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7일 수요일

군복무중 사고와 군의 책임

천안함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2000년 러시아 핵 잠수함 사고와 한국의 여러 군 내 사망사건 특히 군의문사 사건이었다. 두 사건다 국가가 군 내 사고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복무중인 군인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 침몰 사건은 당시 영국 등 외국이 구조를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이를 거절하여 118명의 수병이 전원사망한 사건이다. 한국의 군 내 사망 사건, 의문사 사건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일이지만 적어도 과거 한 해 300여명 이상의 복무 중인 병사등이 자살, 사고 등으로 사망한 일을 말한다. 당시 러시아는 군사기밀 등의 이유로 외국의 구조를 거절하였는데, 물론 외국이 도움을 주었다고 해도 이들을 살릴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국가가 기밀호보를 이유로 국민의 생명을 얼마나 하찮게 취급하는지를 보여준 좋은 사례였다.  한편 여러 건의 군 의문사 사건역시 대부분의 경우 군은 군의 특성을 강조하면서 전문가, 민간이나 유가족들의 접근 자체를 차단하고 자체 조사를 실시하다가 의혹과 불신만 자초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 때문에  군의문사 위원회까지 만들어진 것도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실제 이번 사건을 보는 민간 전문가나 군 의문사 유가족들은 하나같이 "천안함 침몰 사고에 대한 군 당국의 태도가 과거와 똑같다"고 지적했다. 이번 UDT대원 한주호씨 사망 사건의 경우도 사람들은 군이 잘 대응했다면 살릴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복무 중 사망한 군인을 국민적 영웅으로 미화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복무 중 불의의 사망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피치못할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그것이 억울한 희생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또 궁극적으로는 희생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나 한국이나 국방과 군의 업무가 민간이 접근할 수 없는 성역으로 간주된다는 점이 공통되고, 군사작전이나 안보의 이름 하에 국민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온 경력이 있는 나라들이다. 80년대 병사로 복무한 경력이 있는 필자는 군에서 사망하면 "개 한마리 값도 못받는다"는 공식에 매우 익숙하고, 실제로 말단 포병으로 복무하면서 나 자신이 일개 도구로 취급되는 일을 수없이 경험하였다. 그후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나 군이 병사의 생명과 인권을 대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그 이유는 바로 군의 문민화 작업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즉 미국은 이미 60년대에  민간인이 국방부 장관을 맡기 시작했고, 따라서 군의 모둔 활동은 민간의 감시와 통제를 받았고, 업무 자체도 민간을 능가하는 효율성을 과시하였다. 이번 천안함 구조 과정에서 지금까지의 구조 성과도 모두 민간이 거두었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다. 국가 안보의 이유 때문에 군이 공개할 수 없는 기밀스러운 정보를 보유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더라도, 이번사건 처럼 초기부터 이렇게 허둥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나, 군인과 민간인의 생명 보호에 이렇게 둔감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틀림없이 한국 군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음을 짐작케 해 준다. 특히 이 정부 들어선 이후 그 동안 착착 진행되던 군의 문민화 작업은 완전히 뒷걸음치고 있다. 군이 성역이 되면 부패를 낳기 마련이고, 군은 국민에게 책임을 질 수 없다. 그런데 자식을 책임지지 못하는 군에 안심하고 자식을 맡길 수 있겠는가? 나 자신이 병사로 복무했고, 지금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의 심정에서 이 글을 쓴다. 청와대 벙커에 모인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의 힘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다면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들 자신이 군을 불신하고 있는데 누가 군을 신뢰 할 수 있겠는가? 이번 사건의 진실이 밝혀져야 모든 판단을 내릴 수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사건 대처과정을 보면 이러한 생각들을 지울 수 없다. 북한이 어뢰를 발사해서 천안함이 침몰했는지는 아직 알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사건의 처리에서 보여준 이명박 정부의 무책임, 무성의, 미숙함이 모두 다 면죄부를 받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한번 억울하게 사망한 군인들을 깊이 애도하면서, 앞으로 이런 사고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지혜를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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