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신문 연재 중인 역사학자 이이화의 <민중사 헤쳐온 야인> 에 옛날 사진 한 컷이 있군요. 고인이 된 김진균 교수가 보이고 제일 왼쪽에 제가 있습니다. 후원자였던 원혜영 의원이 제일 오른 쪽, 조동걸 교수, 김정기 교수, 이이화 선생 등이 보입니다. 아마 1990년, 91년 경인듯..... 1989년 가을호 부터 편집위원으로 합류하여 2000년까지 일했으니 나의 30대가 역사비평과 함께 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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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연재 중인 역사학자 이이화의 <민중사 헤쳐온 야인> 에 옛날 사진 한 컷이 있군요. 고인이 된 김진균 교수가 보이고 제일 왼쪽에 제가 있습니다. 후원자였던 원혜영 의원이 제일 오른 쪽, 조동걸 교수, 김정기 교수, 이이화 선생 등이 보입니다. 아마 1990년, 91년 경인듯..... 1989년 가을호 부터 편집위원으로 합류하여 2000년까지 일했으니 나의 30대가 역사비평과 함께 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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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선생을 회고하는 한겨레 좌담에서 고은 선생이 시인다운 통찰력있는 발언을 했다.
지식인이라는 것은 ‘아는 자’다. 아는 자는 본질적인 계급이 아니라, 모르는 자와 함께 동행한다는 전제 아래에서 아는 자가 되는 것이다. 모르는 것을 알게 하고 잘못 안 것은 고쳐주는 것은 아는 자의 사명이다.
"모르는 자와 동행하는 전제에서 아는 자가 된다"는 표현이 좋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것이지만, 시인이 말하니 의미가 새롭다. 즉 아는 자의 앎은 모르는자와의 동행에서 나오는 것이다. 내 식으로 표현하면 "어렵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 속에 앎이 있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다른 글에서 쓴 적이 있다. 지식은 세상에 골고루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구석에 있다. 어두운 구석은 세상의 일부가 아니라 세상의 전부다. 어두운 곳에서 보면 세상이 모두 잘 보이지만, 밝은 곳에서는 세상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모르는자, 즉 고통받는자와 동행하는 것은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한 필요 충분조건이다. 세상이 무엇을 감추려할 때, 바로 그 감추려하는 데 진실이 있다는 이야기다.
리영희 선생은 바로 이 감추려하는 것을 캐는데 본능적 감각과 능력을 가진 분이고, 그 일에 희열을 느낀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학자라기 보다는 기자의 본능을 갖고 있고 지식인으로서의 사명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모르는 자와 동행하고 어두둔 구석을 밝히려는 점에서 기자와 학자의 일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다만 방법이 다를 뿐이다. 오늘의 기자와 학자들의 타락이 어디서 오는지는 명백하지 않는가?
노자식 화법으로 말하자면
말해진 것은 진실이 아니며, 진실은 말해지지 않는다.
말해지지 않은 진실은 모르는 자의 고통 속에 체현되어 있지 언어화되어 있지 않다.
언어는 단지 그 근처에 가서 그것을 어루만지는 시늉만 할 따름이다.
여기서 지식인들 역시 결정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그 한계를 자각하고 그것을 돌파하려 최대한 노력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리영희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큰 별이 졌다.
1995년 역사비평 지면에서의 선생님과의 대담을 올린다. ( 홈피)
http://dckim.skhu.ac.kr/pdf/1995%20-%20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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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이 말했다.
“조국이 통일만 되면 내 나라를 떠나 민족을 잊고 싶다. 지긋지긋하다. 조속히 분단이 끝나길 바란다”
언론은 이러한 표현이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말한 것이라고 논평을 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이 이렇게 들린다.
"분단과 통일 문제로 더 이상 씨름하지 않는 자유인, 세계인으로 살겠다"
한글에 대한 외국인들의 이해부족 때문에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도 "한국어가 외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반론을 폈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한글이라는 언어의 미세한 뉘앙스를 이해못한 것이 아니라, 민족문제를 인간의 문제, 보편적 문제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아니면 고은 시인 자신이 분단과 통일 문제의 사고에 갖혀서 그들이 이해가능한 방식으로 우리 문제를 보편화하지 못했거나.....
그가 소망하는 것처럼 분단극복과 통일이 하루아침에 도둑처럼 올 것 같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오더라도 하루아침에 모든 문제가 정리되는 방식의 통일이 될 것 같지 않다.
