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이 블로그를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국내 사이트 검열을 한다는 소문 듣고 구글에 블로그를 만들었었는데,
한겨레 측에서 제안도 있고 해서 한겨레로 옮겼습니다.
아래 주소로 많이 방문해 주세요.
언론기고가 많이지다 보니 블로그에 별도의 글을 올릴 여유는 점점 없어집니다.
그래도 언론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 종종 올리겠습니다.
http://blog.hani.co.kr/dckim/
김동춘 배상
2012년 2월 17일 금요일
2012년 2월 7일 화요일
[세상 읽기] ‘먹튀’ 론스타와 그 대리인들 / 김동춘
2012년 2월 7일, <한겨레>에 올라온 연재 글 입니다. 본문을 보시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177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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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엘리트들이 국가 자산 팔아 막대한 이득…’
당대 최고 엘리트들이 그럴듯한
논리와 법을 무기로 하여
국가 자산을 투기자본에 넘겼다
미국계 펀드회사 론스타는 지난 2003년 외환은행의 지분 51%를 인수한 뒤 그동안 4조6000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드디어 손을 털었다. 1000억 사회공헌 약속도 흐지부지한 채, 막대한 수익에 대한 세금도 내지 않은 채 외환은행을 하나은행에 넘겼다. 4조6000억원은 전국의 26만 국공립대 학생들이 3년 동안 무상으로 대학을 다닐 수 있는 돈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속이 몹시 쓰리다.
외환은행 인수 자격 여부조차 의심되었던 론스타가 어떻게 주가조작 등 금융범죄를 저지르고, 종업원들을 무자비하게 해고하는 등 사회적 책임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철저히 배당금을 챙겨갈 수 있었을까? 2003년 당시 외환은행을 팔아치우는 것이 마치 금융 선진화의 길이라는 식으로 떠들던 언론이나 학자들은 오늘 한국의 금융시스템에 문제가 있었고, 우리가 외국자본에 너무 배타적일 필요는 없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의 논설을 또다시 반복한다. 그들이 말하듯이 이제 과연 한국 금융시스템의 문제일까?
1910년 일본은 총칼을 들이대면서 조선 각료들을 위협하여 강제병합을 성사시켰다. 이완용 등 현지 대리인들은 그것을 문명화를 위한 시대의 대세라 말했다. 2002년 론스타는 김앤장을 앞세워 한국의 재경부와 금융당국의 최고위층에 외환은행 인수를 위한 전방위 로비를 펼쳤다. 그들은 외환은행 매각을 ‘외자유치’라 표현하였다. 조선왕조는 종이 한 장의 서명으로 일본에 넘어갔지만, 국민의 피땀으로 만든 외환은행은 정체불명의 팩스 1장으로 론스타에 넘어갔다. 조선의 각료들은 ‘나라의 힘이 없어 스스로 문명개화할 수 없다’는 명분하에 나라를 팔아넘겼지만, 2003년 론스타의 현지 대리인들, 김앤장, 금감위, 외환은행장, 재경부 최고위층 관리들과 보수언론들은 멀쩡한 은행을 부실은행으로 판정하고, ‘외자유치’ 안 하면 곧 망한다고 협박하고, 금융 선진화라는 그럴듯한 명분하에 위에서 바람잡고 아래서는 비밀리에 회동해서 마치 군사작전 하듯이 외환은행을 팔아치웠다.
과거 조선의 각료들은 일본의 총칼이 두려워 굴복을 했지만, 오늘날 국내 대리인들은 스스로 앞장서서 법과 절차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면서 공공자산을 팔아넘겼고, 론스타가 주가조작 등 용납할 수 없는 금융범죄를 벌여도 면죄부를 주었으며, 9년여 동안 온갖 논리와 법 지식을 동원하여 그들이 돈을 챙겨서 떠날 수 있도록 충실히 봉사했다. 그래서 외환은행 노조는 이 모든 일이 “대한민국 법과 원칙에 대한 사망선고”라고 말한다.
