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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19일 화요일

프랑스의 파업물결 - 청년들에게 희망을 !

프랑스가 6일째 파업 중이다. 정부추산 100만, 주최 측 추산 300만명이 파업에 참가했다고 한다. 파리, 마르세이유, 리용 등 대도시의 노동조합과 학생들이 가세했다. 시위는 과격하게 진행되었다. 차를 불태우고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tear gas 를 사용하고 있다.

정유부문 노동자들 파업으로 가스충전소가 거의 문을 닫아 산업이 마비될 지경이고 항공기가 결항되고 있다. 379개의 중고등학교가 문을 닫았다.

Metallurgists held flares as they marched in the southern port city of Marseille.

 

2006년 고등학교 학생들의 대규모 파업시위 시위가 발생한지 4년만에 전국을 뒤흔드는 새로운 파업과 시위가 발생했다. 200명의 무정부주의자들도 바스티유 광장에서 시위대에 합류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들을 '말썽꾸러기'들이라고 지칭하면서 곧 질서를 되찾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이번 파업과 시위는 사르코지의 연금개혁에서 비롯되었다. 근로연령을 60에서 62세로 2년 늘이고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를 65세에서 67세로 늘였다. 고령화가 진척되고 있는 마당에 재정적자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오래 동안일하고 더 늦게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은퇴연령은 이웃 나라에 비해 2년 이상 낮다는 것이 그들의 항변이다. 재정파탄을 막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지금도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더 일하란 말이냐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당장 일자리를 달라고 외친다. 현재 프랑스의 25세 이하 청년 업률은 25%에 달하는데, 유럽 평균 20%를 훨씬 상회하는 수치다.

 

결국 이번 파업은 연금개혁에 대한 불만에서 촉발된 것이지만, 사르코지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불만, 특히 친자본 정책과 높은 청년실업에 대한 불만에서 더 크게 확산되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 사람들 70%가 이 시위를 지지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시위가 이렇게 과격하게 진행되는 것도,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적인 목표를 내건 것이라기 보다는 지난 수년 동안 사르코지 정권의 시장화, 부자 위주 정책, 우경화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이 표출된 측면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사르코지가 사회적 대화를 통해 문제흘 해결하기 보다는 일방통행식의 정책집행을 해서 시위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진단도 있다.

 

이웃 영국에서는 가디언지지 오늘자에서  나온 것처럼 영국도 프랑스 못지 않게 심각한 상황인데 왜 대중들은 잠잠한가라는 자조섞인 진단도 나오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런 방식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지금 청년들이 절망상태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프랑스의 청년 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 한국의 청년들도 절망상태에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선진국의 제조업은 중국과 인도로 가버렸다. 서비스업은 열악할 뿐더러 그나마의 일자리 자체도 드물다. 이것은 프랑스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문제다. 아니 한국은 사실 더 심각하지만, 청년들이 시위를 하지 않는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전세계에 남아도는 자본, 특히 막대한 규모의 금융자본을 어떻게 일자리 창출을 위한 신규투자로 유도할 수 있을까? 정부가 어떻게 공공부문 활성화를 통해 사회서비스업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교육개혁을 통해 어떻게 인력의 수요 공급 구조를 조정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우선 민노총이나 시민사회단체에서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 위원회라도 만들었으면 한다. 그리고 산업구조개혁, 교육개혁, 청년들의 취업교육을 위한 전략적 기획을 기업, 정부, 노동 3차의 협의채널을 통해 시작해야할 것이다.

 

 

 

 

 

 

 

2010년 8월 5일 목요일

정보공개운동을 제창함

최근 미국에서는 두 건의 정보 공개 조치로 온 사회가 시끄럽다. 하나는 위키리크(Wikileaks)라는 정보공개 단체가 공개한 아프칸 전쟁 6년동안의 기밀 문서들이고 또 하나는 얼마전 작고한 진보적 역사학자 하워드 진(Howard Zinn)에 대한 FBI의 사찰기록이다. 전자의 경우 파키스탄과 텔레반의 연계, 공중폭격에 의한 민간인 살상 등의 알려지지 않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후자에는 1950년후 하워드 진이 공산당에 가입하거나 관계되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전자의 기록에 대해 미 정부는 그 가치를 폄하하고 있을 뿐더러 지휘관의 이름과 활동이 완전히 공개되어 이들의 생명이 위태롭게 되었다고 극도의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보공개를 계기로 미국의 아프칸 전쟁 전략, 특히 철수계획과 관련된 중요한 정책에 대한 청사진과 방향을 분명히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즉 이 정보가 비록 1급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실제 아프칸 전쟁이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복잡하고 미국인들에게 그 전쟁의 성과를 설득해야하는 중대한 과제를 부여한 점이 있다.

