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29일 화요일

어제 PD수첩 보셨나요?

어제 PD 수첩에 방영된 총리실공직자윤리위원회의 민간인 사찰 건 보셨나요? 공기관이 한 무력한 시민을 파멸로 이끌로 반성하지 않는 모습 보셨는지요? 이명박 정부가 얼마나 파렴치하고 무도한 일들을 벌였는지 보셨나요?

제가 맨날 강조하는 학살이 인권침해가 과거 일이라고 여전히 생각하시는 분들은 꼭 보시기 바랍니다.

 

피해자 김종익 선생은 나와 20년 이전부터 아는 사이입니다. 매천 황현의 오하기문 번역한 분입니다. 한문 잘 하시는 은행원이지요. 세상에 그렇게 착하고 인격적으로 훌융한 분을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어제 티비 나왔듯이 동작경찰서에서 법인카드 3년간 사용 내역 빗자루로 쓸듯이 수사했지만, 밤늦은 시간 접대비 유흥비 한 건 나오지 않는, 정말 이 시대에 보기 드물게 깨끗한 CEO 입니다. 자신들의 잣대와 상식으로 기업가는 털면 무조건 한건은 불법이 나온다는 예단 하에 접근했다가 한 건도 안나오니 자신들도 당황했을 것입니다.

 

법인카드 아무리 털어도 먼지하나 안나오니 그냥 둘 수는 없어서 대통령 명예훼손죄로 걸어넣은 거지요. 이건 정말 공권력이 갈데까지 간 것입니다. 깨끗한 김종익 사장 잘 못 건드렸다가 자신들도 큰 코다친 것이지요. 잘못했으면 원상회복해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뭉개고 있습니다. 한 사람을 파멸시키고도 반성도 없습니다. 이게 이 정부의 모습이고 한국 공권력의 벌거벗은 모습니다.

 

이광재 정치자금 수사와 이 건은 직결되어 있습니다. 즉 노무현 수사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정부 들어선 이후 저들이 무엇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겠지요.

 

나는 이 사실을 사건 발생당시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서 그냥 위로만 해드리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감추어진 것은 반드시 드러납니다. 김종익씨가 원직에 복직하고 사장으로서 직무를 다시 수행하며, 강탈당한 주식을 다시 찾고, 이 일의 최고 윗선의 명령자가 누구인지가 밝혀질 때 까지 적극 관심을 갖고 함께해주십시요. 

 

2010년 6월 28일 월요일

전작권 이양, 3년이 아니라 30년도 모자란다.

이 정부가 천안함 사태를 빌미로 전작권 이양 시기를 3년 반 뒤로 늦추었다고 한다.

 3년7개월여 정도 전작권 전환 시기를 연기한 것은 우리가 전작권을 돌려받았을 때 갖춰야 할 군사적 대응 능력을 2012년까지 갖추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우리 군이 독자적인 정보획득 능력이나 전술지휘 통신체계, 정밀타격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데 지난 몇년간 준비를 해 보니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것이다. 2007년 합의했을 때 당시의 계획은 '도상계획'이었기 때문에 실제 준비를 한 결과 2015년 정도가 돼야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 우리 군은 60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 60년을 준비했는데도 모자란데, 과연 3년 지나면 독자적인 전술지휘 통신체계, 정밀타격 능력을 갖출 수 있을까? 북한과 경제력이 거의 대등해진 70년대를 기점으로 삼더라도 이미 40년의 시간이 경과하였다.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에다, 연 30조 이상의 국방비를 지출하는 나라가 재래전의 군사력을 제외하고는 남한과 전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북한의 침략을 독자적으로 감당할 능력이 없어서 주한미군에게 연 수조원을 지출하면서도 독자적인 국방력을 갖추지 못한다는것은 무엇인가 이상하지 않는가?

 

독자적인인 정보 획득능력이나 정밀타격 능력을 갖추는 것이 과연 소프트웨어 문제인가 하드웨어 문제인가? 군사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알 수 없으나, 하드웨어에서는 북한은 더이상 한국의 적수가 되기 어렵다는 것은 이미 20년전에 나온 이야기다. 석유를 중국에 의존하는 나라가 어떻게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한국은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독자적인 국방력을 기른다는 이야기인가? 한국은 미국과 같은 첨단의 군사대국을 지향하는가?

 

이번 천안함 사태는 한국의 독자적인 작전권 행사가 어렵다는 것을 실증한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작전권이 미국에 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볼수는 없는가? 그리고 남북한 긴장을 조성하고, 북한의 심기를 건드린다음, 북이 강경하게 나오나까 전작전 이전을 연기하자는 이야기는 원인을 결과로 혼동하고, 원인을 제거할 생각을 하기 보다는 결과를 갖고서 미국이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준 것은 아닌가?