설사 그런 통일이라도 오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한반도를 떠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민족문학이 아니라 '민족의 고뇌가 담긴' 세계문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의 말의 진의를 "민족과 통일이 우리의 사고를 제한하고 있다" 라고 해석하고 싶다. 21세기의 지성은 20세기 우리 지성의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노벨상이 무엇이 중요한가? 우리가 그러한 사고에서 벗어나야 진정 세계인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고, 세계인의 사고를 해야만 한국이 세계와 함께 하는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 오늘 제13회 비판사회학 대회가 서울대에서 개최되었다. 어제 나는 실로 오랫만에 비판사회학대회에 참석해서 사회와 논문 발표를 했다.
( 내 발표문 제목은 "전쟁, 반란의 위기에 직면한 지배체제- 냉전, 분단, 반공주의 질서와 현대 한국의 전쟁정치").
오랫만에 동료 선후배 많은 학자들을 만났다. 대부분 잠간의 인사로 스치고 지나가서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학문적 동료들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나는 4년의 진실화해위 활동으로 학계를 떠나 있었고, 그 동안에도 연구자 모임보다는 대중적인 글이나 서적 집필, 활동가들 모임, 외부강연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기 때문에 사실 2000년 [경제와 사회] 편집위원장을 그만 둔 이후에는 학계 활동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다.
어제 모임에서는 내가 사회와 발표 역할 하느라 다른 세션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가장 관심을 끈 주제는 역시 사회학의 위기, 특히 젊은 사회학도들의 어려움과 사회학 교육과 사회학 전공자 진로 문제에 대한 논의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사회학의 위기가 제기된 것이 일곱 번이나 된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제는 위기론 자체도 식상해 진 감이 있다. 사회학의 위기는 사회학의 현실 설명력의 위기, 사회학 박사들의 취업위기, 사회학과의 폐과 위기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지만, 통계로 나타난 수치만 보더라도, 사회학의 정체는 심각한 일이다.
나 역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이 문제에 결코 무관심할 처지가 아니고, 적극적으로 방안을 만들어야할 당사자이기도 하다. 내가 학회에 참석하고 이 쟁점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이제는 이 문제를 책임져야할 위치에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사회학 전공학생들이 취직을 잘 하고, 대학원에서 사회학 공부하는 학생들이 속된 말로 '잘 팔릴' 수 있을까? 이 사회를 비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참으로 곤혹스러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학생의 진로를 위해서는 좀더 실용적이 되어야하고, 로비를 해야하고, 정치력도 발휘해야 하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인사도 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자존심을 숙이는 일이고, 이론적 입장과 배치되는 행동을 해야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기본적으로는 이 책임이 서울 주요 대학 사회학과 교수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의 주요 대학 사회학과 교수들이 어떤 연구와 실천을 하는가, 어떤 업적을 생산했는가가 전체 사회학의 이미지를 좌우한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더 훨씬 좋은 물적 인적 조건을 갖고 있으며 강의부담도 매우 적다. 학교의 입지 때문에 자신의 실천을 통해서 영향력을 발휘할 기회도 많다.
그들의 연구업적과 역량이 사회학의 얼굴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대학에서 밥먹고 있는 사회학 교수들 전체가 책임을 갖고 있다. 특히 젊은 나이에 일찍 자리잡은 교수들의 책임이 크다.
90년대 사회학 위기론이 제기되었을 때 선배 학자들이나 교수들은 소장 진보적 사회학자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그들 때문에 사회학과의 이미지가 너무 과격하게 비쳐서 학생들이 취직을 못한다는 것이다. 성공회대학교 재단 측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즉 소수의 과격파 이론가들이 학교 이미지를 매우 '위험한' 대학으로 만들고, 학생들의 진로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 보고 하는 소리 같다. 과연 그럴까? 소수의 진보파가 목소리를 낮추면 사회학 전공 학생들이 취직을 잘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비판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좋다. 그러면 당신들은 무엇을 했나? 과격한 소수의 사람들이 운동이론가가 되어 유명해(?) 져서 사회적 분위기를 좌우할 때에, 다른 사회학자들은 사회학의 여러 학문 분야 연구와 실천을 통해서 사회에 기여할 길이 없었는가? 그들이 비난하는 진보가 아닌 일반 사회학자들은 과연 무슨 학술적 업적이 있으며, 무슨 사회적 기여가 있었단 말인가?
