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22일 토요일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1주기

노 전대통령의 서거를 마음 속 깊이 추도합니다.

 

아래의 글은 11년 전 노무현 전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이전 여러번 낙선으로 정치적으로 가장 곤경한 상태에 빠졌을 때, 그의 거사를 격려하기 위해 쓴 칼럼입니다.

 

노무현의 투쟁 ( 한겨레 21, 1999.3.18)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정치는 ‘현실’이라고들 말한다. 이런 말에는 정치는 지나치게 이상을 추구하거나 이념에 집착하기보다는 ‘가능성’과 ‘확률’을 추구해야 한다는 뉘앙스가 포함돼 있다. 더 나아가면 정치는 권력을 잡는 것이 지상목표이며 따라서 도덕이나 양심이 중요하기는 하나 그것과 권력장악이라는 목표가 충돌할 경우에는 권력을 잡기 위한 현실적인 방책이 우선 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최대의 거사, 3당합당 이탈


그런데 정치가인 노무현의 행동은 이러한 공식을 거슬러가고 있다. 그는 16대 총선에서 가만 있어도 당선이 보장되는 현 지역구인 종로를 버리고, 당선이 대단히 불투명한 부산·경남을 택하겠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88년 국회의원이 된 뒤 계속적으로 ‘돌출적인’ 행동을 해왔으며, 그것으로 인해 오랜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의 최대의 거사는 뭐니뭐니해도 90년 3당합당에서 김영삼을 따라가지 않은 일이다. 그로 인해 그는 92년 총선에서 부산 지역구민들에게 버림받았고, 95년에는 ‘지역등권론’을 내세운 김대중 편에 서서 그의 ‘후광’을 입고 있다는 이유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만하면 그의 행동은 ‘정치는 현실’이라는 공식을 거슬러가다 번번이 실패한 대표적인 정치가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의 문제는 그의 ‘외로운’ 선택이 직업정치가로서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점이며 알 만한 지식인들이나 언론도 그 점을 제대로 평가해 주지 않으면서 혼란만 가중시키는 정치평론을 생산해낸다는 점이다. 3당합당은 분명 평화적인 쿠데타였으며 반민주, 반호남, 반민중의 폭거였다. 따라서 그것에 반대한 노무현을 비롯한 극소수의 정치가들의 행동은 크게 칭찬해야 할 일이었다. 우리 국민들이 생각있고 각성된 국민이었다면 이러한 지역구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이 쿠데타에 가담한 사람들을 다음 총선에서 낙선시켰어야 했으며, 우리 정치사의 가장 비극적인 날로 90년 1월21일을 기록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호랑이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가야 한다”는 김영삼의 현실론을 인정 혹은 찬양해 주었고,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 결과 1997년 말 우리는 어떻게 됐는가! 현실을 추종한 정치가들의 행태는 이렇듯 우리 국민을 고통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지 않았는가?

정치는 분명히 현실이다. 당선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당선을 위해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보스 뒤에 줄을 서야 하고,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역구 ‘부자’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정치가가 그렇게 해야만 살아남는 현실은 비극이며 그러한 단순한 공식만을 추종하는 정치가를 둔 국민은 불행하다. ‘당선을 목표로 하는’ 정치가는 2류, 3류 정치가는 될 수 있어도 일류 정치가는 될 수 없다. 정치는 현실이지만 동시에 정치는 이상과 희망을 주는 행위이며 최대의 교육적 행위이다. 오늘 우리의 국가적 불행은 ‘현실’만을 추구한 정치가들의 행동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고 무엇인가? 오늘과 같이 정치가 국민에게 짐만 안겨주는 상황은 노무현과 같은 행동을 ‘비현실적인 것’으로만 몰아붙이는 풍토에 기인하고 있으며 ‘이상’을 구하겠다던 ‘운동권’출신 정치가들이 초심(初心)을 너무 쉽게 버리고 ‘현실론자’로 변신한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낙선을 각오하고 할말 다한 ‘운동권’출신 정치가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도 못한 일


그의 행동에 대해 ‘부산의 민심’을 잡아 “차기 구도를 노리는 포석이다”라는 비판적인 해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일단은 “노동자들에게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여당 정치가들의 장외집회를 보고 결단했다”, “지역구도는 정면돌파로만 깨진다”는 그의 동기의 순수성을 인정하고 싶다. 망국병인 지역주의 극복 없이 우리의 21세기가 없다고 본다면, 낙선을 각오하고서 지역주의와 정면대결해온 그의 정치이력은 우리에게 작은 희망을 준다. 그와 독대한 김대중 대통령이 “아직도 이런 정치가가 있는가”라고 말했다지만, 우리는 “왜 이런 정치가가 여전히 드문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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