외환은행 매각 당시 이들 현지 대리인들이 많은 돈을 챙긴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이번의 론스타가 하나은행에 외환은행을 넘기며 거둔 수익의 일정 부분도 바로 국내 대리자들과 투자자들, 즉 ‘검은 머리의 외국인’들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선진 금융기법 도입, 동북아 금융허브 등 그들이 그렇게 귀가 아프게 떠들었던 거짓말의 성찬을 지금 떠올려 무엇하랴? 분명한 사실은 과거나 오늘이나 국민의 세금으로 일하는 당대 최고의 엘리트 국가의 공복들이 그럴듯한 논리와 법을 무기로 하여 국가 자산을 투기자본에 팔아넘겼고, 그 대가로 막대한 사적 이득을 취했다는 사실이다. 오늘 그들은 또다시 ‘미래의 경쟁력’을 들먹이며 인천공항을 매각하겠다고 하고, 효율성 운운하면서 케이티엑스 매각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옛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은 선거를 앞두고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있지만 그들은 지난 9년 동안 과연 이 일과 관련해서 한 게 무엇인가? 그들이 과연 앞으로도 반복될 이 국내 법률자문회사-국가관료들의 국민 배신 행각을 막을 의지와 힘이 있을까?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2012년 1월 24일 화요일
고문·학살도 용서하는 하나님 위 ‘상 하나님’ [2012.01.30 제895호]
2012년 1월 30일, <한겨레21> 제895호에 올라온 연재 글 입니다. 본문을 보시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312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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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학살도 용서하는 하나님 위 ‘상 하나님’ [2012.01.30 제895호]
[김동춘의 폭력의 세기 vs 정의의 미래] “고문이 애국”이라는 이근안의 자기정당화 논리
죄 많이 지은 자들을 구원해 준 반공 이데올로기
2011년 12월30일 새벽,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이 세상을 하직했다. 그는 1970∼80년대 군사독재하에서 온몸을 던져 저항했던 한국 민주화운동의 아이콘이다. 1985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사건으로 구속돼 온갖 종류의 고문을 당하고, 그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파킨슨씨병을 앓아오다가 64살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승의 끈을 놓아버린 것이다. 김 상임고문은 서울 남영동 515호실에서 폭력혁명주의자, 공산주의자임을 자백하라는 강요를 받았다. 결국 그는 공안 당국이 불러주는 소설 같은 혐의를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학살과 고문을 정당화하는 나라
1986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그를 고문했던 이근안은 2008년 5월 충남 태안 지역 ‘제1기 아버지학교’에 특별강사로 나서, 자신은 빨갱이만 잡았는데 정권이 바뀌니 역적이 돼 있었다며 억울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심문(고문)은 예술이다”라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던 그는, “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일을 할 것이다. 당시 독재시대 상황에서는 애국이었으니까, 애국은 남에게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자신의 행위를 미화했다.
한국 교회는 이런 이근안을 목사로 만들어주었다. 설사 극악한 고문범죄를 자행한 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회개를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목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는 고문한 사실을 부인하고, 공식적으로 과거 일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한 적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그것이 애국행동이었다고 큰소리를 치는 사람을 목사 예우까지 해주었고, 태안 군민들은 그를 강사로 초청했다. 부산 시민들은 김근태 상임고문을 고문할 때 지휘 라인에 있던 안기부 대공수사단장 정형근을 세 번이나 국회의원으로 당선시켰다. 그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지내는 등 건재하고 있다.
이근안의 말과 행동은 영화 <밀양>(원작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에 잘 그려졌다. 주인공 신애는 유괴범에게 아들을 잃은 뒤 그 죄책감 때문에 기독교 신앙의 길로 들어서는데, 신앙을 통해 치유를 경험한 신애는 자신의 아들을 유괴해 살해한 유괴범을 용서하기로 마음먹고 교도소로 찾아간다. 그러나 자신이 유괴해 살해한 아이의 엄마가 왔음에도 그 살인범은 뉘우치는 기색이라곤 눈곱만치 보이지 않은 채 자신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 평안하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이 살인범은 바로 5·18 광주 학살을 반성하지 않는 신군부의 모습 그 자체다. 그들은 1980년 광주에서 대량학살극을 벌인 것도 성에 차지 않아 집권 뒤 수많은 고문을 통한 간첩 조작 사건을 지휘했다. 전직 군 장성, 전직 장관, 전직 의원, 전직 국가기관의 ‘큰 어른’으로 대접받으며 그들 중 상당수는 오늘날 대형 교회의 원로 장로나 집사의 예우를 받고 있다. 그들의 ‘하나님’은 어떤 죄과를 어떻게 용서했는지 알 수 없으나, 그들은 과거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자신의 책임에 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근안처럼 “그때는 그게 애국이었다”라고만 암묵적으로 말하지 않고 “지금 봐도 그것은 애국이었다”라고 말한다. 국제사회에서 유대인 대량학살(Holocaust)을 부인하는 것은 범죄로 간주된다. 그런데 학살과 고문을 단지 부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이 나라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결국 이들에게는 그들을 받아준 하나님 외에도 칭찬과 격려까지 해주는 ‘더 높은 하나님(반공이데올로기)’이 있다는 얘기다. 그들을 용서하고 받아준 하나님은 그저 정신적 위로만을 주지만,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해주고 미화해주는 하나님은 정치적·신체적·제도적·물질적·사회적 지위와 안식까지 보장해준다. 이 세속정치를 관장하는 하나님은 김근태를 고문하도록 허용해주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한국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어왔다.