 

독자적인 방위능력이 없다는 것은 기술적, 물리적 현실이 아니라 정신적 현실이라고 봐야한다. 1950년 7월 14일 당시는 군사력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던 북한에 맞서기 위한 고육책이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6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애걸복걸하며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은 노예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번의 3년의 연기는 사실상 숫자에 불과하고,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모자란다는 명분을 제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즉 북한이 망하지 않는 한 우리는 미국없이는 살수 없는 나라라는 논리는 언제나 등장할 수 있다는 말이다. 북한의 위협의 실재는 명분에 불과한 것이고 결국은 미국의 개입이 수많은 이승만들, 수많은 이완용들의 정치적 입지를 지켜주기 때문에 필요한 것은 아닐까?  남북한이 화해하고 북미외교가 수립되고 평화체제가 만들어지면 전작권의 이양이라는 개념자체가 필요없어진다. 중국은 이제 하나가 되어 무시못할 경제대국이 되었는데, 우리는 언제나 적대에서 벗어나 더 이상 미국좋은 일만 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2010년 6월 27일 일요일

강만길의 [역사가의 시간]

강만길 교수의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을 대충 다 읽었다( 대충이란 내가 같은 시점에 다른 유사위원회에 활동을 한 까닭에 부록처럼 실린 친일반민규명위의 활동일기는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만길 교수가 78세라니 세월이 참 빠른 것 같다.

나도 그 만큼 늙었다는 이야기겠지....  나는 그가 토론자로 참여했던 [창작과 비평] 1977년 겨울( 가을? ) "분단시대의 민족문화"라는 좌담에서 개안의 희열을 느낀 바 있다. 아마도 자세히 기억은 할 수 없으나 그 좌담회에서의 그의 발언들도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을 것이다.

 

분단시대라....

이승만, 박정권 시기를 그렇게 명명했다는 것이 당시로서는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당시의 시점에서는 식민지 시대 연구서도 거의 없었다. 국사학자들이 식민지 시대 연구를 모두 기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방후 역사에 대해 제도권 학자가 언급한다는 것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다 다를까, 옹졸한 박정권을 이러한 시각을 갖는 학자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의 고난은 그가 선택한 것이었다기 보다는 권력의 발톱이 할퀸 것이었다.

 

그가 유신시절을 겪으면서 비판적 사학자가 된 이유는 아마도 그의 연구의 출발점이 조선시대 상업사 등 사회경제쪽에 가까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창밖에서 진행되는 뜨거운 역사를 모른채하면서 수백년 전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역사학자로서 올바른 자세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시대가 사람을 만들었다. 그는 박정희와 전두환 덕택에 전공도 바꾸었고, 현대사, 통일문제에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한국 역사학자로서는 매우 드문일이다. 그러나 외국의 역사학자들은 언제나 지금의 현실을 역사적으로 해석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가 외도를 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사학계가 잘못된 것이다. 일제 실증사학의 전통이 아직 한국 사학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전문 학술논문을 양산한 대신에 논객으로 등장하여 '잡문'을 쓰게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책 여러 곳에서 동료 학자들이 자신을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가 많이 의식하고 있다. 동시대 인물인 김용섭 교수 등과 비교해 볼 수도 있겠다. 나는 강만길 교수에게 점수를 더 많이 주고 싶다. 아카데미즘의 이름으로 아무런 정치사회적 발언도 하지 않은 학자의 아카데미즘의 내용이 과연 우리가 깊이 새길 대단한 내용이 있을까?

 

강만길 교수의 학문과 실천은 그 시대에 누군가가 반드시 했어야 하는 일들이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이 너무 적었기 때문에 그의 인생이 두드러져 보인다.  

 

   

   

 

2010년 6월 25일 금요일

한국전쟁 6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0년이 지났다.

남북한의 관계는 아직도 철창을 경계로 해서 갈라져 있다.

상대를 철창에 집어 넣어야 내가 산다고 말한다.

 

강대국이 한반도 내, 외부에 들어와 있는 마당에 섣부른 민족주의의 열정은 수 많은 인명을 앗아갈 위험하고 무모한 우물안 개구리의 사고였으며, 자유 세계라는 '보편논리'는 종속적 현실을 은폐한 노예의 사상이었다.    

