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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6일 금요일

박정희와 삼성

 

1974년 1월 8일 박정희는 계엄상태에서 유신헌법을 선포한 이후 비상군법회의를 설치하고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안 또느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고 선포하였다. 몇 달후 긴급조치 4호를 발표하여 '적화통일'을 기도했다는 죄목으로 민청학련이라는 단체의 소속 학생들을 검거하였으며, 배후로 인혁당준비위 관련자들을 구속하였다. 잘 알려진대로 인혁당 관련자 8명은 항소, 상고도 하지 못한 채 곧바로 처형되었다.  

 

2010년 11월 26일 삼성전자는 사내 전산망에 노조설립 허용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박종태 대리를 해고조치 했다. 삼성전자 측이 그동안 내걸었던 징계 이유는 "수원사업장의 취업규칙에 어긋나는 업무지시 불이행, 허위 사실 유포, 명예 훼손, 정보보호 규정 위반 등을 지속적으로 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박 대리가 '왕따'를 당한 적이 없는데, '왕따'를 당했다고 주장해서 동료 직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업무지시는 신의 명령과 같이 존중되어야 하며, 노조설립 요구는 사시 위반이다. 그러니 그는 그 회사에 남아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어제 당일 짐을 싸야 했다.

 

과거에는 헌법을 비판하면 죽을 죄가 되고, 지금 삼성에서는 노조를 만들자고 주장만 해도 죽을 죄가 된다.

그런데, 삼성에서 생존권은 박탈당해도 아직 '생명'은 살아있으니 확실히 우리나라는 민주화되었다.

민주주의 만세 !

세계 일류기업 삼성 만세 !

대한민국 만세 !

 

2010년 11월 20일 토요일

현대 자동차 비정규직 파업

현대 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이 6 일째 접어들었다.

급기야 한 노동자가 분신까지 시도하는 일이 발생햇다. 용역깡패 동원에 분노한 것이라 한다.  

이 파업의 원인은 매우 간단하다.

현대 자동차 사업장에는 동일 라인에서 동일한 노동에 종사하는 두 종류의 노동자가 실재하고 잇다.

약 만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실상 정규직과 동일한 노동에 종사하고 있지만, 그들의 60퍼센트

정도의 급료밖에 받지 못한다. 이것은 파견의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불법 고용이다.

동일노동에 대해 동일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은 근대 민주주의 국가의 골간이다.

그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은 노예제가 존재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지난 7월 대법원은 이 사업장의 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낸 소송에서 불법으로 일한 것이 맞다고 판결을 했다고 하고,  11월 고법에서도 이런 경우 직접고용, 정규직 노동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 바 있다.

이들 노동자들은 이 사업장에서 2년 이상 근무를 했으므로 이제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할 존재들이다.

이들이 정규직 노동자가 되어야할 이유는 법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너무나 분명하다.  

그런데 회사 측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규직 전환을 하는 것을 의무규정으로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의 맹점이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부당해고가 그러하지만 부당하다는 판결을 낸 이후에도 사용자들이

그들을 재고용하지 않거나, 고용하더라도 사실상 왕따를 시켜 나가게 만드는데, 그것에 대하여

제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용자의 버티기는 계속된다.

어잿든 현대자동차 사측은 불법 고용을 계속하고 있으며, 검찰은 그것에 대해 수사를 하지 않고 있고

노동부 근로감독관도 불법사실을 지적하지 않고 있다. 국회도 모른채 하고 있다.  

즉 불법은 사측이 매일 반복하고 있지만, 사실상 불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

간단히 말하면 그것이 파업의 원인이다.

 

한국의 역대 공안기관은 불법의 챔피언이었고, 대기업의 기업주들은 이처럼 반칙 왕이다.

이 반칙과 불법은 천하가 다아는 공공연한 불법이다. 그 불법으로 희사는 수조원의 돈을 벌었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이 불법에 항의하는 순간 그들에게는 '불법'의 딱지가 붙고, 구사대의 폭력이

대낮에 버젓이 행사되며, 경찰과 검찰이 신속히 움직이고, 사측은 천문학적 액수의 손배배상을 청구하고 ,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은 손해가 수백억이니 그들을 빨리 잡아가라고 외친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닌가?

그렇다 수십년 동안 계속되어온 장면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거의 변하지 않는 장면이다.

현대 자동차 비정규직은 그래도 비정규직 중에서는 가장 좋은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항의에는 저항조차 할 수 없는 모든 비정규직의 눈물과 한이 담겨있다.

현대판 노예제, 비정규직를 묵인하고 살아야하는 이 시대의 우리의 모습이 참으로 부끄럽다.  

 

 

 

 

 

 

 

 

2010년 9월 4일 토요일

실업

실업상태에 있다는 것은 매일 죽는 것이다. 고용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실업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청년실업률도 사상최대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만의 현상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강력한 실업대책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생산기지기이자 최대의 소비시장인 미국의 실업률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래의 표를 보면 2000년 당시에 선진각국 중에서 최저의 실업률을 자랑하던 미국이 지금의 세계 최고의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의 실업률은 유럽에서 실업률이 가장 높은 프랑스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기존의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미국의 노동시장이 유연하기 때문에 노동시장이 경직된 유럽에 비해 실업률이 낮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미국 경제학 교과서를 수정해야 한다.

 

미국과 선진각국의 실업률 비교

The unemployment rate increased more dramatically in the U.S. than in other countries with major economies over the past decade.

Notes

Notes

The 2000-2009 numbers reflect annual data. The numbers for 2010 are the latest monthly numbers available for each country.

