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30일 수요일

독일자유대학 2


어제 memory and history 행사 무사히 마쳤다.
나는 한국 대표로 초청받은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시아 전체 대표( ?? ) 였다.
라틴아메리카 대표 1명, 그리고 아시아 대표인 나, 나머지는 독일과 미국에서 왔다.
사실 대표라는 말은 농담이다. 무슨 운동 경기도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주최 측에서 학술횅사 내용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아시아 쪽을 배려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왜 한국인가? 어제 주최측인 다램 인문학 연구소 소장인 쿠퍼교수에 물어보았다.
그는 중국인들은 표현의 자유가 없어서 말 조심을 하고, 일본인들은 자기 문제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을 선택했다는 이야기였다. 한국 학자들이 생각해볼 중요한 이야기였다. 한국학자들의 역할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한국사람 중에 왜 나를 선택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아마 독일어로 번역된 저서도 있고, 한국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만 하고 있다. 아마 자유대학에서 한국교수 누가 추천했을 것이다. 소장은 어제 마지막 회식을 하면서 그는 이번 행사에 내가 많이 기여했다고 인사를 했다. 의례적인 인사인지 실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그 사람들 모르는 것 이야기 한 것은 사실이다. 한국 사례를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아니다.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을 통해 기억을 어떻게 신빙성 있는 진실로 구성할 수 있는가에 대해 나름대로 의견을 표명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여성학자 Elizabeth Jelin은 정치학자(? ) 이고 나머지는 모두 역사학자, 문학 전공자들이었다. 그래서 전체 이야기는 좀 따분했다. 최근 20년간 역사학계에서의 기억연구 붐에 대한 논란, 기억이 어떻게 역사학 연구의 풍부화에 기여했는가 하는 문제, 기억연구의 도덕적 윤리적 차원, 역사기술에서 기억이 갖는 중요성 등이 주요 주제였다. 미국 역사학회 회장을 했다는 Gabrielle Spiegel 이 좌장 역할을 했고, 나머지 발표자들도 이 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갖고 있는 학자들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는 나에게는 특별히 흥미있지는 않았다. 그들이 고민하는 문제는 이미 내가 다 경험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실천적 영역이나 문제의식의 차원에서는 우리는 그들의 선생이 될 자격이 있다. 단 책상에 앉아 각국의 유사 사례를 정리하거나 이론화할 여유가 없을 따름이다.

인문학자들이라 그런지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현실정치 등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내 발표에 대해서도 약간 겉도는 질문만 제기되었고, 독일의 집합적 기억에 대해서도 미국의 전후 점령 등을 언급하지 않아서 좀 답답했다. 학살연구와 마찬가지로 기억연구도 유대인들이 주도하는 인상이었는데 이 행사에서 중요인물 2 사람이 유대인인 것 같았다. 그래서 이스라엘 건국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기억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억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는 약간의 긴장도 있었다. 이스라엘 출신이자 미국에서 활동하는 발표자는 자신은 팔레스타인의 강제이주에 대해서는 전혀 거론하지 않고 오직 두 집단의 상이한 기억만 다루겠다고 말했는데, 과연 오늘의 팔레스타인 문제를 괄호에 넣고 기억을 다룰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기억은 개인이건 집단이건 주관적인 현상인데 여기서 어떤 실천적 함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개별발표보다 훨씬 긴장된 것은 마지막의 대중토론 시간이었다. 통상 독일에서 학술행사는 이렇게 진행되는 모양인데 이번 행사도 독일 교육부 지원을 받는 것이었기 때문에 언론홍보, 그리고 시민 교육 차원에서 반드시 마지막에는 공개행사를 갖는 것 같았다. 대학의 사회서비스, 공공지식의 확산이라는 점에서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은 학생들인 것 같았지만 그대로 일반인처럼 보이는 사람도 여러 명 참석했다. 개별 발표는 그냥 발표하고 질문에 답하면 되었지만 이런 행사는 청중질문에 대해 즉답을 하기도 해야하고, 또 발표자들끼리 토론도 해야하므로 영어 듣기와 표현에 능하지 않는 나로서는 극도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상했던대로 나에 대한 질문은 없었지만, 어떤 할아버지가 당신들 역사학자들이 나치 학살에 대해 수백권의 책을 썼는데 그런 일을 막기 위해 당신들이 할 수 있는일이 무엇인가라고 아주 심각하고 도발적인 질문을 했다. 도대체 그러한 사건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 해명을 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나에 대한 질책인 것도 같아서 따끔했다. 그런데 내가 들어도 동료 참석자들의 답변은 좀 시원치 않았다. 내가 그 할아버지라면 학살이나 큰 역사적 사건 울궈먹으면서 먹고사는 인간들 아닌가라는 질문을 거꾸로 던지고 싶었다. 학자들끼리의 토론 말미에 대중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은 좋았다. 우리도 대학의 학술행사가 이렇게 운명되면 좋을 것 같다. 하여튼 아시아대표로 고군분투했다. 영어가 서툴로 하고싶은 말 충분히 하지는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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