 

 

2010년 6월 22일 화요일

정운찬 총리

국회 국토해양위가 22일 세종시 수정법안을 부결시킴에 따라 지난 8년간 우여곡절을 겪었던 세종시는 결국 `폐기'의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라 정운찬 총리의 거취가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그는 지난 21일 열린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 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이렇듯 중차대한 국가 대사(세종시 수정안)를 상임위 차원에서 제대로 된 논의 한번 없이 국민 다수의 의사를 무시하면서 쫓기듯 표결하고 끝낼 리 없다고 확신한다"며 국회를 강하게 압박한 바 있다. 그러나 그가 요구한 대로 이 안건이 본회의에 올라간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질 것 같지 않다. 결국 세종시 문제 해결의 구원투수로 이 정부의 총리로 기용된 정운찬 총리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예견하였듯이 용도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 아마 정운찬 총리는 세종시 건이 부결되더라도 정치적으로는 야당에게 책임을 돌리고 자신은 충청도 대표선수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정부에 들어왔을 수도 있다. 그런데 별로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다. 


나는 서울대 총장 시절 그와 만나서 인사한 적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정운찬 총리를 잘 모른다.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만하면 원만한 인격자이고 서울대 총장을 맡을만한 자격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2007년 대선후보 거론되었을 때, 후보 수락 여부를 저울질을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고, 이번에 기용된 것도 단순히 총리 한번 하기 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의 욕심은 성공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충청도 대표로서도 이제 경쟁력을 상실했고, 학자의 이미지, 혹은 지식인 대표로서도 이미 이미지를 완전히 구겼기 때문이다. 탈법의 백화점 4대강 문제는 물론이고, 이 정부 들어서 진행된 비상적인 일들과 과거 그가 보여준 모습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가 합리적 자유주의자로서의 소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정부의 탈법, 불법, 비상식적인 일들을 총리의 자격으로 제동을 걸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술 더 떴다. 지난 참여연대의 유엔 안보리 편지 건으로 그는   "애국심이 있다면 유엔에 가져가 우리 조사결과가 잘못됐다고 말하지 못했을 것" "어느 나라 국민인지 의문이 생긴다." ( 방해꾼 참여연대? 정운찬 총리의 '불편한 애국심' - 오마이뉴스)라고 발언했다. 이러한 발언은 합리적 자유주의자로서 정운찬의 모습과는 전혀 맞지 않다. "애국심", 그와는 전혀 맞지 않는 단어이다.

 

학자가 권력에 들어가면 자기 소신도 굽혀야 하는가? 아니면 그가 실상은 학자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으며, 자유주의 소신을 지킬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

결국 정운찬 총리는 학교로 돌아가기 어렵게 되었다. 그는 한나라당에 들어간 운동권 출신들 처럼 살아남기 위해 더욱 더 이명박 정부의 돌격대 역할을 더 거칠게 수행할 것인가, 아니면 그러한 역할도 하기 전에 용도폐기 될 것인가의 문제만 남았다. 나는 그가 전자의 모습을 보질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점점 더 추해지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진흙밭을 구르는 바닥 정치가로서 나설 인물로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그가 그러한 용기와 정열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가난한 집안 출신이기는 하나 그는 세상의 어려운 일을 앞장서서 해결을 경력도 없고, 그러한 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경력도 없다. 그는 언제나 주변사람들로 부터 대우만 받으면서 살아온 전형적인 서울대 교수 출신 학자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를 동정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엄중하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저지른 모든 탈법과 불법, 반인권, 부자위주 정책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인물이고 어쩌면 준엄한 법적, 역사적 심판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731부대'가 뭔지도 몰랐던 초기 그의 모습은 그의 역사에 대한 무지, 역사의식의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서울대 총장자격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일국의 총리가 되기에는 자격미달이었다.  

어쩌겠는가?  이 모든 일은 그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다.  

 

 

 

2010년 6월 18일 금요일

지금은 이승만 시대?

참여연대 앞에 연일 가스통 시위대가 진을 치고 있는 모양이다. 이들이 구사하는 담론이나 행동은 참으로 입에 담기도 민망할 정도로 수준이하이다. "우리편 아니면 모두 빨갱이"라는 말은 1950년 한국전쟁 전후 나온 이야기들이고, 이승만 친위부대였던 정치깡패들의 논리였으며, 군사독재 시절의 논리였다. 그것은 적과 나를 이분화시키는 말의 폭력이지만 실제 폭력이었다. 그 말은 곧바로 폭력, 학살, 고문을 정당화했던 담론들이었다.

 

여기에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대화가 불가능하다. 소통은 차단되고 주먹이 말 보다 앞선다. 사람을 죽여 놓고도 빨갱이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사람을 불법적으로 죽여 놓은 살인자가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합리적 보수 ?  대한민국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의 거친 행동을 제기하는 보수를 찾아보기 어렵다. 아니, 그 반대다. 이들의 폭력의 언어는 바로 이 정부에서 나온 것이다. 정총리가 말했다.