 

후자의 기록은 공개를 요청한 측의 의도를 잘 알 수 없으나, 보수적인 인사들은 거 봐라 하는 식으로 진의 그 동안의 성과와 명성을 폄하하면서 이데올로기 공세를 펴고 있는 반면, 진보적인 인사들은 1949년부터 일개 학자인 진을 매우 위험한 인물로 간주하고 죽을 때까지 사찰한 미 정보당국의 섬뜩한 활동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어쨋든 이 두 사건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거의 이름만 존재하는 정보공개법을 새로 개정하고, 민간차원에서 정보를 운동의 중요 수단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정보공개만 전문적으로 하는 운동단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현대사는 너무 어두운 구석이 많고, 국민들의 무지를 활용해서 과거 독재정권이 유지되어 왔을 뿐더러 그러한 행태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국민의 알권리 충족과 민주주의의 활성화를 위해 정보의 공개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단체의 전문성이 제고되어야 하고, 하나의 주제를 계속 추적하는 감시집단이 있어야 한다.

 

 

2010년 5월 3일 월요일

박형규 목사님

박형규 목사님의 회고록 [나의 믿음은 길위에 있다] ( 2010창비)를 다 읽었다. 그는 미국 유니온 신학교를 마친 경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교수로서 편안한 삶의 길을 갈 수 있었으나 현장을 뛰는 목회자의 길을 갔고, 그냥 단순한 목회자로서 편안한 길을 갈 수 있었으나 활동가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여 고난의 삶을 살았다. 아마 그는 한국의 목회자 중에서 가장 여러번 감옥에 갔으며, 가장 많은 죄목의 전과를 갖고 있을 것이며, 가장 오랜 기간 감옥생활을 한 인물일 것이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은 그가 대단한 투사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매우 편안한 분이고 주변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분이다. 그렇게 고통을 당하고도 맑은 정신세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아마도 그가 신앙인이기 때문일 것이고, 세속적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고,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나 자신에 대한 존중감과 도덕감을 유지할 수 있으며, 인격적 안정감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서슬 시퍼렀던 유신시절을 겪은 우리 세대의 관점에서 보면 당시에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젊은이들의 편에 서서 행동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기성세대였고, 그 만큼 그 시대의 큰 희망이요 언덕이었다. 정부에 반대하면 무조건 빨갱이로 몰던 박정권, 전정권 시절에 그렇게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교회와 기독교라는 큰 보호막이 있었고, 국제 기독교 세력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국 기독교에서 극히 예외적인 인물이었고, 대다수 목회자들과 기독교인들은 불의에 침묵했으며 권력에 충성을 했다. 이들 과거 체제순응적이었던 교회가 오늘날 우리사회를 물질주의와 탐욕의 천지로 만든 주역은 아닌지 생각도기도 한다. 

 

이 책을 보면서 가진 한가지 궁금한 점은 그를 그렇게 잡아들이고 고문한 경찰과 검찰, 중앙정보부 요원들, 과 전정권의 하수인들, 그리고 그에게 징역형을 때린 판사들, 그를 교회에서 쫓아낸 신도들과 그 배후의 인물들이 누구인지 좀 알고 싶다는 것이었고, 그들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내는가라는 점이었다. 우리는 박형규 목사의 고난의 일대기를 통해 감동을 느끼고 배우는 바가 있어야 하겠지만, 평범한 목회자의 길을 갈수도 있었던 사람을 시대의 투사, 빨갱이 목사로 만든 인물들이 누구인지도 알고 싶다. 경찰, 중앙정보부 등 언제나 익명으로만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라 그 조직을 움직인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알고 싶다.

 

그의 회고록 중 "자유가 없는 곳에는 이웃사랑도 할 수 없다"라는 구절이 가장 가슴에 와 닿는다. 수도권 빈민선교에 진력했던 그의 정신이 박정권의 억압에 맞설 수 있었던 용기와 일맥상통한다. 교인이 아닌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과 노동자들에 대한 사랑이 그의 기독교 정신의 핵심이다. 교회에 나오는 신도들만 이웃으로 생각하는 오늘의 기독교가 그의 삶을 통해 자신을 깊이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