 않으면 사회관계가 단절되고, 서로는 잠재적 전쟁상태에 돌입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쪽이 명백한 피해를 입었는데 책임지거나 처벌받는 사람은 없고 피해자는 아무런 보·배상을 받지 못할 때, 관계는 깨질 뿐만 아니라 갈등이 폭발하여 사회는 실제적 전쟁상태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광주 5·18 당시 최고 실세였던 허화평처럼 “5공화국은 거대한 역사의 물결”이라고 정당화하고, 당시 신군부의 핵심이자 이후 5공 시절 비자금 조성에도 가담한 안현태처럼 처벌을 당하기는커녕 죽어서도 국립묘지에 묻힌다면 우리는 그런 나라를 어떻게 봐야 할까?

<도가니>의 성폭력을 고문, 학살, 간첩조작, 군대 내 폭력, 부당해고 등으로 바꾸고, 그 사건의 피해자인 장애 어린이를 한국전쟁기 피학살자, 5·18 피해자, 군사정권하의 고문피해자, 군 의문사 관련자, 납북어부·재일동포 등 간첩조작 희생자, 철거현장 폭력 피해자, 부당해고 노동자로 바꾸면 어떨까? 과연 이것들이 모두 전혀 다른 문제일까? 폭력은 언제나 자기방어능력 없는 약자들이나 사회적으로 주변화된 사람들에게 향해지고, 족벌 사학처럼 아무런 내부 감시세력이 없는 곳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수사기관·사법부·정치권·언론이 가해 쪽과 공생관계일 때, 불처벌은 관행이 된다.

지난 9월30일 광주 국감장에서 ‘도가니’ 사건을 고발했던 교사가 나와 울먹이면서 “아이들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고 한 말은 사실 우리 사법부와 국가가 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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