"어느나라 사람이냐"

그것은 국가에 무조건 충성을 요구하고 충성하지 않으면 반역자로 몰던 파시스트의 언어다.

정부가 파시스트의 언술을 앞장서서 사용했는데, 몸이 근질근질한 50년대 열혈 아저씨들이 그냥 있을 수 있는가?

게다가 조선, 중앙 등 소위 보수 언론은 "등에 칼 꽂아"라는 섬뜩한 선동을 계속하고 있다. 검찰은 공안사건으로 취급하겠다고 했다.

영락없다. 지금은 이승만 시대이다.

 

정부는 이 가스통 폭력 시위를 그냥 즐기면서 방조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앞장서서 선동하고 있다.

이승만이 말했다. "김구 그 사람 빨갱이 아니던가? "

"빨갱이는 포살해야 돼"

김구는 암살당했다. 전쟁 터지고 수 많은 보도연맹원들 학살당했다. 무법천지였다.

모든 군과 경찰은 알고 있다. 사람을 마구 죽여도 이승만은 자신에게 면죄부를 줄 것이라는 것을. 아니 이승만이 자기 편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학살의 시대가 지났다고 말한다.

양천경찰서에서 고문이 시작되었다. 어디 양천구청 뿐이겠는가?

나는 학살이 60년전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역사의식의 무지에 놀란다. 지금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학살이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자유민주주의가 사치다.

법은 법전에만 존재한다.

정신차리자.  

 

 

 

 

 

   

 

 

2010년 6월 15일 화요일

중앙일보, 이거 신문맞나?

"참여연대, 국민 등에 칼 꽂아"

바른사회 시민회의의 입장이라고 인용했지만, 중앙일보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렇게 타이틀로 뽑았다.

 

"중앙일보 서민의 등에 칼 꽂아"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술자리나 사석에서 말이다. 험악한 증오감이 찬 사람이라면 무슨 말을 못하겠는가? 그러나 언론이 이렇게 거친 증오감을 그대로 표출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것은 말의 힘을 빈 폭력이고 수 많은 폭력을 부추기는 전단지와 다를 바 없다.

 

거친 증오감을 그대로 타이틀로 뽑은 신문, 그것은 더 이상 신문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아니 중앙일보는 이미 오래 전에 그것을 포기했는지 모른다.  

 

참여연대의 안보리 서한은 이 정부 보다 훨씬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고민해 온 경력이 있는 시민단체의 지극히 정당한 의사표현이고, 그 원인 제공은 이 정부에 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석연치 않은 설명을, 그것도 제대로 조사도 마치지 않고서 서둘러 발표하고, 그것이 국가의 입장이요 국민의 입장이니 무조건 복종하라는 논리가 이 밝은 세상에 어디 통할 수 있는가?

 

천안함 보고서는 이명박 정부의 보고서이지 국가의 보고서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사태에 대해 책임을 가진 당사자이며 국가 안보를 소흘리하여 46명의 젊은 군인들을 저승으로 보낸 책임 주체의 하나이며, 그것 만으로도 국민에게 석고대죄해야 할 존재이다. 이북의 침략에 제대로 대비하지 않다가, 이북이 내려오니 적과 내통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십만 보도연맹원들을 참살한 이승만 정부의 적반하장도 이와 같았다.

 

그런데, 위험한 전쟁선동을 하던 중앙일보가 드디어 참여연대에 집단린치를 가하고 있다.

국민들 입장에서 참여연대 행동이 좀 과도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곤란하다.

 

그러나 이 보도보다 더 심각한 것은 바로 그 옆 면의 수경스님 관련 보도다. 이것은 완전히 사실을 180%로 뒤집은  것이다. 중앙일보는 "환경, NGO 운동 했지만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었다"라고 타이틀을 뽑았다. 이것만 보면 마치 수경스님이 그 동안의 시민단체 활동에 환멸을 느껴 행방을 감춘 것으로 되어있다.

 

수경스님의 활동 중단은 문수스님의 소신공양의 충격에 의한 것이고, 이 명박 정부에 대해 마지막으로 “아무리 그래도, 민심이 천심인데 국민들의 마음이 하늘의 뜻인데 무지막지하게 할 수 있겠느냐”는 고언을 남겼다. 그는 “이 대통령은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며 “이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정말 한심스러운 일이다. 대통령 밑의 사람들이 문제가 많은 것 같다”고도 했다.

 

수경스님이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은 수행자로서 본연의 모습을 가겠다는 것이지, 결코 자신이 환경운동을 한 것이 잘못이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중앙일보는 완전히 자신의 입맛대로 편집하여 하나의 소설을 썼다.

메이져 신문이 사실상 전단지인 나라? 이런나라에서 공론이 , 의사소통이 존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