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6일 월요일

[세상 읽기] 망나니의 칼 / 김동춘


2012년 1월 16일, <한겨레>에 올라온 연재 글 입니다. 본문을 보시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149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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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한명숙·미네르바·피디수첩…
무죄로 끝날 일이 아니다
국민참여 국회 청문회를 제안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자살로 몰아간 검찰의 칼이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과 한명숙 전 총리를 찌르지는 못했다. 이번에 이 두 사람에게 무죄 선고를 내린 일을 포함하여 미네르바 사건, <피디수첩> 사건에서 검찰의 칼을 거둔 법원은 그래도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상식의 최저선을 지켜주었다. 그러나 애초 불법 민간인 사찰의 희생자가 되어 자신의 블로그에 촛불 동영상을 올렸다가 기소된 김종익씨는 이번에는 조전혁 의원의 막가파식의 고소를 받은 검찰의 먼지털기식 수사로 여전히 재판을 받고 있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포스터에 쥐 그림 낙서를 했다고 검찰에 기소된 대학강사는 유죄판결을 받은 상태다. 정연주·한명숙 두 사람과 달리 이들은 평범한 시민이다. 그런데 이들은 지금 치명상으로 신음하고 있다.

이 모든 사건은 도대체 애초부터 사건으로 성립조차 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동일한 성격을 갖고 있다. 재판부의 권고를 받아 세금 환급을 포기한 <한국방송> 사장을 배임죄로 기소한 것이나, 기업가의 신빙성 없는 진술 한마디로 전 총리를 범죄자로 몰아가고, 100만명 이상이 본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렸다는 혐의로 사기업 사장을 기소하고, 그냥 장난 정도로 봐줄 낙서사건에까지 칼을 휘둘러댄 것이다. 이들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보인 검찰의 비열함과 파렴치함을 글로 적으면 책 한권도 모자랄 것이다.

그런데 국가의 근본을 뒤흔든 중요사건이라 볼 수 있는 디도스 공격, 저축은행 사건, 효성그룹 비자금 사건, 한상률 전 국세청장 사건, 그랜저 검사 사건 등에서 검찰은 칼을 꺼내는 시늉만 했다. 사람들은 정연주·한명숙씨가 무죄가 되었으니 ‘사필귀정’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무죄’는 결코 원상회복이 아니다. 이 두 사람이 입은 개인적 상처도 크지만, 정 전 사장을 쫓아낸 이후 지난 3년 동안 <한국방송>이 공영방송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편파방송과 국민 바보 만들기 작업을 한 결과, 이 정권의 더 심각한 비리와 부정은 그대로 축소·은폐될 수 있었다. 미네르바 사건이나 <피디수첩> 사건이 무죄가 되었지만, 당사자들은 정신질환을 앓을 정도의 큰 상처를 입었고, 이 사건을 지켜본 국민과 언론인들의 입은 얼어붙었다. 국가의 근간을 뒤흔들 정도의 중죄에 제대로 칼을 들이대지 않는 것은 그런 범죄의 재발을 허용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법과 정의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일이었고, 과거 같으면 여러 번 탄핵을 당할 수도 있는 사안에 연루된 현 정권을 살려주는 일이었다.

칼을 휘둘렀던 사람들은 승승장구 출세하여 아직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옷을 벗은 사람은 연 수십억원의 수임료를 챙기는 잘나가는 변호사가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지금도 부끄럼 없이 살아가고 있다. 과거 검찰이 그러했듯이 자신들에 대한 공격이 들어오면 또다시 그들은 “시키는 대로 했다”며 권력 뒤에 숨을 것이다. 그래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 나라 최대의 암적인 존재는 검찰이다”라고 말했다.

망나니는 결코 스스로의 판단으로 칼을 휘두르지 않고 오직 명령에 충실하게 따를 뿐이다. 그런데 망나니의 잘못 휘두른 칼에 맞아 엉뚱한 사람이 죽거나 치명상을 입으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칼을 맞지 않아야 할 사람이 맞고, 마땅히 칼을 맞아야 할 사람이 살아남아 국민이 누려야 할 언론과 표현의 자유, 시장의 공정성, 정의가 여지없이 무너진다면, 그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질 것이며, 어떻게 망가진 사회를 바로 세울 수 있을까?

무죄로 끝날 일이 아니다. 피해자 보상과 검찰 사과로도 충분치 않다. 나는 국민참여 국회 청문회를 제안한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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