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4일, <한겨레21> 제885호에 올라온 연재 글 입니다. 본문을 보시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307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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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묻은 총검을 든 한국 ‘자유민주주의’ [2011.11.14 제885호]
[김동춘의 폭력의 세기 VS 정의의 미래] 독재와 쿠데타로 자유주의의 원리를 배반한 자칭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
“우리 한인은 자유민으로 죽을지언정 남의 노예 백성으로 살지는 않겠다는 결심을 우리가 혈전 마당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표명한 것입니다. 우리 평민과 군인들이 각각 가진 것을 다 사용해서 세계 모든 자유민의 원수를 일심으로 오늘까지 싸워온 것입니다.”(이승만)
“우리는 침략자를 물리치고 국토를 통일하여 자유대한을 건설할 권리가 있음을 전세계에 엄숙히 선언한다.”(‘38선 정전안을 결사반대한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인류 공동의 적인 공산주의의 세계 적화의 꿈은 분쇄하고 세계의 자유 인류의 평화를 이룩해야 할 우리의 앞날에는 아직도 허다한 난관과 시련이 가로놓여 있습니다.”(박정희)
유신헌법이 강조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2009년 8월 교과서 검정 신청을 3개월 앞두고 이명박 정부는 뉴라이트 쪽의 주장을 받아들여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안)’을 새롭게 발표했고, 2010년에는 이미 검정 통과된 역사 교과서를 불과 한 달 만에 ‘한국사’로 고쳐 쓰도록 했다. 2011년 교육과정에서는 지난 8월9일 개정 교육과정을 확정 고시했다. 그리고 이번에 고시된 개정 교육과정에는 위원회에서 논의된 적도 없는 내용을 추가했다.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자유민주주의로 통일하도록 고시한 것이다. 그리하여 때아닌 자유민주주의냐 민주주의냐 논란이 일었다. ‘역사교육과정 추진위원회’라는 조직이 교육과정에 일일이 개입하고 국가기구인 국사편찬위원회가 교육과정 개발, 집필 기준 작성, 검정까지 주도하도록 하여 사실상 정권의 입김이 역사 교과서의 내용까지 지배하게 되었다. 기존 교과서 내용 수정을 위해 자유민주주의 정신과는 거리가 먼 거의 쿠데타적인 방식이 적용되었다.
그들은 왜 이렇게 강박증에 가까울 정도로 자유민주주의를 고집하고 힘을 앞세워 밀어붙이는가? 그들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떠나서는 서술될 수 없다. …하나였던 한반도의 북부에 불법적으로 인민민주주의 정권을 창출하고 유엔이 인정한 한반도 유일한 합법정부인 대한민국을 침략했고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위협하기 때문이다”(권희영)라고 그 이유를 주장한다. 즉 대한민국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민주주의를 원칙적으로 포기한 적이 없고,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이 독재를 했지만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지는 않았고 단지 권력구조의 측면에서만 일시적으로 자유의 원칙을 제한한 적이 있기 때문에, 결국 북한의 인민민주주의에 반대하고 이에 대한 남한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교과서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신헌법의 전문에는 우리 헌법 사상 처음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내용이 들어갔다. 그런데 유신체제야말로 우리 현대사에서 표현과 결사의 자유, 법치, 삼권분립을 가장 심각하게 제한하고 조작간첩 사건 등 국가가 사실상 범죄를 자행한 시기였다. 그런데 유신헌법이 이렇듯 국가를 신성시하며 개인의 자유와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가장 무시하고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내용을 헌법에 집어넣은 사실이 바로 오늘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를 교과서에 집어넣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즉 유신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가 아니라 ‘자유민주’이고 정확히 말하면 ‘자유’(민주)다. 이 ‘자유’(민주)는 공산독재는 배격하나 반공독재와 자본독재, 더 나아가 파시즘까지 용인할 여지를 남긴다.
