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3일 토요일

이소선 여사

세상에는 죽어도 산 사람이 있고, 살아도 죽은 사람이 있다.
전태일은 죽어서도 살아있는 사람이었는데 무엇보다도 그의 어머니를 통해서 무려 40년을 더 살았다.
아마도 그의 정신을 받드는 사람들에 의해 앞으로도 백년은 더 살지 모른다.

평범한 주부였던 이소선 여사는 아들의 죽음을 겪은 이후 아들의 분신이 되어, 아들 자신이 되어, 그리고 아들과 같은 길을 가는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가 되어, 그리고 아들처럼 억울하게 죽은 민주인사 노동자들의 분신이 되어 82평생을 사셨다. 인혁당 사건을 비롯한 70년대의 굴직한 시국사건, 청계피복 사건, 80년대의 민가협 활동, 그 이후 모든 재야활동, 노동투쟁의 현장에는 그녀가 있었다.
바로 내가 위원으로 있던 진실화해위원회 복도에서도 진실위가 활동을 똑바로 하라고 농성하는 현장에 이한열 어머니 박종철 아버지 등과 함께 나타나서 바닥에 자리를 깔고 농성하셨는 기억이 난다.

그녀와 관련된 일화 두 개만 소개한다.

1976년 전태일 분신 5주기 추모의 밤 행사장. 행사를 중지시키려던 중부경찰서 형사 박원식이 나타났다.추모생사도 불법이라는 것이었다. " 아 글쎄 이렇게 불순한 목적으로 사람이 모이면 불법인거야" 그가 말했다.
이소선 여사 왈

"야, 이 놈의 썩을 놈의 새끼야? 너네 집은 애미애비 제사도 안지내냐? 죽은 사람 제사지낸다고 사람들 모인 것이 뭐가 잘못되었다고 시비냐 시비가. 그리고 이 유인물이나 그 저 구호가 어떻다고 지랄이야? 이 유인물이 박정희를 잡아먹는다고 하던? 저 사람들이 니네 들어엎겠다고 하드냐? 빨리 꺼지지 못해 ! "

"나게게도 대학생 친구가 한명 있었으면 "하고 죽어간 전태일 분신현장에 제일먼저 달려가서 그의 정신을 살리려는 활동을 했던 장기표가 청계피복 노조를 열심히 돕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잡혀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이 재판석상에서 이소선 여사는 검사와 판사를 마음껏 야유하였다.

검사가 장기표에게 "청계조합원 임금인상 투쟁을 배후조정해 사회혼란을 일으켰지요? " " 이 틈을 이용해 북괴가 내려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방청석의 이소선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배고파서 임금인상 해달라는데 이북하고 무슨 상관이냐?"
"한 달 죽도록 일해 3천원 받는 근로자가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고 (장기표씨를) 찾아간거야. 근로기분법을 가르쳐준 것이 붜 죄냐? 배운 사람이 모르는 사람 가르쳐 준 것이 지식인의 도리지. 그게 죄냐"

재판이 중단되었다.
이 말을 들은 재판장은 법정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이소선 여사를 법정 모독죄로 구속하였다. 귀가하자 기관인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성동구치소에 가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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