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위 이영조 위워장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군요.
http://media.daum.net/politics/dipdefen/view.html?cateid=1068&newsid=20101118220721732&p=khan
이 모든 과정을 제일 잘 알고 있는 제가 뭐라 보태고는 싶으나
지금은 침묵하렵니다.
니중에 책으로 말하겠습니다.
진실위 이영조 위워장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군요.
http://media.daum.net/politics/dipdefen/view.html?cateid=1068&newsid=20101118220721732&p=khan
이 모든 과정을 제일 잘 알고 있는 제가 뭐라 보태고는 싶으나
지금은 침묵하렵니다.
니중에 책으로 말하겠습니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사상의 자유도 없고,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도 없는 나라다.
누가 한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라 하는가? 5공시절 악명을 떨친 공안검사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억울하게 회사를 빼앗긴 민간인에게 사상의 순수성 여부를 추궁하고 있다.
20세기 이야기가 아니다. 2010 오늘 한국의 국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공안검사 출신 이사철 한나라당 의원은 김씨가 '영향력 있는 미디어에 대항하기 위해 때로는 주사파의 행동대원인 빨갱이가 되고 사회적인 난동자가 되더라도 광장에 서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이 글로 동작경찰서나 검찰에서 시위선동 혹은 보안법 위반으로 조사받은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김씨는 글을 올린 것은 시인했지만 그로 인해 보안법 위반 등으로 조사받은 적은 없다고 답했다.
사상검증'의 바톤은 지난번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조사를 받았으나 이상하게 무죄판결을 받은 현경병 의원이 이어받았다. 현 의원은 김종익씨의 노사모 회원 경력을 언급한 뒤 "이 부분이 이런 상황을 만드는 데에 밀접한 관련이 있고, 결국 정치적 입장을 갖고 하신 게 맞지 않느냐"고 공세를 폈다.
현 의원은 "(MBC) <PD수첩> 방송에 나갈 당시 증인 뒤에 나온 서재를 모자이크 처리해 달라고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고 김씨는 "(그런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에 현 의원은 "(방송에서) 모자이크 처리한 서적은 공산주의·사회주의·북한 관련 서적이었다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인천상륙 60년을 맞아 또다른 인천상륙도 기억되어야 한다. 바로 월미도 주민 대량 희생 사건이다.
전쟁 후 달리 피난할 수 없었던 월미도 수백명의 주민들은 섬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 섬은 곧바로 인민군이 점령했고, 주민들은 인민군 점령지의 거주자가 되었다. 인천상륙을 앞두고 맥아더는 이 섬의 초토화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섬에 민간인이 거주한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도 상륙작전을 감행하기 이전에 이 섬을 초토화하였다.
그래서 피난하지 못한 월미도 주민 상당수는 무차별적인 폭격에 희생되고 일부만 살아남아 인천으로 피신하였다. 이후 60년 동안 우리는 인천상륙의 영웅담만 기억을 했고, 월미도 주민의 희생에 대해서는 거론조차 할 수 없었다. 전쟁기 민간인의 희생은 어느정도 불가피한 점이 있다. 특히 이 경우 맥아더가 과연 월미도 주민의 생명을 보호하면서도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감행할 수 있었는가라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작전을 위해 한국인들의 생명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 당시 맥아서의 전쟁논리였다.
6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상륙의 영웅담만 기억하고 월미도 주민 수백명의 폭사는 기억하지 않는 것은 뭔가 잘못된 일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아직도 월미도에서 천막치고 농성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우리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라면 이들의 목소리도 함께 들어주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미군에 의한 한국인들의 희생을 거론조차 하지 못하는 그 잘난 외교부와 국방부는 묵묵부답이다.
기억의 굴절과 편향, 의도된 망각과 한 쪽 측면에 대한 과도한 기억이야말로
오늘 우리사회에 만연한 부정의의 매우 중요한 기반이기 때문이다.
천안함 희생 군인과 월미도 희생 민간인이 과연 다른 종류의 희생자라고 아직도 생각하는 사람들은 진실화해위의 월미도 보고서를 읽어보시라.