지나간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진보학자들은 자기 방식대로 세상에 기여하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연구와 교육을 통해 사회학의 '시장성'을 높이면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점에서 실용주의자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취직 신경쓰지말고 이론만 공부하라고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친기업적인 사람을 요구한다면 나는 적어도 교육 과정에서는 일방저으로 반기업정서를 주입할 생각은 없다. 또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다. 나는 젊은이들이 세상에서 먹고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이 일자리 잡는데 유리한 방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학자들의 역할이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 대해 의제를 제기하고 담론을 이끌어나가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또 그것에 의해 학문의 필요성, 사회학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여론도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잠재력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실용적 필요 때문에 자신의 끼와 꿈을 접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어디 학문의 가치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 지도자들 없을까? 젊은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줄 사람 없나?
이번에 노벨 화학상을 탄 네기시 에이이치 왈
"미국에서 만난 한국인 연구자들은 능력과 소질이 정말 뛰어났다. 그런데 그들이 한국으로 돌아가서는 크게 뻗어나가지 못하는 것을 보고 솔직히 아쉬웠다. 그분들의 재능을 살라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한국의 과학계에 대해 한마디했다.
한국은 재능있는 과학자의 능력을 사장시킨다. 그렇다.
뛰어난 업적을 남길만한 잠재적 후보들이 우선 과학자의 길로 들어서지 않는다.
우수한 이과생들이 모두 일생 편하게 살수 있는 의대, 한의대를 택한다.
우선 자연과학계 인재들이 과학자의 길로 들어서지 않는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뛰어난 잠재력을 보여준 과학자들이 한국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한다. 왜 그런가?
대학 교수채용이 연고 ( 학연 등)등으로 얼룩져 있다. 우수한 인재들이 발탁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아무리 우수한 인재라도 성격이 모난 존재이면 동료 선배 배척 대상이다. 만약 후배들이 그를 채용하고자 하는 학과의 교수로 있다면 그들 대부분은 그를 거부할 것이다.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학내의 복잡한 정치가 학자들의 창의적인 활동과 의욕을 소진시킨다.
우수한 학생들이 대학원에 오지 않는다. 조교를 동료로 삼아 연구할 수 있는 분위가 되어 있지 않고 학생들로부터의 지적 자극이 거의 없다.
특히 서울의 주요 대학이 아닌 경우 실험조교 구하기도 어렵다.
정책적으로 과학자들을 홀대한다. 순수학문을 경시하고 멀리보는 투자를 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는 과학기술부를 폐지하고 교육부에 붙여놓았다.
정치적으로도 과학자의 영향력이 없다. 정치꾼들인 문과생들이 모든 요직을
독식하고 있다. 과학자가 장관이나 국회위원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래서
영향력있는 자리에 올라가지 못한다.
주요대학의 교수가 되면 생활이 편하고 권위가 보장되기 때문에 구태여
나이들어서도 무리해서 연구활동을 할 이유가 별로 없다.
계속 지적인 자극을 줄 동료를 만나기도 어렵다.
체력이 떨어지고 눈이 침침해지면 책보기도 어렵고, 실험도 어렵다.
그래서 포기한다.
근성이 떨어진다.
한 분야에 끝장을 보려는 정신이 약하다.
교수로서의 지위가 아니라 정말 그 학문이 그 연구 분야가 좋아서 일생을 걸만한 분야라 생각하면서 시작한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
잘난 사람 치는 분위기가 있다.
업적을 쌓으면 그만한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데, 동료들이 시기한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 보상을 절대로 몰아주지 않는다.
동료들이 마음으로부터 업적이 있는 사람을 칭찬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도 칭찬하는 분위기가 없다.
언론은 한가지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람이 우리사회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주목하지도 않고 그 가치도 모른다.
이런 환경에서 외로운 싸움 수십년 할 수 있는 사람 있나?
오늘 자 미국 NPR ( National Public Radio)에서는 이라크 전쟁 고아 문제를 크게 다루었다. 전쟁 발발이후 수 많은 어린이들이 고아가 되었는데, 특히 자살폭탄테로 인한 피해 역시 만만치 않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수천명 이상의 전쟁고아가 발생했으며, 이들은 이 기사의 표현대로 "자신의 자신의 경험을 억누르고 있다". 자신의 부모가 자신이 보는 앞에서 폭탄테러의 희생자가 되는 것을 경험한 어린이, 아버지나 어머니가 집을 나간 후 돌아오지 않는 경험을 한 어린이, 아버지의 자살을 목격한 어린이, 형 동생 등 온 가족이 모두 사망하고 혼자만 살아남은 집의 어린이, 이루 셀 수 없는 비참한 이야기들이 이라크 천지에 떠 돌고 있다.