‘젖먹이도 징그러워 한 빨갱이’
한국전쟁을 전후해 이 하나님은 ‘의심되는’ 민간인을 마구잡이로 죽이도록 해주었다. 1949년 12월24일, 경북 문경의 첩첩산중에 있는 석달마을 주민 86명이 국군에게 무참히 학살당했다. 군인들은 민가에 불을 놓고서 뛰쳐나오는 주민을 닥치는 대로 사살했고, 마을 뒤 산모퉁이에 숨어 있던 청년들과 하굣길의 어린이들까지 사살했다. 희생자의 70%는 20살 이하의 청소년이거나 노인들이었다. 10살 이하의 어린이도 22명(25%)이나 되었다. 현장 생존자인 채의진에 의하면 “이놈들, 빨갱이 밥 해주고 돼지 잡아서 주었지? 우리는 국군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끔찍한 학살사건을 조사하던 당시 미군 쪽은 “군인들이 마을 주민들에게 추궁했던 공산주의자들과의 내통 혐의는 군인들이 뒤집어씌운 누명이었고 확인사살까지 있었다”고 기록했다. 이 학살의 진상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당시 한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공비의 최후적 만행으로서 국군을 가장하고 부락에 침입하여 살인·방화 등을 감행한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의 호적에는 이들이 공비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거꾸로 적혀 있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 석달마을 사람들이 군에 학살당한 사실을 밝혔는데, 진실화해위원회가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현재까지 공비에 의해 죽은 사람으로 공식화되고 국군의 범죄는 확인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전쟁을 전후해 공비 토벌 작전에 투입된 군인이나 경찰은 좌익이다 싶으면 재판도 없이 ‘즉결 처분’(학살)했다고 한다. 한 군인은 부락 내부 주민들 간의 사감으로 사람들이 ‘저놈 빨갱이’라고 지목하면 곧바로 즉결 처분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기억한다. “당시는 무법 상황이라서 빨갱이로 지목되면 중대장·소대장 선에서 즉결 처분해도 문제되지 않았고, 군인들도 중대장·소대장의 명령으로 즉결 처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토벌 작전에 지장이 있고 대상이 빨갱이라서 나중에 즉결 처분했다고 보고하면 문제되지 않았기에, 그것은 연대본부까지 보고할 사안이 아니었고, 현장에서 처분한 다음 서면 보고도 안 하고 구두 보고 정도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한국전쟁 때 경북 청도에서 경찰과 서북청년단 출신의 호림부대 등은 빨치산과 내통한 혐의가 있는 청년들을 잡으러 갔다가 이들이 보이지 않으면 부모 등 가족 일부를 대신 잡아서 죽이기도 했고, 집을 불태운 뒤 남은 가재도구를 빼앗기도 하고, 가족을 두들겨 패기도 했다. 이 극악무도한 학살과 약탈이 모두 ‘빨갱이 소탕’의 이름하에 정당화됐고, 그 일에 가담한 사람들이 지금까지 한국에서 ‘애국자’로 돼 있다.
박완서가 말한 것처럼 한국전쟁 시기는 “빨갱이라면 젖먹이 어린것까지도 덮어놓고 징그러워하고 꺼리던 때”였다. 그래서 벌레처럼 취급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 식구의 사고와 행동은 오로지 빨갱이냐 아니냐의 문제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었다”(박완서, ‘엄마의 말뚝2’). 빨갱이로 지목되는 것은 사실상의 사형선고, 즉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부인당하는 것을 의미했고, 타인을 그렇게 지목하는 사람이나 집단 뒤에는 ‘상(上) 하나님’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상 하나님’은 빨갱이 잡는 일에 나선 이력이 있다고 주장하면 학살범·고문범·폭력범 등 반인륜적 범죄는 물론, 재산탈취범·학원비리범·사기범·조세포탈범·강간범까지 애국자라고 칭찬해주고 온갖 지위와 권력과 부를 안겨다준다.
‘상 하나님’의 대행자, 법원
속세의 심판자, 법원이 ‘상 하나님’의 대행자다. 김근태의 재판을 담당한 서성 판사는 제1회 공판기일까지 단독결정으로 가족면회를 금지했다. 말로는 김근태가 경찰에서 묵비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고문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벌려는 것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다음에 그는 제1회 공판기일부터 방청권을 발행해 가족과 주변 민주화 인사들의 방청을 방해했다. 그는 김근태 진술의 진위를 판단하는 가장 핵심적 증거인 고문 사실을 고의적으로 회피했고, 김근태가 적은 탄원서를 변호사들이 열람하지 못하게 따돌리기까지 했다. 서성 판사의 원심법원은 공소 제기 절차가 법령을 위반했으므로 공소 기각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변호인들의 주장을 그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배척함으로써, 결국 김근태가 주장했듯이 그 재판은 고문경찰과 그들에게 명령을 내린 자들을 비호한 것이었고, 이후에도 고문이 계속될 수 있게 보장해주었다. 고문 사실이 명백했기에 법원과 검찰의 기본 양심을 믿으려 했던 ‘순진한’ 김근태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그는 재판이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당신들이 아무리 똑똑해도 우리를 이길 수 없다고 큰소리치던 고문경찰들의 말을 새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고문이 죄가 아니라 빨갱이인 것이 죄이고, 정권과 언론이 한번 빨갱이라고 지목하면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죄인이 되는 현실을 처절하게 체험했다.
아무런 검증이나 항변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정권, 검찰이나 경찰, 언론이 특정 인사나 집단을 빨갱이로 지목하기만 하면 빠져나올 여지가 없어진다는 걸 잘 아는 우리 사회의 부패·비리 집단은 그것을 100% 활용했다. 과거 문민정부의 사정 대상 1호로 지목됐고 학교공금 횡령과 부정 편입학 혐의로 법정에 선 상지대의 김문기 이사장은, 1986년 7월 교수 채용 과정에서 금품을 수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것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면서 농성하는 학생들을 빨갱이로 몰았다. 그는 자신을 추종하는 학생들과 직원들에게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고 적힌 유인물을 제작해 학생들의 농성장 주변에 몰래 뿌리고 신고한 다음, 경찰병력을 요청해 학생들을 연행해가도록 했다.
