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15일 금요일

자살, 우울증, 사회운동이 사라진 공간의 쓸쓸함

서울대 출신이 취업이 안된 것을 비관하여 자살을 했다고 한다.
"자신의 이러한 모습이 적응이 안된다"고 유서에 남겼다고 한다.
승승장구, 남들의 부러움, 자랑할만한 스펙, 좋은 직장의 기대감을 가진 그가 고시에 불합격하고 취업에 실패한 이후 자신을 추스릴 수 없었나 보다.

기대와 현실이 불일치하면 기대가 잘 못되었거나 현실이 너무 비참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이 경우는 전자에 가까울 것이다. 그의 현실은 그만 겪고 있는 개인적 현실이 아니라 오늘 청년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현실이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개인적 현실로만 이해했다.
사실 주변의 기대도 잘못된 것이다. 서울대와 조지워싱턴대학의 스펙을 오직 자신의 취업과 복리를 위해 사용하라고 부추긴 모든 사람들의 기대, 그것이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자살과 우울은 언제나 세상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데서 기인한다. 그런데 세상이 자신을 인정해주리라는 기대가 과도한 경우도 있지만, 최소한의 생존(인정)만을 요구하는데도 주변이 전혀 눈길조차 주지 않은채 굶어죽거나 고통받도록 내버려둘 때 발생한다. 노동자들의 자살은 후자에 가깝고, 학생들의 자살은 전자에 가깝다.

이 모든 풍경을 초래한 구조적인 요인은 바로 공감의 실종, 과도한 개인화와 출세 부추김, 그리고 사회운동의 실종이다. 모든 문제를 개인화시키고, 개인이 성과를 독식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실패도 개인화된다. 고통받는 남에게 눈길한번 주지 않는 사회, 눈길을 주지 않도록 부추기는 사회에서 남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던 개인들은 결국 궁지에 몰려 개인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심리상담이다, 위기극복 훈련이다 야단 법석이다.
심리상담사, 사회복지사들이 바빠졌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을 건드리지 않는 이 모든 처방은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오늘 개인의 출세와 복리를 위한 교육의 근원을 흔들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을 오직 자신의 생존만을 위한 경쟁과 충성으로 몰아넣은 기업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비정규직이 죽으면 정규직도 필연적으로 죽는다.
대학이 죽었는데 학생들이 생명을 꽃피울 수 있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