이 기사의 마지말 말이 특히 인상적인데, 장차 10년에서 15년이 지나면 이들은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고 그들이 바로 폭력적인 사람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한 명의 사담 후세인을 제거했지만,
백만명의 사담 후세인을 만들었다"는 이라크인의 말이 특히 충격적이었다.
즉 폭력의 희생자가 바로 폭력의 가해자가 될 것이고, 이들의 분노와 원한은 향후 수 십년 혹은 그 이상 동안 이라크 사회를 병들게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나는 전쟁 발발후인 2004년에 출간한 나의 책 <미국의 엔진 - 전쟁과 시장>에서 이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전쟁은 종료해도 내부의 전쟁과 폭력은 반세기 혹은 한 세기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을 한국의 경험에 기초해서 진단하였다. 그 점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바로 전쟁고아들의 피울음에서 그 단초를 읽을 수 있다. 지금 이라크는 이 전쟁고아들을 돌볼 능력이 없다. 소아정신병 상태에 있는 이들에게 심리치료를 할 수 있는 의사나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미래의 테러세력, 미래의 폭력세력이 자라고 있는데도, 이들에게 손을 쓸 수 없다.
전쟁의 최고책임자인 미국이 이들에게 어떤 관심을 보이는지 알 수 없다. 아마 60년전 한국에서 그러했듯이 이들은 입양을 통해 자신이 저지른 죄를 씻으려 할 것이다. 그나마도 약간의 양심이 있는 개인들이 그러한 입양 조치라도 할 것이고 미국 정부 차원에서는 약간의 구호물자 전달하는 것을 제외하고서는, 대체로는 이라크 사람들의 책임으로 돌릴 것이다. 그래서 고아들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모든 비용은 모두 이라크 사람들이 지불해야 한다.
과거 한국이 그러했듯이....
한국전쟁 발발 60년이 되었는데, 수 만명의 전쟁고아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의 원한과 상처는 어떻게 이후 우리사회에 스며들어 사회를 병들게 했을까?
그들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을까?
오늘 한국에서 아무도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제가 생각했던 일을 이루어내기에 10개월이라는 기간은 너무 짧았고,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은 너무 험난했다"
그가 총리자리에 들어설 때 무엇을 생각했는지 알수가 없다. 어떤 일을 이루려했는지 알 수가 없다. 과연 그가 10개월 재직기간동안 이명박 대통령이 이야기하지 않았던 어떤 정책, 경제학자로서 평소갖고 있었던 소신을 개진한 적이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이른바 친서민정책은 이명박이 이야기하니 따라 한 것이지, 그가 스스로 꺼낸 것 같지 않다. 4대강 삽질이 과연 그의 소신과 부합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자리를 위해서 소신을 버린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소신이 없었던 것인지 알수가 없다. 그가 들어가서 이명박 정부의 소통능력을 얼마나 더 제고시켰는지, 수구세력과 거리를 두는데 어느정도 성공했는지 알수가 없다.
그는 어차피 세종시 문제해결을 위한 정권의 충청도 민심달래기 해결사 역할을 하러 들어갔다. 세종시 문제가 원점으로 갔으니 그의 역할을 끝난 것이다.
그래도 총리한번 했으니 가문의 영광이 아니냐고 할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이 과연 자리를 위해 사는 존재인가? 그가 과연 지금까지의 인생의 결산이 소신과 평소의 입장을 굽혀서라도 총리자리 한번 하는 것이었나? 그렇다면 인생이 너무 초라하지 않나? 청문회 과정에서 그의 매끈하지 못한 처신이 너무 많이 폭로되었다. 그는 학자로서의 이미지를 완전히 구길 정도로 이 정부의 정책에 순응하였다. 얻은 것은 자리이지만, 잃은 것은 그의 학자, 지식인으로서의 자존심과 존재감이었다.
한국의 정치지형이 험난하다는 것을 총리가 되고서 알았다면 우스운 일이 아닌가? 아직 한국 정치는 소신있는 사람이 버틸 수 있을 정도로 페어플레이 원칙이 작동하는 곳이 아니다. 그걸 이제 알았다는 말인가? 아니면 어느정도는 알았지만, 자리에 집착하다보니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는 말인가?
본인은 자신의 역할이 컸다고 자찬하면서 떠났을지 모르나 내가 보이게는 이명박 정부의 불쏘시개 역할하다가 용도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총장까지한 지식인이 이렇게 살아도 되나?
어제 중앙대에서 열린 강정구 교수 퇴임식 행사에 갔었다. 퇴임식을 그가 봉직했던 동국대에서 하지 않고 중앙대에서 하게 된 이유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는 동국대에서 직위해제된 상태에서 정년을 맞았다.