오빠가 좌익으로 몰려 죽게 된 상황에서 박완서는 “어머니에게는 아들이 살았느냐 죽었느냐가 문제지 빨갱이냐 흰둥이냐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진실과 사랑의 눈으로 보면 ‘상 하나님’은 바로 사람 잡는 괴물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과 가족을 짓밟고 모든 것을 빼앗아간 무서운 하나님은 우상에 불과하고 실체가 없는 허깨비임을 알아챌 수 있다. 현재와 과거에 지은 죄가 많은 사람일수록 더욱더 ‘상 하나님’의 힘에 기댄다는 사실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괴물이 사람 잡는 이야기’
그런데 아직도 일부 정치가나 언론은 입만 열면 이 ‘상 하나님’에게 매달린다. 2011년 7월20일치 <조선일보>는 ‘해군기지 부지가 좌파단체 해방구로’라는 헤드라인을 달았고, 또 다른 날에는 “제주가 좌파 종북세력의 투쟁 최일선이 돼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옛날에는 이렇게 소리 지르면 그들의 하나님은 “그들을 죽여도 좋고, 고문해도 좋다”고 했지만, 지금은 머뭇거리며 그냥 경찰력만 출동시켜서 잡아가라고 한다. 그게 불안하니까 그들은 더욱더 “하나님, 저들은 좌파입니다. 종북입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우리 후세대는 ‘괴물이 사람 잡는 이야기’를 희극 장르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312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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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학살도 용서하는 하나님 위 ‘상 하나님’ [2012.01.30 제895호]
[김동춘의 폭력의 세기 vs 정의의 미래] “고문이 애국”이라는 이근안의 자기정당화 논리
죄 많이 지은 자들을 구원해 준 반공 이데올로기
2011년 12월30일 새벽,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이 세상을 하직했다. 그는 1970∼80년대 군사독재하에서 온몸을 던져 저항했던 한국 민주화운동의 아이콘이다. 1985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사건으로 구속돼 온갖 종류의 고문을 당하고, 그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파킨슨씨병을 앓아오다가 64살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승의 끈을 놓아버린 것이다. 김 상임고문은 서울 남영동 515호실에서 폭력혁명주의자, 공산주의자임을 자백하라는 강요를 받았다. 결국 그는 공안 당국이 불러주는 소설 같은 혐의를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학살과 고문을 정당화하는 나라
1986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그를 고문했던 이근안은 2008년 5월 충남 태안 지역 ‘제1기 아버지학교’에 특별강사로 나서, 자신은 빨갱이만 잡았는데 정권이 바뀌니 역적이 돼 있었다며 억울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심문(고문)은 예술이다”라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던 그는, “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일을 할 것이다. 당시 독재시대 상황에서는 애국이었으니까, 애국은 남에게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자신의 행위를 미화했다.
한국 교회는 이런 이근안을 목사로 만들어주었다. 설사 극악한 고문범죄를 자행한 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회개를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목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는 고문한 사실을 부인하고, 공식적으로 과거 일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한 적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그것이 애국행동이었다고 큰소리를 치는 사람을 목사 예우까지 해주었고, 태안 군민들은 그를 강사로 초청했다. 부산 시민들은 김근태 상임고문을 고문할 때 지휘 라인에 있던 안기부 대공수사단장 정형근을 세 번이나 국회의원으로 당선시켰다. 그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지내는 등 건재하고 있다.
이근안의 말과 행동은 영화 <밀양>(원작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에 잘 그려졌다. 주인공 신애는 유괴범에게 아들을 잃은 뒤 그 죄책감 때문에 기독교 신앙의 길로 들어서는데, 신앙을 통해 치유를 경험한 신애는 자신의 아들을 유괴해 살해한 유괴범을 용서하기로 마음먹고 교도소로 찾아간다. 그러나 자신이 유괴해 살해한 아이의 엄마가 왔음에도 그 살인범은 뉘우치는 기색이라곤 눈곱만치 보이지 않은 채 자신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 평안하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이 살인범은 바로 5·18 광주 학살을 반성하지 않는 신군부의 모습 그 자체다. 그들은 1980년 광주에서 대량학살극을 벌인 것도 성에 차지 않아 집권 뒤 수많은 고문을 통한 간첩 조작 사건을 지휘했다. 전직 군 장성, 전직 장관, 전직 의원, 전직 국가기관의 ‘큰 어른’으로 대접받으며 그들 중 상당수는 오늘날 대형 교회의 원로 장로나 집사의 예우를 받고 있다. 그들의 ‘하나님’은 어떤 죄과를 어떻게 용서했는지 알 수 없으나, 그들은 과거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자신의 책임에 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근안처럼 “그때는 그게 애국이었다”라고만 암묵적으로 말하지 않고 “지금 봐도 그것은 애국이었다”라고 말한다. 국제사회에서 유대인 대량학살(Holocaust)을 부인하는 것은 범죄로 간주된다. 그런데 학살과 고문을 단지 부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이 나라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결국 이들에게는 그들을 받아준 하나님 외에도 칭찬과 격려까지 해주는 ‘더 높은 하나님(반공이데올로기)’이 있다는 얘기다. 그들을 용서하고 받아준 하나님은 그저 정신적 위로만을 주지만,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해주고 미화해주는 하나님은 정치적·신체적·제도적·물질적·사회적 지위와 안식까지 보장해준다. 이 세속정치를 관장하는 하나님은 김근태를 고문하도록 허용해주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한국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어왔다.