칸 나오토 수상이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한국에 대해 사죄의 표현을 하자, 일본의 극우단체는 '반역적 외교'라고 공격하면서 그의 관저 앞에서 시위를 했다. 그의 사죄표현 역시 일본의 극우세력이나 여론을 의식한 극히 조심스러운 것이었고, 사죄에 수반된 조치라는 것도 식민지 통치기간 강제로 가져간 문화재나 왕실의 의궤 반한 정도로 미약한 것이었지만, 일본 극우세력은 그 정도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90년대 이후 일본의 극우세력은 급성장하고 있다. 식민지 통치를 부인하고 노골적인 군사대국화를 강조하던 과거의 극우파와 달리 이들 신우파는 증오범죄, 즉 한국인 학교 앞에서 시위하면서 한국인이나 중국인들에게 인종적 적대감을 표현하고 있다. 상당수의 일본 젊은이들이 이 신우파에게 동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학자들은 이들 신우파의 세력화는 일본의 높은 실업률과 개인들이 당하고 있는 경제적 고통의 산물이라 진단하고 있다.
미국의 티 파티 ( Tea Party) 운동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신우파 역시 경제위기로 소외된 하층민들에 의해 주로 충원되고 있다. 우파 정치인들은 대중들 사이에 번지고 있는 이들 극우세력의 성장을 즐기고 있다. 이들은 좌파는 물론이고 자유주의 정치세력에 대해서도 극도의 증오감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원래가 우익적인 정치지형이 압도하는 일본과 미국에서 극우세력이 극성을 부리는 이유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좌절된 젊은이들, 백인우월주의자들이 극우 정치운동에 지지를 보내는 것은 자신의 고통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정치세력이 없기 때문이고, 극우 일변도의 미디어와 지적인 풍토가 이들에게 대안적인 현실해석의 기회를 제공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익체제가 극우 사회세력을 양산하는 악순환이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미온적 자세를 질타하기 이전에 정작 주목해야 할 사실은 바로 미국과 일본의 우익 정치사회체제이다. 그리고 한국 역시 한,미,일 삼각 우익체제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실업의 고통에 신음하는 청년들이나 자영업자들이 장차 자신을 더 심한 고통에 빠트릴질도 모르는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일을 막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대안적인 전망의 제시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 전망이 이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미디어 환경이 변해야 하고, 대중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대학과 언론이 중요한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경제위기는 진보세력의 기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벌이도고 전혀 책임지지 않는 극우세력의 풍부한 거름이 될 수도 있다.
간 일본 총리가 강제병합 100년에 맞춰 담화를 발표했는데, 한국인의 의사에 반해 식민지배를 했다는 것을 인정한 점, 말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조선왕실의궤 반환, 사할린 한국인 문제의 해결 등 행동플랜을 제시한 점은 다소 진전된 점이 있지만, 일본은 이 문제에 관한 한 거의 요지부동이다. 한국에 식민지 지배에 대한 보배상 문제, 강제동원 노동자, 종군위안부, 약탈해간 문화제 등 모든 문제는 1965년 국교정상화과정에서 모두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과거나 현재나 일본의 주류적 입장은 당시 조선은 독자적인 근대국가를 수립할 역량이 없었기 때문에 어치피 누군가에 의해 문명개화되어야 할 운명이었는데, 일본이 그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한국의 일부 경제학자들도 이러한 입장을 갖고 있다. 미국의 군사작권 지휘권 아래에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이명박 정부나 뉴라이트의 입장도 그러하다. 그들이 금좌옥조처럼 붙들고 있는 반북, 친미의 논리는 100년전 친일부역자의 논리와 정확하게 동일하다. 그들의 정치적 이해, 계급적 이해의 반영이다. 그래서 그들은 남북 분단은 외세의 개입을 불러올수 밖에 없고, 남북한 사람들의 생명권은 외세의 졸 처럼 취급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슬픈일이지만, 김정일의 중국방문역시 신판 조공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남북 양국 모두 이러한 운명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냉전이 와해되더라도 일본중심의 아시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중국은 아시아의 중심국가는 당연히 중국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동아시아라는 개념은 없다. 오직 한국만이 동아시아라는 말을 짝사랑하고 있다. 일본 사람들은 왜 일본 패망으로 왜 조선사람들이 그것을 그렇게 좋아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것은 미국사람들이 왜 이라크 사람들이 미군의 이라크 점령을 싫어하는지, 왜 한국에서 반미감정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동일하다. 제국주의의 심리와 논리는 이러하다. 겁탈을 해 놓고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하는 데 너는 왜 그렇게 슬퍼하냐고 묻는 것과 동일하다.
어제, 강제병합 100주년 학술심포지엄이 성대에서 개최되었고, ( 나는 이 자리에서 한국의 과거청산과 동아시아 평화라는 주제의 논문을 발표했다) 오늘은 남산에서 한국 일본 양측 시민사회 인사들이 남산에서 표지석 새우는 행사를 한다. 식민주의를 종식시키기 위한 시민사회 차원의 행동이다.