 

미국은 노동시장이 유연하기 때문에 노동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으나 사용자들은 노동자를 해고한 이후에 이윤이 발생하면 그들을 재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구입 등 생산성 향상에 주력한다. 해고의 부담도 없으니 재고용의 부담도 없다. 생산성과 이윤 자체가 목표니 더불어살아야 한다는 철학도 없다.

 

경제가 어려우면 사람을 잘라서 기업을 유지하는 것이 일견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위기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지 최선의 최고의 방법은 아니다. 어렵다고 사람을 쉽게 자르면 잘린 사람은 자신이 소모품 취급당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회사는 물론 사회 일반에 대해 절대로 충성심이나 소속의식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즉 기업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이러하면 사람들도 기업을 수단으로 대한다. 그것은 인간성의 실종이고 문명의 파탄이다.

 

미국의 높은 실업률은 미국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미국을 교과서로 알고 미국을 추종하는 한국은 어떠한가? 과연 한국에 기업윤리나 노동윤리가 존재하는가? 기업이 사람을 존중하지 않으면 사람들도 기업을 버린다.  경제란 결국 사람이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다. 세상이 구매력없는 실업자로 넘쳐나는데 어떻게 소비시장이 창출될 수 있을 것인가? 세계의 시장인 미국의 실업률이 이렇게 높은데 미국시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한국경제가 어떻게 지속가능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2010년 7월 12일 월요일

잊혀진 조직, 전노협

올해는 한국 역사상 굴직한 사건이 많이 발생했던 해여서 유난히 기념할 일도 기억할 일도 많다. 4.19, 5.18에서 시작해서 한국전쟁, 경술국치까지 정부나 민간차원에서 숨 가쁠 정도로 기념행사나 기념학술행사 등이 연이어 개최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잊어버린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전노협 창립 20주년이 역시 올해라는 사실이다. 전노협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가 집약된 조직적 결집체이며, 전노협 창립은 분단이후 한국의 노동계를 지배해온 한국노총 독점체제에 균열을 일으킨 큰 역사적 사건이다. 즉 전노협은 민주노조, 자주노조의 전국적인 조직체이며, 이후 민주노총과 민노당, 진보신당의 모태가 된 노동자 대중 조직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한국 노동운동사의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 진보정당 운동사의 관점에서도 전노협 창설의 의미에 대해서는 깊이 되새겨봐야 할 점이 많다.

 

전노협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새롭게 등장한 ‘민주노조’들의 전국적 결집체였지만, 진보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당시의 조건에서 부분적으로 노동자 정치운동의 과제까지 수행하였다. 창립식 조차 당국의 탄압과 봉쇄를 피해 숨바꼭질하듯이 치러야 할 정도로 극히 엄혹한 환경 속에서 결성된 전노협은 창립 이후에도 시종 탄압과 극한 투쟁을 반복하였다. 노조라는 조직 자체가 일종의 방어적 조직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전노협은 사용자 혹은 자본의 막강한 힘에 맞서서 연대를 통해 보호막을 치려했던 신생 민주노조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사용자 혹은 자본과 대립각 을 세우는 ‘민주’ 노조의 성립 자체를 부정하는 한국 자본주의의 조건 하에서 전노협이 창립되었다는 것은 이후 노동자가 분단 이후 처음으로 중요한 사회세력, 정치세력으로 등장하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정치적 민주화와 사회경제적 민주화가 충돌을 일으키는 90년대 이후의 한국의 정치경제 현실을 예고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특히 전노협의 창립은 노동자 정치세력화 도정에서 일정한 실험을 거친 지금의 시점에서 노조와 정당의 관계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진보정당은 개별 혹은 전국단위 노동조합의 정치사회적 과제를 어떻게 수렴해야하는지 등의 쟁점과 관련해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의의를 갖는 전노협 창립이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 문제는 ‘민주노조’의 계승자인 민주노총, 그리고 양 진보정당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자기 점검 과제이며, 정체성 수립을 위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지난 7월 6일 열린 전노협 건설 20주년 기념 토론회는 그 행사 주체나 다루어진 내용 모든 면에서 전노협 창립의 역사적 의미를 사회에 부각시키기에는 안타까울 정도로 왜소한 감이 있었다. 발표된 논문 자체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 행사 자체를 조직노동 혹은 정당이 아닌 외곽의 몇 단체가 공동주최를 한 것도 문제였으며, 전노협 이후의 노동운동에 대한 평가, 현재의 시점에서 본 전노협 창립의 의의, 전노협 창립에 기여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 등 중요한 내용이 모두 빠져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미처 알지 못해서 그런지 모르나, 전노협 20주년이 되는 올 1월에 민주노총, 민노당, 진보신당에서 전노협 창립 20년을 기념하는 성명이라도 발표했는지 의심스럽다.

 

한국의 대표적 노동조합이, 그리고 노동자 정당이 전노협을 기억하지 않는데, 우리사회의 누가 전노협을 기억하고 민주노동의 역사를 기억하기를 기대한단 말인가? 민주노동운동에 헌신한 사람들, 전노협 창립과 발전을 위해 온갖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을 지금의 노동운동단체나 노동자 정당이 기억해 주지 않는데 우리사회의 누구보고 이들을 기억해 달라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과연 자신들의 역사, 자신들의 공유된 기억이 없이 사회운동이나 정치가 성공할 수 있을까? 과연 자신의 역사에 대한 공유된 기억이 없는 대중과 조직이 정체성을 가지면서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을까? 단언하건데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은 연구자 등 여유있는 사람들의 사치가 아니다. 기억은 곧 운동이자 정치다. 전노협 건설 20주년 기념 토론회를 보고서 여러 가지 아쉬움을 갖지 않을 수 없다.