‘젖먹이도 징그러워 한 빨갱이’
한국전쟁을 전후해 이 하나님은 ‘의심되는’ 민간인을 마구잡이로 죽이도록 해주었다. 1949년 12월24일, 경북 문경의 첩첩산중에 있는 석달마을 주민 86명이 국군에게 무참히 학살당했다. 군인들은 민가에 불을 놓고서 뛰쳐나오는 주민을 닥치는 대로 사살했고, 마을 뒤 산모퉁이에 숨어 있던 청년들과 하굣길의 어린이들까지 사살했다. 희생자의 70%는 20살 이하의 청소년이거나 노인들이었다. 10살 이하의 어린이도 22명(25%)이나 되었다. 현장 생존자인 채의진에 의하면 “이놈들, 빨갱이 밥 해주고 돼지 잡아서 주었지? 우리는 국군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끔찍한 학살사건을 조사하던 당시 미군 쪽은 “군인들이 마을 주민들에게 추궁했던 공산주의자들과의 내통 혐의는 군인들이 뒤집어씌운 누명이었고 확인사살까지 있었다”고 기록했다. 이 학살의 진상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당시 한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공비의 최후적 만행으로서 국군을 가장하고 부락에 침입하여 살인·방화 등을 감행한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의 호적에는 이들이 공비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거꾸로 적혀 있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 석달마을 사람들이 군에 학살당한 사실을 밝혔는데, 진실화해위원회가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현재까지 공비에 의해 죽은 사람으로 공식화되고 국군의 범죄는 확인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전쟁을 전후해 공비 토벌 작전에 투입된 군인이나 경찰은 좌익이다 싶으면 재판도 없이 ‘즉결 처분’(학살)했다고 한다. 한 군인은 부락 내부 주민들 간의 사감으로 사람들이 ‘저놈 빨갱이’라고 지목하면 곧바로 즉결 처분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기억한다. “당시는 무법 상황이라서 빨갱이로 지목되면 중대장·소대장 선에서 즉결 처분해도 문제되지 않았고, 군인들도 중대장·소대장의 명령으로 즉결 처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토벌 작전에 지장이 있고 대상이 빨갱이라서 나중에 즉결 처분했다고 보고하면 문제되지 않았기에, 그것은 연대본부까지 보고할 사안이 아니었고, 현장에서 처분한 다음 서면 보고도 안 하고 구두 보고 정도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한국전쟁 때 경북 청도에서 경찰과 서북청년단 출신의 호림부대 등은 빨치산과 내통한 혐의가 있는 청년들을 잡으러 갔다가 이들이 보이지 않으면 부모 등 가족 일부를 대신 잡아서 죽이기도 했고, 집을 불태운 뒤 남은 가재도구를 빼앗기도 하고, 가족을 두들겨 패기도 했다. 이 극악무도한 학살과 약탈이 모두 ‘빨갱이 소탕’의 이름하에 정당화됐고, 그 일에 가담한 사람들이 지금까지 한국에서 ‘애국자’로 돼 있다.
박완서가 말한 것처럼 한국전쟁 시기는 “빨갱이라면 젖먹이 어린것까지도 덮어놓고 징그러워하고 꺼리던 때”였다. 그래서 벌레처럼 취급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 식구의 사고와 행동은 오로지 빨갱이냐 아니냐의 문제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었다”(박완서, ‘엄마의 말뚝2’). 빨갱이로 지목되는 것은 사실상의 사형선고, 즉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부인당하는 것을 의미했고, 타인을 그렇게 지목하는 사람이나 집단 뒤에는 ‘상(上) 하나님’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상 하나님’은 빨갱이 잡는 일에 나선 이력이 있다고 주장하면 학살범·고문범·폭력범 등 반인륜적 범죄는 물론, 재산탈취범·학원비리범·사기범·조세포탈범·강간범까지 애국자라고 칭찬해주고 온갖 지위와 권력과 부를 안겨다준다.
‘상 하나님’의 대행자, 법원
속세의 심판자, 법원이 ‘상 하나님’의 대행자다. 김근태의 재판을 담당한 서성 판사는 제1회 공판기일까지 단독결정으로 가족면회를 금지했다. 말로는 김근태가 경찰에서 묵비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고문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벌려는 것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다음에 그는 제1회 공판기일부터 방청권을 발행해 가족과 주변 민주화 인사들의 방청을 방해했다. 그는 김근태 진술의 진위를 판단하는 가장 핵심적 증거인 고문 사실을 고의적으로 회피했고, 김근태가 적은 탄원서를 변호사들이 열람하지 못하게 따돌리기까지 했다. 서성 판사의 원심법원은 공소 제기 절차가 법령을 위반했으므로 공소 기각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변호인들의 주장을 그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배척함으로써, 결국 김근태가 주장했듯이 그 재판은 고문경찰과 그들에게 명령을 내린 자들을 비호한 것이었고, 이후에도 고문이 계속될 수 있게 보장해주었다. 고문 사실이 명백했기에 법원과 검찰의 기본 양심을 믿으려 했던 ‘순진한’ 김근태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그는 재판이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당신들이 아무리 똑똑해도 우리를 이길 수 없다고 큰소리치던 고문경찰들의 말을 새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고문이 죄가 아니라 빨갱이인 것이 죄이고, 정권과 언론이 한번 빨갱이라고 지목하면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죄인이 되는 현실을 처절하게 체험했다.