이승만과 자유당, 천황제의 적자들
물론 이 사상의 원조는 미국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에 속하는 우드로 윌슨과 해리 트루먼은 민주정부와 자유로운 사회라는 이상을 내세우며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나라들, 특히 윌슨 시대의 독일, 트루먼 시대의 소련 공산주의 독재의 사슬에서 인민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리고 이들은 자유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이념을 도덕 혹은 정의의 담론으로까지 승격시켰다. 이들에게 자유와 시장경제는 도덕적, 더 나아가 종교적 함의까지 갖는다. 그런데 윌슨의 ‘자유’는 사실상 제국주의 국가의 자유임이 이미 판명 났다. 그의 민족자결은 식민지 조선에는 적용될 수 없는 강자의 논리였다. 트루먼의 ‘자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한국전쟁에 이런 관점에서 접근했다. 트루먼에게 한국전쟁은 자유세계와 공산노예의 투쟁이었다. 즉 트루먼과 미국에 자유세계는 선의 세계, 문명세계이고 공산주의는 악의 세계, 야만의 세계였다. 그에게는 한국과 같이 식민지를 겪은 나라가 시장경제만 유지한다면 ‘자유’의 이름하에 진행된 옛 제국주의 파시즘 세력(친일파)의 부활, 반인권적인 식민지적 경찰통치의 부활, 군과 경찰의 노골적 폭력과 학살이 일어나도 알 바 아니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승만이 윌슨의 제자이며 트루먼의 후원하에 한국전쟁을 치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윌슨과 트루먼의 보편주의는 바로 이승만의 ‘자유세계’ 관념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이승만에게 ‘자유’와 ‘독립’은 공산주의로부터의 자유와 독립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영구 집권과 정적 탄압을 위한 임시수도 부산에서의 비상계엄 선포, 전시라는 이름하에 의심되는 사람을 마구잡이로 잡아 거의 재판도 없이 죽일 수 있었던 특별조치령, 민간인을 군인으로 취급해 구속할 수 있었던 국방경비법, 인민군 부역자로 지목된 사람을 법 절차도 거치지 않고 체포해 처형한 수복 뒤의 지옥과 같던 서울이, 피난민의 생명과 재산이 외국군인 미군의 무차별적 폭력과 자의적 작전 결정에 의해 하루아침에 재로 변할 수 있었던 이 땅이 이들에게는 ‘자유세계’였다.
“자유대한의 푸른 하늘엔/ 학두루미가/ 펄펄 나르네/ 춤을 추네/ 얼마나 그리던 자유였더냐/ 우리는 지금 자유 찾았네/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갖었네.”( 박종화, ‘구름 위에 넌짓 실어’)
제1공화국의 자유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기초로 하나 경찰의 전제정치, 우익 청년단의 고문과 테러를 수반했다. 그래서 가공할만한 선거조작과 부패를 저지르고, 어린 학생들에게 총칼을 겨눈 집단이 바로 이승만의 수족 ‘자유당’이었다. 일본의 ‘자유민주당’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자유당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희생하고라도 국가권력의 개인에 대한 우위를 내세운 천황제의 적자였다. 오늘날 일본의 극우 역사학자들이 천황제의 전쟁범죄를 감추고 이웃 국가 침략 사실을 부인하며 자신을 ‘자유주의 사관’이라고 자칭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승만과 자유당, 자민당과 자유주의 사관은 사실상 미국이 만들어준 자유세계의 일원이자 사유재산 비판을 대역죄인 취급한 천황제의 적자들인 셈이다.