그런데 나는 한사람의 교수의 퇴임식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온 것을 본 적이 없다. 아마 300명 정도는 족히 온 것 같았다. 정말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의 유명대학 교수들의 경우 학계나 사회에 진출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수 많은 제자들이 있고, 또 약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성대한 퇴임식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직위해제된 교수퇴임식에 이렇게 성황을 이룬 것은 드문일이다.
강교수님 덕분에 나도 수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 거의 백여명 이상을 만났다.
아마 그가 평통사 등 평화통일 운동단체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고, 향린교회, 비판사회학회, 민간인학살범국민위 등에서 회장, 대표 등 그 동안 여러 중요한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2000년대 이후 방북시 서명 사건, 통일전쟁론 등으로 감옥에 가는 등 두번이나 수난을 당하는 일을 겪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고난의 이력을 깊이 위로하고 공감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언론의 프리즘에 의해 굴절된 그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은 그를 대책없는 친북인사, 세상물정모르는 고지식하고 완고한 민족주의자라고 보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 그는 북한, 남북관계, 한미관계 등에 대해 매우 상식적인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고지식하게 발언한 사람에 불과하다. 그가 말하듯이 냉전의 우상 속에서 그는 여전히 위험한 친북인사처럼 보일 따름이다. 물론 북한에 대해 나는 좀더 비판적이기 때문에 그는 나와 생각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민족자주, 주권문제, 한미관계의 굴절, 미군주둔 등에 대한 민족문제에 대한 그의 주장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분단국가의 지식인으로 응당 제기할 수 있는 것들이다.
민족문제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사회적 보수주의자가 많지만, 그는 가족과 학교에서도 미국서 교육받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동국대 모 교수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학교의 거의 모든 교수가 그 문제의 교수를 감쌌지만, 동료인 그와 인간적 대립까지 각오하고 피해자인 여성을 옹호했던 사람이 강정구 교수였다.
1988년 그가 귀국해서 산사연에서 발표회를 했을 때 그 직전에 발표한 나의 논문 ( 한국현대사 연구 1의 서문)을 인용하면서 카랑카랑하게 언급하는 것을 보고 미국서 공부한 사람이 저렇게 우리와 한국현대사에 대해 비슷한 시각을 갖는 경우도 있나 하고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후 나는 산사연 활동, 각종 학술활동을 통해 그와 수 없이 많이 만났고, 그 인연으로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범국민위를 조직할 때 그를 대표로 추대하였고, 이 일을 위해 같이 여의도 앞 시위 대열에 서서 거리를 누비기도 했다.
하여튼 퇴임은 자유로운 학자로 다시 출발하는 것이라는 어제의 축사도 있었지만, 이제 그가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활동하는 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
OECD 국가 중에서 자살율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자살현장에 대해 마이니치 신문이 보도하였다. 그리고 양국 간의 유사성을 비교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자살자 중 노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에서 사회의 붕괴 즉 애초부터 사회안전망이 극히 취약한 사회에서 가족이 사실상 복지 기능을 수행하지 어려워짐으로써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어쨋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이나 14위의 경제대국인한국이 세계 최상의 자살대국이라는 점은 깊이 음미해볼만한 내용이다. 즉 자살은 절대적 빈곤 상태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탈락한 사람을 보듬어 줄 수 있는 공동체의 결여에서 초래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의 자살율이 매우 유사한 양상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이 신문의 보도 역시 그 점을 주목하고 있는데, 한국과 일본이 비록 경제적으로는 부국의 대열에 올라섰다고 하나,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 즉 전통적 가족이 붕괴하고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가운데 사회적 연대나 약자에 대한 보호의 기제가 지극히 취약한 사회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신문은 한국과 일본의 공통점으로 오랜 관료정치 등 정치시스템의 유사성을 들고 있다. 그러나 보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의 안보 우산 속에서 사실상의 극우 독재 60년을 겪은 점이 이러한 취약한 사회적 토대와 크게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일본도 그러하지만 한국에서도 사회 혹은 국가복지의 개념이 대단히 취약하고 그것은 진보정당의 결여, 취약한 노동운동과 직결되어 있다. 일본도 그러하지만, 한국 역시 반공주의 우산 속에서 추진한 성장주의가 얼마나 허약한 기반을 갖고 있는지 성찰해 봐야할 시점이다.
일본과 한국은 2차대전후 성공한 국가의 표본이 아니라, 고성장주의가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수반하지 않은 병든 국가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