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13일 화요일

한명숙과 검찰

한명숙과 검찰

 

“너 공산당이지. 네 남편과 어떻게 접선했지? ... 답변해라. 따귀를 맞고 구둣발로 짓밟히며 커다란 야전각목으로 온몸을 두들겨 맞았는데 어디서 어떻게 맞았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 나는 자살하고 싶었다. 나는 선생님께서 하라는 대로 다하겠다며 무릎꿇고 두 손으로 빌었다”

이것은 1979년 유신말기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으로 연행되었던 20대의 한명숙이 변호사 앞에서 실토한 내용이다. 박정희 정권의 충실한 하수인 중앙정보부는 ‘용공써클’을 적발한다는 명분으로 이 사건 관련자들에게 갖는 고문을 다했으며, 한명숙은 박정권 말기의 권력의 칼에 베어 이처럼 큰 상처를 입은 바 있다. 1980년 1월 항소심에서 ‘용공써클’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이 내려졌으나, 한명숙은 2년 6월의 징역을 살았다.

30여년이 지났다. 그 동안 민주화가 되었고, 한명숙은 총리의 지위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전직 총리 한명숙은 뇌물수수 의혹을 받아 검찰의 수사를 받았으며, 검찰은 오직 곽영욱 대한통운 사장의 오락가락 하는 진술 외에는 다른 어떤 증거도 제출하지 못하여 결국 한명숙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40년에 중앙정부가가 한 역할을 오늘 검찰이 담당하였다. 옛날처럼 고문이라는 방법을 동원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고문 이상의 불법, 편법 수사로 그녀의 범죄사실을 입증하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명숙 대신 곽 사장이 고문에 가까운 수사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곽사장의 진술에 의하면 그는 “심장이 좋지 않은데 조사가 끝난 뒤에도 새벽 1~2시까지 남아 검사와 면담을 했다”, “(몸이 아파서) 살기 위해 진술했다”고 말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내용은 “(검사가) 호랑이보다 무서웠다”고 말하며 법정에서 울먹이기까지 했다. 즉 검찰은 극히 심신이 피로한 상태의 환자를 한명숙에게 돈 주었다는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위압적 방식으로 조사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우리는 지난 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의 모욕적이고 위압적 수사, 그리고 진행 중인 수사 내용을 언론에 미리 흘려서 여론재판을 통해 피의자를 망신을 주는 일들과 관련되어 자살한 사실을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검찰의 이러한 수사 관행은 70,80년대 중앙정보부가 수없이 자행했던 고문수사보다는 ‘양반’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일국의 대통령이나 총리, 기업의 총수를 지낸 사람에게 이러한 수사는 죽음과 같은 고통을 주는 일이다.

과거 국정원, 보안사 등 공안기관은 안보의 이름하에 멀쩡한 남북 어부 출신들이나 재일동포 학생들을 간첩으로 만드는 불법적이고 반인도적인 자행했다. 그런데 오늘의 검찰은 잠재적 시장 후보를 만신창이로 만들어 그녀를 정치적으로 매장시킨다고밖에 이해할 수 없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확인되지 않는 사실을 특정 신문에 흘리는 행위, 1심 판결을 하루 앞두고 별건 수사에 착수하는 행위, 곽 사장의 횡령 등 다른 범죄의혹에 대해서는 일체 수사를 하지 않고 오직 한명숙 뇌물 건에만 매달리는 행위, 5만불의 사용처가 불명확하자 한명숙의 유학간 아들의 이 메일까지 뒤져서 유학비 조달과 꿰맞추려는 행위, 공판과정에서의 여러 편법, 불법 행위 등, 한 나라의 정의를 세우는 일을 담당하는 공기관이라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무리한 행위를 수없이 반복하였다.

물론 법 앞에 성역은 없고, 대통령을 지낸 사람도 잘못이 있다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대통령과 집권당 인사들에게 제기되는 수많은 불법 의혹에 대해서는 전혀 수사할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 다시 살아날 우려가 있는 ‘과거 권력’에 대해 이렇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행태를 누가 납득할 수 있을까? 30년이나 지금이나 언론은 공안기관이 흘린 내용을 기정사실인양 대서특필하여 재판도 하기 전에 유죄 선고를 내리고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자살을 하고, 총리를 지낸 사람도 이렇게 망신을 당하는 데, 일반 국민들에게 과연 검찰과 언론은 어떤 존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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