유신 쿠데타 북에 먼저 알린 박정희
그러니 박정희가 국회의원 3분의 2 선출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절차적 민주주의를 종식시키는 유신헌법을 통과시키고, 그것도 통일을 위한다는 거짓 명분을 들이대고 국민을 거의 겁박해 90% 이상의 지지로 통과시키고, 긴급조치라는 초유의 대통령 명령을 법으로 대신하던 시절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고 강변한 것은 이승만이 말한 ‘자유’의 후렴에 해당하고 멀리는 그가 일본의 명치유신과 조선총독부 통치하의 전시동원 체제와 억압을 남한에 다시 실천한 장본인임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었다.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채 온 국민에게 사상적 순결성을 강요하고, 국가에 대한 일방적 충성을 강조한 천황제 파시즘의 후계자가 자신이 공산주의를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유민주적 질서’의 수호자가 된 셈이다. 이승만의 계엄령과 마찬가지로, 박정희의 긴급조치는 국가의 긴급권 행사, 즉 개인의 자유를 거의 무제한적으로 통제했는데, 이 자유의 제한이 바로 ‘자유’의 이름으로 시행되는 역설이 발생한 셈이었다. 그렇게 되니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던 어린 학생들이 자유당과 반공연맹을 불태우는 일이 발생했고, 박정희의 긴급조치를 “우리 역사상 가장 참혹한 인권유린” “자유민주주의 유린”이라고 공격한 종교인들이 양심선언을 하게 되었다.
만약 백번 양보해 이승만이 말한 자유와 박정희가 말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반공 혹은 국가 억압 정당화의 논리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파시즘을 명백하게 반대한다는 점을 법과 절차, 행정집행에서 명시해야 하고 국민, 국가 그리고 민족의 입장에서 그것을 배반한 사람을 엄격하게 처벌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승만 정권 이후 현재까지 쿠데타를 노골적으로 선동하는 발언을 하거나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위대에 테러를 행사하는 극우세력에 대해 ‘자유민주적’ 헌법정신과 각종 형법을 적용해 처벌한 예가 없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국민에 대한 테러를 자유의 이름으로 미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타 국가인 미국의 한국 국민에 대한 범죄를 거의 무조건적으로 수용했으며, 박정희의 경우 국가보안법을 위반해 북한 당국과 비밀히 협상을 했고, 국가의 기밀 사항까지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인 북한에 먼저 통고해주었다. 유신 쿠데타를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알려주는 반국가적 조처까지 취한 것이다(박명림, ‘박정희 시기의 헌법정신과 내용의 재해석’, <역사비평>, 2011년 가을).
여기서 과거의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오늘날 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를 싣자는 뉴라이트의 맨얼굴이 드러난다. 냉전 시절 자유주의에 대해 앤서니 아블라스터는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은 혁명가이거나 혹은 혁명에 동조하는 자들이라기보다는 반혁명가일 가능성이 더 높다. 자유주의는 보수주의에 가까워졌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일찍이 러시아의 사상가 알렉산드르 게르첸은 한국의 앞날을 예견하듯 “자유주의자들은 자유를 원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받아들이는 범위라는 공화국도 원한다. 그들의 온건한 범위를 넘어서면 그들은 보수주의자가 된다. 그들은 행복하게 혁명이라는 관념을 즐긴다. 그러나 그들은 1848년 인민폭동의 광풍 앞에서 공포에 질려 후퇴하였다. 그러고는 그들의 형제들로부터 문명과 질서를 구하기 위해 계엄령의 총검 뒤에 숨었다”라고 설파한 바 있다.
강자의 자유, 대자본의 자유
사실 공산주의에 두려움을 가졌던 1945~60년의 기간처럼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원리를 그렇게도 비열하게 배반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1987년까지, 아니 2011년 오늘 이 시점까지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원리를 비열하게 배반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한국의 자칭 자유주의자들은 오직 강자의 자유, 대자본의 자유를 내세우는 파시스트거나 천황제 파시즘의 후예라고 공격하면 어떻게 반박할 수 있을까?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자유를 외친 사람들에게 총검을 들이댄 자유(민주)주의였다. 오늘도 그들은 절차와 법을 지키자는 사람들 앞에 주먹을 과시하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너희들 인민민주주의자 아니냐고.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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