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5일 목요일

[세상 읽기] 장외 선수들의 출전 채비를 보며 / 김동춘


2011년 9월 5일, <한겨레>에 올라온 연재 글 입니다. 본문을 보시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949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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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규칙은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개인기 능한 새 선수’만 수혈하여
궁지를 돌파하려 해서는 안 된다

안철수 교수가 서울시장 출마를 고려하는 모양이다. 그동안 정치활동 참가를 거부해온 박원순 변호사도 이번에는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기성 정치인들을 보고 참다못한 관객들은 개인의 출세보다는 사회를 위해 살아왔으며 인간성까지 좋아 보이는 이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아마 그간의 이력으로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발휘하면서 국민들에게 충분한 감동과 신뢰를 준 이 두 선수가 나오면 다른 어떤 제도 정치권의 후보보다 당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대중들이 부패한 보수와 무능한 진보를 넘어서는 대안을 열망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편 이들이 전문가로서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출마에 부정적이다. 그러나 “일류는 재야에 있고 이삼류가 정치에 들어간다”는 우리 사회의 속설도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다. 굼벵이 시절을 거쳐야 매미가 되듯이, 시궁창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쓰레기를 치울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신뢰라는 자산을 쌓아온 이들이 시장 후보로서 자격이 충분하고 승산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서울시장은 안 교수의 주장과는 달리 매우 정치적인 자리이기 때문에 다가오는 권력투쟁에서 ‘태풍의 눈’이 될 수밖에 없다는 엄연한 현실이 있다. ‘제3세력’ 논의도 나오는 것 같은데 결국 안 교수는 무엇을 위한 출마인지에 대한 답을 주어야 한다.

이들을 장으로 끌어들이는 정치불신, 참신한 사람 찾기 움직임은 어제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다. 1987년 이후 각 분야의 참신한 전문가들이 정치불신에 편승하여 장내로 들어갔지만, 상황은 별로 좋아지지 않았다. 즉 경기의 규칙, 팀 운영 방식, 선수 충원 방식은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개인기가 능한 새 선수’만 수혈하여 궁지를 돌파하려 해온 한국 정치의 구조 때문이다. 김동길, 박찬종, 문국현 등 장외나 당 주변부의 인물들이 관심을 일으킨 적이 있었으나 변화는 가져오지 못했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가 수십년 계속되어도 신참자의 자격 조건은 제한되어 있고 보수 독점의 정치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엘리트도 부자도 아닌 보통 시민을 배제하는 것은 우리 정치의 고질병이다. 정치불신은 이 서민 대표성 부재의 한 표현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코 안철수의 개인 인기로 극복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장외의 인기있는 전문가들은 자신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어려운 결단을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막강한 관료집단과 맞서기 위해서는 당과 조직대중의 받침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의원들은 사사건건 시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고, 중앙 행정부처의 협력을 얻지 못하면 조그만 예산도 마음대로 집행하기 어렵다. 언론과 시민들은 또 조급하고 변덕스럽다. 재임 중 인기를 의식하지 않는 장기 정책은 몇 사람의 참신한 전문가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안 교수는 “국민정서상 한나라당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의 비전과 입장은 밝히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재벌의 횡포를 비판하고 중소기업의 어려운 처지를 강조해 왔다면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을 어디서 구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답을 내려야 할 것이다. 서울의 시정운영은 행정보다는 정치에 가깝기 때문에, 개인의 인기만으로는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나는 장외의 스타들이 원칙과 소신을 밝힌 다음 시궁창에서 뒹굴 준비를 하기를 권한다. 국민적 신뢰는 가장 큰 자산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제도와 조직을 결코 변화시킬 수 없다. 이들에게 환호하는 ‘팬’들을 시정 참여 의지를 갖는 ‘주체’로 변화시켜야 이들의 진입이 서민친화적인 시정은 물론 장차 우리 정치 판갈이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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