식민주의 청산을 위한 여러가지 의제가 어제 논의되었다. 사할린 동포 문제,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원폭 피해자 문제, 독도 문제, 교과서 문제 ..... 그러나 양 국가주의의 위세에 비추어보면 너무나 미약한 목소리들이다.
1. 미국의 정책변화 없이 과연 이 문제 해결이 가능한가?
2. 일본의 천황제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일본의 진정한 사죄가 가능한가?
3. 남북한 분단 극복없이 동아시아 평화가 가능한가?
이 큰 질문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나는 다른 참석자들이 별로 언급하지 않았던 점을 강조하였다.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동아시아 역사는 하나의 역사다. 개별국가의 역사를 다루는 것은 의미가 없다.
과거사 문제는 일본과 한국 내의 지배질서 문제다.
현 한국과 일본의 후진적 민주주의, 복지없는 자본주의, 노동없는 자본주의는 과거청산의 부재와 연관되어 있다. 즉 자기 나라의 민주화, 정의의 수립 문제와 과거청산 문제는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결국 국치 100년은 단순히 기억되어야 하기 보다는 현재 한국사회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관점에서 인식되어야 한다. 역사는 현실이고 현실은 역사다.
어제 Mark Selden 교수 초청 세미나가 개최되었는데, 너무 참석자가 적어서 초청한 나의 입장에서 좀 머쓱했다. 좀 더 연락을 하고 홍보를 했어야 했다고 후회하였다. 몇 사람에게는 부탁까지 했지만 불참했다. 영어로 진행하는 것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던 것 같다. 통역까지 있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영어에 겁을 내는 것 같다. 오히려 발표자들이 한국말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하는데, 한국인들은 자신이 영어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고쳐야 한다.
그건 그렇고 그의 발표는 매우 유익한 내용이었다. 다 아는 것이기는 하나 그가 이야기하니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바도 있다. 즉 일본에 대해 과도한 책임을 부여하지 말고, 사실 일본의 책임을 면죄해준 미국을 보라는 것이다 ( 이것은 28일 성대에서 개최되는 국치 10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내가 발표하려는 내용의 핵심이기도 하다)
Japanese and American War Atrocities, Historical Memory and Reconciliation: World War II to Today
http://japanfocus.org/-Mark-Selden/2724
A Forgotten Holocaust: US Bombing Strategy, the Destruction of Japanese Cities and the American Way of War from World War II to Iraq
http://japanfocus.org/-Mark-Selden/2414
미국은 더 큰 전쟁범죄를 저질렀는데도 면죄부를 얻고 있으며 언제나 일본만 비판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각국의 민족주의, 그리고 미국 헤게모니다. 즉 중국과 한국인들의 반일감정, 즉 민족주의 정서가 큰 그림을 보지 못하게 하고 미국이 누리는 패권주의 때문에 감히 미국을 비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가 강조한 것은 전쟁범죄, 인권 등의 표준도 결국 미국이 정하기 때문에 그 기준에 따라 미국은 피해갈 구멍을 만든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즉 미국의 무차별 폭격은 정당한 전쟁행위가 되고 일본의 중국, 한국인에 대한 학살은 매우 잔혹하고 비인도적인 행위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 아니라, 미국식 표준이 문제인 셈이다.
일본역시 핵 투하 이전에 미 공군으로부터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일본은 그것을 문제제기 하지 않는다. 전후 미일관계의 재편으로 미국의 전쟁범죄는 완전히 감추어져 버렸다. 한국은 어떠한가?
미국식 표준, 미국식 전쟁범죄와 인권의 기준을 어떻게 문제삼을 것인가? 이라크와 아프칸에서 죽어간 수만명의 민간인 문제를 어떻게 부각시킬 것인가? 그리고 그 전사인 한국전쟁기 미군에게 희생된 수만명 이상의 한국인들의 피해를 어떻게 부각시킬 것인가?
가장 일차적인 적은 바로 우리 내부에 있다. 미국으로서는 전혀 겁을 낼 필요가 없다. 그것을 거론조차 하지 않는 한국 권력층이 그리고 언론, 관료들이 버텨주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두려훠서 문제제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으로도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식 표준은 이미 우리의 표준이 되었다. 미국식 '자유'의 개념은 우리의 자유의 개념이 되었다. 미국식 표준으로 훈련받는 학자들 수천명이 오늘도 모든 미디어와 강단을 장악해서 계속해서 미국식 표준을 설파하고 있다. 수십, 수백만명의 학생들은 매일 그 표준이 우리의 표준이라고 배우고 있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은 바로 상징의 지배, 문화의 지배, 언어의 지배다.
