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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16일 토요일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

하워드 진의 자서전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역사 에세이] 를 다 읽었다. 하워드 진은 알려진대로 올해 타계한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적인 역사학자이자 운동가이다. 그의 [미국민중사]는 국내에도 번역이 된 베스트 셀러다.

 

얼마난 FBI의 하워드 진에 대한 사찰기록이 공개되어 큰 논란거리가 된 바 있지만, 미국정부는 그를 매우 위험한 인물, 좌익으로 지목하여 죽을 때까지 사찰 감시 한 것으로 보인다. 아서 술레진저같은 주류 역사학자는 그를 본격 역사학자로 취급하지 않았지만, 그는 몸으로 역사 현장에 뛰어들어 세상을 바꾸려 노했으며 대중들을 직접 교육한 현장 역사학자이자 교사였다.

 

그가 자서전에 기록한 내용의 일부는 우리도 알고 있는 것들인데, 새삼 미국사회의 여러 측면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백인인 그가 미국사회의 그 저류의 핵심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우선 노동자 출신이었으며, 공군 조종사로서 전쟁을 몸소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젊은 시절 남부의 작은 여자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미국의 인종차별 현실을 뼈저리게 겪었고, 결국 그것과 맞서 싸우다가 해직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더욱 새롭게 느낀 점은 미국사회에서 흑인에 가해진 폭력과 불법은  미국의 연방헌법과 민주주의 정신을 노골적으로 위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히 자행되었으며, 흑인은 법의 적용영역 밖에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국에서 좌익, 간첩,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처우와 사실상 완전히 동일한 것인데, 문명국가 미국에서 이러한 일이 60년대는 물론 그 이후 지금까지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으며, 그에 대해 주류 미국사회나 주류 언론들은 계속 모른채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평소에 알고 있었던 것 보다 그는 훨씬더 활동가에 가까운 존재였고, 몸으로 미국사회의 허위에 저항해 왔다. 인종문제, 계급문제, 전쟁 문제를 전공하는 미국의 수 많은 사회과학자들 중 그와 같이 몸을 던져서 미국사회를 고발하려 한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그의 삶이 더욱 돋보인다.  

 

보스톤 대학의 총장과 이사들이 그를 집요하게 추방하려 한 것은 오늘 한국의 여러 비리 사립대학의 현실을 연상케 해 주는 사실이다. 대학은 죽은 학문을 가르치기를 원하지 그와 같이 '책을 통한 가르침과 사회적 행동 참여'를 함께 하는 교육을 원치 않는다. 그것은 대학이 바로 체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의 낙관주의, 인간에 대한 믿음, 행동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들은 우리가 많이 배워야 할 점이다.

 

"정치권력은 그것이 아무리 엄청나더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허약하다.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소심한지를 유념하라"

 

그가 겁을 먹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깨우치고 있다.

 

결국 그의 자서전을 읽고 더 분명해 진 점은

겁먹은 자들이 조금만 생각을 다잡으면 세상은 쉽게 바꿔질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불의한 권력자들은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서는 체제를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고, 아무리 보수 언론을 통해 자신의 비리를 막더라도 그들의 불법은 계속 들통나고 있으며,  

노골적 폭력과 은근한 협박이라는 수단에 호소하지 않고서는 대중을 복종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2010년 9월 20일 월요일

일본인이 본 '조선인' - 다카하시 도루의 조선인관

최근 번역된 다카하시 도루의 [식민지 조선인을 논하다]를 읽었다. 그의 [조선 유학사]를 수년전에 읽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 그의 조선인관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전형적인 일본 어용학자로서 조선지배의 논리를 뒷바침하기 위해서 이러한 저술활동을 했고, 그의 주장 중 일부는 일제 침략의 정당성, 조선의 패망의 필연성을 주장하는 논리로 최근까지도 한국 학자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의 조선민족개조론은 이후 친일파로 전락한 춘원 이광수의 조선민족개조론에 직접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철저히 일본 우월주의, 조선열등론에 서 있는 그의 주장은 독자인 한국인들을 대단히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의 주장 중 상당부분은 근거가 취약하거나 무리한 주장인 경우도 있다. 3.1 운동을 외국 사상에 감염된 청년들이 동료 청년들과 종교단체 구성원들에게 경솔한 신념을 마치 실현가능한 것처럼 퍼트려 일어난 것이라는 주장에서 그 한계의 정점에 도달한다.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그가 조선인들의 특징으로 지목한 순종주의는 한국보다는 1945년 이후 일본에 더 잘 들어맞는 점도 있다. 창의성의 결여 역시 조선인들만의 특징이라기 보다는 국가주의나 관료주의에 길들여진 일본인의 특징인 점도 있다. 조선인들의 무기력과 정체성 역시 그가 주장하듯이 불변하는 민족성이라기 보다는 조선 조 하의 관인들의 과도한 억압과 착취의 결과, 식민지 하에서 희망을 상실한 조선인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의 상당부분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사상의 고착과 사상 문화에서의 사대주의, 그리고 정치만능주의다. 조선 조 500년 동안 주자학을 벗어난 창의적인 사상이 나오지 않은 것, 그리고 주자학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나머지 모든 사상을 이단으로 취급하여 과거시험 준비를 위한 외우기 교육이 조선 청년들의 영혼을 지배하게 된 것, 정치만능주의가 자유로운 사고의 전개를 가로막고 사회의 숨통을 조였다는 점은 대체로는 매우 타당한 점이 있다. 물론 조선 유학사를 지나치게 폄하한 것은 이후 한국 학자들에 의해 비판받은 바 있고 좀더 심층적으로 검토될 여지가 있다.  