아무런 검증이나 항변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정권, 검찰이나 경찰, 언론이 특정 인사나 집단을 빨갱이로 지목하기만 하면 빠져나올 여지가 없어진다는 걸 잘 아는 우리 사회의 부패·비리 집단은 그것을 100% 활용했다. 과거 문민정부의 사정 대상 1호로 지목됐고 학교공금 횡령과 부정 편입학 혐의로 법정에 선 상지대의 김문기 이사장은, 1986년 7월 교수 채용 과정에서 금품을 수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것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면서 농성하는 학생들을 빨갱이로 몰았다. 그는 자신을 추종하는 학생들과 직원들에게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고 적힌 유인물을 제작해 학생들의 농성장 주변에 몰래 뿌리고 신고한 다음, 경찰병력을 요청해 학생들을 연행해가도록 했다.
오빠가 좌익으로 몰려 죽게 된 상황에서 박완서는 “어머니에게는 아들이 살았느냐 죽었느냐가 문제지 빨갱이냐 흰둥이냐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진실과 사랑의 눈으로 보면 ‘상 하나님’은 바로 사람 잡는 괴물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과 가족을 짓밟고 모든 것을 빼앗아간 무서운 하나님은 우상에 불과하고 실체가 없는 허깨비임을 알아챌 수 있다. 현재와 과거에 지은 죄가 많은 사람일수록 더욱더 ‘상 하나님’의 힘에 기댄다는 사실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괴물이 사람 잡는 이야기’
그런데 아직도 일부 정치가나 언론은 입만 열면 이 ‘상 하나님’에게 매달린다. 2011년 7월20일치 <조선일보>는 ‘해군기지 부지가 좌파단체 해방구로’라는 헤드라인을 달았고, 또 다른 날에는 “제주가 좌파 종북세력의 투쟁 최일선이 돼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옛날에는 이렇게 소리 지르면 그들의 하나님은 “그들을 죽여도 좋고, 고문해도 좋다”고 했지만, 지금은 머뭇거리며 그냥 경찰력만 출동시켜서 잡아가라고 한다. 그게 불안하니까 그들은 더욱더 “하나님, 저들은 좌파입니다. 종북입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우리 후세대는 ‘괴물이 사람 잡는 이야기’를 희극 장르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2012년 1월 18일 수요일
모두가 정치에 나서면 '소는 누가 키우나?'
http://weekly.changbi.com/599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20118163923
원문을 보시려면 위의 주소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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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2012년 1월 18일
김동춘 / 성공회대 교수
모두가 정치에 나서면 소는 누가 키우나?
[창비주간논평] 정권교체보다 더 중요한 것
정치의 계절이 왔다. 올해 정권교체가 될 것인지가 새해 벽두부터 모두의 관심사인 것 같다. 그동안 시민운동에 몸담았던 주변 여러 사람들이 출판기념회를 한다며 오라고 한다. 그래서 누가 정치에 나서려 하는지 생각해보았다. 자의도 있고 타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사회변화를 위해 시민운동에 몸을 던졌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나, 운동에만 몸담아서는 생계조차 꾸려가기 버거운 사회운동 출신들이 우선 떠오른다. 그리고 자기 직업세계에서 부당한 처사를 겪으면서 제대로 뜻을 펴보지 못한 사람, 나름대로 자기 직업 영역에서 성공을 했으나 더 큰 자기실현을 하고픈 사람, 그리고 권력 그 자체를 추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회운동의 경력을 바탕으로 제도정치에 참여하는 일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이들 새내기 정치가들의 열정에 힘입어 정치권도 물갈이되면 좋겠다. 그런데 세상의 화두가 모두 정치로 모아지고, 사회운동 지도자급 사람들이 너도나도 총선에 출사표를 던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정치를 해야 하지만, 사회의 모든 능력있는 사람들이 모두 정치에 뛰어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잘난 사람들'은 정치에 뛰어드는 현실
그런데 파트타임 시민운동을 해온 나는 정치하겠다는 사회운동가들을 말릴 명분이 없고, 모든 일을 정권교체와 연결시키는 세상의 보통사람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다. 우선 40대 중반 넘어서까지 사회운동을 해서는 자신의 경력에 걸맞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없고, 자녀들 교육은 물론 가족의 생계조차 꾸릴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이명박정권이 들어선 이후 공익 시민단체의 돈줄이 막히고 진보적 학자들의 연구용역조차 끊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여전히 정치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것을 너무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우리나라 공직사회, 대학, 언론, 지역사회 어느 곳도, 뜻있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소박하게 노력하여 그 영역에서 조직도 발전시키고 자기실현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이 대기업을 비판하지만 나는 이 점에서는 그래도 기업이 좀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치에 나서기보다는 각 분야에서 최고가 되라는 충고는 지극히 맞는 이야기이기는 하나 한국사회의 현실과는 좀 동떨어져 있다.