언어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지 않고서는 새로운 정신세계가 열리지 않는다.
정신세계가 없는 인간, 바로 비존재이다.
우리는 아직 비존재일지 모른다.
일제말 동경에서 5년 동안 공부한 경험을 가진 선친께서 늘 한탄하던 이야기,
'조상 탓할 것 없다. 남의나라 종살이 못 면할 백성들이다.... "
일본과 비교해서 못난 한국인들을 질타할 때 주로 하신 이야기인데, 질서의식 없고 공공에절 없는 한국 사람들, 줏대없이 힘센놈 따라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한국 사람들을 볼 때 주로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물론 그의 민족허무주의에 대해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해운대, 광안리, 경포대 바닷가에 피서객이 버리고간 쓰레기 산을 보고 아버님의 이런 한탄을 생각한다. 내가 버리고 나면 누군가 치울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기 세금으로 자기가 버린 쓰레기 청소해야 한다는 생각하지 못하는 이기적이고 가족밖에 모르는 이 조선 백성들.....
그런 사람들이 바로 노신이 아큐정전에서 말한 식민지 백성들이다. 그런 백성들이 있는 나라는 제국주의의 가장 손쉬운 사냥감이다.
경술국치 100년이 되었는데, 우리는 아직 식민지 백성들이 지지하고 옹립한 신 을사오적들과 썩은 관리들이 통치하고 있다.
백성들의 안전과 행복보다는 윗 사람에게 잘보여서 출세하려는 인물들이, 지위를 남용해서 돈을 버는데 혈안이 된 인간들이 지난 3년 동안 이 정부의 각료 후보자로 계속 추천되고 있다. 자녀사랑이 너무나 지극해 위장전입을 5번이나 하고, 땅을 너무 사랑에 돈되는 땅 투기하고, 억대 조의금을 받아 챙기도고 부끄러움하나 없고, 4대강을 죽이면서도 4대강 살리기라고 우기고, 운하를 파면서도 끝까지 보라고 우기고, 평범한 CEO 불법 사찰하여 목숨 줄 끊어놓고 사과한마디 하지 않는 인간들이다.
외국군대와의 전투에서는 백전백패했으나 일본군과 한편이 되어 의병들과 그들에게 동조하는 백성들을 탄압하는 데는 극도록 잔인했던 구한말의 군, 순검들처럼, 서해안 경계 잘못해서 부하 사병들 46명 불귀의 객으로 만들고도 부끄럼느끼지 않는 사람이 군의 총수로 앉아있다.
외한위기 직후 외환은행을 비롯한 국내 굴지의 기업들 외국 투기꾼들에게 헐값으로 넘기는데 정보를 제공해주고 그들에게 법률 자문을 해준 경제부처 총수, 대형 로펌, 고위 관료들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채 호의호식하고 있다.
미국유학을 갔다와야 공부를 제대로 한 것이고, 영어를 잘 해야 능력이 있다고 판단하는 대학의 총장과 교수, 기업의 총수들이 이 사회의 최고의 지식인이자 최고의 CEO들이다.
분단된 채 60년이 흘렀으나, 아직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도 군사주권도 없으면서 자주독립국가라고 착각하는 정치가와 백성들이다.
일제 때는 총독부 찬양,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 때는 전두환 찬양, 권력이 기업으로 넘어간 지금 시대에는 기업 총수 찬양으로 일관하는 언론이 이 사회의 최고 잘 나가는 신문들이다.
일본사람들에게 종살이한 것은 사실상 우리가 개화, 근대화의 길로 가기위한 불가피하고 바람직한 대안이었다고 생각하는 지식인들이 일본 1급 전쟁범죄자가 만든 재산의 돈 받아서 프로젝트하고도 부끄러움 없이 살고 있다.
마지막, 나를 비롯한 지식인들의 큰 잘못....
해방 65년, 경술국치 100년이 되었는데, "우리는 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가"에 답을 주는 제대로된 저서, 연구서 하나 만들어내지 못한 지식인, 역사학자들이 학자로 행세하면서 밥을 먹고 살고 있다.
오늘 누가 어떻게 8.15 해방과 경술국치 100년을 기억하는가,
거론할 가치도 없는 글이지만, 생각하다보니 거슬려서 한 자 적는다. 어제 일자 중앙일보 칼럼에서 박효종교수는 "제헌절을 기억해야할 이유"라는 칼럼에서 헌법정신을 아우르는 화두가 있다면 ‘자유’라고 못박고서, 자유의 반대는 전제정이며, 전제정은 바로 오늘의 북한이고 따라서 천안함 사태에서 볼 수 있었듯이 우리의 자유를 위협한 전제정권 북한에게 평화를 외치는 것은 비겁하다고 글을 맺는다.
