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26일 월요일

[세상 읽기] 세습의 문화 / 김동춘


2011년 12월 26일, <한겨레>에 올라온 연재 글 입니다. 본문을 보시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119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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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 북을 가장 강경하게
비판하는 쪽이 사실상 북과 가장
닮은 집단들이라는 건 역설적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그의 아들 김정은이 실질적인 권력자로 급부상하였다. 북은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 완성”하기 위해 김정은으로의 권력이양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물론 북의 3대 세습을 비판하던 미국도 김정은을 김정일의 후계자로 공식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위기수습과 체제유지의 관점에서 보면 김정은으로의 권력이양은 북으로서는 합리적 선택인 것 같다. 정권교체가 어려운 북 체제의 성격상 핵문제 해결과 개혁·개방을 위해서도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남한의 보수집단은 북을 현대판 왕조체제라 비판한다. 맞는 이야기다. 그런데 남한에서 북을 가장 강경하게 비판하는 쪽이 사실상 북과 가장 닮은 집단들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재벌, 보수언론, 사학재단에서 이런 2대, 3대 세습은 일반적이며, 세습을 정당화하는 논리도 유사하다. 수년 전 담임목사직 세습으로 비판을 받던 광림교회는 김선도 목사의 아들을 후임자로 선정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광림교회의 전통과 목회 방침을 잘 알지 못하는 목회자가 후임자로 부임하면 성장에 지장을 주고 분열과 분파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삼성은 에버랜드 사건 무죄 선고로 이재용 편법 상속을 위한 법률적 장벽이 없어지자, ‘오너경영’의 필요성을 제기하였고, 사장단의 입을 빌려 “삼성뿐 아니라 우리 경제를 위해서라도 전임 회장의 경험과 지혜를 활용할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명분을 들이대며 그를 삼성의 후계자로 등극시켰다. 국가와 기업은 분명히 다른 점이 있지만 공적 조직을 가족이 사유화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혁명위업 완성’을 위해서건 ‘전통 유지’, ‘성장과 발전’, ‘경험과 지혜 활용’을 위해서건, 오늘 남북한의 세습의 실제 동기는 앞선 창업자의 직계 남성만이 해당 조직을 책임질 수 있는 적임자라 보는 점에서 동일하다. 사실 내부의 관점에서 보면 앞선 지도자의 방침과 철학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아들이 후계자가 되는 것이 안전하고, 내부 약점이나 불법사실도 덮을 수 있을뿐더러, 위기상황에서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해주고, 일사불란한 지휘를 가능케 해줄 수 있다. 그러나 “2대는 동업자이지만, 3대는 황태자”라는 말도 있듯이, 세습은 권력을 절대화하여 조직이 큰 실패를 해도 그에 대해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고, 심각한 부패를 낳을뿐더러, 구성원을 노예화시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극심한 식량난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는 북 주민의 처지는 ‘노조가 없어서’ 백혈병 발병 사망에 대해 제대로 따지지도 못하고 죽어간 삼성전자 여직원들의 처지와 얼마나 다를까? 온갖 반사회적 불법을 저지른 담임목사가 구속되어도 “목사님, 우리 목사님” 외치는 세습 대형교회 신도들이나, 오너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족벌 사학과 언론사 직원은 과연 전적으로 다른 처지에 있을까?

오늘 북의 김정은 체제가 단기적으로는 안정을 보장해주는 선택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남북한의 새 왕조체제가 그것이 표방하는 진보·보수의 이념과 전혀 무관하게 수구 퇴행적 행태라는 점에서 사실상 동일한 것이며 21세기 가치와는 전혀 양립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이 모든 세습은 전쟁, 분단, 조직위기, 성장지상주의를 빌미로 등장했기 때문에 어느 한쪽만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며, 세습을 정당화했던 국내외 환경들을 하나씩 제거하여 조직을 연착륙시키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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