20여년 전 나는 노동현장조사를 하면서 노조위원장 출신들의 이후 성장통로가 마련되지 않으면 노동운동은 위기를 피할 수 없다고 느꼈고, 이후 논문과 책에서 그것을 강조한 바 있다. 87년 울산 노동자 대투쟁의 상징적 인물인 권용목은 고생 끝에 뉴라이트 쪽으로 갔다가 결국 일찍 사망했다. 이것은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노동운동 전체의 비극이다. 오늘 통합진보당이나 진보신당이 저렇게 미약한 것은 앞장 선 사람들의 스펙과 헌신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노동운동 자체의 사회적 영향력이 대단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20여년 민주노동운동 역사에 제대로 된 노동교육센터나 노동재단 하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시민운동 20여년에 시민운동에 청춘을 바친 사람들이 계속 활동할 수 있고 그들을 먹여살려줄 기관 하나 없다. 기자들은 삼성의 돈을 받아 미국연수를 가고 돌아와서는 삼성맨이 된다. 소신있는 기자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민간재단 하나 없는 이 조건을 생각하면 그들을 비판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좋은 다큐를 만들 수 있는 자질과 의욕을 가진 가난한 영화제작자를 후원해주는 기관이 없고, 학자들이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을 조사·연구하려는 의지가 있어도 조사비를 구할 길이 없고, 장차 중요한 역할을 할 잠재력있는 연구자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대학원 하나 없는 현실도 그렇다.
좋은 열매를 얻으려면 좋은 거름을 주어야 한다
자신의 영역에서 경력을 쌓아가면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조건이 안되어 있으니 모든 '잘난 사람들'은 곧바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정치로 가게 된다. 그런데 지난 20여년 간 세상을 바꾸겠다고 수많은 사회운동가가 정치에 뛰어들었건만, 오직 자기 자신만 권력자로 바꾸었을 따름이며 일부는 부나방처럼 불에 뛰어들어갔다 타죽고 떨어져 사람들의 발에 밟혔다. 그리고 나름대로 정치에서 경륜과 식견을 쌓은 전직 운동가들은 다시 운동 진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것은 비극이다.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비극이다. 이들을 정치로 내몰고, 정치경력을 쌓은 이후에도 다시 사회현장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정치의 후진성, 정치가에 대한 배반감, 양심적 인사들의 변신과 도덕적 파탄을 계속 목격해야 하며 대중의 좌절과 실망감은 계속될 것이다. 좋은 열매를 얻으려면 아름다운 꽃을 피워야 하고, 꽃을 피우려면 줄기가 튼튼해야 한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거름을 주는 일이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그저 나무에 영양제만 놓으면서 아름다운 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정치학자들은 이쁜 좋은 꽃이 꼭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사실만 강조한다.
우리사회 각계의 중견인 486세대는 언제까지 선거판에 나서는 친구들 정치자금을 대고만 말 것인가? 왜 그 부자 노조는 노동운동, 아니 자기 자식들의 미래에 그렇게 무관심한가? 국민의 피와 땀으로 오늘의 지위를 갖게 된 대기업들은 왜 자기 회사 이미지 홍보에만 그 많은 돈을 쓰는가? 우리사회에 돈은 충분히 있다. 그 돈이 미래를 위한 거름으로 사용되지 않을 따름이고, 또 돈 있는 많은 사람들이 돈을 쓰는 방법을 모르고 있을 따름이다.
정권교체보다 더 중요한 것
시민운동,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은 가장 '준비된' 예비 정치가들이다. 그러나 그들 중 대다수는 지역이나 자신의 분야에 남아서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계속 발휘해주어야 하고 정치권으로 가더라도 다시 돌아와 그 경험을 전수해서 집단적 지혜의 향상에 기여해야 한다. 대다수 사회운동가들이 거름이 되지 않으면 제도정치에 나선 동료들도 뜻을 꺾을 수밖에 없다. 사회란 무엇인가? 공익을 위해 봉사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계를 뒷받침해주는 물적 기반이다. 우선 공직이나 대학에서 이들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회 내의 여러 진지들, 특히 많은 공익재단을 만들어 이들이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길이 오직 중앙정치로만 통하는 조선시대 이래의 과도정치화 현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정치도 바뀌지 않을 것이고 우리나라는 계속 후진 상태에 있을 것이다. 정권교체? 물론 필요하다. 그런데 바닥현실을 보면, 교체되더라도 그 정권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2012.1.18 ⓒ 창비주간논평
2012년 1월 16일 월요일
[세상 읽기] 망나니의 칼 / 김동춘
2012년 1월 16일, <한겨레>에 올라온 연재 글 입니다. 본문을 보시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149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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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한명숙·미네르바·피디수첩…
무죄로 끝날 일이 아니다
국민참여 국회 청문회를 제안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자살로 몰아간 검찰의 칼이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과 한명숙 전 총리를 찌르지는 못했다. 이번에 이 두 사람에게 무죄 선고를 내린 일을 포함하여 미네르바 사건, <피디수첩> 사건에서 검찰의 칼을 거둔 법원은 그래도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상식의 최저선을 지켜주었다. 그러나 애초 불법 민간인 사찰의 희생자가 되어 자신의 블로그에 촛불 동영상을 올렸다가 기소된 김종익씨는 이번에는 조전혁 의원의 막가파식의 고소를 받은 검찰의 먼지털기식 수사로 여전히 재판을 받고 있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포스터에 쥐 그림 낙서를 했다고 검찰에 기소된 대학강사는 유죄판결을 받은 상태다. 정연주·한명숙 두 사람과 달리 이들은 평범한 시민이다. 그런데 이들은 지금 치명상으로 신음하고 있다.