나는 그가 헌법 전문이나 헌법 전체을 읽어보았는지 의심스럽다. 제헌헌법 전문에는 독립정신, 자주독립, 정의, 인도, 동포애, 민족의 단결, 봉건적 인습 타파, 민주주의, 각인의 기회 균등,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 항구적인 세계평화, 안전과 자유와 행복 등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헌법을 기초한 유진오나 당시 제정과정의 국회 논란 어느 구석에도 북한의 전제정을 배격하며 자유를 제일의 가치로 삼는다는 내용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유진오는 자유와 평등을 기본가치로 한다는 제안이유를 분명히 하고 있으며, 헌법전문은 물론 각 조항을 살펴보면 법앞의 평등, 신체, 사상, 거주이전 등 각종의 자유 뿐만 아니라 이익의 균점, 사회정의의 실현, 운수, 통신 등 공공성을 가진 기업의 국유화 등 그가 말하는 자유보다는 평등의 가치를 강조하는 내용이 더 많다.
제헌헌법에는 자주독립, 동포애, 사회정의 등의 내용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오늘의 이명박 정권이 전부가 반대로 가는 내용이다. 더욱이 제헌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국토방위의 의무를 진다고 되어 있는데, 이 정부의 대통령, 국무총리, 집권당 대표는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난폭한 논리를 아까운 지면에 도배한 중앙일보와 박효종이 참으로 애처롭다.
제헌헌법이 중앙일보에 가서 참 고생이 많다.
반공, 반북주의라는 미신에 홀리면 모든 세상이 그렇게 보인다. 사실의 왜곡도 여반장이다.
모든 이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제헌헌법 문서 중에도 오직 자기가 읽고 싶은 내용만 보인다.
제헌헌법의 정신을 심각하게 위반한 자들이 누구인가?
모두 제헌헌법을 읽어보자. 함석헌선생이 말했듯이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남북한의 관계는 아직도 철창을 경계로 해서 갈라져 있다.
상대를 철창에 집어 넣어야 내가 산다고 말한다.
강대국이 한반도 내, 외부에 들어와 있는 마당에 섣부른 민족주의의 열정은 수 많은 인명을 앗아갈 위험하고 무모한 우물안 개구리의 사고였으며, 자유 세계라는 '보편논리'는 종속적 현실을 은폐한 노예의 사상이었다.
한국전쟁 60년, 경술국치 100년을 맞이한 올해는 우리가 전통, 식민지화, 전쟁, 근대, 산업화 문제를 총체적으로 성찰해야할 중요한 해 입니다. 아시아에서 근대화에 성공하여 미국 혹은 서양 문명의 대리자로서 행세한 일본은 문명의 이름으로 야만적 침략과 식민지화를 감행했습니다. 그런데 전후의 도쿄 재판은 일본의 침략의 야만성을 지적을 했으나 철저한 청산을 하지 않고 봉합을 하고 말았습니다. 일본에 대한 단죄는 또다른 제국주의인 미국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다케우치 요시미는 "제국주의는 제국주의를 심판할 수 없다"고 외쳤습니다. 미국은 일본의 침략에 사실상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조선은 38선 획정에도, 도쿄 재판에도, 샌프란시스코 협약에도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식민지 굴욕은 연장되었습니다. 그 대신 서로간에 원수가 되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렀습니다. 식민지 과거도 청산하지 않고, 전쟁의 책임도 묻지 않은 채 근대화의 길로 나갔습니다. 한국전쟁은 청산하지 못한 식민지 체제의 연장이라 볼 수 있고, 분단 하 근대화, 경제성장의 시작이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결국 미, 일, 한반도의 삼각 구도, 혹은 중국을 포함한 4각 구도의 시야에서 지난 100년을 보지 못하면 우리는 100년전과 마찬가지로 외세에 운명을 맡겨야 하는 존재가 됩니다. 즉 반성과 청산이 없는 상태에서 주체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경제력만으로는 국제무대의 주역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일본이 잘 보여주고 았습니다. 전후 60년 동안 일본의 불구정치와 한국의 불구정치는 사실상 하나입니다. 노령화의 그늘은 일본에 이어 한국에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경술국치 100년을 보다 철저하게 반성하는 노력이 없습니다. 아직도 정신 못차린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