 

이러한 진단은 사실 그가 조선보다 훨씬 우월한 문명국가라고 보는 일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천황제과 군국주의는 일본좌파들을 교조적, 도식적 좌파로 만들었으며, 우파 자유주의자들은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였고, 지금까지도 미국에게 대해서는 감히 비판조차 못한다. 

 

조선 시대의 사상의 고착과 창의적 부족은 근대 1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다지 수정되지 않았다. 나는 1996년에 발표한 '사상의 측면에서 본 한국 근대모습'이라는 논문에서 이 점을 강조한 바 있다. 80년대 좌파 운동권이 교조주의로 빠지고, 과도한 북한 찬양론으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왜 우리는 이렇게 교과서적 좌파 밖에 없나라고 한탄한 바 있다. 한국의 이른바 우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아예 사상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 다카하시 도루가 비판하였듯이 조선조 말 백성의 고혈을 빠는 이기주의 집단의 모습, 욕망으로 가득한 관리들의 모습에서 별로 더 나아간 바가 없다. 정신적으로 일본에게 무장해제당한 친일파나, 자신의 친일경력을 은폐하기 위해 내세운 반공주의하에서 창의적인 사상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이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오늘 다카하시 도루의 조선인론, 조선 유학론은 깊이 되새겨보아야할 내용이 많다. 나는 그의 글이 나온지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시점에서 한국의 역사학계나 철학계, 사회과학계가 그의 주장을 보다 철저하게  반박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오늘의 영어만능, 미국만능주의, 한국의 대학현실을 보면 그의 주장은 너무나 설득력이 있다. 아니 그의 다소 억지에 가까운 주장을 민족주의 반일주의 정서에 기초해서 반박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인정할 것을 인정하고, 지금도 지속되는 문제점을 고발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찾자는 지적인 운동을 시작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 촌스럽기 그지없는 이명박 정부와 그 아래 가신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그들은 아마 자신들이 다카하시 도루가 비판하는 그러한 조선인들의 후예라는 것조차 알지 못할 것이다.

21세기의 한국사회도 결국 3.1 운동과 이후의 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사람들, 그리고 4.19 이후의 민주화 운동의 주역들에 의해 개척될 수 밖에 없다.  단 그들의 투쟁은 훌융했으나 사상은 너무나 빈약했다는 내부 반성에서 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자라나는 청년들이 이러한 역사를 자기화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출발점이 될 것이다.  

 

 

 

 

 

 

 

 

 

2010년 6월 27일 일요일

강만길의 [역사가의 시간]

강만길 교수의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을 대충 다 읽었다( 대충이란 내가 같은 시점에 다른 유사위원회에 활동을 한 까닭에 부록처럼 실린 친일반민규명위의 활동일기는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만길 교수가 78세라니 세월이 참 빠른 것 같다.

나도 그 만큼 늙었다는 이야기겠지....  나는 그가 토론자로 참여했던 [창작과 비평] 1977년 겨울( 가을? ) "분단시대의 민족문화"라는 좌담에서 개안의 희열을 느낀 바 있다. 아마도 자세히 기억은 할 수 없으나 그 좌담회에서의 그의 발언들도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을 것이다.

 

분단시대라....

이승만, 박정권 시기를 그렇게 명명했다는 것이 당시로서는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당시의 시점에서는 식민지 시대 연구서도 거의 없었다. 국사학자들이 식민지 시대 연구를 모두 기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방후 역사에 대해 제도권 학자가 언급한다는 것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다 다를까, 옹졸한 박정권을 이러한 시각을 갖는 학자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의 고난은 그가 선택한 것이었다기 보다는 권력의 발톱이 할퀸 것이었다.

 

그가 유신시절을 겪으면서 비판적 사학자가 된 이유는 아마도 그의 연구의 출발점이 조선시대 상업사 등 사회경제쪽에 가까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창밖에서 진행되는 뜨거운 역사를 모른채하면서 수백년 전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역사학자로서 올바른 자세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시대가 사람을 만들었다. 그는 박정희와 전두환 덕택에 전공도 바꾸었고, 현대사, 통일문제에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한국 역사학자로서는 매우 드문일이다. 그러나 외국의 역사학자들은 언제나 지금의 현실을 역사적으로 해석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가 외도를 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사학계가 잘못된 것이다. 일제 실증사학의 전통이 아직 한국 사학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전문 학술논문을 양산한 대신에 논객으로 등장하여 '잡문'을 쓰게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책 여러 곳에서 동료 학자들이 자신을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가 많이 의식하고 있다. 동시대 인물인 김용섭 교수 등과 비교해 볼 수도 있겠다. 나는 강만길 교수에게 점수를 더 많이 주고 싶다. 아카데미즘의 이름으로 아무런 정치사회적 발언도 하지 않은 학자의 아카데미즘의 내용이 과연 우리가 깊이 새길 대단한 내용이 있을까?

 

강만길 교수의 학문과 실천은 그 시대에 누군가가 반드시 했어야 하는 일들이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이 너무 적었기 때문에 그의 인생이 두드러져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