이 모든 사건은 도대체 애초부터 사건으로 성립조차 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동일한 성격을 갖고 있다. 재판부의 권고를 받아 세금 환급을 포기한 <한국방송> 사장을 배임죄로 기소한 것이나, 기업가의 신빙성 없는 진술 한마디로 전 총리를 범죄자로 몰아가고, 100만명 이상이 본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렸다는 혐의로 사기업 사장을 기소하고, 그냥 장난 정도로 봐줄 낙서사건에까지 칼을 휘둘러댄 것이다. 이들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보인 검찰의 비열함과 파렴치함을 글로 적으면 책 한권도 모자랄 것이다.
그런데 국가의 근본을 뒤흔든 중요사건이라 볼 수 있는 디도스 공격, 저축은행 사건, 효성그룹 비자금 사건, 한상률 전 국세청장 사건, 그랜저 검사 사건 등에서 검찰은 칼을 꺼내는 시늉만 했다. 사람들은 정연주·한명숙씨가 무죄가 되었으니 ‘사필귀정’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무죄’는 결코 원상회복이 아니다. 이 두 사람이 입은 개인적 상처도 크지만, 정 전 사장을 쫓아낸 이후 지난 3년 동안 <한국방송>이 공영방송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편파방송과 국민 바보 만들기 작업을 한 결과, 이 정권의 더 심각한 비리와 부정은 그대로 축소·은폐될 수 있었다. 미네르바 사건이나 <피디수첩> 사건이 무죄가 되었지만, 당사자들은 정신질환을 앓을 정도의 큰 상처를 입었고, 이 사건을 지켜본 국민과 언론인들의 입은 얼어붙었다. 국가의 근간을 뒤흔들 정도의 중죄에 제대로 칼을 들이대지 않는 것은 그런 범죄의 재발을 허용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법과 정의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일이었고, 과거 같으면 여러 번 탄핵을 당할 수도 있는 사안에 연루된 현 정권을 살려주는 일이었다.
칼을 휘둘렀던 사람들은 승승장구 출세하여 아직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옷을 벗은 사람은 연 수십억원의 수임료를 챙기는 잘나가는 변호사가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지금도 부끄럼 없이 살아가고 있다. 과거 검찰이 그러했듯이 자신들에 대한 공격이 들어오면 또다시 그들은 “시키는 대로 했다”며 권력 뒤에 숨을 것이다. 그래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 나라 최대의 암적인 존재는 검찰이다”라고 말했다.
망나니는 결코 스스로의 판단으로 칼을 휘두르지 않고 오직 명령에 충실하게 따를 뿐이다. 그런데 망나니의 잘못 휘두른 칼에 맞아 엉뚱한 사람이 죽거나 치명상을 입으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칼을 맞지 않아야 할 사람이 맞고, 마땅히 칼을 맞아야 할 사람이 살아남아 국민이 누려야 할 언론과 표현의 자유, 시장의 공정성, 정의가 여지없이 무너진다면, 그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질 것이며, 어떻게 망가진 사회를 바로 세울 수 있을까?
무죄로 끝날 일이 아니다. 피해자 보상과 검찰 사과로도 충분치 않다. 나는 국민참여 국회 청문회를 제안한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2012년 1월 3일 화요일
임진년 새아침
임진년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어제의 어둠을 뒤로 하고 다시 해가 떠오릅니다.
이 한반도와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이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올해는 정치의 해 입니다.
여기저기서 출판기념회한다고 초청장이 옵니다.
좋은 사람들이 정치권으로 많이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정치변화만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그러나 정치가 당장 대단한 것을 바꿀 것처럼 보이지만 길게보면 아주 작은 것 밖에 못바꿉니다.
대중의 힘이 뒷바침되지 않는다면, 제도와 의식의 변화가 없이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니
냉소하지도 말고, 너무 흥분하지도 말고, 너무 좌절하지도 말고,
말만 하지 말고, 작은 행동이라도 해서 정치가 실질적으로 세상을 변화도록 압박해야 겠습니다.
올해 여기저기서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화장품 가게(!)와 작명소(!)가 호황을 누릴지도 모릅니다.
지난 4년 동안 가장 비굴했던 자들이 정의의 사도처럼 군림할 것입니다.
아무것 한것도 없는 사람들이 김칫국부터 마시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어린아이의 울음을 잠시 멈추기 위한 장난감 장난들입니다.
각성된 대중들만이 이 시선호도용 장난감을 집지 않을 것입니다.
'생각하는 백성', 함석헌 선생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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